에드거 스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에드거 스노(왼쪽) 기자와 저우언라이.

에드거 스노(Edgar Snow, 1905년 7월 17일 ~ 1972년 2월 15일)는 미국저널리스트이다. 그는 특히 서방 기자로는 최초로 중국공산당의 본부가 있던 산시 성 바오안을 방문취재하여 저서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를 출판(1937년), 서방에 마오쩌둥이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생애[편집]

미국 중부의 켄사스 시티에서 1905년 태어난 스노는 스물세 살의 나이로 중국을 갔다가, 이미 반은 서구 열강의 침탈로 말미암아 식민지가 되어버린 중국의 어지러운 현실에 깊은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된다.[1] 교외의 농가에서 출생하여 미주리 대학교(1925~1926)와 컬럼비아 대학교(1927)에서 수학하였다. 학생시절에 캔자스시티의 지방지 《스타》의 통신원으로서 신문기자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력[편집]

중국공산당과의 만남[편집]

1928년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차이나 위클리 리뷰》(密勒氏評論)의 부편집장으로 활약하면서 중국문제 연구에 전념하였다. 1934∼1935년에 옌징대학[燕京大學] 강사로 출강하고, 동시에 《뉴욕 선》(1934∼1937), 《런던 데일리 헤럴드》(1932∼1941) 등의 잡지 특파원으로 극동·중동의 여러 나라를 순방하였다.[2]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 시 출신으로 미주리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가 학비 사정으로 중퇴하고, 뉴욕컬럼비아 대학교로 옮겨 졸업했다. 이후 잠시 주식투자에 종사하기도 했다가 1928년 세계 일주를 하고싶다는 생각으로 일본에 밀항했고, 1929년에 《Consolidated Press Association》특파원 자격으로 중국으로 옮겨 1941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1932년에는 중국에 와 있던 미국여성 헬렌 포스터 스노(필명 님 웨일즈)와 결혼했다. 이후 중국에서 많은 을 발표했고, 중국정부를 위해 일하기도 했다. 1936년 장정 후에 산시 성에 있던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취재하여 유명해졌다. 그의 부인이었던 헬렌 포스터 스노, 다른 이름으로는 님 웨일즈로 우리에게 더 알려진 그녀가 당시 조선 사회주의 민족 독립 혁명가 김산과 1937년 만나 “아리랑의 노래”를 썼던 것은 이렇게 보면 우연이 아닌 듯 하다. 두 젊은 벽안(碧眼)의 부부가 <아시아의 고난>에 나름대로 참여했던 셈입니다.[3] 이어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부편집장으로서 아시아와 유럽의 전시 및 전후 사건들을 보도했으며 중국, 인도, 소련 전문가로서 명성을 쌓았다.[4] 저작 활동으로는 1932년에 처녀작 《극동전선(極東戰線)》을 출판하고, 1936년에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옌안지구[延安地區]에 들어가 마오쩌둥[毛澤東]과 회견하고 저술한 《중국의 붉은 별》로 중국 공산당의 실태를 소개하였다.

미국에서의 언론활동[편집]

1941년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왔다. 1942년Saturday Evening Post》 지의 전쟁 특파원으로 고용되어 인도, 중국, 러시아를 돌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취재했다. 1944년에 펴낸 그의 저서 《People on our side》는 반파시즘 연대를 강조했다. 1949년 님웨일즈와 이혼하고, 여배우 로이스 와일러와 재혼하였다. 공산주의에 온정적인 그의 태도 때문에 매카시즘이 만연하던 1950년대 미국에서는 활동에 제약을 받아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했다. 그러나 미국 국적을 버리지는 않았다.

중국 방문[편집]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 《아시아 전쟁》(1941)을 출판한 후, 본국으로 돌아가 평론활동을 계속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종군기자로 중국은 물론, 아프리카·인도·소련 등을 방문, 《우리편의 민중》(1944) 《소비에트세력의 형태》(1945)를 출판하였다. 1960년1964년 다시 중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둥저우언라이와 회담했다. 마오쩌둥·저우언라이[周恩來] 등과 회견하고 중국의 실정을 소개하였다. 1969년에도 방문하여, 중국 지도부로부터 "닉슨 대통령이 방중한다면 우리는 그를 환영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한창이었던 문화대혁명 와중에서 마오의 개인숭배가 횡행하고, 혁명에 참가했던 동지들에 대한 숙청을 보고 환멸감을 갖기도 했다.

그가 스위스에서 과 투병하자, 저우언라이는 그를 위해 중국인 의사들을 파견하였다. 제네바에서 별세하였다.[5]

평가[편집]

<뉴욕타임즈>의 헤리슨 솔즈베리는 "에드가 스노를 읽거나 연구하지 않고는 누구도 오늘의 중국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데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던 스노를 높게 평가했다.[5]

저서[편집]

  • 모택동 자전[6]
  • 중국의 붉은 별 - 상[7]

중국의 붉은 별[편집]

당시 모든 외국인 특파원은 상하이중국국민당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 취재활동을 했으며, 마오쩌둥이 있는 홍군 지역으로 들어가지 않고 안전한 취재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스노는 추천장 한 장을 들고 마오쩌둥을 찾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마오쩌둥과 마주한 스노는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홍군의 지도자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국민당에 가입하기까지 공산당원이 되는 과정, 그리고 대장정의 과정 등을 마오쩌둥에 의해 생생하게 기록했다. 마오쩌둥 뿐만 아니라 저우언라이 등 당시 중국 공산당을 지도하던 인사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야이기를 전하고 보통 농민들의 이야기도 생생하게 담았다. 마오쩌둥은 조선이 중국의 식민지였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스노는 주석으로 '사실 조선은 중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중국이 종주권을 주장한 인접국이었다.'는 말을 달아놨다. 이런 태도가 마오쩌둥과 공산당에 대한 찬가로 변모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8]

각주[편집]

  1. 김민웅 프레시안 기획위원. “에드가 스노우, 그리고 후진타오까지, 프레시안”. 《프레시안》. 
  2. “에드거 스노[Edgar Parks Snow], 두산백과”. 《두산백과, doopedia》. 
  3. 김민웅 프레시안 기획위원. “에드가 스노우, 그리고 후진타오까지, 프레시안”. 《프레시안》. 
  4. “에드가 스노우, 교보문고 & 해외저자사전”. 《해외저자사전》. 
  5. 김대오 (2007년 2월 16일). “중국 인민의 친구 '에드거 스노우', 중국인의 마음 속 사라지지 않는 별... 15일 사망 35주년”. 《OmyNews》. 2018년 6월 14일에 확인함. 
  6. 에드거 스노 (2001년 12월 1일). 《모택동 자전, 에드거 스노》. 평민사. 
  7. 에드거 스노 (1995년 2월 28일). 《중국의 붉은 별 - 상, 인터넷 교보문고》. 두레. 
  8. 에드거 스노 (2013년 4월 30일). 《중국의 붉은 별, 인터넷 교보문고》. 두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