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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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 전투
(러일 전쟁의 일부)
날짜 1905년 2월 20일 ~ 3월 10일
장소 청나라 청나라 선양 시
결과 일본 제국의 결정적인 승리
교전국
일본 제국 일본 제국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지휘관
일본 제국 오야마 이와오 러시아 제국 알렉세이 쿠로파트킨
병력
25만명 30만명
피해 규모
1만 5892명 전사
5만 9612명 부상
8705명 전사
5만 1438명 부상
2만 8209명 실종
봉천 전투
일본어식 한자 표기: 奉天会戦
가나 표기: ほうてんかいせん
헵번식 로마자 표기법: Hōten kaisen

봉천 전투러일 전쟁 당시 마지막이자 가장 치열했던 지상전으로 선양 전투라고도 불리며 이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대패해 전쟁할 의지를 잃어버렸고 사령관 알렉세이 쿠로파트킨이 해임될 정도로 여파가 엄청났다.

배경[편집]

당시 남만주의 러시아군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1904년 8월 24일 요동 전투에서 패해 요동 반도의 주도권을 잃고 9월 4일 사하 전투에서 패배해 사하 강 남쪽으로 후퇴했으며 1905년 1월 25일 ~ 1월 29일 산데푸 전투에서도 패배했다.

또한 러시아군의 보급로는 철령-봉천을 묶는 남만주 철도 단 하나뿐이었고 비슷한 시기 노기 마레스케 장군이 이끄는 일본군 육군 제3군이 여순항 포위에서 승리를 거두어 여순항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오야마 이와오가 노기로부터 물려 받은 제3군의 병력 1만 2000명을 중심으로 여러 군대를 합쳐 만주 지역에서의 러시아군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전투 서열[편집]

선양의 러시아군 제55연대

러시아 극동군[편집]

  • 극동육해군 총사령관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쿠로파트킨(Aleksei Nikolaevich Kuropatkin) 대장.
  • 참가 총병력 - 379.5개 보병대대 309,600명, 151.3개 기병중대와 소트니아, 20.5개 공병대대, 대포 1,219문(중포-60문/야포-1,039/산포-120문), 기관총 56정.
  • (좌익) 제1군 - 사령관 리네비치(Linievitch) 대장 - 128개 대대, 포 412문(산포 포함), 박격포 24문, 진지포 4문 기관총 20정, 43개 기병중대와 소트니아(*), 3개 공병대대 포함
    • 제2시베리아 군단 : 제1 시베리아 저격사단 , 제5 동시베리아 저격사단
    • 제3시베리아 군단 : 제6 시베리아 저격사단 , 제3 동시베리아 저격사단
    • 제4시베리아 군단 : 제2 시베리아 저격사단 , 제3 시베리아 저격사단
    • 제71보병사단, 시베리아 독립예비여단, 트란스바이칼 보병대대,
    • 소트니아 - 1개 중대 규모의 코사크 기병대를 말함.
  • (우익) 제2군 - 사령관 오스카 그리펜베르그(Grippenberg) 대장 - 126개 대대, 포 294문(산포 포함), 박격포 54문, 진지포 56문, 기관총 12정, 18개 기병중대와 소트니아, 3개 공병대대 포함.
    • 제1 시베리아 군단 : 제1 동시베리아 저격사단, 제9 동시베리아 저격사단
    • 제8 군단 : 제14 저격사단, 제15 저격사단
    • 제10 군단 : 제9 저격사단, 제31 저격사단
    • 혼성저격군단 : 제1 저격여단, 제2 저격여단, 제3 저격여단
  • (중앙) 제3 군 - 사령관 카울바르스(Kaulbars) 대장 - 81개 대대, 포 360문(산포 포함), 박격포 12문, 기관총 8문, 92개 기병중대와 소트니아, 5개 공병대대 포함.
    • 제5 시베리아 군단 : 제54 저격사단, 제71 저격사단
    • 제6 시베리아 군단 : 제55 저격사단, 제72 저격사단
    • 제17 군단 : 제3 저격사단 , 제35 저격사단
  • 기병집단 - 파벨 폰 렌넨캄프(Rennenkamf) 소장
    • 제4 돈 코사크 기병사단
    • 카프카스 코사크 기병사단
    • 올렌부르크 코사크 기병사단
    • 제2 기병사단
    • 제1 바이칼 기병사단
    • 우랄 바이칼 기병사단
    • 시베리아 기병사단
    • 제2 용기병 여단
    • 코사크 산악 기병여단
  • 전략예비대 - 44.5개 보병대대, 야포 120문, 기관총 4문.
    • 제16 군단 - 제 25 저격사단, 제 41 저격사단
    • 제72 보병사단, 보병 제 146 연대.

