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게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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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치 게이조
小渕 恵三
Keizo Obuchi.jpg
일본 일본제84대 총리
임기 1998년 7월 30일 ~ 2000년 4월 5일
전임: 하시모토 류타로(제82·83대)
후임: 모리 요시로(제85·86대)

출생일 1937년 6월 25일
출생지 일본 일본 군마 현
사망일 2000년 5월 14일
정당 자유민주당
종교 불교신토
배우자 오부치 지즈코
오부치 게이조
일본어식 한자 표기: 小渕 恵三
가나 표기: おぶち けいぞう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오부치 게이조
통용 표기: 오부치 케이조우
로마자: Keizō Obuchi

오부치 게이조(일본어: 小渕 恵三 (おぶち けいぞう), 문화어: 오부찌 게이조, 1937년 6월 25일 ~ 2000년 5월 14일)는 일본의 정치가, 총리다. 12선의 중의원이며, 1998년 7월 30일 부터 2000년 4월 5일까지 재임한 제84대 내각총리대신이었다. 그는 재임 중이던 2000년 4월 1일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려져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수상의 직위는 4월 5일 모리 요시로가 승계, 64세의 나이로 5월 14일 사망하였다.

생애[편집]

군마 현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1961년 수필가인 오부치 지즈코와 결혼하였다. 지즈코를 오부치에게 소개시켜 준 사람은 의원이었던 하시모토 도미사부로이다.

1963년 26세 때 최연소 의원에 당선됐고, 자민당 부간사장, 총무, 중의원(12선)과 1987년 관방장관, 1991년 자민당 간사장 1992년 다케시다파 회장, 1997년 외무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일에만 몰두하고 휴식을 모르는 평소 습관으로 인해 건강 관리에 소홀한데다, 당시 연립 정권을 이루고 있던 자유당의 연정 탈퇴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은 오부치는 2000년 5월 뇌경색으로 별세하였다.[1][2][3]

정치적 업적[편집]

1998년 7월 내각이 발족할 당시 일본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침체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총리를 원했지만 오부치는 그 동안에 맡은 관직이 관방장관(정부 대변인)과 외무장관이 고작일뿐 경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4] 그래서 정치권에서조차 "3일이면 오래간다"는 소리를 듣는 한편, "식은 피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정작 오부치 본인은 이런 부정적인 의견에 별로 개의치 않고 각계 각층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의견을 듣는가 하면, 빼곡한 일정 속에서도 거리로 나가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 부정적인 의견이 점차 사라져갔으며, 강력한 경제회생 정책이 빛을 발하면서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해 취임 1년 만에 지지율이 50%를 넘는 반전을 일으켰다.[5]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일본,오부치 총리 혼수상태 가운데 후임 선정 논의 MBC
  2. 모리 요시로 총리로 일본 새 내각 내일 출범 MBC
  3. 일본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 타계 MBC
  4.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로 오부치 선출. 국민 불만 표출 MBC
  5. 일본 오부치 총리 단명 예상 깨고 인기. 취임 1년 MBC

바깥 고리[편집]

전 임
하시모토 류타로
제84대 일본 총리
1998년 7월 30일 ~ 2000년 4월 5일
후 임
모리 요시로
전 임
이케다 유키히코
일본 외무대신
1997년 ~ 1998년
후 임
고무라 마사히코
전 임
고토다 마사하루
일본 내각관방장관
1987년 ~ 1989년
후 임
시오카와 마사주로
전 임
게르하르트 슈뢰더
G8 의장
2000년
후 임
아오키 미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