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거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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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1981년부터 1989년까지의 임기 동안 수행한 시장 중심적 경제 정책 혹은 이와 유사한 정책을 가리킨다. 라디오 방송자 폴 하비가 레이건(Reagan)과 이코노믹스(economics, 경제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합쳐서 만든 말이다. 레이거노믹스의 중심 내용은

  1. 정부 지출의 축소
  2. 노동과 자본에 대한 소득세 한계세율을 낮춤
  3. 정부 규제의 축소
  4. 인플레이션을 줄이기 위한 화폐 공급량의 조절

[1] 세금을 낮추고 국내 지출을 줄였다는 점에서 레이건의 경제 정책들은 직전의 전임자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역사적 배경[편집]

레이건 행정부 이전에 미국 경제는 10년 동안의 실업률 증가와 인플레이션(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통화공급의 증가도 야기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소득정책은 점차 사라져갔다. 미래 단기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전략비축유가 만들어졌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에너지부를 만들었지만 석유에 대한 가격 통제를 줄이기 시작했다. 스태그플레이션 해결을 위한 대량의 신용공급은 두가지 요인에 기인했다. 지미 카터 집권 마지막 해에 시작된 폴 볼커 의장하의 연방준비제도의 3년 계약의 통화공급과 1980년대 석유 공급과잉 시기 동안에 원유의 장기 공급 과잉과 가격.

레이건은 소득세법 간소화와 규제철폐와 함께 한계세율 인하를 위한 법을 제정했다. 1980년 지미 카터 재임시 국내총생산(G.D.P.)의 2.7% 규모의 연간 재정적자는 레이건 집권하에서 평균 4.2%에 달했다. 연방의 실질 경제성장률(인플레이션을 감안한)은 지미 카터하의 4%에서 레이건 하에서는 2.5%까지 하락했다.

1980년 대통령 후보 지명 경쟁 당시 조지 H. W. 부시는 레이거노믹스를 '부두경제학'(voodoo economics)라고 조롱했다. 이와 유사하게도 1976년 제럴드 포드는 연방 예산을 각 주에 돌려주자는 레이건의 제안을 심각하게 비난했다.

타당화[편집]

1980년 경선 캠페인 연설에서 레이건은 대침체와 연준의 뉴딜정책 전에 있었던 자유기업정신과 시장자유주의 경제로 돌아가는 경제 제안을 천명했다. 동시에 공급중심 경제운동을 이끌었는데 케인스 경제학의 수요자극경제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레이건 재임 당시 몇몇의 엄청난 정책 지지자들을 양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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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율인하가 연방채무증가분 이상을 채워준다는 지지자들의 주장은 래퍼 곡선으로 알려진 세율의 탄력성을 기초로 한 이론적 조세모델에 영향을 받았다.

정책[편집]

레이건은 1981년 1월 28일 남아있는 국내 석유 가격과 할당 관리권한을 올렸고, 1981년 8월에는 석유 초과 이윤세를 인하했다. 1988년에는 석유 초과 이윤세를 종료시켰다. 1982년 레이건은 법인세 인하 철폐와 개인 소득세 인하 소폭 철폐에 합의했다.

결과[편집]

레이건의 두 번의 집행기간(1981~1988) 동안 지출은 GDP의 평균 22.4% 정도였는데, 1971년부터 2009년까지 GDP의 평균 20.6%를 상회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재정적자는 1980년 GDP의 26% 수준에서 늘어나 1988년 GDP의 41%까지 상승했다.

실업률[편집]

레이건 행정부하에서 일자리 성장률은 매년 평균 2.1%였고, 실업률은 평균 7.5%였다.

GDP 성장[편집]

빈곤 수준[편집]

각주[편집]

  1. William A. Niskanen. “Reaganomics”. The Concise Encyclopedia of Economics. 2007년 5월 22일에 확인함.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