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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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사회주의(아랍어: الاشتراكية العربية, 영어: Arab socialism)는 범아랍주의(영어: Pan-Arabism)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정치사상이다. 아랍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와는 차별화된 민족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범아랍주의와 같은 아라비안 특유의 민족주의, 아랍 민족 해방 관점에 세속주의사회주의를 결합한 이념으로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현재 아랍 사회주의는 전통 사회주의와 매우 다른 이론적 발전을 계승했기 때문에 전통 사회주의에서 제외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몇몇 학자들은 아랍 사회주의를 파시즘의 일부로 본다.

이집트에서 나세르주의 성향을 띤 군장교들은 1952년이집트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후부터 시리아(1963년)에 아랍 사회주의자가 정권을 잡고 이라크(1970년)는 사담 후세인이 정권을 실질적으로 잡았고 그 외 중동에 아랍 사회주의 성향을 띤 쿠테타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20세기 중반에 그 위용을 떨쳤다. 아랍 사회주의는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가 내세운 전통 나세르주의파와 미셸 알플라크가 개량한 바트주의로 나뉜다. 그리고 보통 아랍 사회주의라면 '바트주의'를 의미한다.[1]

개요[편집]

나세르 아랍 사회주의는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를 주축으로 일어난 이집트 쿠테타으로 처음 정립화되었다. 그리고 바트 아랍 사회주의는 1940년 미셸 알플라크자키 알아르수지가 공동으로 작업하여 완성한 아랍 특유의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이다. 아랍 사회주의를 표방한 여러 국가가 붕괴하므로 아랍 사회주의는 최근, 그 실용성이 잊히고 있지만 아랍 사회주의는 아랍 국가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정치사상에 속한다. 그리고 1947년 바트당의 출범으로 정치적 영향을 처음으로 발휘했다. 1950년대 아랍 사회주의 정당 지식인과 정치적 영향은 1960년대 까지 정점에 도달했다. 이 아랍 사회주의 운동은 처음에 나세르주의 운동의 이념을 기초로 구성했다. 아랍 사회주의자들은 20세기 중반,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던 여러 북아프리카, 중동계 국가들의 민족 해방 운동 사상에서 주류 세력이 되었다.

미셸 알플라크자본주의의 식민지주의적이고 협조주의적 자세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그는 이론을 만들면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다른 사회주의 계획 경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여러 산업지를 국유화하고, 토지를 무상분배화하고 금리를 동결시킨다는 뜻과 같은 뜻이었다. 이러한 대량의 국유화 작업이라는 특징은 당시 유럽 식민지 기간 당시 막대한 부를 차지했던 부르주아들의 재산을 분산시키고 대중에게 분배하기 위함이 드러나 있다. 이러한 정책은 시리아에서 경제적 낙후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이라크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함으로써 막대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21세기 아랍 사회주의 성향을 띤 정치인들은 종종 시장 경제를 옹호하기도 한다.[2]

이런 사회주의적인 이론 속에서도 아랍 사회주의는 한편으로 사유 재산을 인정했으며, 재산의 세습을 인정했다. 그리고 아랍의 통일과 민족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국제주의를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를 거절하며,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로 발전했다. 또한, 아랍 사회주의는 세속주의를 주장했으나, 이슬람 근본주의가 심화하던 시기에 그들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무신론을 바탕으로 한 마르크스주의는 당시 중동 정치 상황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반공주의적인 정치 운동을 기초로 했다. 적어도 아랍 사회주의 운동은 계급협조 성향을 띤 여러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했기 때문에 계급투쟁적 사상인 공산주의마르크스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상이었다.

냉전 기간 아랍 사회주의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 사이에서 중도적 이데올로기 운동을 펼치는 과격 급진주의 아랍 정치 운동권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아랍 사회주의의 핵심적인 사상은 세속주의, 사회주의,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반공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아랍 사회주의 사상은, 쿠데타로 집권한 여러 독재자들의 정권 연장용 사상에 불과한 것이었고, 기존 목표를 망각하고 친기득권적 사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는 1970년대 나타난 사상적 변질 현상이며, 이것은 아랍 사회주의의 후퇴를 의미하기도 했다.

여성 해방[편집]

바트당 계열의 아랍 사회주의는 종교적 교리에서 분리되는 세속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정책에 중점을 두었다. 그 예로 이라크사담 후세인 재임 기간에는 종교적 이유로 차별받아 교육수준이 낮던 여성을 중점으로 교육해 문맹률을 한자릿수로 낮추고 학력 수준을 높였다. 그 외 여러 중동의 아랍 사회주의 국가는 양성평등을 정치적 슬로건으로 두었다. 이들은 여성이 사회의 반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들도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제약을 걸었던 여러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는 차별화되기도 했다. 또한, 아랍 사회주의는 이러한 근본주의 세력은 여성을 종교적인 이유로 사회적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에 근본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은 사회는 경제, 사회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쇠퇴[편집]

중동에 일어난 여러 전쟁은 아랍 사회주의를 후퇴시키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아랍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정치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체주의를 이용했고, 소수의 아랍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사유 재산을 불리면서 불평등주의를 유발했다. 이 결과 아랍 사회주의는 '중동의 전체주의'으로 불렸다. 아랍 사회주의는 부르주아적 사상으로 변질하였다. 그 예로 이라크와 시리아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개인숭배를 벌이는 등 여러 아랍 사회주의 정권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강제 사상 교육을 추진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전쟁으로 집권을 상실하였고,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는 국내의 자유주의 혁명으로 정권이 붕괴하므로 21세기 아랍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정권을 잡은 정치 세력이 미미해졌다. 그러나 아랍 사회주의를 따르는 중동의 지식인들이 아직 다수 존재한다. 대부분 이들은 제3의 대안을 주장하며 자본주의 그리고 공산주의를 비판하며 아랍 사회주의를 이론적 계승하고 있다.

인물[편집]

개량 아랍 사회주의파[편집]

미셸 알플라크와 자키 알아르수지가 공동 작업하여 만들어진 아랍 사회주의의 종파이며, 바트당이 이 아랍 사회주의 이념을 따르기 때문에 바트주의라고도 한다. 이들은 기존 나세르주의와 달리 세속주의를 주장한다. 나세르주의에 비해 급진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나세르주의파[편집]

이집트 혁명으로 처음 나타난 아랍 민족주의 계파이다. 가말 압델 나세르1952년 이집트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나세르주의라는 사회주의적 사상을 이론적으로 구상했다. 나세르주의파는 이슬람주의 세력과 친밀 관계를 가지고 그들과 밀접한 관계에서 활동을 한다.

이슬람 원리주의와의 분쟁[편집]

이슬람 원리주의와 아랍 사회주의는 둘다 반제국주의, 반미주의적 성향을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아랍 사회주의는 세속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원리주의와는 상반 된 정치사상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와 아랍 사회주의 간의 분쟁은 대표적으로 아직 종전이 되지 않은 시리아 내전이 있다.

같이 보기[편집]

관련 서적[편집]

  • Pratt, N 저 《Democracy& Authoritarianism in the Arab World》(2007년)
  • Al-Ali. N. S. 저 《Iraqi Women》(2007년)
  • 세미 한나 저 《Arab socialism: a documentary survey》(1969년)
  • 막심 로댕송 저 《Marxism and the Muslim world》(1979년)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