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기 (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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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기 (成在基)
출생 1967년 9월 11일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시
사망 2013년 7월 26일 (45세) 오후 03:19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교
사인 사고사 (익사)
거주지 대구직할시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별칭 자는 임성, (필명) 푸른 늑대, 똥발바스, 똥발, 호는 심헌
학력 대륜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졸업
경력 토마스 맥플라이 컨설팅 대표이사 / 여성부폐지운동본부 / 남성연대 대표
직업 기업인, 인권운동가, 시민사회운동가, 사상가, 남성운동가, 평론가
배우자 박은경
자녀 2녀
웹사이트 남성연대

성재기(成在基, 1967년 9월 11일(음력 8월 8일) ~ 2013년 7월 26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시민사회운동가, 인권 운동가, 방송인이며 남성연대(男性連帶)의 창립자였다. 1967년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태어났다. 1999년 군 가산점 폐지를 계기로 남성의 권리와 혜택을 되찾겠다며 남성 운동을 시작하였다.[1] 2000년 투자,창업 상담회사인 토마스 맥플라이 컨설팅을 창립하여 2006년 11월 30일까지 운영하였다. 2000년대 초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 2004년부터 2005년에는 호주제 폐지 반대 운동, 2006년부터 2013년까지 군 가산점 부활 운동, 여성가족부 폐지 운동을 추진했고, 2005년 8월부터 여성 할당제가 시행되면서 여성 할당제 폐지 운동을 주도했다. 2012년에는 게임 셧다운제 폐지 운동, 2012년부터 2013년까지는 아동 및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개정안, 전면 철폐 운동 등을 추진하였다.

2013년 7월 26일 오후 3시 15분 서울 마포대교에서 "남자도 사람이다"라고 외치고 한강으로 투신하였다. 투신 후 실종되었다가[2] 사흘만인 7월 29일 오후 4시 10분에 서강대교 남단 근처 한강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3]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자(字)는 임성(臨聖), 호(號)는 심헌(審軒) 또는 심헌(心軒), 청죽(靑竹), 필명은 푸른 늑대, 똥발바스, 똥발이다.

목차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성재기는 1967년 9월 11일(음력 8월 8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4]

1979년 대구 대륜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982년 3월 대륜중을 졸업하고 대륜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1985년 3월 영남대학교에 입학[5], 대학 재학 중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만기 전역하였다. 1993년 2월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체력을 기르고자 일찍부터 격투기복싱을 했다. 훗날 남성연대의 회원인 김대형의 증언에 의하면 "평소에 (성 대표가) 격투기복싱을 즐겨 해 강인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6]" 한다.

그 뒤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였으나 형편이 어려워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1992년 회사원이 되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보험회사 영업사원이 되기도 했다. 한때 개인 사업을 하기도 했다.[7] 2006년 무렵에는 대구의 양대 나이트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유흥업소를 운영했다.[8]

그러던 중에 2000년대 부터 남성 운동과 인권 운동에 본격 참여하였다. 1999년 10월 여성단체의 군 가산점 위헌 주장에 반대하여 군필자 보상 운동을 추진하였다. 1999년 10월 헌법재판소군 가산점 위헌 소송에 항의하여 서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찾아가서 항의해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청원경찰에 의해 축출되었다. 그가 남성운동에 투신한 것은 1999년 군 가산점 폐지가 때문이었다.[9]" 이후 그는 군 가산점 부활 운동과 군필자 보상 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는 여성들은 안보, 국방 분야에 한해서는 남성들의 덕을 보면서 그에 대한 작은 보상조차 반대하느냐고 주장했다. PC통신과 인터넷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던 성재기는 당초 군 가산점과 군대 다녀온 사람들에 대한 보상금, 장학금, 또는 국가에서 학비를 내주는 것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가 군 가산점만을 주장하는 것처럼 호도되었고, 초기에 그는 이를 반론하다가 군 가산점만이라도 우선 먼저 부활시키겠다고 호언하게 된다. 성재기는 군 가산점을 부활시킨 뒤, 취직하지 않을 백수 남자들 혹은 공부만 할 남자들을 위해서 국가의 위로금, 보상금, 학비 지원 등도 요구해서 얻어내겠노라고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인터넷과 현실에서는 성재기의 주장은 망상이라며 백수, 사회불만분자의 헛소리, 정신병 등으로 매도하였다.

거듭된 비판과 매도에 성재기는 내가 군 가산점을 포함한 그밖의 남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게끔 실천에 옮기겠다고 선언한다. 1999년 10월 그는 군 가산점 폐지 주장에 반대와 여성단체의 군 가산점 폐지 주장에 반발, 대한민국 여성특별위원회 입구에서 항의하고, 여성특별위원회 폐지를 호소했다. 또 그는 여성특별위원회는 있으면서 남성특별위원회는 왜 만들지 않느냐고 항의하였다. 12월 29일 헌법재판소에서 군 가산점의 위헌 판결이 나오자 헌법재판소를 찾아가 군 가산점 위헌 판결을 항의하였다. 2000년 10월 26일부터는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서 창업, 투자, 부동산 상담 회사인 토마스 맥플라이 창업투자 컨설팅 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남성 운동에 종사하게 되면서 2006년 11월 30일부로 회사와 사무실을 매각하였다.

2000년부터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페미니즘 운동가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2002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인터넷에 여성부 폐지를 요구하는 글을 올리고, 각 후보자들에게 여성부 폐지를 제안하였다. 또한 군필자에 대한 각종 보상 정책의 추진을 건의하였다. 2005년 8월 여성 할당제[10] 가 시행되자, 여성 할당제는 남녀 역차별이라며 여성 할당제 폐지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5년 4월 7일에는 대구 지역의 친목 소모임인 '대구인맥을 만드는 CEO파티'에 가입하여 2006년 11월 28일 서울 상경 직전까지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남성 인권 운동에 투신[편집]

논객 활동, 남성 인권 운동에 참여[편집]

성재기 초상화

2000년대 초 그는 네이버다음, 네이트, 야후코리아 등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에 글을 기고하며 여성 단체는 수십여개에 달하는데 왜 남성 단체는 없느냐며 남자들 스스로 자기 권리를 찾아 나서야 된다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조소와 야유가 돌아왔다. 2002년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찾아가 여성부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였다. 이후 포털과 인터넷의 논객으로 활동하며 여성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2004년부터 2005년 1월에는 호주 제도 폐지에 반대하였다. 남성의 유일한 권리인 친자 확인 권한을 없애는 것은 남성성에 대한 침해라며 그는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였으나 외면당하였다. 그는 호주제 폐지에 지지를 보내던 한지환, 정채기 등을 비판하였다. 2006년 1월 2일 그는 여성부, 여성계와의 전면전, 투쟁을 선언하고 건립준비위원회 청년동맹을 조직하였다.

2006년 11월 26일 반페미니즘남성해방연대를 창립하고 2007년 1월 4일 여성부 폐지 운동본부(女性部廢止運動本部)를 창립하여 활동했다. 이후 자금을 마련, 일부 모금한 후원금과 함께 2008년 1월 24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42-3 엘지에클라트 B동 324호에 사무실을 마련하였다.[11]

2007년 12월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한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여성부 폐지를 강력 촉구하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당시 여성부 폐지 운동을 벌였다.[12] 2007년 12월 19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여성부 폐지를 촉구하는 글을 올린 뒤, 계속해서 여성부 폐지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으며 서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정식으로 여성부 폐지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남녀 평등이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에서 남성들은 군 복무를 하느라 제약을 받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다는 점, 일부 병역 미필자와 면제자들이 군필자 보상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점을 호소하였다. 이후 그는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 전까지 여성부 폐지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였으며,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여성부를 폐지해줄 것을 촉구하는 서한과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남성단체 준비 과정[편집]

그는 남성도 사회적으로 약자의 처지에 몰릴 수 있다며, 여성은 무조건 약자라는 시각은 몰지각한 편견이라 지적했다. 가령 공무원인 여성, 교사, 공기업인 여성들과 노동자 남성, 서민 남성 중 누가 더 사회적, 경제적 약자인가 하는 점과 상류층의 딸, 며느리들과 서민의 아들들 중 누가 더 을 쉽게 알 수 있고, 의 구제를 쉽게 받을수 있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또 2008년 5월 21일 부부의 날 때, 남성들이 결혼, 연애에 집착하지 말고, 가정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며 남성 해방론을 제창하였다. 그는 남성들이 결혼과 연애에 집착하고 목을 맨다면 영원히 여성과 어린아이, 노인들의 종, 노예로 머무를 것이라며, 남성도 결혼과 연애에서 벗어나고, 가정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그는 부당한 대우와 폭행을 당한다면 거침없이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2008년 5월 21일부터 매맞는 남편에 대한 전화상담을 시작하였다. 그는 남성이 연애결혼에 집착하고, 가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남성은 영원히 여성의 노예로 종속될 것이라 주장했다. 성재기는 여성과 어린이, 노인의 노예로 살 것인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한 사람의 인간, 우주로 거듭날 것인가를 남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때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남성 해방론에 대해 정채기 등은 급진적이라며 비판하였다.

남성연대 창립[편집]

2008년 1월 26일 남성시민단체 남성연대를 창설하고 상임대표가 되었다.[7]

여성부 폐지 활동[편집]

2001년 10월 군 가산점 폐지 이후 성재기는 군 가산점 부활 운동과 함께 본격적으로 여성부 폐지 운동에 돌입하였다. 2002년 12월 19일부터 2003년 2월 25일까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여성부 폐지를 촉구하는 글을 올리고 여성부 폐지를 건의했지만 묵살당했다. 2004년부터 2005년 3월까지는 호주제 폐지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인터넷에서 논객으로 여성운동가들과 논쟁을 벌였다. 2005년 3월 2일 호주제 폐지가 확정되자 여성부가 가족 제도의 근간을 뒤흔든가며 규탄하였다.

