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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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전쟁(스페인어: Guerra Sucia)은 호르헤 비델라 대통령 집권 시절인 1976년에서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군사정권이 국가에 의한 테러, 조직적인 고문, 강제 실종, 정보 조작을 자행한 시기를 일컫는다. 학생·기자·페론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게릴라 및 동조자가 주피해자이다. 약 1만명 정도의 몬토네로스와 인민혁명군의 게릴라가 실종됐고, 최소 9000명에서 최대 3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실종되거나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더러운 전쟁은 콘도르 작전의 일부로 시작됐다.

비밀 수용소[편집]

아르헨티나 군부는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살해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 아래 전국적으로 300여 곳에 죽음의 수용소를 설치·운영했다. 수용소는 주로 변두리 지역의 학교나 체육관 등 대규모 건물을 개조해 비밀스럽게 사용했는데,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변에만 이런 수용소가 한때 수 십개에 이르렀다.[1]

가톨릭 교회의 군부 협조[편집]

아르헨티나의 가톨릭 교회는 호르헤 비델라의 군부 쿠데타를 사실상 묵인했다. [2] 쿠데타 주도 세력인 호르헤 비델라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같은 쿠데타 주도 세력인 해군 참모총장 에밀리오 에두아르도 마세라는 당시 교황의 외교사절인 피오 라기 추기경과 정기적으로 만나 테니스를 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3]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호르헤 비델라는 가톨릭 정신에 입각한 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국가 재건 과정(國家再建過程, 스페인어: Proceso de Reorganización Nacional)을 주도했다.[4] 이 과정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비밀구치소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실종당하는데 이 실종자들에 대한 보고서가 《눙카 마스》 보고서이다.

이《눈카 마스》 보고서에는 가톨릭 교회가 군부독재에 협조하고 심지어 납치와 고문에 가담했다는 증언을 담고 있다. 아르헨티나 주교회는 1977년 5월 군부의 통치방식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또 다른 한편에선 직접 납치와 고문에 가담했다.[5] 대표적 인물인 크리스티안 폰 베르니히(Christian Von Wernich) 신부는 반체제 인사들의 납치와 고문 살해에 직접 가담한 정황이 《눈카 마스》 보고서에 드러나 결국 법정에 세워졌다. 베르니히 신부는 2007년 살인 7건, 납치 42건, 고문 31건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형에 처해졌다. [6] 베르니히의 재판 기간 내내 침묵을 지켜왔던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단은 판결 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가톨릭 사제가 ‘심각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게 돼 고통스럽게 여긴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군정 시절 인권보호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7]

교황 프란치스코 역시 교황직에 오르기 전 더러운 전쟁 당시 군사정부에 협조한 정황이 드러났다. 1979년 아르헨티나 항구 도시 바이아블랑카에서 납치된 앨리사 파트노이는 인터내셔널비즈니스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의 교회는 역할 분담이 되어 있는데 그중 군을 지원하는 분야가 있다. 프란치스코(당시 추기경)는 그 분야에 속해 있었다”고 말했다.[8] 아르헨티나 신문 <파히나 12>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1970년대 아르헨티나 예수회 총장 시절 군사정권의 예수회 소속 신부 2명에 대한 체포·고문을 방조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부 문서를 폭로했다. 이 신문은 1979년 당시 예수회 총장이던 그가 군사정권한테 납치돼 고문당한 프란시스코 할릭스 신부의 여권 발급을 거부하라고 권고한 내용을 담은 아르헨티나 외교부의 문서를 공개했다. 문서에는 할릭스 신부가 교단의 명령에 불복종했고 게릴라와 접촉한 의혹이 있다며 “이 정보는 베르골리오(프란치스코 교황) 신부에 의해 제공됐으며, 그는 여권을 발급 해달라는 할릭스 신부의 요청을 거절하라는 특별 권고를 했다”고 적혀 있다. 할릭스 신부와 오를란도 요리오 신부는 빈민가에서 일하다가 군사정권에 납치돼 6개월 동안 강제수용소에서 고문을 받다 풀려났다. 이 문서는 아르헨티나 언론인이자 더러운 전쟁 당시 실종자 가족들의 단체인 '5월 광장의 어머니회' 자문 변호사인 오라시오 베르비츠키가 군부독재 시절 가톨릭교회의 역할을 비판한 저서 <침묵>에서 공개된 바 있다.[9] AFP 통신은 베르고글리오가 교황으로 선출된 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성당의 벽에 "새 교황은 비델라(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자 호르헤 비델라)의 친구"라는 낙서가 써 있었다고 보도했다.[10]

각주[편집]

  1. 로사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
  2. 위키백과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문서 참조
  3. >프란치스코가 아니었던 지난날, 그가 혹시 , 2013-4-4, 한겨레 나들
  4. >'새 대통령 비델라 장군 반공 투철한 가톨릭 신자' , 1976-3-26, 경향신문
  5. 《눈까마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의 실상》, 송기도 역(나남)P156
  6. 아르헨 과거청산…군정 협력 신부에 종신형, 2007-10-10, 연합뉴스
  7. 아르헨 ‘더러운 전쟁’ 가톨릭사제에 종신형, 2007-10-10, 한겨레
  8. “파파, ‘더러운 전쟁’ 때 어디에 임하셨나요”, 2013-3-28, 시사저널
  9. ‘새 교황-독재군부 결탁 의혹’ 문서 파장, 2013-3-18, 한겨레
  10. 새 교황 아르헨 군부독재 묵인 논란, 2013-3-15,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