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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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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냉전]] 종식이 선언되고, 1989년 5월에 소련의 고르바쵸프가 중국을 방문하여 중-소관계가 정상화된 것은 한-중 수교의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울러 노태우 정부의 한-소 수교의 성공이 중국에게도 영향을 미쳐 한중 수교를 앞당겼다고 할 수 있다. <ref> {{웹 인용 |url= 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2919|제목= 한-중 수교 (1992.8) |확인일자=2009-07-11 |형식= |작품명=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저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ref> [[1992년]] [[8월]]부터 [[대한민국]]은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고 있다. 수교와 동시에 많은 문화교류를 통해서 한류 및 중류(中流)가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2008년]] [[4월 27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2008년 하계 올림픽|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재한중국인 및 중국인 유학생들의 폭력 사태로 인해 [[한국인]] 및 [[외국인]]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2008년 중국인 성화봉송 폭력시위 사건]]) 이 때문에 각국 사이에 반한, 반중 감정이 생겨나는 등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1989년 12월 [[냉전]] 종식이 선언되고, 1989년 5월에 소련의 고르바쵸프가 중국을 방문하여 중-소관계가 정상화된 것은 한-중 수교의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울러 노태우 정부의 한-소 수교의 성공이 중국에게도 영향을 미쳐 한중 수교를 앞당겼다고 할 수 있다. <ref> {{웹 인용 |url= 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2919|제목= 한-중 수교 (1992.8) |확인일자=2009-07-11 |형식= |작품명=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저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ref> [[1992년]] [[8월]]부터 [[대한민국]]은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고 있다. 수교와 동시에 많은 문화교류를 통해서 한류 및 중류(中流)가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2008년]] [[4월 27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2008년 하계 올림픽|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재한중국인 및 중국인 유학생들의 폭력 사태로 인해 [[한국인]] 및 [[외국인]]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2008년 중국인 성화봉송 폭력시위 사건]]) 이 때문에 각국 사이에 반한, 반중 감정이 생겨나는 등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한국 남자들의 국제결혼을 아내의 출신지 별로 볼 때, 중국 국적의 여자가 가장 많다. 2000년 3,566건 (전체 6,945건 중 51%)에서 2008년 13,203건(전체 28,163 건 중 46.8%)으로 증가하였다. <ref>{{웹 인용 |url= http://www.kosis.kr |제목= 한국인 남편의 혼인종류/외국인 아내의 국적별 혼인 |확인일자=2009-07-11 |형식= HTML |작품명= 국가통계포털}}</ref>


=== 중국-일본 관계===
=== 중국-일본 관계===

2009년 7월 19일 (일) 03:04 판

중화인민공화국
中华人民共和国

국기

국장
표어为人民服务
표어 설명인민을 위해 봉사한다
국가의용군 진행곡
수도베이징
최대 도시상하이 (도시 인구)
충칭 (행정 구역 인구)
정치
정치체제단일국가, 일당제, 단원제, 공화제, 집단지도체제
총서기, 주석1
국무원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최고인민법원장
부주석
시진핑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
저우창
한정
입법부전국인민대표대회
집권여당중국공산당
역사
건국 
 •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수립1931년 11월 7일
 • 대장정1934년 11월 5일
 • 중화인민공화국 수립1949년 10월 1일
지리
면적9,596,960 km2 (4 위)
내수면 비율2.8%
시간대CST2 (UTC+08:00)
DST없음
인문
공용어표준 중국어
지역어위구르어, 티베트어
데모님중국인
민족
인구
2021년 조사1,412,600,000명 (1위)
인구 밀도140명/km2 (72위)
경제
GDP(PPP)2021년 어림값
 • 전체$27조 719억 (GDP/PPP)
 • 일인당$19,338 (1인당 GDP/PPP)
GDP(명목)2021년 어림값
 • 전체$16조 8,629억 (GDP/명목)
 • 일인당$12,556 (1인당 GDP/명목)
HDI0.719 (91위, 2014년 조사)
통화런민비 (위안)3 (CNY)
종교
국교없음 (국가무신론)
종교불교 18.3%
기독교 5.2%
이슬람교 1.6%
국가무신론민간신앙 74.5%
기타 0.4%[1]
기타
ISO 3166-1156, CN, CHN
도메인.cn4
국제 전화+86
1 국제사회에서는 주로 명목상으로는 중국공산당 총서기 직을 최고지도자로 사용한다. 이는 중국공산당 장정에 에 명시되어있다.[2]
2 전국이 단일 시간을 쓴다.
3 다음 지역은 다음 통화 단위를 사용한다.
 • 홍콩: 홍콩 달러
 • 마카오: 파타카
4 다음 지역은 다음 국가도메인을 사용한다.
 • 홍콩: .hk
 • 마카오: .mo