2007년 1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서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여성부 폐지를 건의하였고, 이때 일부 네티즌이 그의 여성부 폐지 요청을 격려하였다. 성재기에 의하면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터넷 게시판에 네티즌들이 여성부 폐지운동을 벌였다[7]"며 "나를 비롯해 게시판에 글을 수백 개씩 올리며 여론을 리드하는 사람이 2~3명 정도 있었다"고 한다.[7] 이어 그는 2007년 12월 19일부터 2008년 2월 24일까지 매일 서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입구 앞에서 피켓과 너까래 등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각종 시위와 인터넷 활동 등을 통해 남녀 역차별에 대한 비판과 남성부는 존재하지 않는데 여성부만 존재하는 것, 군 가산점 폐지 이후 보상방안이 없는 것 등에 대해 지적, 비판해왔다.

남성 차별 저항 운동[편집]

2008년 11월 3일 남성연대의 후원 조직인 청년동맹협의회를 결성하였다. 2009년 11월 12일 KBS2 TV의 미녀들의 수다 프로그램에서 모 여성 출연자가 키작은 남자를 루저남이라고 하는 방송에 대해 남자들을 심하게 비하한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였다. 그는 키가 작고 싶어서 작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며 우리 사회에 키 작은 남자, 루저남을 낳은 사람은 누구냐며 되물었다. 그는 각종 '남성 차별'에 대한 법정투쟁, 광고 불매 운동을 추진했다. 영화 '너는 펫'이 남성을 비하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고, 2010년 한 음료회사가 '날은 더운데 남친은 차도 없네'라는 광고 카피에 항의, 결국 광고를 철회시켰다.[13]

2008년 1월 26일 그는 '남자도 사람이다.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아들이기 이전에 남자도 한 사람의 인간이다.', '누군가의 아들이기 이전에 한사람의 남자다, 남편이고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남자이다.', '남자도 아프고 고통스러우며, 눈물 흘리고 싶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남성 해방론을 주장했다. 이후 그는 ‘군 가산점 폐지’,‘공무원 여성 할당제’ 등을 반대하였다.[14] 또 그는 공무원 여성 할당제, 여성 의무 할당제는 역차별이라고 주장하였다. 군 가산점도 폐지되고 군 필자에 대한 보상도 없으면서 여성에게 의무 할당을 하는 것은 남자들에 대한 하나의 역차별이라며 반대하였다. 2012년 7월 7일7월 28일에는 제천여성도서관 항의시위를 개최하여 화제가 되었다. "도서관 측은 세계 유일 여성도서관이라며 자랑하지만 왜 같이 세금을 내고 여성만 이용하고 남자는 버스 타고 다른 곳을 전전해야 합니까." 그는 "이제는 여자들이 남자들 형편을 돌아봐야 한다"며 "북유럽 전문가들은 남녀평등이란 말 대신 인간평등이라고 한다. 우리 여성계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13] 그는 강연과 거리 집회를 통해 양성 평등을 빌미로 군 복무에 대한 자긍심, 자부심을 박탈하고 국가 안보를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고 여성계를 성토했고, 국가 안보 이전에 남자들의 희생을 너무 하찮게 여기는 것은 문제있는 태도라고 거듭 지적했다.

한편 그는 부당한 인신공격에 시달림당하기도 했다. '돈키호테' 심지어 '똘아이' 같다는 소리도 듣는다. 하지만 아랑곳 않는다. "남성 중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일 뿐이다. 산하 온라인 카페가 10여개에 회원들이 8만3000여명이 넘고 여성도 있다"고 했다.[13] 그는 남성이 병역에 복무하는 2~3년의 시간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와 보상이 필요하다며 군 가산점을 포함한 군 필자에 대한 보상, 병사들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였다. 2010년 3월 27일 소설가 이문열의 팬클럽인 '사색(思索)'을 조직하고 대표로 활동하였다.

남성 인권 보호 운동[편집]

남성연대 대표로 있는 동안 게이나 무직자, 싱글대디 등에게 일자리와 밥을 제공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였다.[15] 성재기는 집에서 쫓겨나 오갈데 없는 미취직 청년층과 노숙자들에게 남성연대 숙소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함께 숙식을 허용하게 하고 일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도한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뒤 쫓겨난 게이 청년들과 트랜스젠더 청년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이들에게도 남성연대 숙소와 자신의 오피스텔을 공개하여 함께 생활하였으며, 회원들에게 게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먼저 미워하거나 구박하지 말라고 강조하였다.

그런 주장이나 소신을 간간히 방송을 통해 전달하기도 했다.[15]

그는 또 2011년 1월 24일부터 국제결혼 사업과 장애인 남성, 농촌총각 중매 결혼 주선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국제결혼 사업은 국제결혼 업체들의 항의와 소송으로 실패하였고, 장애인 남성 중매결혼과 농촌총각 중매결혼은 호응하는 여성의 수가 적어서 실패하고 만다. 2013년 1월 그는 국제결혼 사업 및 장애인 남성 중매결혼 사업의 잠정 중단을 선언한다.

남성 권익 보호 운동[편집]

조성민 친권 지지[편집]

2008년 10월 4일부터는 10월 2일 자살한 최진실의 유가족과, 야구선수 조성민 사이에 친권 분쟁이 발생하고, 여성계와 시민단체들은 조성민의 친권을 반대할 때 그는 조성민이 아이들의 아버지이니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존중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2008년 10월 29일에는 조성민 친권 반대 카페가 개설되자[16], 그는 조성민 친권반대 카페에 찾아가 조성민의 친권을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네티즌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조성민의 아버지로서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지 않느냐며 항의,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11월 11일에는 연예인, 방송인, 국회의원, 시민단체 회원들로 이뤄진 '한부모 자녀를 걱정하는 진실모임'(이하 진실모임)은 11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실에서 조성민의 친권 회복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17] '진실모임'은 여성학자 오한숙희호주제폐지시민모임 대표 고은광순 주도하에 배우 손숙, 김부선, 권해효, 방송인 허수경,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공선옥 작가, 만화가 장차현실 등 각계 인사들이 참여했다.[17] 성재기는 11월 11일 서울 광화문 광화문 프레스센터 건물 앞에서 조성민의 친권은 정당하다며 1인 시위를 하였다. 당일 오전 11시 18층 외신기자실에 들어가려다가 제지당하고 외부로 축출당했고, 그는 광화문 프레스센터 입구 밖에서 준비한 성명서를 낭독하였다.

2008년 11월 15일에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 산업은행 정문에서 열린 조성민 친권 반대 거리집회에 찾아가서 반대, 항의하였다. 11월 19일 조성민이 친권 포기를 선언할 때까지 줄곧 네티즌들과 논쟁, 조성민아버지로서의 친권을 옹호하였다.

강용석 발언 논란 변호[편집]

2010년 7월 16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학교 인근 고깃집에서 강용석의 아나운서 발언이 물의를 빚자 그는 소수의 인사들과 함께 강용석 국회의원을 옹호하였다. 16일 오후 7시쯤 서울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 인근 고깃집에서 서울 소재 모 대학 학생 20여명과 회식하였다. 이들은 7월 15~16일 이틀간 열린 제2회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석한 대학생들과 심사위원을 맡은 국회의원들과의 대화를 위해 마련된 ‘뒷풀이 자리’였다.[18] 이 발언이 파문이 되자 그는 발언의 진상이 확실히 드라난 다음에 공격해도 늦지 않다며 네티즌들에게 강용석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은 자제해줄 것을 촉구했다.

당시 동석한 한 대학생에 의하면 강 의원이 “사실 심사위원들은 (토론) 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 “토론할 때 패널을 구성하는 방법을 조언해주겠다.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로 이뤄진 구성이 최고다. 그래야 시선이 집중된다.”는 등 성 차별적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이날 동석한 학생의 절반가량은 여학생이었다.[19] 강용석은 또 지난해 함께 청와대를 방문한 한 여학생을 향해 “그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라며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옆에 사모님(김윤옥 여사)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19] 이에 한국아나운서협회강용석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20]

성재기는 강용석이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 남성연대 홈페이지를 통해 그를 옹호하였다.[20] 그는 한국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그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몇명이나 매장되지 않을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당시 성재기는 홈페이지에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말실수를 한다”며 “객관적인 측정이 불가능한 피해여성의 심리적 상처에 대한 징벌로 가해남성이 받아야 할 처벌은 분명 지나치게 가혹하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20] 그는 말 실수 하나 때문에 사람을 (우리 사회에서) 매장시키려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덧붙였다. 7월 20일 한나라당에서 제명 여론이 나오고 국회의원직 박탈 여론까지 등장하였다. 성재기는 “말실수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해야 한다면, 지금 국회의사당엔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아야한다”며 “국회의원 강용석이 아니라 인간 강용석이 살아남길 응원하다”고 강용석을 응원했다.[20] 8월 27일 소설가 겸 번역가 이윤기가 사망하자, 8월 28일에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서울 삼성병원의 빈소를 방문하였다. 그는 이윤기 부음에 대한 무관심은 한국 사회의 척박한 지적, 문화적 풍토를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윤기는 문학, 번역사에 있어 탁월한 업적을 남겼는데도 대중의 관심이 미약하다는 것은 우리 문학계의 불행이라 지적했다.

