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이 뉴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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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이 퍼시 뉴턴(Huey Percy Newton, 1942년 2월 17일 ~ 1989년 8월 22일)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해방 운동자, 혁명가이며 흑표당의 창시자이다.

루이지애나 주 먼로에서 태어나 3살 때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로 이주하였다. 1960년 오클랜드 기술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나 문맹자에 지나지 않았고 그의 독학 시절 동안에 플라토의 《공화국》을 읽는 데 노력하였다. 그 내용을 더욱 이해하기 위하여 5번이나 읽어 자신이 정치적 지도자가 되는 영향을 주었다.

10대 시절에는 경범죄로 몇 번이나 체포당했으며, 특히 14세 때에 총기 소유와 야만 행위로 구속되었다. 뉴턴은 학교에서 자신을 후원하기 위하여 오클랜드와 버클리에서 도둑질을 하거나, 다른 범죄를 일으켰다.

오클랜드의 메리트 칼리지의 학생으로서 뉴턴은 연안 지역의 정치와 관련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협회에 가입하여 파이베타시그마 친목회의 특출한 회원이 되었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 프란츠 파농, 맬컴 엑스, 마오쩌둥체 게바라의 업적들을 읽었다.

1966년 10월 바비 실과 함께 흑인들의 좌익 자신방어 단체 흑표당을 결성하였다. 당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블랙 파워의 운동과 정치에 깊이 관련되어 국내적, 국제적으로 명성과 충돌을 얻었다.

1967년 10월 28일 뉴턴은 경찰관 존 프레이를 살인한 죄로 구속되었다. 동료 경찰관 허버트 힌즈가 지원하기 위하여 도착할 때 총소리가 울리면서 3명이 모두 상처를 입었다. 1968년 9월 유죄 판결로 징역 2~15년 선고받았다. 1970년 5월에 캘리포니아 항소 법원은 유죄를 바꿔놓고 새 재판을 명령내렸다. 2번의 재판 후에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재판을 중단하였다.

1974년 그의 여자친구 그웬 파운텐과 함께 쿠바로 도주하였다가 1977년 귀국하여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크루즈에 입학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짐 존스가 교주로 있던 인민사원에 신도가 되었고 이후 가이아나에 있는 인민사원 신도들의 집성촌인 존스타운에 거주했으며, 1978년 11월 18일에 일어난 존스타운 대학살의 생존자이기도 했다. 당시 존스타운 현장에 있었고 인민사원 교주인 짐 존스가 신도들을 집합시키며 독극물 자살을 강요할때 사촌동생인 스탠리 클레이튼과 함께 존스의 무장경비원들을 따돌리고 정글로 도망치며 생존할 수 있었다. 1989년 8월 22일 오클랜드에서 24세의 흑인 게릴라 가족원 타이론 로빈슨의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