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적 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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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적 유물론(辨證法的唯物論)은 헤겔이 최종적으로 발전시킨 관념론적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마르크스엥겔스가 변증법적으로 "지양"한 이론이다. 그리고 20세기에서는 레닌이 맑스와 엥겔스를 계승하였다. 마르크스·엥겔스 사상의 철학적 부분을 레닌스탈린이 당적 교조(黨的敎條)로서, 소련의 고정세계관으로서 공식화한 관제철학(官制哲學)이다.[1] 유물 변증법(唯物辨證法) 또는 유물론적 변증법(唯物論的辨證法)이라고도 부른다.

마르크스나 엥겔스는 18세기 프랑스의 유물론이나 이를 계승한 독일의 유물론자 포이어바흐에게서 학설을 배우고, 헤겔의 철학에서 변증법이라는 방법을 배웠다. 그래서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고쳐 만들어서 종래의 기계론적 유물론, 형이상학적 유물론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형태로 변형시켰다고 할 수 있다. 변증법이란 우리가 사물을 볼 때에 사물을 고정적인 상태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전체적인 연관과 함께 그 끊임없는 발전을 본다는 데에 핵심이 있다.[2]

내용 및 비판[편집]

마르크스는 유물론적 입장에 서기는 했으나 유물론과 변증법의 다리를 놓으려는 철학적 논의를 한 바가 별로 없고, 엥겔스가 '자연변증법'에서 그 점을 시도했으나 미완에 그쳤다. 유물론의 원칙을 관철하려면 변증법이 죽게 되고 변증법을 옹호하려면 유물론은 포기되어야 한다.[1]

마르크스는 인식론적 반성 없이 다만 반관념론적(反觀念論的) 입장에 서서 의식에 대한 존재의 우위, 인간에 대한 자연의 우위만을 강조하여, 이 물질결정론으로 사적 유물론(史的唯物論)의 경제결정론의 기초를 부여하려고 하였다. 레닌은 마흐아베나리우스의 경험비판론 등 실증주의경험론으로부터 유물론의 교조를 옹호하기 위해 유물론을 실재론적으로 해석하고 "의식은 존재의 반영에 불과하고 고작해야 근사적으로 정확한 반영에 불과하다"라고 해서 반영론적(反映論的) 유물론을 공식화했다.[1]

그보다 더 유물론의 공식화를 극단화시킨 것은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볼셰비키 당사(黨史) 제4장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교조(敎條)로 고정시키고 마르크스주의 해석을 스탈린 1인만이 할 수 있도록 독점화했다. 여기서 스탈린은 '변증법적 유물론은 마르크스-레닌주의당의 세계관이다'라고 해서 당적 교의(黨的敎義)로 단정하고 이른바 'DIAMAT(소련 공산당의 세계관)'로 굳어지고 통속화되었다. 이 철학의 변증법적 해석은 자연 및 사회, 역사 등 모든 현상이 보편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상호 의존적이요, 운동하고 발전한다고 하는 세계의 통일성을 인정한다. 이는 스스로 과학을 자칭하면서도 전체학(全體學)을 표방하는 형이상학이라 지적되었다.[1] 'DIAMAT'에서의 의식에 대한 존재의 우위원칙은 인간의 주체적 사고나 능동성은 거세되고 타성적 '물질'에 의해 규정당하는 결정론을 낳았으며, 따라서, 이 객관주의적 물질1원론에서 귀결된 역사필연성(歷史必然性)의 강조는 역사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 인간의 역사창조자로서의 능동적 역할을 부정하고 오로지 당의 공식적·폭력적으로 강요될 수 있는 스탈린 주의적 강제사회의 신조로 이용되었다.[1]

'DIAMAT'는 비록 유물론임을 자처하나 그 철학적 '당파성(黨派性)'의 원칙에서 모든 이론은 실천의 도구, 즉 당에서 유용한 이론적 도구라고 보는 프래그머티즘 경향과 아울러 당적(黨的) 실천을 위한 이데올로기의 강조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관념론' 경향으로 흘러, 결국에 가서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또한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모순'인데 이 '모순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해서 계급투쟁설과 계급혁명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철학적 전제로 삼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아래에 모순문제가 야기되어 과연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모순이 해소되었다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모순 없이도 사회발전이 가능한가의 이른바 '모순 논쟁'이 야기되었다. 모순 없이는 사회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려면 사회주의 사회에도 모순이 상존(尙存)한다고 자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순 논쟁'은 흐루시초프의 '평화공존 논쟁'으로 발전하여 자유·공산 양대진영의 관계를 모순관계로 보고 전쟁불가피론을 주장하는 파(正統派, 중국)와 흐루시초프의 평화적 공존의 이론(修正主義, 소련)으로 갈라섰다. 흐루시초프대에 와서 비로소 과학자들이 'DIAMAT'를 억지로 적용하지 않아도 되었고, 비(非)스탈린화와 더불어 극단적 공식화가 약간 완화되었다.[1]

이처럼 변증법적 유물론은 스탈린 주의적 공식화(당적 교의화)의 산물로서 이미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 거추장스러운 방해물로 변하고, 산 철학이 아니라 조로(早老)해서 동맥경화된 허위의식적(虛僞意識的) 이데올로기로 판명되었다. 이 세계관적 도그마는 서구 사회주의 정당에서 1959년 독일 사민당(社民黨)이 포기한 바 있고 동구(東歐) 공산당 여러 나라에서도 비스탈린화 이후 사실상 버린 지 오래다.[1]

같이 보기[편집]

사람
개념

각주[편집]

  1. 변증법적 유물론, 《글로벌 세계 대백과》
  2. 변증법적 및 사적 유물론,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