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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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분쟁
(냉전의 일부)
Sino-Soviet split 1980.svg
결과 공산권의 분열

중소 분쟁(中蘇紛爭)은 1956년 소련 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 소련 공산당중국 공산당 사이에 공산주의 이념의 원칙적인 여러 문제에 관해 벌인 분쟁을 말한다.

발단 및 경과[편집]

논쟁의 발단은 1958년부터 시작되는 중공의 제2차 5개년 계획에 적극 후원하겠다던 소련이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는 점, 중화인민공화국타이완 해협 위기 상황을 조성했을 때 소련은 겉으로 중국 공산당 측을 옹호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 중공과 인도 사이에 국경분쟁이 일어났을 때 소련이 중립적 입장을 취한 점 등에 대해 중공이 오랫동안 축적된 불만을 표면화함으로써 생겼다.

1960년 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의에서는 1956년에 채택된 흐루시초프평화공존론을 재확인하는 공동선언서를 채택하였다. 이 회의에 배석원 자격으로 참석한 중공 대표 캉성(康生)은 이때까지 쌓였던 소련에 대한 불만을 소련의 평화공존론을 공격함으로써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캉성은 "미국이 여전히 제국주의적 침략성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타이완 해방은 미국의 방해 공작으로 완수되지 않았다. 흐루시초프의 낙관적인 평화공존론으로 대미 유화 정책이 대두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중공은 또 수정주의에 대해 비난을 가하였고, 레닌주의의 정당성을 신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소련의 쿠시넨(Kwusinen)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은 한낱 낡은 교조(敎條)로 화석화(化石化)할 것이 아니라 항상 변천하는 새로운 역사 상황에 보조를 맞추어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며, 흐루시초프야말로 현역사상황에 가장 알맞게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위대한 공로자이며 그의 평화공존론은 현 국제정세에 가장 합당하도록 레닌주의 외교정책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신노선이라고 중공에 대해 반박하였다.

이렇게 평화공존론에서 시작된 논쟁은 개인 숭배 사상 배격론, 알바니아 문제, 유고슬라비아 문제, 소련 공산당의 신강령, 후진국 민족해방운동 성격 규정, 핵무기 문제 등을 둘러싼 전면적 논전으로 번져갔다.

공산진영의 분열[편집]

공산권은 친소파와 친중파로 갈라졌다. 동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는 친소 노선이었으나 유고슬라비아는 중립을 지켰고, 알바니아는 친중으로 돌아섰다. 쿠바, 베트남, 라오스,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토고, 북예멘, 앙골라, 모잠비크, 콩고 공화국은 친소파였으며, 소말리아는 1977년까지 소련과 친교를 강화했으나 이후 중공 쪽으로 선회했다. 캄보디아는 1979년까지 친중이었으나 이후 친소로 바뀌었다.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우리식 사회주의를 주장하며 주체사상을 정립하고 중립을 유지했다.

평가[편집]

이념분쟁의 배후 요인은 소련 공산당이 현대수정주의자·기회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고 중공이 교조주의자·모험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 있는 양국의 사회적 현실, 사회주의 발전 단계의 차이에 있다고 보고 있다. 즉 공산주의 진영 내부의 선진과 후진, 부유와 빈곤, 현상유지와 현상타파, 보수와 혁신의 대립, 한걸음 나아가서는 서방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소련 공산당과 동방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중국 공산당 사이의 대립이 곧 중·소 이념 분쟁의 기본 성격이라고 지적된다.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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