국제 결혼 사업과 실패[편집]

남성연대 설립 초기 성재기는 국제결혼업체들의 광고를 게시하였다. 그러다가 남성연대의 남성의 선택권 증진 겸 수익사업을 목적으로 2008 7월부터는 직접 국제결혼 중계 사업, 국제결혼 중매 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한국 여성들의 높아진 눈높이와는 달리, 1998년 IMF 경제 위기로 30대 초반에도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증가한다는 점을 들어 국제결혼 사업을 추진하였다. 2011년 6월부터는 아프리카TV에 직접 출연, 국제결혼 사업에 대한 홍보, 광고를 직접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가 추진하던 국제결혼 사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일부 국제결혼 업체의 반발에 직면했고, 2013년 1월 국제결혼 사업을 최종 포기하게 되었다. 그는 여성들이 책임감, 희생을 포기한 이상 이제는 남성들도 가정과 결혼의 굴레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독신 등 다양한 방법의 저항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굳이 결혼해야 한다면, 배우자깜을 굳이 한국 국내에서만 찾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남성 병역 보상 운동[편집]

그는 군필자들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 방안의 하나로 군 가산점을 지목하였다. 공무원 채용 등에서 군 가산점을 적용한다면 사기업체에서도 병역을 마친 사람들에게 보상해주지 않을 수가 없다고 군필자 보상의 시발점으로 국가가 앞장서서 군필자들에 대한 보상을 해줄 것을 주장했다. 또, 그는 군 가산점 폐지에 대해 남성 역차별론을 내세우며 여성가족부를 강도 높게 비난하는가 하면 군 가산점 부활을 주장해 많은 남성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21] 군 가산점 부활 운동과 함께 군필자 보상 운동을 하며, 군 가산점 만이 아니라 군필자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보상이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했다. 그는 남성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병역 복무를 하지만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는 것 역시 문제점이라 지적했다. 그는 사회지도층 자제들의 병역 면제 기도는 군필자에 대한 보상이 없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그는 군 가산점 외에도 병역 보상 방안을 반대하는 세력과 네티즌에 대해 이기적이고 이중적이라며 비판을 가하였다. 그는 남성들의 병역 복무로 인한 손실보상 방안을 마련할 것을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에 촉구하였다. 2011년 6월 11일 케이블채널 리얼TV의 '리얼리티 시사 인터뷰쇼'는 10일 오전 9시 30분 '군 가산점제는 정당한 보상인가?' 편에 출연하여 군 가산점 부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여기서 그는 제대 군인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주장하였다.[22] 또한 군 가산점, 각종 군필자 보상을 반대하는 네티즌들과 블로그와 트위터 등을 통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남성연대 사무실 마련[편집]

2011년 군 가산점 부활 운동 추진하였고[23], 2011년 3월 3일 남성연대 상임대표가 되었다. 2008년부터 그는 개인 재산과 사업으로 모은 자금 등을 남성연대에 투자하고, 일부 모금 운동을 벌여 2011년 1월 28일 정식으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45-13 코오롱 포레스텔 1306호에 사무실을 마련, 남성연대 사무실을 이전하였다.

남성연대 활동과 남성 해방 운동[편집]

그는 성매매 여성은 일방적 피해자로 규정하고, 성매수 남성만 처벌하는 것을 반대하여 이를 비판, 꾸준히 문제제기하였다. 성매매 여성이 있으니 성매수 남성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으면서 남성만 처벌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역설하였다. 2011년 11월 28일 성매매 여성 보호 대책을 풍자, '연말연시 성매매 안하시면 현금 41만원을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풍자 메일을 대국민 발송하였다.[24]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재기는 "과거 여성가족부가 성매매여성이라고만 밝히면 41만원의 현금을 3년간 매달 지급한다는 정책을 풍자하기 위한 일"이라며"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해 시민들이 함께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설명했다.[25]

2012년 1월 여성가족부의 '가족' 명칭에 대해 법원에 명칭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26] 그해 초부터는 제천여성도서관에 대한 제보를 받고 2012년 5월 제천여성도서관에서 남성 출입금지에 항의하는 1인 퍼포먼스를 하다가, 그해 7월 남성연대 회원들과 일부 시민사회운동가들과 연대하여 여성도서관 남성 출입금지에 대한 침묵 시위를 주도하였다. 2012년 7월 "납세자인 남성의 권리를 횡령하고,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2]"라며 각종 공공기관과 각종 기관의 여성전용 반대 운동을 벌였다.

성재기는 결혼, 가정의 이름으로 남자들을 구속하고 속박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이혼은 밥먹듯, 떡먹듯이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재기는 무조건 가정을 지키고, 가족,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만 안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반박했다. 반드시 가정을 지켜야 될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성재기는 남자들도 가정, 가족에서 벗어나고, 의무책임감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인간, 자유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90년대, 2000년대에 와서는 남성들을 경쟁자로 보고, 오히려 남성성을 가진 거칠고 공격적인 여성들도 등장했다며, 그들도 과연 약자인가 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동시에 여성 의무 할당제는 남녀를 역차별하는 인종차별적 정책이라며 여성부와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남성 구제 활동[편집]

2011년 강용석 당시 국회의원아나운서 명예훼손 발언으로 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했을 때 강 전 의원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였다.[27] 2010년 7월 16일의 발언이 계속 2011년까지도 문제가 되자 그는 강용석에 대한 실시간 마녀사냥은 안 된다며, 발언 하나로 1년 이상 괴롭히는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2011년 11월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 논란이 다시 일었을 때 그는 “남녀가 평등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에 성욕까지 동등하다고 하는 현 시대에 성희롱이라는 족쇄를 남성에게만 채우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며 '말실수'에 대한 처벌이 가혹하다고 지적하였다.[28]

그러나 성재기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 성폭행 무고 피해자, 허위 성폭행 신고 피해자, 여성에게 구타당한 남성 폭행 피해자, 이혼 소송 피해자들의 소송 비용과 변호 비용을 지원하였다. 2013년 2월 26일부터는 남성연대의 숙소를 개방하였다.[29] 강남구 삼성동에 가출 남성, 노숙자, 가정폭력 피해 남성을 위한 쉼터를 개설했지만 쉼터 수용 인원이 늘어나자 결국 그는 남성연대 숙소마저 개방하였다. 그는 가출 남성 혹은 오갈데 없는 남성들의 쉼터이자 임시 거처로 남성연대 숙소를 개방하게 했고, 숙식은 그가 부담하였다. 또한 주변 건물을 임대하여 남성들의 쉼터이자 일시 거처로 머물게 했다. 그 뒤 2013년 4월 말부터 5월 15일까지 사정으로 인해 잠시 문을 닫았던 남성연대 숙소는 5월 16일부터 재개방되었다.[30]

남성 인권 옹호 운동[편집]

남성 성범죄자론에 대한 반발[편집]

2000년대 이후 인터넷에서 확산된 '남자는 잠재적 성범죄자이다', '남자는 늑대다' 등의 발언과 그런 가치관은 남성에 대한 근거없는 부당한 편견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모든 남자를 성범죄자로 모는 것이야 말로 남성들에 대한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문제 된 일련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회분위기와 관련해서는 "남자 전반을 가해자로 몰고 가는 여성들의 판단에 균형이 필요한 것 같다"며 "성범죄는 도덕성과 치안의 문제이지 남성 전체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31] 그는 모든 남성이 성범죄자는 아니며 이는 부당한 매도이다, 여성 성범죄자도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모든 남자들이 야한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며, 남자들에 대해 죄의식, 죄책감을 강요하는 목적이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여성들이 여성성, 남성성욕을 이용해서 남성들을 부려먹는다고 주장하였다. 남성의 성욕을 통제, 이를 통해 서민, 하층민 남성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는다고 봤다. 차라리 남자들에게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던가 할 것이지 말로는 남녀평등을 말하면서도, 여성이 약자라고 억지부리며 온갖 혜택은 다 누린다고 분개하였다. 또한 그는 경제력 있는 여성이 직업 없는 남자, 무능한 남자와 결혼해서 남자 전업주부 생활을 하는 케이스가 얼마나 되느냐며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가정주부, 전업주부를 일종의 직업으로 인정하는 견해에는 동의하였다.

그는 "남녀관계에 확실한 정답은 없다"며 "각자가 똑같은 권리를 누리는 게 평등이 아니라 서로 균형을 맞춰가며 상대의 역할을 존중하는 게 평등인 것 같다"고 하였다.[31] 그는 성 역할을 부여하며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주장은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무시한 폭력이라 역설했다. 그는 남성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며 모든 남성이 성적인 것에 탐닉하는 것도 아닌데 남성을 성범죄자로 몰고 가는 것은 마녀사냥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는 병든 인격체들이 사회지도층이 되고, 고학력과 유학 경력, 스펙 등을 자랑하지만 그것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간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 우선이지, 인간 자체가 정신병이 있으면 아무리 학벌과 돈, 명예, 감투를 씌워도 소용없다고 지적했다. 고학력과 석사 학위, 박사 학위, 유학 경력보다 그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낫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병든 지식인들의 도덕적 올바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집착의 희생자로 전락했다고 진단했다. 그런 정신질환자, 편집증환자들의 집착과 편견, 독선이 과연 군사정권보다 나은 점은 무엇이냐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그는 2002년 이후 노무현 대통령과 2007년에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 2008년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선영 국회의원 등에게 메일과 서한을 보내 페미니즘의 폐해를 주장하며, 여성부 폐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 계도정책 비판[편집]

그는 성매매 여성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시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시정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2011년 11월 28일‘연말연시 성매매 안 하시면 현금 41만원을 드립니다’는 제목의 이메일을 대량 발송했다.[32] 28일 그는 사회각계 각층과 공공기관에 성매매를 하지 않는 남성에게 41만원의 돈을 드린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다. 이는 여성부에서 성매매 여성이라고 밝히기만 하면 무조건 41만원의 자활 지원금을 보내는 것에 대한 풍자였다.

지금까지 성매매경험이 있던 여성이 앞으로는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현금41만원을 본인명의 계좌에 입금해주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료 아래에는 "성매매여성이 성매매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위해 자활센터를 통해 교육을 받을 경우, 1개월 41만원씩 3년동안 현금지원과 법률,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33]

화이트 타이 운동 패러디인 화이트 스타킹 운동 홍보물

그는 정관계, 언론인들 외에도 "지금까지 성매매 경험이 있던 분이 앞으로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41만원을 본인명의 계좌에 입금하겠다"고 적혀있는 이메일을 불특정 다수에게 대량 발송했다.[34] 그의 이 캠페인은 여성가족부가 성매매 활동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여성에게 3년간 매월 41만원씩의 현금, 법률·의료 서비스를 지원하는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5년 여성가족부가 남성들의 성매수를 자제하자는 뜻으로 실시한 ‘화이트 타이’ 캠페인을 패러디한 것이다.[32]

성재기에 의하면 직업에 귀천은 없는데도 일부 여성 지식인들은 비뚤어진 자기들만의 도덕관념에 입각, 성매매를 천한 직업으로, 성노동자들을 천한 인간으로 매도한다고 지적했다. 성재기 남성연대 상임대표는 이날 "여가부의 성매매여성 보호정책은 성매매여성 여부를 정확히 가릴수 없음에도 추진되고 있다"며 "이 문제를 공론화해보자는 취지에서 이번 캠페인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33] 11월 28일11월 29일, 11월 30일의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41만원을 지급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며 여성부 정책의 패러디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바로 이 문제를 시민들과 함께 생각해보자는 공론화 취지에서 이번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35]"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정부의 성매매여성 보호 대책을 비꼬는 '가짜' 캠페인은 논란이 되었다.[32] 문의 전화가 속출하자 그는 풍자 퍼포먼스임을 밝혔다. 한편 이에 대해 여가부 관계자는 "여가부에서 성매매 여성에게 현금 41만원을 입금해주는 내용의 정책은 단 한번도 시행한 바 없다"며 "남성연대가 풍자한 여가부의 '화이트타이' 캠페인에도 현금 지급을 언급한 내용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33] 성재기는 성매매에 대한 탄압도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그릇된 풍조의 일종이라 지적했다.