중화인민공화국(중국어 간체자: 中华人民共和国, 정체자: 中華人民共和國, 병음: Zhōnghuá Rénmín Gònghéguó 이 소리의 정보듣기 )은 동아시아에 있는 인민공화국이자 공산주의 국가이다.

세계 최대의 인구와 광대한 면적의 국토 때문에 그 영토는 중국 대륙이라 불리기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1949년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세워졌으며, 중국 공산당이 국정을 담당하고 있다.

국명

국명의 약칭은 중국(中國)에서, 미칭은 중화(中華). 그 밖에도 국외에서는 중공(中共)이라고 부르기도 있다.

중공은 본래 중국공산당의 약칭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 헌법(中華人民共和國憲法)에 중국공산당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중국공산당 정부”의 의미로도 사용한다.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전

황하 문명 탄생 이래 중국에서는 약 5000년 동안 수많은 왕조가 흥망을 반복해 왔다. 그동안 중국은 동아시아의 맹주였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제1차 아편 전쟁제2차 아편 전쟁에서 청나라영국에 패배한 결과, 중국은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가 되었다.

그 후 중국에서는 잇단 혁명이 일어나 1912년에는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 중화민국(中華民國)이 탄생했다. 하지만, 각지의 군벌에 의한 내전이나 몽골, 티베트의 독립운동 등으로 말미암아 중화민국 시대의 중국은 분열되었다.

또한, 1930년대에는 국공 내전중일 전쟁(중국에서는 보통 "항일전쟁"이라 칭함)이 발발하여 중국 각지가 전장이 되었다.

그 후, 중일 전쟁 중에 세력을 늘려 온 중국공산당1945년일본(日本) 패배 후에 국공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세워지고, 중화민국 정부는 1949년 12월에 정부를 타이완(臺灣)으로 이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는, 국가 지도자의 지도이론이나 정책 등에 의해서, 마오쩌둥(모택동, 毛澤東) 시대(1949년~1978년)와 덩샤오핑(등소평, 鄧小平) 시대(1978년~)의, 두 개의 시대로 분류할 수가 있다.

파일:PRCFounding.jpg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있다.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은 중국에서의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추진해, 인민공사(人民公社)의 건설이나 전국적인 대약진 정책(大躍進政策)의 실시를 했다. 그러나 급진적이고 무모한 정책 운용의 결과, 농촌부의 황폐화에 의한 식량난과 대량의 아사자를 발생시키며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그 후 경제의 재건 방법으로 마오쩌둥과 류샤오치 (劉少奇)가 대립하였고, 마오쩌둥은 권력 탈환을 위해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을 일으켰다. 혁명 중 마오쩌둥으로부터 “반혁명파”라고 규정된 많은 사람이 탄압당하거나 학살당하여, 국내는 일시 내란 상태가 되었다. 또 불상등의 중국 각지의 귀중한 전통 문화재도 “반혁명”적인 존재로서 파괴되었다. 문화혁명은 마오쩌둥의 죽음과 함께 종결되었고, 일단 화궈펑(華國鋒)이 마오쩌둥의 뒤를 이었다. 곧바로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공의 실권을 잡았다.

