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베트남의 개고기.

개고기(문화어: 단고기)는 고기로서 한자로는 구육(狗肉)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보신탕, 수육, 개소주 등의 음식이 있다.

역사[편집]

중국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기원전 6세기 경 중국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며, 일반 연회와 제사에 오르는 제물로 쓰였던 기록이 있다.[1]

유럽의 일부 지방에서도 20세기 초반까지 식용 개고기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1870년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는 특히 파리에 개고기 정육점이 들어섰다는 기록이 있다. 세계대전 당시에는 개고기처럼 보다 질 낮은 고기로 여겨지는 육류를 먹게 될 기회가 많아졌으며 1차 세계대전 당시의 견식문화를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사자(死者)의 집>의 한 글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Quelques-uns nous quittèrent
Devant une boucherie canine
Pour y acheter leur repas du soir »

견육점(犬肉店) 앞에서 사람들 몇몇이 우리를 떠난다.
그곳에서 저녁 식사거리를 사기 위해서.

개고기를 먹는 문화권[편집]

개고기는 현재 베트남에서 식용하고 있으며, 중국 남동부 광둥성 지역에서도 여름에 개고기를 먹는다.[2] 한편 동아시아에서도 목축을 하던 몽골인, 위구르인, 롤로인, 티베트인들은 식용 개고기를 즐기지 않는다.[출처 필요]

한국[편집]

한국에서 개고기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필요] 18세기의 책 동국세시기의 삼복조에는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끊인 것을 개장이라고 부르고, 고추가루를 타서 밥을 말아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출처 필요] 당시의 실학자인 정약용박제가의 개고기 요리 기록이 있다.[3] 조선 왕실 기록 중에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식단에 개고기 찜이 올랐다고 한다. 조선 후기까지의 기록으로 보았을 때, 한반도의 개고기 식습은 기록으로 남길만큼 특이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개고기 식습은 한국전쟁을 겪은 뒤 60년대부터 개고기 판매점 및 음식점의 증가와 함께 활발해 졌었으나, 1986년 이후로 점차 소멸되는 추세이다. 한편, 현대의 대한민국 식품위생법에서는 식품에 쓸 수 있는 동물성 원료로서의 개고기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다. 축산법에는 개를 가축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축산물가공처리법에는 개를 포함시키고 있지 않다. 서울특별시1984년 상태이며, 식용 개고기에 대한 논쟁도 활발하다.

미디어[편집]

  • KBS (한국방송공사)
    • 소비자 고발 - 당신은 애완견을 먹고 있습니다》(2008년 7월 11일)
    • 소비자 고발 - 위험한 보양식, 개고기의 불편한 진실》(2009년 8월 19일)
  • MBC (문화방송)
    • 뉴스데스크 카메라 출동- 개 도살 처리현장 고발》(1993년 10월 10일)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