성매매 여성 일방적 지원 비판[편집]

11월 그는 성매매 여성 중에는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11월 28일과 11월 29일의 화이트 타이 프로그램을 풍자한 화이트 스타킹 퍼포먼스에도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자들은 절대 피해자일 수가 없다고 반박하였다. 2011년 11월 29일 오후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성재기는 "여성가족부가 자발적으로 성을 사고파는 여성과 남성 양쪽 중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인 것처럼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사실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이번 캠페인을 기획했다"고 말했다.[24] 자발적인 성매매 여성들도 일방적 피해자냐고 항변하였다.

한편 그는 여성가족부와 여성계에서 자신이 성매매 여성이라고 말하면 검증 없이 지원해 준다고 지적했다. 성재기는 여성부에 전화하여 성매매 여성 여부를 알수 있느냐며 질문했다고 밝혔다. 11월 16일 DNS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그 동안) 성매매 여성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국민 세금을 지급한 것에 대해 여성부는 "우리가 (그 해당 여성이) 성매매 여성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는 무책임한 답변만을 들려줬다"고 밝혔다.[36][36]

성 대표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는 성매매여성이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경우 현금 41만원, 이밖에 혜택을 합치면 약 70여만원이 3년간 매달 지급된다.[35] 하지만 성 대표는 "이러한 정책은 성매매 여성 여부를 정확하게 가릴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35] 그는 "정부가 성매매 여성에 어떤 증빙자료도 요구하지 않고 '성매매를 안하겠다'는 말만 하면 돈을 수십만원씩 주고 있는데 이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전혀 효과가 없다고 지적된 정책으로 세금만 낭비할 뿐"이라고 주장했다.[24] 또 그는 2010년부터 성매매 여성들과 유관 기관들을 상대로 인터뷰, 설문조사를 할 때 성매매 여성이 아닌 여성들이 성매매 여성 건강검진 지원 제도를 악용한 사례가 있다는 진술을 들었다고도 주장했다.

여성가족부 명칭가처분 금지 신청[편집]

2011년 11월부터 법전의 각종 법조항을 찾은 그는 여성가족부 가족 명칭 사용금지 가처분 소송을 준비하였다. 2012년 1월 그는 서울지방법원여성가족부 명칭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여성가족부가 남성을 위한 정책을 시행한 적이 없는데도 부처 명칭에 `가족'을 사용했다"며 최근 가처분신청을 냈다.[37] 그러나 2012년 8월 1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50부는 "여성가족부가 '가족'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명칭사용금지 가처분 신청(2012카합10)을 기각했다.[38]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여성가족부가 '가족'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가족에 관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정부조직법에 따른 것으로, 명칭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법률의 개정이 있어야 한다"며 "남성연대가 여성가족부에 대해 '가족'이라는 명칭의 사용금지를 구할 사법(私法)상 권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38]

성범죄자 이중 처벌 반대[편집]

2012년 2월경부터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 여론이 나오자 그는 이를 계속 반대해왔다. 2012년 10월 국회에서 그는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에 대해 이중 처벌이라며 항의하였다. 그는 성범죄거세는 ''이중처벌'의 문제이다[39] 라며 반대하였다. '화학적 거세'는 징역형과 별도로 시행하는 부가적인 형벌이다. 따라서 왜 유독 성범죄에 관해서만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징벌이 따라야 하는지, 만약 '화학적 거세'만으로 처벌을 대신한다면 모를까 징역형과 함께 병행하는 '화학적 거세'는 분명 이중처벌이라는 문제가 있다.[39] 2011년부터 그는 한사람의 죄인에게 한가지 죄로 이중 처벌을 가하는 것은 형 적용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성범죄자에게 징역형 외에 가해지는 신상 정보 공개 또는 전자발찌 착용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에 대해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였다. '형평성'의 문제이다. 2012년 12월의 국회 인터뷰에서 그는 '여자 성범죄자는 전체 성범죄의 1% 정도이다. 남자 성범죄자를 '거세'시킨다는 얘기로 일반 남성들에게도 섬뜩한 거부감을 줄 때 여자 성범죄자는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자궁적출'한다는(의학적인 효과는 알 수 없다) 무시무시한 얘기를 했다고 해보자.[39] 과연 일반 여성들은 어떻게 느끼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여자의 성범죄가 1%의 근소한 비율로 발생한다고 해서 처벌에 대한 공론을 남성 성범죄자에만 한정지어서 얘기한다면, 법은 남성에게만 '엄격하다'는 것이 되고 만다[39]'며 성범죄자들에 대한 화학적 거세를 반대하였다.

또한 그는 일각의 성범죄자 거세 주장에 적극 반대하였다. 그는 ‘거세’의 사전적인 의미는 동물의 생식 기능을 잃게 한다는 뜻으로 ‘남성’의 경우에 대비하면 가장 무자비하고 반인격적인 형벌을 의미한다[39]성범죄화학적 거세의 비인간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성매매방지법 반대 운동[편집]

2012년 9월에는 한터연합 등과 성매매 여성 등의 성매매 방지법 폐지 선언과 성매매 허용 집회에 참여하였다. 2012년 9월 26일서울 중구 프레스연합에서 열린 한터연합 등의 집회에 참석한 그는 "지난 17일 김금래 여가부 장관의 ‘성매매금지법과 성폭력 증가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발언에 대해 성매매금지법 이후 증가하는 성범죄 발생건수를 예로 들며 “김 장관의 발언은 책임회피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40]"

성재기는 또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해외원정 성매매를 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러한 치욕스러운 결과는 여가부의 현실성없는 졸속정책때문"이라고 지적했다.[40] 국내에서 성매매를 금지하고 해외 성매매를 처벌하더라도 성매매 여성들은 외국에서 성매매 행위를 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결할 셈이냐며 성매매 금지가 실용성이 없는 탁상공론이라 지적하였다. 그는 일부 상류층 여성들이 자기 만족을 위해서 남성과 성매매 여성들의 이해관계는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였다고 비판하였다.

셧다운제 반대 운동과 아청법 반대 운동[편집]

게임 셧다운제 반대 운동[편집]

2011년 5월부터는 게임 셧다운 제도 반대 운동에 참여하였고, 방송 토론과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여 게임 셧다운제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과 게임 셧다운제를 한다 하여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하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PC방에서 게임을 한다, 성인인데도 생일이 빠른 만 18세, 만 19세는 엄연히 성인인데 게임에서 강제로 퇴장당한다는 점 등의 폐단을 지적하였다.

2012년 1월에는 법원에 게임 셧다운제가 게임 이용자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과, 셧다운제로 게임 업계를 고사시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소송을 제기하였다.

여성부 DDOS 사건 전후[편집]

2월 26일부터 2월 29일 초등학생 3명을 비롯한 10대 7명이 여성가족부 홈페이지를 디도스로 공격하였다.[41] 한편 성재기가 그 배후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제천 여성도서관 항의 방문[편집]

제천여성도서관이 설립된 것에 대해 그는 여성도서관은 똑같이 세금을 납부하는 남자 주민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그는 제천여성도서관의 일반도서관 변경 또는 제천여성도서관의 남자 주민 출입을 허용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번번히 거절당하자 2011년 7월부터는 제천시 제천여성도서관에 대한 항의 방문과 1인 시위 퍼포먼스를 추진하였다.

7월 7일 이들은 도서관 첫 진입을 시도하였다.[42] 7월 7일 여성도서관 진입을 시도하려 했으나 시민과 공무원 등의 제지로 무산됐다.[42]

7월 28일 성재기는 남성연대 회원 10여 명과 시민들을 데리고 인성동 제천여성도서관에 두번째 진입을 시도하다가 제천시 시민단체 회원들에 의해 입구에서 봉쇄당했다.[2]" 도서관과 지역 단체들은 부지 기증자의 뜻에 따라 여성 전용도서관이 건립됐다며 기계적 평등만 내세운 것은 잘못이라고 반발하였다.[2]

성재기는 꾸준히 남성도 국민으로서 세금을 내는데 왜 남성들은 진입하지 않느냐며 여성들에게 특별세금을 거둔 것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남성들에게 출입 제한을 두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계속 저항할 것을 선언했다. 동시에 2월 1일부로 제천여성도서관제천시청을 상대로 행정소송과 인권 침해 소송을 준비하고 변호사를 선임해두었다. 그러나 1월 9일 제천여성도서관에 남성의 출입을 허용하면서 3차 진입 시도와 행정소송 준비를 전격 철회하였다.[43]

성매수 남성 처벌에 항의[편집]

2012년 9월 17일 여성가족부김금래 장관이 성매매 남성을 범죄자로 보자 그는 여기에 반발했다. 여성부에서 성매매 금지로 성범죄가 증가한다는 주장에 대해 '성매매금지법과 성폭력 증가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44]

성재기는 성매매 남성은 정당하게 돈을 주고 성을 구매하는 것이고, 성매매 여성을 학대하거나, 임금체불, 고문하거나 구타하지 않는데도 성매매를 범죄로 취급해야 될 이유가 있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상류층 여성들과 종교적 금욕주의자들이 자기들만의 사상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강요하는 부당한 폭력행위라고 지적했다.