덩샤오핑 시대의 중공은 중국공산당의 일당 독재체제를 견지하면서, 시장경제 도입 등의 경제 개방 정책을 실시하여 중국의 근대화를 진행했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할 만큼 경제가 급성장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빈부 격차의 확대나 환경 파괴가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중국은 공산주의 정치 체제의 유지를 위협하는 활동이나 중국의 분열을 촉진할 수 있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면서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1989년6·4 톈안먼 사건(6·4 天安門事件) 진압과 2005년반국가 분열법 성립 등에서 활동이 구체화하고 있다.

지리

티베트 고원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유라시아 대륙 동부에 있다. 국경은 총 22,117킬로미터로, 국경이 세계에서 가장 긴 국가이다. 북동쪽으로 러시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북쪽으로 러시아, 몽골,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남서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을 경계로 남아시아네팔, 부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라오스, 미얀마, 베트남과 접한다. 해상으로는 황해를 사이에 두고 대한민국(남한), 동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 타이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화민국(대만)과 접한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상당히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어, 지방마다 기후 등 지리 특색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지형은 서고동저(西高東低)로 동쪽에는 화베이 평원(華北平原)과 둥베이 평원(東北平原) 등의 평지가 있고, 서쪽에는 티베트 고원(靑藏高原, 청장고원), 톈산 산맥(天山山脈) 등의 험준한 산지가 많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곳은 티베트 자치구에 위치한 에베레스트 산으로 높이는 8,850미터이다. 가장 낮은 곳은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에 위치한 투르판 분지(吐魯番盆地)로 높이는 -154미터이다.

행정 구역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행정구역은 22개의 (省)[3], 5개의 자치구(自治区), 4개의 직할시(直辖市), 2개의 특별행정구(特别行政区)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홍콩, 마카오를 제외한 지역을 중국대륙(中国大陆; 중국 본토)으로 칭한다.

아래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정부의 통치하에 있는 지역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

성(省)

실효 지배하지 않는 지역

자치구(自治区)

직할시(直辖市)

특별행정구(特别行政区)

정치

중국공산당에 의한 사실상의 일당 독재 체제이다(혹은 일당 집권, 다당 협상 체제라 일컫는다). 그 외에 8개의 정당〔‘민주제당파(民主諸黨派)’라 부름〕이 존재하지만,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따르고 있어 정치적인 영향력은 거의 없다.

형식적으로는 최고 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代)에 권력이 집중되는 민주 집중제를 취한다. 법률의 입안이나 조약의 비준, 국가 주석의 선정·파면 등의 권한을 가지는 상무위원회가 있다.

실제로는 국정을 움직이는 것은 ‘당(黨)’이며, 당의 최고 지도집단인 정치국상무위원회(政治局常務委員會)가 권력을 장악하는 구조이다.

중국공산당은 중앙뿐만 아니라 말단 행정기구까지 장악하고 있다. 말단행정기구까지 중앙과 같은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각급 지방 행정기구는 해당 지역 공산당서기가 실력자이며 공산당 부서기인 장이 행정을 관리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민주화 요구가 커져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국내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거의 없지만, 국외에서는 미국의 화교 매체인 대기원시보가 중국공산당을 비판하는 사설 ‘구평공산당(九評共産黨)’을 발표하는 등의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1997년 영국에서 반환받은 홍콩1999년 포르투갈에서 반환받은 마카오는 일국양제(一國兩制)라고 하는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다. 입법부의 일부 의원은 직접 선거로 뽑는다.

사법

중화인민공화국은 아직 사법부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아서, 사법 절차에서 자백을 얻기 위한 고문과 영장 없는 자의적인 구금도 종종 벌어진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현대법은 1949년 소련 법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형성되었고, 1979년 이후 경제 근대화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등지의 투자와 발맞추기 위해 새로운 법안들이 통과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법률은 중국공산당의 이익을 반영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법률이 정치에 예속되어 있다. 법률은 단지 국가를 운영하는 수단의 일종으로 간주하여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는 지금도 거리가 멀다.

