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국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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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국의 난
Regaining the Provincial City Anqing2.jpg
날짜 1850년 12월 ~ 1864년 8월
장소 중국 강남 일대
결과 청나라의 승리
교전국

청나라의 기 청나라

용병 :
양창대
지원국:
프랑스 프랑스 제2제국
영국 대영제국

미국의 기 미국
태평천국
지휘관

Flag of the Qing Dynasty (1862-1889).svg 함풍제
Flag of the Qing Dynasty (1862-1889).svg 서태후
Flag of the Qing Dynasty (1862-1889).svg 증국번

Flag of the Qing Dynasty (1862-1889).svg 마신이
Flag of the Qing Dynasty (1862-1889).svg 보르지기트 셍게린첸
Flag of the Qing Dynasty (1862-1889).svg 관문
Flag of the Qing Dynasty (1862-1889).svg 이홍장
Flag of the Qing Dynasty (1862-1889).svg 좌종당
Flag of the Qing Dynasty (1862-1889).svg 장국량 
프랑스 오귀스트 레오폴드 프로테
영국 찰스 조지 고든
미국 프레더릭 타운센 워드 

미국 헨리 안드레 버저빈

천왕 홍수전
동왕 양수청 
서왕 소조귀 
남왕 풍운산 
북왕 위창휘 
익왕 석달개 
충왕 이수성 
이세현 

진옥성 
병력
1,100,000 명 이상[1] 500,000 여명[2]
피해 규모
145,000 명 사망 243,000 명 사망
총 사망자: 최대 2천만 ~ 3천만 명[3]

태평천국의 난(太平天國之亂, Taiping Rebellion)은 서기 1850년에서 1864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대규모 내전이다. 교전 상대는 만주족 황실의 청나라 조정과 기독교 구세주 사상을 기반으로 한 종교국가 태평천국이었다. 태평천국의 난의 주요 무대는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호북성이었으나, 14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북서쪽 끝의 감숙성을 제외한 모든 중국의 성을 최소 한번 이상 태평천국군이 지나갔다. 태평천국의 난은 명청전쟁 이래로 중국 역사상 가장 대규모 전쟁이었으며, 인류 전체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유혈낭자한 내전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세기 최대의 군사분쟁이었던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2천만 ~ 7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난민 신세가 된 사람도 수백만 명에 달한다.[4]

1851년 1월 1일, 청나라의 정규군인 녹영군광서성 금전현(오늘날의 계평시)의 기독교계 신흥종교인 배상제회를 타격했다. 배상제회 교주 홍수전은 자신이 야훼의 둘째아들이고 예수의 동생이라고 주장했다. 녹영군의 배상제회 공격은 금전 봉기로 이어졌다. 홍수전은 자신을 "태평천국의 천왕"이라고 선포했다. 청군이 광서성으로 출동하자 태평천국군은 1851년 9월 북쪽으로 도망갔다. 그리고 1853년 3월 19일 태평천국군은 남경을 점령, 남경을 천국의 수도인 "천경"이라고 명명했다.

십여 년에 걸쳐 태평천국은 양쯔 강 유역 중류의 많은 지역을 점령했으며, 이곳은 청나라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비옥한 땅이었기에 태평천국은 급격히 불어났다. 태평천국군은 1853년 6월 북진하여 청나라 수도 북경을 거의 점령할 뻔 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서쪽으로도 진군하여 안휘, 강소, 호북의 여러 군현을 손에 넣었다. 청나라 정규군은 태평천국군의 진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했고, 대신 교착상태에 빠진 남경 공성에 집중했다. 그리고 호남성에서 증국번이 이끄는 민병대 상군이 궐기하여 청나라 조정측에 가담해 태평천국과 싸웠다. 증국번의 상군은 태평천국군을 성공적으로 토벌했고, 내전의 서부전선에서 태평천국의 팽창은 중단된다.

1856년, 태평천국의 동왕(東王) 양수청이 쿠데타를 시도(천경 사변)하여 태평천국에 내분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태평천국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동안 상군은 호북성과 강소성의 대부분을 재회복했다. 1860년 5월, 태평천국군은 1853년부터 남경을 공격하고 있던 청군을 무찔렀고(제2차 강남대영 공략), 이때 청나라 정규군이 거의 전멸함으로써 태평천국군은 청나라에서 가장 부강한 지역이었던 남쪽의 강소성과 절강성을 침략할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되었다. 태평천국군이 강소성을 재탈환하는 동안 증국번의 민병대는 양쯔 강을 따라 내려가며 진군, 1861년 9월 5일 안경을 점령했다.

1862년 5월, 친정부 민병대는 이제 남경을 직접 포위하고 공성하기 시작했으며, 수적으로 우세한 태평천국군이 수 차례에 걸쳐 포위망을 뚫으려 했음에도 전선을 유지했다. 반란수괴 홍수전은 1864년 6월 1일 사망하고, 그 직후인 7월 19일 남경은 함락되었다(천경 공방전). 남경이 무너진 뒤 증국번과 그 제자들, 이홍장좌종당 등은 제국의 구원자로 추앙되었고 19세기 말 중국 정치계의 거물로 성장했다. 절강성 북부에서 태평천국의 잔당이 홍수전의 어린 아들 홍천귀복을 앞세워 항전했으나 홍천귀복은 1864년 10월 25일 사로잡히고, 그 이후 태평천국 잔당은 강소, 절강, 복건의 산악지대로 밀려났고, 중국 대륙 최남단인 광동성까지 쫓겨났다. 그리고 광동에서 최후의 태평천국 잔당 지도자인 왕해양이 1866년 1월 29일 토벌되어 태평천국의 난은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각주[편집]

  1. Heath, pp. 11–16
  2. Heath, p. 4
  3. Stephen R. Platt. Autumn in the Heavenly Kingdom: China, the West, and the Epic Story of the Taiping Civil War. (New York: Knopf, 2012). ISBN 978-0-307-27173-0), p. xxiii.
  4. Cao, Shuji (2001). 《Zhongguo Renkou Shi [A History of China's Population]》. Shanghai: Fudan Daxue Chubanshe. 455. and 5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