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소네 야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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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야스히로
中曽根 康弘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의 국기 일본제71·72·73대 총리
임기 1982년 11월 27일~1987년 11월 6일
전임: 스즈키 젠코(제70대)
후임: 다케시타 노보루(제74대)

출생일 1918년 5월 27일
출생지 일본의 국기 일본 군마 현
정당 자유민주당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어식 한자 표기: 中曽根 康弘
가나 표기: なかそね やすひろ
외래어 표기법 표기: 나카소네 야스히로
통용 표기: 나카소네 야스히로
로마자: Yasuhiro Nakasone

나카소네 야스히로(일본어: 中曽根 康弘, なかそね やすひろ, 문화어: 나까소네 야스히로, 1918년 5월 27일 ~ )는 일본정치인이다. 제71·72·73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며, 1947년의 제23회 중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20회 연속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의 아들은 일본 외상나카소네 히로후미이다.

목차

[편집] 약력

[편집] 총리 재임

1983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주요 선진국 정상회의(G7)에 참석한 나카소네(오른쪽에서 세번째)
1983년 일본을 공식 방문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나카소네(오른쪽)
미국 방문 당시 공항에서 영접을 받고 있는 나카소네 총리 부부

[편집] 장기 집권

1982년에 제72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한 뒤 행정개혁 추진과 “전후 정치의 총결산”을 제창하여 1987년까지 총리로 재임하여, 역대 4위의 장기정권이다. 다만 정권 발족 초기에는 자신의 파벌 사람을 앉히는 것이 상식이라고 여겨지던 내각관방 장관직에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파벌의 고토다 마사하루를 기용하고, 당간사장에는 니카이도 스스무를 임명하여 총 7명의 다나카파 각료를 채용해 “다나카소네 내각” 등으로 비판받았다. 한편 개헌에 대해서 총리 재임 당시에는 표명하지 않았지만, 교육기본법의 재검토나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자학사관의 재검토’ 등을 일컬어 “전후 정치의 총결산”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에 좌파 세력으로부터 “우익 반편이”나 “군국주의자”라며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1983년의 제37회 중의원 선거와 1986년의 제38회 중의원 선거에서는 현직 총리이면서 1위로 당선되지 않았다(당시는 중선거구제). 이것은 역대 총리로는 유일한 기록이다. 1위로 당선된 것은 모두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인데, 총리 역임자끼리 같은 선거구(군마 3구)에서 대결한 것이 된다.

[편집] 미·일 관계

미·일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일본측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는 미국과의 골이 깊어졌지만,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일명 론+야스)를 쌓는 것에 성공했다. 또한 “일본은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이다”고 발언한 것이나, “일본과 미국은 운명 공동체”라고 하는 등 미·일 안전보장체제를 강화했다. 한편 미·일간의 통상·경제 마찰이 심각해졌기 때문에, 미국의 무역적자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국민에게 수입품(특히 미제)의 구입을 호소하기도 했다.

[편집] 민영화 추진

일본전매공사, 일본국유철도 및 일본전신전화공사를 민영화시켰다. 이를 즈음해 국민으로부터의 지지도 안정에 접어들어 1986년의 제38회 중의원 및 제14회 참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이 각각 300석과 143석을 획득해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이 때 당칙의 총재 3선 금지 조항이 개정되어 3선에 성공하게 된다.

[편집] 퇴임

그러나 선거중에 도입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매상세를 도입하려고 한 때로부터 “공약 위반”이라고 지적되어 지지율이 급락했고, 1987년의 통일 지방선거에서는 자민당이 패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상세 도입을 철회한 뒤에는 지지율이 다시 부활해, 1987년 10월에 ‘뉴 리더’로 불리던 다케시타 노보루·아베 신타로·미야자와 기이치 가운데 다케시타를 후계로 지명하고 11월에 퇴임한다. 나카소네의 회고에 따르면 다케시타의 경우 ‘대장성 장관을 오래 한데다 야당과의 절충에도 능란해 도입에 실패한 매상세를 성립시키고, 당을 안정화 시킬 수 있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었으며, 당시 병상에 있던 쇼와 천황의 서거 등에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고 한다.

[편집] 정계 은퇴

2003년 총선거에서 비례구로 출마하지 못하자, 불출마를 선언하고 은퇴했다.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제도가 바뀔때 그는 비례구 종신 1위가 약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특례를 누린다는 비판이 늘어나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재는 당의 두 원로, 나카소네와 미야자와 기이치에게 은퇴를 권고했다. 이는 당 집행부가 보장한 일을 고이즈미 총재가 일방적으로 파기해 권고한 것으로, “극히 무례한 일이다”라는 비판도 불렀다. 나카소네와 미야자와 양 전 총리는 2000년의 총선거에서는 특례로 자민당이 도입했던 정년제(73세)의 대상외가 되었었다.

[편집]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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