주민

중국은 56개 민족이 거주하는 다민족국가이다. 한족(漢族)이 전체 인구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55의 소수민족이 8%를 차지하고 있다. 소수민족 중 인구가 100만 명 이상인 민족은 좡족(壯族), 몽골족(蒙古族), 조선족(朝鮮族), 티베트족(藏族), 위구르족(維吾爾族), 만주족(滿洲族, 滿族), 후이족(回族) 등 18개 민족이다. 반대로 루오바족(珞巴族) 등 인구가 3천 명 이하인 민족이나, 민족을 구별할 수 없는 73만 명(2000년 시점)의 사람들도 있다.

소수민족은 주로 동북(東北), 서북(西北), 서남(西南), 각 자치구의 스텝이나 산악 지대, 고원에 살고 있으며, 이들의 거주지는 중국 전 국토의 60% 이상이다. 국내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는 성(省)은 서남부의 윈난 성(雲南省)으로, 35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다만, 오늘날에는 1970년대 말부터 시행된 개혁, 개방 정책과 1997년, 1999년의 홍콩, 마카오 반환 등으로 말미암아 56개 민족 이외의 민족도 상당수 거주한다.

언어

공용어는 표준 중국어(普通話)로, 중국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다. 표준 중국어는 중국 대륙 뿐만 아니라 타이완(대만)이나 국외에서 거주하는 화인(華人)들도 사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사용자가 많은 언어가 되었다.

중국어는 여러 가지 방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북방방언(北方方言), 오어(吳語, 상하이어 등), 광둥어(廣東語), 푸젠어(福建省), 하카어(客家語)의 5개로 대별되며 그 방언들 간에는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중국 전 지역에서 통용되는 표준 중국어는 베이징화(北京話)의 발음을 표준음으로 하고 북방어를 기초로 하여 현대백화(現代白話, 구어)의 문장을 문법 규범으로 하고 있다.

중국어를 표기하는 한자는 총 6만 자 가량으로, 그 중 2,500자가 상용한자로 선정되어 있다. 한자 간략화 정책 때문에 중국 대륙에서는 대한민국(남한)의 한국어 한자(정자; 正字)와 다른 간체자(簡體字)가 통상 사용되고 있다.

소수민족은 대부분 각 민족 언어와 표준 중국어를 병용한다. 소수 민족 언어로는 좡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등이 널리 쓰인다. 또, 55개의 소수민족 중에서 21개 민족은 자신의 문자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에는 나시족(納西族)의 동파 문자(東巴文)와 같은 표의 문자도 있다.

다만 후이족(回族), 만주족(滿洲族) 등 3개 민족은 민족 문화가 한족화(漢族化)된 영향으로 일상적으로 표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 키르기스족, 먀오족(苗族) 등의 34개 민족은 자신들의 문자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다만, 중국 국내에서 역사적으로 거주해 온 민족의 언어 이외에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다.

외국어로는 영어, 러시아어, 한국어, 일본어 등이 가장 널리 사용되며, 1990년대 말에 반환된 홍콩, 마카오에서는 중국 대륙의 공용어인 표준 중국어뿐만 아니라 광둥어영어(홍콩), 포르투갈어(마카오)도 공용어로 지정되어 사용되고 있다.

