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마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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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마키코
다나카 마키코(왼쪽)

다나카 마키코 (일본어: 田中眞紀子, 1944년 1월 14일 ~ ) 는 일본의 민주당 중의원 의원으로, 니가타 현 출신이다.

생애[편집]

다나카 가쿠에이총리의 장녀로, 가쿠에이 총리 재임 당시 모친이 병약하였으므로 사실상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다. 외무대신과 제54대 과학기술청 장관을 역임했다.

약력[편집]

기타[편집]

  • 부친 다나카 가쿠에이와 비슷한 성격으로, 정치의 움직임을 짧으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한다. 유권자 앞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여성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게하는 요인이 되었다. 일본인 중에는 그에게서 부친의 모습을 찾으려는 사람도 많다.
  • 논리적인 정책 비판이나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이념이나 정책이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에서 언변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다른 정치인과 비교해 단순한 비난이나 인격적인 공격이 두드러진 점이 많은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텔레비전 프로듀서 테리 이토(テリー伊藤)는 그를 두고 ‘정치만담가’라고 칭한 적이 있다. 정치가에게 필요한 확고한 이념이나 정책, 지도력, 설득력 등이 모자란다는 지적이다.
  • 니가타 현 주에쓰 지방의 기업 에치고 교통 그룹의 오너이다. 에치고 교통의 영업소는 선거시 정보 수집이나 표밭 다지기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는 아버지였던 다나카 가쿠에이가 구축한 것을 계승한 것이다.
  • 다나카 마키코의 대외적인 호오(好惡)는 아버지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았는데, 아버지를 배신한 다케시타 노보루 파벌에 속한 사람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외무대신 재임 당시 내각이나 자신의 방침에 저항하는 관료를 교체하고, 정치가 주도하는 움직임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원자력 정책 등 여러 분야 관료의 브리핑을 적극적으로 받았다.
  • 자민당 탈당 이후에는 고이즈미 저격수로 활약하면서, 그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일이나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발언을 비판하기도 했다.
  • 민주당에 속해 있으면서도 민주당 의원을 날카롭게 비판할 때도 있다.

가족 관계[편집]

부친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남편은 다나카 나오키 전 방위상이다.

바깥 고리[편집]

전 임
고노 요헤이
제131대 일본 외무대신
2001년 ~ 2002년
후 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임
히라노 히로후미
제17대 일본 문부과학대신
2012년 10월 1일 ~ 2012년 12월 26일
후 임
시모무라 하쿠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