여성 특혜 주장 비판[편집]

2012년 10월 성재기는 여성들의 생리휴가 요구를 강하게 비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45]

그는 진정한 양성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 싶다면 여자들도 자신의 약점 핑계로 보호받을 생각 하지 말고, 남자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하라고 촉구하였다. 기존의 여성 차별이나 유교남존여비 사상과는 달리 생리통월경은 남성들이 가하게 만든 제약 조건이 아니라며, 신체적 약점 일부를 이용해서 특혜, 배려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성 차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그의 여성 월경권 비판은 그 해 11월 15일경까지도 화제가 되었다. "행하는 의무와 책임에 비례해 권리와 혜택이 배분되는 사회가 가장 합리적인 이성국가인데, (생리휴가는) 성별로 권리를 정해 다른 성을 영원히 배제하고 봉건사회신분제로 하자는 것"이라는 발언은 그해 11월 중순까지도 이슈가 되었다.[46] 여성들의 생리휴가를 강한 비판은 11월까지 논란이 되었다.[46] 또한 반드시 생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월경권을 주장하면 월경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동 청소년법 반대 운동[편집]

2011년 5월부터는 아동 청소년법 폐지를 주장하였다. 그는 2000년 당시 아동 청소년법이 국민적 동의를 거치고 통과된 법안이 아니라며, 2011년부터 여성부에 의해 개정 추진되는 아청법 제2조 제5호의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 및 사람'이라는 조항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아청법 개정안은 11월 20일 원안대로 국회에 상정되었다.

2012년 11월 16일 성재기는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실에서 발의한 아청법 개정안에 반박하며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이 발의한 '아청법 개정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김희정 의원은 법안심사소위에서 최 의원의 개정안을 폐기하고 제출한 개정안을 냈다.

2012년 12월의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아동 청소년법이 지나치게 엄격하며 비현실적이라 지적했다. 또한 아동청소년법으로 수많은 만화 작가,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일자리가 끊기게 생겼다고 주장했다.

아동청소년법의 폐지가 어렵다고 본 그는 11월 16일 이후 아동청소년법의 일부를 개정해줄 것을 촉구하였다. 11월 17일 성재기는 또 남성들의 반발은 사회적 합의에 해당되지 않는가를 묻고 싶다며 반박하면서, 아청법을 폐지할 수 없다면, 아청법 시행을 6개월 이상 보류한 뒤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검증단을 구성해 재개정하자는 내용의 요구안을 발표하였다.[47]

2012년 12월부터는 아청법이 대중문화를 탄압하는 수단, 검열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아청법 반대 캠페인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일부 병든 인격체들,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성향의 지식인, 사회지도층이 자신들만의 정치적 올바름, 도덕적 올바름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국민들을 괴롭힌다며 아청법과 셧다운제, 쿨링오프제, 청소년 보호법의 철폐는 물론이고 야동과 포르노, 각종 음란물에 대한 탄압까지 철폐해야 함을 강조했다. 2013년 2월까지 국회 등을 상대로 설득하였지만 아청법은 통과되었다.

야동 성욕 해소론[편집]

그는 야동음란물이 남성의 성욕을 돋구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성욕을 해소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음란물 기준의 명확화를 촉구했다.

이어 그는 성문화의 해소를 주장했다. 오히려 성산업을 허용하고, 음란물 등에 대한 규제도 낮추어진다면 성범죄가 어느 정도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음란물을 시청하고 자위행위를 해서 욕구를 푼다면 성범죄를 저지를 이유나 여력이 사라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2012년 10월 1일시청앞 광장 집회, 11월 국회 토론회나 1117 집회, 12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오히려 음란물을 시청하고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소하지 음란물 시청 후 성욕이 무한대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여성단체에 토론 제안[편집]

2012년 12월 20일에는 한국의 각 여성단체 대표들에게 ‘MT 초청장’을 보냈다.[48] 성재기는 12월 2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12월 29일 남성연대 1박2일 MT 갑니다. 전국여대총학생회, 여성단체, 여초카페 등에 초청장을 보냈습니다”며 “여성대표들과 올바른 남녀평등을 위한 토론을 할 것이며 아프리카, 곰TV로 생중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48] 그러나 여성단체들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성 대표의 트위터를 접한 네티즌들은 “사망유희 시즌 2가 시작되는 것인가 흥미진진하다”, “패기는 인정하지만 여성단체들이 쉽게 오겠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48] 12월 29일 여의나루 역에서 집결하여 MT를 다녀왔다. 그러나 여성단체들은 그의 초청에 거부했고 남성연대 활동에 호의적인 일부 여성들이 참여하였다. 12월 24일부터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서신, 연락을 통해 여성부 폐지를 거듭 제안하였다.

한편 다른 시민단체에서 그에게 함께 연대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는 답변을 회피했다.[49]

각종 데이 비판과 남성의 허세 비판[편집]

그는 여성들도 데이트나 연애 할 때 더치페이를 하거나 여성들도 한번 쯤은 내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남자의 주머니는 화수분이 아니며 남자들 역시 힘들게 돈을 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2012년 3월 14일화이트 데이2012년 11월 11일의 빼빼로 데이 때 그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선물은 받으면서 남자들에게는 선물 하나 사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자에게 선물받는 대가로 사귄다면 그것이 성매매, 성을 판매하는 행위와 뭐가 다르냐고 지적했다. 2012년 10월 16일에는 공개적으로 "무리한 데이트 비용을 남자에게 부과하고, 남자친구에게 값비싼 명품백 선물이나 빚을 대신 갚아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거나 비싼 수입차를 가진 남자에게만 다리를 벌린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남자들의 허세와 쓸데없는 자존심이 남자들 자신을 고통과 괴로움, 경제적인 부담감으로 몰고 갔다며 남성들이 세 번 쏘면 여성들도 한번은 부담하던가, 아니면 더치페이를 하는 것이 진정한 양성 평등이라 주장했다.

2013년 3월 14일에는 화이트 데이를 맞아 거친 독설을 날렸다. 성 대표는 3월 14일 자신의 트위터(@sungjaegi)에 "자기는 발렌타인데이 때 초콜릿 선물해주고, 오늘 화이트 데이 때 명품백 등 고가의 선물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창녀들을 성매매특별법 위반으로 구속하자"는 글을 올렸다.[50] 그는 여성에게 쓰기만 하는 남성에 대해서도 불만을 쏟아냈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멋진 남자인 줄로 착각하는 자들도 있다고 지적하였다.

성재기는 여성들 앞에서 무조건 착한 남성이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남자들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를 남자들의 얄팍한 자존심이며, 가진 것도 없는 놈들이 허세를 떠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2년 11월에는 착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지 않는 한 남성들은 계속 여성의 노예, 노리개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3년 3월 14일 각종 데이에 받기만 하는 여자들을 비판하면서도 그는 무조건 착한 남성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릿 받고 화이트 데이 때 명품백 등 고가의 선물로 '보답'해야만 교제가 가능한 여자와 데이트 중입니까?"라며 "그런 여자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는 거라면 당신은 병신입니다"라고 말했다.[50] 그는 남성 해방론을 거듭 주장, 남자들이 더 이상 결혼연애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유로운 한 사람의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했다. 또, 정 결혼을 하고 싶다면 국제결혼 쪽으로도 눈을 돌려보라고 강조했다. 외국 여성과 결혼한다고 해서 잘못될 것은 없다며, 다만 그 사람이 한국에 정말 살려고 오는지, 돈만 받고 가출할 여자인지에 대한 검증은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모장제 비판[편집]

성재기는 가부장제를 비판하지만 가모장제가 되는 것도 역시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2012년 3월 8일 성재기는 가부장제로 돌리는 것은 반대한다며 하지만 가부장제가 싫다고 가모장제를 하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니냐며 비판하였다. 그는 고작 가부장제를 철폐하고 호주제를 없앤 결과물이 이런 것이었느냐고 주장했다.

가정 경제권이 안방으로 넘어가고 부터였다. 월급이 고스란히 부인 통장으로 입금 되면서 수많은 남편들이 아내에게서 용돈을 타써 눈치를 봐야하는 지경이 되었다.[51] 성재기는 이미 가부장제는 사라졌는데 왜 가부장제의 유령을 들먹이면서 싸우느냐, 일부 가부장주의자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부 극소수의 일이며 대부분은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서도 전업주부든, 직장여성이든, 그냥 노는 여성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빨래, 설거지까지 다 떠맡는다며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연히 아이들도 돈 드는 모든 일에 엄마 손을 쳐다보게 되고 아버지의 존재는 그저 돈 벌어다주는 일벌의 역할로 전락되다시피 한 가정이 불어난 것이다.[51] 성재기는 이미 집안은 엄마들, 어머니들의 목소리로 집안이 좌지우지되는 환경에 이르렀는데 무슨 가부장제냐고 지적했다. 그는 극성맞은 자식들 교육열, 자식 교육을 위해서 위장전입에, 가정 경제가 휘청거릴정도로 돈까지 들여서라도 무조건 투자하는 이런 어머니들이 가부장이냐고 반박했다.

2012년 5월 8일에도 그는 가부장제가 싫다고 가부장의 권한을 어머니에게 갖다주는 것은 잘못이라며, 가족 구성원 개개인에게 동등한 발언권을 줘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다만 성재기는 자녀들은 아직 미성년자라서 의사판단이 어려운 만큼 부모가 조언을 해주어야지 부모가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어머니들의 교육열, 자녀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어머니 본인의 뜻대로 가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지적했다. 성재기는 가부장제 싫다고 호주제 폐지하고, 군가산점 없애고, 가부장을 비난한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냐고 항변했다.

여성 전용석 철폐 운동[편집]

경기도 여성전용석 철폐[편집]

그는 각종 여성 전용석, 여성 전용 주차장 등의 정책을 비판하였다. 그는 여성 전용석, 여성 전용 주차장은 성 차별이라며, 만약 여성 전용석이 필요하다면 남성 전용석도 따로 만들던가, 여성 전용 주차장을 만들면 다른 곳에 남성 전용 주차장도 만들라고 요구하였다.