종교

항저우의 영은사(링인쓰)

종교인수

중국 종교인은 불교도교의 신자가 가장 많고, 그 외에 이슬람교가 약 4%(약 4700만 명), 개신교는 공식적으로 약 1.5%(1600만 명)가 있으나 이는 등록교회(기독교 삼자애국협회 등에 속한 교회)에 속한 교인들이며, 실제로는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소위 가정교회의 신자 수를 합하면 이슬람교와 개신교의 신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종교정책

중국 정부는 1982년 발표된 〈사회주의 종교법〉에 근거하여, 인민들과의 협조를 위한 공산당원의 종교활동을 인정하는 등 종교활동에 대한 자유를 인정하고 있으나, 삼자정책에 의해 선교는 제한되어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미성년(만 18세)에 대한 선교 활동 및 외국인의 선교활동을 법으로 금하고 있으며, 위법 시 강제출국도 하고 있다. 중국정부의 종교정책은 삼자정책이라고 하여, 외세를 배격하는 자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이다. 이는 중국에서 기독교, 천주교라고 부르는 개신교천주교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중국 사회주의 종교법에 따르면 개신교는 외국 선교단체의 선교가 금지되어 있으며, 천주교도 로마 교황청과의 교류가 단절되어 있다. 실제로 2006년에는 중국 정부에서 천주교 주교서품을 집전하여 교황청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기독교

현재 중국에서 인정하는 기독교 단체는 다음과 같다.

개신교

  • 중국 기독교삼자애국협회: 중국 개신교회는 한국 개신교회와는 달리 교파가 없으며, 1957년 중국 기독교삼자애국협회로 통일되었다.
  • 중국 기독교양회
  • 중국 기독교협회 - 중국 개신교회가 외부와 단절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현재 세계 교회 협의회(WCC)에서 활동하고 있다.

천주교

  • 중국 천주교삼자애국협회 - 중국 정부의 정책을 따르는 천주교 단체이다.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가 개선 중이며 교황청은 신임 북경 주교 임명을 승인한 바 있다. 현재 교황청 홈페이지에 중국어 웹페이지가 개설되어 있다.

성공회

중국 성공회(聖公會)는 중국 정부의 교회 통합정책에 의해 1957년 결성된 기독교 삼자애국협회에 속해 있다. 그 실례로 성공회 주교이자 신학자인 팅 주교(Bishop Ting, 2001년 현재 85세)는 중국 기독교 삼자애국협회의 지도자로 활동하였다.[4]

경제

전(前) 중국 공산당 총서기 덩샤오핑에 의한 자본주의 경제제도 도입 등의 개혁 개방 이후, 중국 경제는 급속히 발전하여 ‘세계의 공장’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발표로는, 2003년의 대 중국 직접투자는 535억 달러가 되어 미국을 제치고 실질적으로 세계 최대의 직접투자 수입국이 되었다. 세계 최대의 인구와 강한 경제력 덕분에 중국 경제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중국 국내 노동자들은 연안부나 대도시 근교를 제외하면 지방 인민의 대다수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와 동일한 정도의 빈민층이며, 농업을 할 수 없는 계절에 도시 지역에 유입되어 객지에서 노동하고 있다. 그들은 매우 저렴한 임금으로 도시 지역에서 일하기 때문에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값싼 노동력을 목적으로 미국, 유럽이나 한국·일본의 기업 진출도 번성하여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서도 대한민국에 무역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 개방 이후의 활발한 경제 발전의 이면에는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농민과 도시 지역 사람들과의 소득 격차 문제가 있으며, 이는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주의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한다. 이 빈부 격차 문제는 향후의 중국 경제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이며, 새로 출범한 후진타오 정권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농촌과 도시 지역 간의 빈부 격차 문제 해소를 논의하는 등 긴급하게 대응하고 있다. 또한, 열악한 노동 환경도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이다.

현재 경제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점에서 중국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8.5%로 예상하였다. 다른 나라인 인도 역시 경제성장률을 6.3%로 큰 폭으로 예상하였다.

빈곤율

1990년 빈곤율은 60%이나, 최근 많이 줄었다.[출처 필요]

교육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한 학교의 수업 모습

국가 전체의 문맹률은 미국 CIA 조사를 따르면 약 9.1%로, 중간 이하이다. 도시 지역에서는 문맹률이 많이 낮아졌으나 티베트 자치구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 서부 지방에서는 아직도 문맹률이 높다. 2003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국민들의 의무 교육 기간을 초등학교[5]까지의 6년에서 9년(중학교까지)으로 확대하였다.