일본 만주군[편집]

  • 총사령관 오야마 이와오(大山嚴) 원수, 총참모장 고다마 겐타로(兒玉源太郞) 대장
  • 참가 총병력 - 240개 보병대대 249,800명, 57.5개 기병중대, 43개 공병중대, 대포 978문(중포-146문/야포-574문/산포-258문), 기관총 256정.
  • 제1군(우익) - 사령관 구로키 다메모토(黑木爲楨) 대장
    • 근위사단
    • 제2사단
    • 제12사단
    • 후비(後費) 근위 혼성여단
    • 후비보병 제5여단
  • 제2군(좌익) - 사령관 오쿠 야스가타(奧保鞏) 대장
    • 제3사단
    • 제4사단
    • 제5사단
    • 제8사단
    • 후비보병 제8여단
    • 기병 제1여단
  • 제3군(유격군) - 사령관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대장
    • 제1사단
    • 제7사단
    • 제9사단
    • 후비보병 제15여단
    • 기병 제2여단
    • 포병 제2여단
  • 제4군(중앙) - 사령관 노즈 미치즈라(野津道貫) 대장
    • 제6사단
    • 제10사단 ,
    • 후비보병 제 3,10,11여단
    • 포병 제1여단
  • 압록강군(양동작전) - 사령관 가와무라 카게아키(川村景明) 중장
    • 제11사단
    • 후비보병 제1사단
    • 후비보병 제16여단
  • 예비대
    • 후비보병 제1여단
    • 후비보병 제13여단
    • 후비보병 제14여단
    • 중포여단

전투 과정[편집]

전투 후 후퇴하는 러시아 육군
대열을 형성하는 일본군

1905년 2월 20일 일본군이 러시아군의 왼쪽 측면을 공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월 27일 다른 일본군 부대가 러시아군의 오른쪽 측면을 공격했고 일본 육군 제3군이 서북쪽의 봉천에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3월 1일 전투가 중앙와 동부 전선에 주로 정착했고 일본군은 이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를 냈다. 3월 7일까지 쿠로파트킨 사령관은 동부 전선에서 봉천의 서쪽 측면에서 일본군 제3육군에 대항하기 위해 병력 철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노기 마레스케 장군의 움직임으로 반격을 우려했고 결국 3월 9일 18시 45분 모두 북쪽으로 후퇴하였고 그 과정에서 당황한 러시아군들이 많은 보급품과 무기들을 버렸고 3월 10일 오전 10시 일본군은 봉천을 점령했다.

결과 및 영향[편집]

이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9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사상했고 대포와 기관총 등의 전투 물자들까지 잃었다. 이후 일본군의 추가 공세를 두려워한 쿠로파트킨 사령관은 북쪽으로 올라가 새 방어선을 구축했지만 만주 지역에서의 주도권은 일본군에게 넘어간 뒤였다.

이후 양측 군대 모두 전쟁 자금이 소진되었고 쓰시마 해전을 마지막으로 러일 전쟁이 끝나게 된다.

참고 자료[편집]

  • Connaughton, Richard (2003). Rising Sun and Tumbling Bear. Cassell. ISBN 0-304-36657-9
  • Kowner, Rotem (2006). Historical Dictionary of the Russo-Japanese War. Scarecrow. ISBN 0-8108-4927-5
  • Martin, Chirstopher. The Russo-Japanese War. Abelard Schuman. ISBN-0-200-71498-8
  • Menning, Bruce W. Bayonets before Battle: The Imperial Russian Army, 1861-1914. Indiana University ISBN 0-253-21380-0
  • Nish, Ian (1985). The Origins of the Russo-Japanese War. Longman. ISBN 0-582-49114-2
  • Sedwick, F.R. (1909). The Russo-Japanese War. Macmil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