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마 겐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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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마 겐타로

고다마 겐타로(일본어: 児玉源太郎, こだま げんたろう, 1852년 4월 14일 ~ 1906년 7월 23일) 는 러일 전쟁에서 활약한 일본의 정치가, 군인이다.

[편집] 생애

현재의 야마구치 현인 죠슈 번 출신의 사무라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기 위한 보신 전쟁에 참전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새롭게 편성된 육군에 1870년 부사관(軍曹)로서 입대했고, 세이난 전쟁에 참전하였다. 이후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이 되는 오사카 병학료(大阪兵学寮)를 졸업하였다. 졸업이후 연대장을 맡았다.

이후 고급 참모를 양성하는 육군대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되어, 독일 출신 교관 야코프 메켈을 고용하여 프로이센 식의 육군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후 독일의 주재무관으로 파견되었고, 일본으로 돌아와 육군부대신이 되었다. 이후 남작 작위를 받고, 군에서는 중장으로 승진하였으며, 1898년에는 타이완 총독에 임명되었다. 그는 타이완 총독으로 재임하며 여러 업적을 남겨 행정에도 재능을 보였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내각에서 육군대신을 맡았고, 가쓰라 다로(桂太郎) 내각에서는 내무대신과 문부대신을 맡기도 하였다.

1904년 고다마는 대장이 되었다. 러일전쟁이 개전하자 총사령관이었던 오야마 이와오(大山巌) 원수가 원정군의 참모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이는 육군대신까지 지낸 그에게 강등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었으나, 그는 흔쾌히 맡아서 참전하였다. 뤼순에서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가 203고지를 좀처럼 함락시키지 못하자, 오야마는 고다마를 파견하여 전선을 지도해 결국 함락시킨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8개월 만에 뇌졸중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공적으로 아들인 히데오백작 작위를 받았다. 아들들도 후에 고위 관료 및 고급 군인이 되었다.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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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임
노기 마레스케
제4대 타이완 총독
1898년 2월 ~ 1906년 4월
후 임
사쿠마 사마타
전 임
가쓰라 다로
일본 육군대신
1900년 12월 - 1902년 3월
후 임
데라우치 마사타케
개인 도구
이름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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