대구 여성전용칸 폐지 운동[편집]

2013년 1월 14일 대구지하철공사의 여성전용칸 설치계획을 확인한 후 3일간 항의하여 대구 지하철의 여성전용칸 설치를 전면 백지화시켰다. 그는 남성연대 명의로 공문을 보내 지하철 여성전용칸 폐지를 주장했다. 한편 남은주 대구여성회 사무처장도 “서울에서도 여러차례 여성전용칸 도입을 시도해봤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성추행이 줄어들지도 의문이다. 아이를 동반한 여성이나 임신부·노인·장애인 등 교통 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더 시급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구 지하철의 여성전용칸 설치는 1월 17일 전면 백지화되었다.[52]

서울시 여성전용 정책 비판[편집]

2013년 4월 4일에는 서울시의 여성 정책은 성차별이며 과잉보호라고 비판하였다. 성재기는 “여성 전용 주차장과 버스 좌석에 이어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는 여성 전용 임대주택과 여대생 전용 기숙사처럼 역차별을 조장하는 포퓰리즘 정책이 활개치고 있다”고 성토했다.[53] 성재기는 남자도 세금을 내는데 왜 여성 전용만 만드느냐, 남성 전용은 왜 만들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여성 전용을 반대하지는 않는다며, 정말 성범죄가 우려된다면 여성 전용 외에 멀리 떨어진 곳이든 다른 곳 어디에 남성 전용도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여성들의 전용 요구도 문제점이라 지적했다. 그는 여성들이 자꾸 ‘전용’을 주장하는 건 스스로 사회적 약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여성 전용 핑크 택시처럼 여성의 안전을 위한 정책은 용인할 수 있어도 흡연구역까지 여성 전용을 만든다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53] 그는 남성을 차별화 하지 말라며 여성전용좌석과 여성마라톤대회 등을 반대하였다.[54]

윤창중 사태 전후[편집]

2013년 5월 7일 미국에서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실의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인 미국 방문 중 술을 마시고, 주 미국 한국대사관에서 지원한 인턴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때 대한민국 내에서는 비난 여론이 나타났지만 성재기는 아직 의혹이고 혐의가 확정된 것도 아닌데 윤창중에 대한 과도한 비판은 자제할 것을 촉구하였다.

사태가 박근혜 대통령 사과론까지 확산되자 그는 왜 밝혀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과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 대변인실의 실장이 사과한다면 모를까 대통령까지 사과하라 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성재기는 또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사건이 박근혜 정부의 도덕성 및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생애 후반[편집]

나이키 여성마라톤 반대 운동[편집]

2013년 5월에는 나이키 주최 여성 마라톤이 남성을 역차별하는 것이라며 반대 운동, 반대 캠페인을 펼쳤다. 그는 나이키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 이후 남성연대에서는 나이키 마라톤 반대 운동을 벌였지만 성재기는 5월 24일 입장을 바꾸어 자신도 회비를 내고 여성 마라톤에 참가하겠다, 참여하여 반대 의사를 나타내겠다는 뜻으로 의사를 바꾸으나 참여하지 못하고, 남성연대의 여성 회원 3인이 5월 23일부터 5월 25일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55]

여대 로스쿨 설치 비판[편집]

여자 대학교 로스쿨이 합헌 판결이 내려지자, 남학생은 입학할 수 없는 것을 들어 역차별임을 지적했다.

경영난 돌파 시도와 실패[편집]

2013년 5월에는 홈페이지에 '2년 동안 벌어들인 회비와 후원금은 2000여만원인데, 지출은 2억4000여만원이라 현재 2억원이 넘는 재정 적자를 안고 있다'는 공지를 띄우는 등 재정난을 호소했다.[27] 회사원 생활과 개인 사업을 통해 모은 돈 대부분을 반페미니즘남성해방연대와 여성부 폐지운동 본부 그리고 남성연대의 운영에 투자하였고 재정난으로 허덕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민단체로서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경영난에 허덕였다.

그는 "가난하지만 당당히 운영하겠다"며 정부 지원을 일절 받지 않았다. 후원금으로만 남성연대를 운영하면서 '싱글대디 반찬배달', '무료 법률지원 서비스' 등 돈 드는 사업을 이어 가다 보니 재정난에 부닥쳤다. 남성연대2011년 3월부터 2013년 5월까지 각종 행사 비용 등으로 2억 4670만 원을 썼다. 하지만 후원금 수입은 1956만 원에 불과했다.[56]

투신과 사망[편집]

2013년 7월 25일 그는 인터넷 트위터 등에 한강에 투신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한국 남성 인권의 현주소를 고발하며 투신하겠다[57]"고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자살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며 한국 남성들이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국민 여러분들은 알아주십사 하는 뜻에서 퍼포먼스를 벌인다고 선언하였다. 이어 남성연대 홈페이지와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일부 지인들에게도 이를 알렸다. 일부 지인들은 말렸지만 그는 운동을 했다는 점과 사전 답사, 사설 구조대원을 준비했음을 알렸다.

그는 투신 전까지도 아동 청소년법게임 셧다운제 등의 개정을 촉구했다. 그는 "지금 국회에 발의된 성판매 여성은 무죄이고 성구매 남성만 처벌하는 (성매매특별법 개정)은 절대로 반대합니다.[58]", "아동청소년보호법 2조 5호는 반드시 실제 아동, 미성년자인 경우일 때만 처벌하는 것으로 개정해야 합니다.[58]" 라며 성매매 남성만 처벌하는 성매매 특별법을 반대, 아동청소년법의 개정의 구호를 외쳤다. 그는 자신은 살아돌아올 것이라며 왜 죽는다고 생각하느냐며 자신이 전투수영도 배웠음을 언급하였다.

성재기의 한강 투신 예고는 비판 여론을 몰고 왔다.[59]

7월 25일 저녁의 트위터 글에 "왜 투신하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차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빌려 달라고 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 달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그러나 투신 계획을 철회하지는 않았다.[59]

7월 25일 저녁 11시, 그는 죽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그는 내가 죽음으로서 열악한 남자들의 권리를 되찾는다면 기꺼이 웃으면서 죽을 자신이 있다고 답했다. 가부장제가 사라진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남자들에게 가부장의 역할을 강요한다며, 가령 남자들에게 무조건 군대에 가라고 강요하는 것과, 회사에서 무한한 야근과 특근, 적은 월급에도 열심히 일하라고 강요하는 것부터가 바로 남자들에 대한 가부장적 책임감, 의무 강요라고 지적했다. 성재기는“내가 잘못되면 남성연대의 제2대 대표는 한승오 사무처장이 이어받을 것”이라며 극단적 상황에 대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59]

2013년 7월 26일 서울특별시 마포대교에서 투신하였다가 실종, 3일만인 7월 29일 오후 4시 10분께 서강대교 밤섬 인근시신으로 발견되었다.[60]

7월 30일 오후 서울마포경찰서는 성재기가 투신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무처장 등 남성연대 직원 3명, 지지자 박모씨(28) 등 모두 4명에 대해 자살방조죄 혐의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성 대표의 투신은 일종의 퍼포먼스였기 때문에 현장에 있던 4명에게 관련 혐의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61]

사망 직후[편집]

7월 29일 남성연대 홈페이지는 이날 오후 성 대표의 시신 발견 소식이 전해지자 접속이 폭주해 2~3시간 가량 다운됐다가 복구됐다.[62] 한편 여성부에 대한 분노감도 극에 달했다.[62] 일부 누리꾼들의 항의 방문으로 여성부 홈페이지는 이날 오후 7시께부터 2시간 가량 접속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62]

성재기의 투신 이후 자살설이 확산되자 미디어 워치 대표 변희재는 인터뷰와 트위터, 장례식장을 방문한 취재진들에게 자살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 자살설이 확산되자 7월 29일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성재기 대표는 자살을 한 게 아니다. 열악한 단체를 살리기 위해 극단적인 퍼포먼스를 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 방법엔 동의하지 않으나 무책임하게 목숨을 내버린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63]

빈소[편집]

2013년 7월 30일 성재기의 서울 마포구 마포대교 아래 간이 빈소에는 1000여명에 달하는 조문객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충격에 빠진 그의 유족이 빈소를 지키지 못해 남성연대 관계자가 상주 자격으로 조문객을 맞았다.[64] 부산 대전 등 전국 각지에는 20곳이 넘는 분향소가 설치돼 빈소를 직접 찾아가지 못하는 시민들이 성 대표의 죽음을 추모했다.[64] 그의 빈소에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함께 토론을 벌였던 민주당 최민희 의원을 비롯해 미디어워치 변희재 대표와 한국NGO신문 여영미 대표 등이 다녀갔다.[6] 7월 29일 현역 정치인들중 처음으로 최민희 민주당 국회의원이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65] 최민희 의원은 이날 "사진이 처음 게시되어있을때 장난인줄 알았었다"며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줄이야…정말 안타까운 일이다"라며 상주를 맡은 한승오 남성연대 사무처장에게 위로를 구했다.[65]

2013년 7월 30일 변희재는 자신의 트위터에 “제가 사무실 다녀오는 사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다녀갔나봅니다. 감사드립니다. 반면 새누리당 의원은 아직 전화 한통 없습니다”라고 썼다. 잠시 후 그는 “확인해보니 새누리당 측은 조화 하나 보낸 게 없습니다”라며 우회적으로 새누리당을 비판했다.[66] 이어 그는 “당 대표 명의 조화와 당대변인 정도가 조의금 갖고 방문하는 게 통상적인 시민단체 대표에 대한 예우입니다. 여성 민우회나 참여연대 대표 상이었다면 50명 정도는 따라갔을 겁니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66]

사후[편집]