군사

중국 인민해방군의 훈련 모습

헌법상 중국의 군대는 국가(정부)의 군대가 아닌 의 군대이다. 따라서 군대의 정식 명칭은 ‘중국군’이 아닌 ‘중국 인민해방군’이다. 과거에는 징병제였으나 현재는 사실상 지원제로 운용하고 있다.

문화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등의 세계적인 문화재가 존재한다.

언론

통신

국영통신으로는 신화통신이 있다. 신화통신1937년난징에서 처음 발족했고, 중국공산당이 남부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운영하였다. 그 후에 일본이 패망한 후 1945년에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겨 1948년에 ‘신화통신’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에 이른다. 이곳은 《인민일보》, 중국중앙방송의 기사를 보내고 있다. 또 이 통신사에서 발간하는 간행물으로는 《신화일보》와 《신화매일전신》, 《참고신문》, 중국신화방송 등이 있는데, 《참고신문》은 주로 공산당원이 많이 읽는다.

신문

중화인민공화국의 대표적인 신문은 《인민일보》로써,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이다. 이 신문은 1948년에 창간되었다. 이 신문은 당보인 것처럼 중국공산당의 입장, 정책설명, 당의 공보 등을 발표하고 있으며, 영어판과 한국어 서비스를 비롯해 7개의 외국어판을 발행하고 있다. 이 외에 《해방군보》, 《광명일보》, 《공인일보》를 발행하며, 《중국일보》는 외국인들을 위한 영문판 일간지이다. 외국어판 신문인 《베이징타임스》는 재미있는 기사와 강렬한 천연색 사진을 편집하여 외국인과 중국인에게 많은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방송

방송은 국영방송인 중국중앙방송북경TV방송, 홍콩스타TV방송 등이 있으며, 중국중앙전사대는 원래 광고편성을 하지 않았으나, 1980년대에 광고를 시작했다.

대외 관계

부시후진타오.

1964년 1월에 프랑스와 수교한 이후, [6] 1979년 1월 1일부터 미국과 수교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타이완(臺灣,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기 때문에 현재 타이완을 실효적으로 통치하는 중화민국(대만)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중화민국을 승인하는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UN 회원국25개국(바티칸은 준회원국)은 중화민국(대만)을 승인하고 있고, 부탄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및 중화민국(대만) 모두와 외교관계가 없다.

대한 관계

북방 정책에 대하여 중국은 소련에 비하여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았다. 소련에 비하여 중국은 1980년대에 한국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상호 보완적인 경제적 필요성과 지리적 접근성으로 인하여 활발한 교역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식적인 관계의 부재는 양 국의 교역을 증대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남한은 합법적으로 중국 내 남한 국민과 기업의 이익을 보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소련과 비교하여, 북한과 정치적으로 더 가까웠기 때문에, 양국 간의 무역량 증대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정치관계의 향상은 더디었다. 중국은 북한과 미국간 그리고 북한과 일본간 중재와 북한, 한국, 미국 3자간의 대화를 시작하도록 노력하였다. 한국과 중국간의 민간 계약은 더욱 활발해졌다. 양국은 1980년대 말이 되면 자유롭게 상호 방문을 허락하여 학술, 언론, 특히 이산가족 교류가 가능해졌다. 200만명에 가까운 한민족들, 특히 중국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한민족들(조선족)은 한국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중국의 정치적 소동이 중국-한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북한은 예상대로 중국의 억압적인 조치를 도왔다. 이와 반대로, 한국은 더욱 침묵했으나 1989년 톈안먼 사건을 묵과한 것도 그렇다고 비난한 것도 아니었다. 양국의 교역은 더욱 증가하고 있었다.

