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데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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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데푸 전투
(러일전쟁의 일부)
날짜 1905년 1월 25일 - 1월 29일
장소 만주 남부 선양 시 일대
결과 결판나지 않음
교전국
일본 제국 일본 제국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지휘관
오야마 이와오 알렉세이 쿠로파트킨
오스카 그리펜베르그
병력
22만 명 28만 5000명
피해 규모
9000명 사상 또는 포로 1727명 전사
1만 1123명 부상
1113명 실종


산데푸 전투 또는 흑구대 전투러일 전쟁 후기 만주 남부 선양 시의 58km 내에서 일본군과 러시아군이 치른 전투이다.

배경[편집]

사하 전투 후 러시아군과 일본군은 겨울이 시작되기 전 봉천 남쪽에 서로 대적했다. 오스카 그리펜베르그(Oskar Grippenberg)가 지휘하는 러시아 제2군은 일본군의 왼쪽 측면이 러시아군에게 노출된 것을 확인했다.

1905년 1월 2일 일본군이 여순항 포위에서 러시아군의 항복을 얻어내자 노기 마레스케의 일본군 제3군이 더 증원되어 일본군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었다. 이에 그리펜베르그 사령관은 이러한 상황을 돌파할 새로운 공격을 준비했다.

전투 과정[편집]

알렉세이 쿠로파트킨 사령관의 반대를 물리치고 그리펜베르그는 공격을 준비해 1월 25일 유럽 군대에서 파병 온 러시아 육군 8군을 10개로 분할하고 5개 소총 여단과 제1 시베리아 육군 부대, 상당량의 기병대, 350개의 소총과 군사 28만 5000명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총공격을 개시해 흑구대시 부근에서 일본군의 왼쪽 측면을 공격하여 거의 돌파하였는데 이는 막 준집결하여 야영하던 일본군을 놀라게 하였으나 곧이은 일본군의 맹렬한 저항, 눈보라 등의 기상 조건, 다른 러시아 부대의 지원 없이 공격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1월 29일 그리펜베르그는 쿠로파트킨 사령관으로부터 중지 명령을 받았는데 당시에 러시아군은 갑작스럽게 얻은 승리로 사기가 올라가고 전투 능력도 충분한 상태였다. 이 전투 후 그리펜베르그는 사임하고 모스크바로 돌아가 신문에 쿠로파트킨 사령관이 자신의 전공을 질투해 작전 중지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결과 및 영향[편집]

이 전투에서 양측 모두 많은 피해를 냈지만 결판을 내진 못했고 일본군은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러시아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만주의 러시아군을 괴멸시켜야 함을 알고 있어 봉천 전투에서 마지막 결전을 벌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