그가 죽자 영등포의 여의도성모병원에 빈소가 마련되었고, 그가 투신한 마포대교 남단 교각 아래[67], 서강대교 교각 아래에도 시민과 네티즌들이 간이 빈소를 세웠다. 7월 31일에는 청주, 청원, 오송 지역에 사는 일간 베스트 저장소 회원들이 31일 충북 청주시 서문대교에 성재기를 추모하는 분향소를 설치했다.[68]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외신에서도 그의 사망 사고를 취재하였다. 8월 1일 미국 남성과 소년들을 위한 단체 '남성들을 위한 목소리'(A Voice for Men)가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사망과 관련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69] 7월 29일 '남성들을 위한 목소리'의 발행인인 '폴 엘람'은 홈페이지에 성 대표가 사망까지 이른 내막을 설명하고 "성 씨의 죽음은 비극이다"고 정의했다.[69] 이어 남성의 소리는 그는 "우리 남성의 목소리는 비웃음 당했고 무시 당했다"면서 "그는 위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신념을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라고 전했다.[69]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빈소에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방문하지 않은 데 대해 분노를 표했다.[70] 변희재8월 1일 자신의 트위터에 "조윤선 여성부 장관에게 아주아주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 장관이나 실무국장의 방문은커녕 조화나 조사조차 보내지 않았다"면서 "솔직히 말해 (조 장관은) 조용히 정계은퇴의 길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70] 변희재는 "조 장관과 여성부가 대한민국 유일의 남성단체 수장의 장례식에 조화나 조사조차 보내지 않은 건 여성부가 말하는 양성평등이 실은 평범한 여성들 내다팔아 자신들의 밥그릇이나 지키려는 것임을 입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 장관은 남성연대 대표의 장례식에 왜 와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수준의 무딘 정치 감각으로는 박근혜 정부에 폐만 끼칠 게 뻔하니 정계은퇴해서 다른 일이나 찾으란 것"이라고 말했다.[71] 변희재는 그의 빈소를 찾은 다른 정치인들을 예로 들어 비난하기도 했다. 변 대표는 "어제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은 방송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일정을 바꿔 빈소를 방문했다. 전현희 전 민주당 대변인은 성 대표와 일면식도 없으면서 언론 보도만 보고 마음이 아프다고 빈소를 방문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제가 왜 여성부와 조 장관에게 분노하는지 알 것"이라며 분노를 표했다.[70]

바로 서울 영등포 남성연대 사무실과 강남 사무실, 여의도 국회의사당로, 마포대교 등에서 노제를 마친 뒤 차량으로 동대구역 근처로 이동하였으며 바로 대전 엑스포다리, 대구 수성교 등에 빈소가 마련되었다. 장지는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 산 341 경산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 2013년 9월 12일에는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달마사에서 부인 박은경 및 남성연대 직원들을 중심으로 49재를 거행하였다.

약력[편집]

활동[편집]

그는 남성은 무조건 강자다, 남자는 무조건 강해야 된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남자들을 괴롭히고, 억압하는 족쇄로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남자들도 눈물흘리고 싶을 때가 있다고 주장했다.

성재기는 "여성은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라거나 "성소수자 역시 이해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과 함께 "우리가 말하고 하는 것은 여성혐오가 아니라 남자의 목소리"라고 역설하였다.[72] 또 그는 게이나 무직자, 싱글대디 등에게 일자리와 숙식을 제공하였다.[15] 성재기는 게이, 트랜스젠더, 무직자, 실직자, 노숙자도 모두 존중받아 마땅한 인간이라며, 취향 때문에 차별받는 것은 부당하며 일시적으로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 멸시하는 것 역시 잘못이라 지적했다.

성재기는 늘 강조하기를, 남자들이 결혼, 연애, 가정, 가족, 섹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자들이 결혼에 목매고, 섹스에 집착하고, 연애에 집착하고, 가족에 집착하고, 가정에 집착한다면 남자는 영원히 여자들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굳이 결혼 안해도 되고 연애 안해도 된다, 섹스보다 보다 더 높고 숭고한 이상, 의미있는 일을 찾아 자기개발을 하라고 지적했다. 결혼이니 연애니 섹스니 이런 것에 연연하는 순간 여러분은 여자들의 노예, 종이 된다. 이제는 남자들도 가정, 가족의 울타리에서 뛰쳐나오고, 결혼과 연애, 섹스를 거부하자고 지적했다. 그는 정 성관계를 하고 싶으면 음란물이나 야동, 포르노 보고 자위행위를 해도 충분히 해소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굳이 한국 여자와 결혼하지 않더라도 국제결혼, 외국 여자들과 연애, 결혼하는 방법도 있다며 더이상 한국 여성에게 집착하거나 목을 멜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부 여성운동가들이 과거 전근대 이전 여성들이 차별받아온 것을 마치 자신이 차별받은 것처럼 착각하고, 남녀평등이라는 명분을 달고 남성을 차별, 학대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한다고 지적하였다.

남성인권 운동[편집]

2011년부터는 군가산점 부활 운동을 추진하였다. 그해 6월에는 TV 채널 리얼 TV에 김상겸 동국대 교수,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이명재 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연구팀장 등과 출연하여 군가산점 찬성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23] 성재기는 약자, 소수자, 서민, 노동자 등을 팔아먹는 자들이 침해당하는 남성 인권과 북한 주민들 인권은 애써 외면한다며 북한 동포들 인권과, 한국 남성들 인권을 외면하는 자들이 서민, 약자, 소수자를 입에 담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기만의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자들의 주장은 들어줄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또 성재기는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약자가 아닌 사람들을 함부로 차별하는것이 정당한게 아니라고 항변하였다.

2000년 초부터 그는 인터넷을 통해 여성부 폐지 운동을 주장하는 글을 올려 오고, 강연회와 캠페인 등을 벌였다. 군 가산점 폐지 이후로 사실상 병역으로 학업과 취직에 장애를 받는 남성들이 상대적인 약자라는 견해를 펼치기 시작했다. 양성 평등 정책이 시행되고, 여성 공직자와 각종 사무직과 관리자 직에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는데 여성의무할당제를 강제로 시행하는 것과 여성이 약자라는 견해가 여전한 것과 여성이 약자라는 전통적인 성 가치관이 계속 유지되는 것에 대해 반발, 2000년대 이후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음을 호소하였다.

2012년 11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는 "성폭력 피해자중심주의가 기계적·왜곡되어 적용되면서 사실상 남성들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성폭력 피해자 중심주의에 합리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73] 그는 한국 사회가 남성에 대한 폭력 행사는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며 남자들도 당당하게 자기 몫, 자기 권리를 한국 사회에 요구해야 함을 주장했다. 그 한가지 예로 모성애만을 강조하는 사회, 방송을 비판하며 아버지 역시 어머니 못지않게 자식을 사랑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낙태 여성과 자녀를 버리고 가출하는 여성, 해외 고아 수출 등의 사례를 들며 이런 사회에서 모성애를 강조하는 것은 사기가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는 남자들도 약자의 처지에 몰릴 수 있음을 강조했다. 또 그는 2011년 3월 1일 서울특별시청 광장 앞,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남성들이 군복무를 통해 사회에 헌신한다는 점, 남성이 지난 수세기 동안 책임감을 갖고 가족을 부양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제는 남자들도 당당히 남자의 목소리를 내야 된다고 역설하였다.

남성차별 반대 운동[편집]

그는 성 역할을 설정하고 남자는 이래야 된다, 여자는 이래야 된다 하고 강요하는 것부터가 성 차별이라 주장하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범죄가 아니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함부로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며 성 역할, 남자는 이래야 된다, 여자는 이래야 된다는 편견을 버릴 것을 촉구하였다. 2011년 5월 8일에는 각종 방송에서 어머니의 고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강조하면서 이때까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 아버지의 희생, 아버지의 노고, 아버지의 헌신은 알아주지 않는다며 사회가 남성을 차별하고 있다고 항의하였다.

2012년 10월 그는 여성의 생리휴가가 남성차별을 조장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여성의 생리휴가를 여자들에게만 부여되는 특혜라고 비판했다. 그는 "행하는 의무와 책임에 비례해 권리와 혜택이 배분되는 사회가 가장 합리적인 이성국가인데, (생리휴가는) 성별로 권리를 정해 다른 성을 영원히 배제하고 봉건사회의 신분제로 하자는 것[74]"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여성에 대한 여성성은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지만, 남성남성성은 함부로 여겨지고 비하되는 것[7] 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남자도 힘들고 서럽고 눈물날 때가 있다며, 남자들도 상처를 받는 한 사람의 인간이라 주장하였다.

2012년 7월 제천여성도서관남성 차별이라 항의하며 "납세자인 남성의 권리를 횡령하고, 대한민국 헌법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2]"라며 여성전용 시설이 남성 차별임을 지적하였다. 7월 7일7월 28일의 두 차례에 걸쳐 제천시 제천여성도서관 입구에서 퍼포먼스를 추진한 뒤, 제천여성도서관 진입을 시도하였다. 그는 남성들에게만 책임감과 의무를 강요하는 것을 전면 비판하였다. 2011년 마초주의라는 비판과 달리 그는 남성들이 여성을 책임질 이유는 없다, 남성이 여성을 보호할 이유도 없다며 남성 해방론을 제창하였다. 양성 평등의 사회에 남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격체인 여성을 보호하거나 지켜줘야 될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식인들의 허위의식과 남성들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거의 남아 선호 사상의 영향보다는 지식인들의 허위의식과 남성들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남성의 가치, 권리의 하락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병든 인격체를 가진 자들이 명문 대학 나오고, 스펙을 쌓았다고 해도 그것은 허명이며 기본 바탕이 병들었기 때문에 소용 없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또, 그는 쓸데없이 여성에 대한 과도한 특혜, 재벌가와 상류층, 고위층들의 딸, 며느리를 통한 신분세습, 재산세습, 신분 고착화를 자칭 진보, 계급을 따지는 자들이 옹호하려 든다면서 진보를 사칭하는 관심병환자, 이념에 대한 확신 없이 애정결핍증으로 반사회성만 띄게 된 정신질환자들이라 비판했다.