1989년 12월 냉전 종식이 선언되고, 1989년 5월에 소련의 고르바쵸프가 중국을 방문하여 중-소관계가 정상화된 것은 한-중 수교의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울러 노태우 정부의 한-소 수교의 성공이 중국에게도 영향을 미쳐 한중 수교를 앞당겼다고 할 수 있다. [7] 1992년 8월부터 대한민국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고 있다. 수교와 동시에 많은 문화교류를 통해서 한류 및 중류(中流)가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2008년 4월 27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재한중국인 및 중국인 유학생들의 폭력 사태로 인해 한국인외국인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2008년 중국인 성화봉송 폭력시위 사건) 이 때문에 각국 사이에 반한, 반중 감정이 생겨나는 등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한국 남자들의 국제결혼을 아내의 출신지 별로 볼 때, 중국 국적의 여자가 가장 많다. 2000년 3,566건 (전체 6,945건 중 51%)에서 2008년 13,203건(전체 28,163 건 중 46.8%)으로 증가하였다. [8]

중국-일본 관계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조어도 제도에 속하는 댜오위타오/우오쓰리 섬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의 관계는 과거사 문제로 인해 소원하였으나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위해 서로 협력을 꾀하고 있다. 1972년에 중국과 일본은 수교를 맺었으며 과거사 문제와 체제 문제 때문에 수교를 맺는데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일본이 중국을 승인하면서 중화민국이 단교를 하고 중국과 수교를 맺는다.

2009년 4월에 중국 전역에서 개봉한 《난징!난징!》과 《라베일기》두 편의 전쟁영화가 극장가 흥행열풍을 주도하면서 중·일 양국의 외교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 영화는 모두 난징 대학살을 소재로 삼고 있다. [9]

외교 문제

  • 영토
    • 조어도 제도(센카쿠 열도, 조어대라고도 함):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일본센카쿠 제도(조어대)가 각각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화민국(대만)도 센카쿠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센카쿠 제도가 타이완 성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중화인민공화국은 인도 영토인 아루나찰프라데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인도는 중국이 점령한 아크사이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중화민국도 아루나찰프라데시와 아크사이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 이어도파랑초: 대한민국(남한)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서는 이어도파랑초 문제가 놓여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이어도와 파랑초가 섬이 아니라 바다 밑에 있는 암초라고 주장하고 있다.
    • 기타 영토 문제: 그 외에도 남중국해에 있는 난사 군도 문제도 있다. 예전에는 소련과 중소 국경 분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1991년 5월 16일에 체결된 중소 국경 협정으로 양측은 이들 섬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라는 것에 합의했다.
    • 백두산 일부 지역: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국경에 있는 백두산(창바이 산) 일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영유한 일부 지역에 대해 대한민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각각 상대방의 영토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 역사 분쟁
    • 중국 동복 지역(동북공정): 대한민국(남한)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사이에서 동북공정이 주 이슈로 다루어지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 다른 나라와의 갈등: 이외에도 베트남, 몽골 등 주변의 이웃 국가와도 역사 문제로 서로 대립하고 있다. 네이멍구 자치구에 칭기스칸의 묘를 만들어 몽골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 양안문제(대만문제): 양안문제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 간에 벌어지고 있는 문제이다.

같이 보기

주석

  1. 2020
  2. 중국의 지배체제 BBC
  3. 중화인민공화국(중국) 헌법은 타이완(대만)을 23번째 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효 통치 지역이 아니며, 현재 중화민국(대만)의 영토이다.
  4.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5. 중국에서는 초등학교를 소학교라고 부른다.
  6. 1964년 1월에~: 강준만,《한국현대사산책》(1960년편 3권) (2004년, 인물과사상사) 19쪽.
  7.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한-중 수교 (1992.8)”. 2009년 7월 11일에 확인함. 
  8. “한국인 남편의 혼인종류/외국인 아내의 국적별 혼인” (HTML). 2009년 7월 11일에 확인함. 
  9. “ [국제] 영화 2편 때문에… 중국-일본 신경전 ”. 조선일보사. 2009년 6월 23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바깥 고리

정부 기관

대한민국

미국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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