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기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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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 | 1991년 11월 5일~1993년 8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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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가이후 도시키(제76·77대)
후임: 호소카와 모리히로(제7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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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19년 10월 8일 |
| 출생지 | |
| 사망일 | 2007년 6월 28일 |
| 사망지 | 도쿄 |
| 정당 | 자유민주당 |
| 미야자와 기이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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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식 한자 표기: | 宮澤 喜一 |
| 가나 표기: | みやざわ きいち |
| 외래어 표기법 표기: | 미야자와 기이치 |
| 통용 표기: | 미야자와 키이치 |
| 로마자: | Kiichi Miyazawa |
미야자와 기이치(일본어: 宮澤 喜一, みやざわ きいち, 1919년 10월 8일 ~ 2007년 6월 28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제7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1991년 11월 5일에서 1993년 8월 9일까지 재임하였다.
1919년 히로시마 현 태생으로 1941년 12월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1942년 1월에 대장성에 입성하였다. 그리고 1951년 8월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에 요시다 시게루 당시 총리의 수행원으로서 참석하기도 하였다.
1953년 정계에 입문하여 1962년 경제기획청 장관을 시작으로 통상산업대신, 외무대신, 대장대신 등의 직책을 역임했으며 중의원과 참의원을 합쳐 모두 12선을 지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오부치 게이조 내각에서 다시 대장상(현 재무상)으로 기용돼 일본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처리 등을 진두 지휘했다.
또한 그는 대체로 극우 성향의 자유민주당 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일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정계 은퇴 이후에도 일본의 평화 헌법 개정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내비치는 등, 자신의 반전(反戰) 소신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1]
2007년 6월 28일 오후 도쿄 도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편집] 주석
[편집] 같이 보기
[편집] 바깥 고리
- (일본어) 히로시마현 명예 현민 - 미야자와 기이치
- (일본어) 미야자와 기이치 경력
- (일본어) -「 고 미야자와 기이치」내각·자유민주당 합동 장의
| 메이지 시대 | 다이쇼 시대 | 쇼와 시대(전기) | 쇼와 시대(중기) | 쇼와 시대(후기) | 헤이세이 시대 |
|
이토 히로부미 |
가쓰라 다로(제3차) |
다나카 기이치 |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
우노 소스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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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임 가이후 도시키 |
제78대 일본 총리 1991년 11월 5일 ~ 1993년 8월 9일 |
후 임 호소카와 모리히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