여성부 폐지 운동[편집]

2007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는 이명박 후보자와 이회창 후보자를 찾아가 여성부 존재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여성부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2007년 11월12월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한나라당사 앞에서 여성부 폐지 촉구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07년 1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찾아가 피켓을 들고 여성부 폐지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도 성재기는 여성부 폐지 운동을 벌였다. 그는 박근혜 후보 측에 여성부 폐지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국제결혼 중개 활동[편집]

그는 초창기에는 다문화 반대 카페에도 가입, 활동하였지만 나중에는 국제 결혼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그는 '어차피 지금 한국의, 한국여성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다[4]'고 보고, 국제결혼 사업을 착수하였다. 2010년부터 그는 강기갑의 농촌총각 중매사업에서 힌트를 얻어, 남성연대의 수익사업 겸 결혼 못하는 남성들의 결혼을 목적으로 국제결혼 중매 사업을 주선하였다. 그러나 국제결혼 사업은 국제결혼 업체들과의 오랜 갈등 끝에 2013년 중단하고 만다. 그 밖에 성재기는 농촌 총각, 장애인 남성들의 중매결혼 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농촌 총각 중매와 장애인 남성들의 중매를 같이하며, 결혼, 연애에서 배제되다시피 했다며 농촌 총각, 장애인 남성들의 중매 알선, 홍보에 나섰다. 그러나 호응하는 여성이 적어 장애인 남성 결혼사업, 농촌 총각 결혼사업 역시 실패하였다.

소외된 남성 보호 운동[편집]

그는 평소, 모든 활동에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돈에 매달리는 것은 잘못이지만 돈의 위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남성들의 권익은 한국 사회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다고 주장했다. 남성연대에 형편 어려운 이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그는 무직 남성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하려고 노력했고 ‘싱글 대디’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기도 했다.[8] 게이나 무직자, 싱글대디 등에게 일자리와 밥을 제공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였다.[15]

성재기는 2011년 1월 26일 부인에게 매맞고 온몸에 멍이 든 40대 중반의 남자가 찾아온 것을 계기로 바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쉼터를 개설, 가출 남성, 노숙자, 가정폭력 피해 남성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게이트랜스젠더들도 수용하였다. 성재기는 이들에게 무료로 식사와 일시적 혹은 장기적인 거처를 제공함과 동시에 직업 소개 및 직업훈련, 고용수당 받는 일을 알선, 주선하였다. 그러나 2013년 4월 수용인원이 늘어나게 되자 그는 자신의 영등포구 오피스텔 및 영등포의 남성연대 숙소마저 개방하였다. 그는 남자도 언제든 약자의 처지에 몰릴수 있는데도 남자가 그러면 그것을 개인의 문제, 그 사람의 문제로 치부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자도 사람이고, 남자도 아픔과 고통을 느낀다, 남자도 약자의 처지에 놓일 수 있는데도 그런 점은 철저히 외면하며, 그 남자 개인의 문제로만 몰고가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게이, 트랜스젠더 역시 소외당한 남성 혹은 사회적 약자로 보고 이들을 동정하였다. 그가 남성운동을 하기 전 대구의 양대 나이트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유흥업소를 하기도 했다.[8] 거기 게이들이 자주 찾아왔는데 동정심을 느꼈다고 한다.[8] 그의 곁에 있던 한 회원에 의하면 그는 "남성 우월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회원을 혼내기도 했다.[8]"고 한다. 성재기는 또 게이라는 이유로,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집에서 쫓겨나는 우리의 아들, 형제들이 과연 사회적 약자가 아닌가 라고 반문하였다. 눈에 띄지 않는 여자 동성애자와는 달리 남자 동성애자들은 쉽게 눈에 띄는데다가 동성애를 하면 무조건 성병이 옮는다는 이상한 편견까지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른 이들 혹은 남성연대의 회원들 중 게이, 트랜스젠더에게 혐오감을 드러내는 이가 있으면, 게이,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게이, 트랜스젠더들도 한국 사회의 부당한 폭력의 희생자들이라면서 나무라기도 했다.

또한 그는 장애인 남성들을 찾아다니며 장애인 남성들에 대한 부당한 편견, 모욕 등을 당연히 여기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남자에게만 가혹하다, 한국은 남자에게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여성과 노인, 어린이, 애완동물 다음이 남자라면서, 남자들에게만 모든 책임과 의무만을 부과하고 남자들의 고혈만 짜서 유지하는 대한민국민주주의 사회가 맞는지 의심스럽다며 의문을 한탄하였다.

성매매 정당화론[편집]

그는 성매매는 일종의 직업이고 정당한 노동 행위이다, 성매매는 정당하게 돈을 받고 성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직업이라며, 성매매를 천한 것으로 보는 것이야 말로 유교적인 직업의 귀천 사상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또 부모에게 빌붙어서 기생해서 용돈을 뜯어가는 젊은이들은 비난하지 않으면서, 정당하게 자기 몸으로 노동해서 돈 버는 성매매 여성들을 무슨 권리로 비난하느냐고 하였다.

2012년 9월 16일부터 9월 26일에는 전국한터연합, 한터여종사자회, 성노동자 단체 등을 만나 성매매 금지법위헌적인 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성재기와 한터연합 등은 성매매 금지법이 성매매 여성들을 모독한다고 지적했다.

성재기는 성매매 여성도 당당하게 성을 판매하고 대가를 받는 서비스업 노동자라 주장했다. 한터여종사자 김인숙 대표는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이자 주권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라 소개한 뒤 “50%이상의 많은 국민들이 집창촌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성매매 합법화를 말하는데도 왜 정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75] 성재기는 김인숙 대표의 주장은 타당한 발언이라며 성매매는 일종의 서비스 판매업이고, 역시 숭고한 노동행위의 하나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집창촌을 대표하는 미아리, 청량리, 영등포, 천호동, 평택, 포항 등의 한터 대표자들도 자리를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75] 성재기는 늘 성매매도 노동이고 직업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매매는 정당한 성 노동이며, 정당하게 성을 판매하고 대가로 화대를 받는 일종의 노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뚤어진 자기만의 정치적 올바름, 도덕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지식인들이 직업의 귀천을 다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비군 현역복무부대 배정 취소 운동[편집]

예비군 현역 복무 지정제도가 발표됐을 때 청와대국방부에 탄원을 넣어 하루만에 철회시켰다.[7] 그 날 그는 국회에도 건의하여 "현역 복무 부대 배정"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2010년2011년예비군의 현역 당시 복무부대 지정 제도가 국회에 통과되었다. 성재기는 국회국방부, 정부 등을 상대로 먼 거리에 있는 병사들이 예비군 훈련 받으러 원 복무부대까지 방문해야 하는 애로사항과 시간, 거리 문제 등을 계속 지적하여 이를 철회시켰다.

그는 '예비군 현역 복무 지정제도가 발표됐을 때 청와대국방부에 탄원을 넣어 하루만에 철회시킨 점도 기억에 남는 일[7]'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현역 복무 당시의 부대로 배정되는 것은 취지가 좋지만, 훈련소신교대대 수료 후 자신의 출신지나 같은 시도 지역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먼 곳으로 보내는 케이스가 많다며 현역 복무부대 배정 반대를 국회의원들 대상으로 설득하고 동시에 정부, 국방부, 국회에 동시 건의하여 폐지시켰다.

그는 병사들 월급도 하루 2,3천원 꼴로 턱없이 부족하고, 예비군 훈련 여비도 5~8천원 선으로 턱없이 부족한데 거리까지 장거리를 만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며, 정부 당국의 무성의와 무배려, 복지부동을 지적하였다.

남성비하 반대 운동[편집]

너는펫 영화상영 반대 운동[편집]

2011년 11월 영화 '너는 펫'의 '여성 주인, 남성 펫' 설정이 남성비하적이라는 이유로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가 기각된 바 있다.[12] 그는 영화 제작진에게 항의전화를 하는 한편 남성은 가 아니라며 항의하였다.[76]

포털의 남성 비하표현 정정[편집]

2011년 12월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공익서비스로 기부 커뮤니티인 '해피빈'을 운영하면서 '해피빈 그녀, 해피빈 그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이 역시 남성비하적이므로 '해피빈 그녀'를 '해피빈 그년'으로 변경하라고 요구해, 결국 네이버 측이 '해피빈 그놈'이라는 제목의 게시판을 아예 삭제하게 했다.[12] 그는 포털 사이트와 언론에서 생각없이 쓰는 남성 비하가 바로 한국 사회의 남성 비하, 남성 희화화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고, 당장 수정하고 다시는 그런 말 쓰지 말라고 촉구하였다.

언론 인터뷰에서 성 대표는 "소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네이버가 주도하는 '해피빈'과 관련해 여성들에게는 '그녀'라는 표현을 사용한 반면 남성에게는 '그놈'이라는 표현을 쓴 점도 지적했다"며 "남성 사이에서도 '그놈'이라는 말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너무 일상화 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7]

그는 여성에 대한 비하, 여성의 성 상품화는 문제삼으면서도 남성에 대한 비하는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그는 근육남이니 마초남, 짐승남 등 남자를 성 상품화하려는 것 역시 반대하며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굿보이 음원가처분 신청[편집]

2012년 5월 23일에는 가수 백지영의 곡 '굿보이'에서 남자를 개로 묘사했다며 서울지방법원에 음원유통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였다. 이 노래는 ‘짖어댄다’ ‘주인을 문다’ 등의 가사로 연인 관계의 남성을 비하했으며 뮤직비디오에서는 남성을 말 잘 듣는 개로 설정했다. 그는 5월 23일 남성연대 대표 자격으로 서울지법에 소장을 제출했다.[77]

2012년 6월 5일 성재기는 스포츠한국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남자를 로 매도한 것은 남성 비하라며 문제점을 제기했다. 성재기 상임대표는 이날 스포츠한국과 전화통화에서 “남성연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남성을 개에 비유한 표현을 명시하고 어떠한 맥락에서 불쾌함을 느끼는지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할 것이다”고 말했다.[78] 백지영 측 관계자는 “전혀 남성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만든 노래가 아니다. 위트 있는 가사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77]

앤디 가학 방송 비판[편집]

2013년 6월 2일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는 JTBC <신화방송>에서 진행된 '앤디 납치 사건'에 대해 맹비난을 하였다.[79] 그는 자신의 트위터와 블로그, 그리고 6월 2일6월 3일 서울특별시청 광장 앞에서 JTBC 방송을 비판하는 집회를 주최했다. 그는 6월 2일 방송된 '신화방송'에서 '무한걸스' 멤버인 송은이, 김숙, 신봉선, 김신영, 백보람 등이 출연해 신화의 15년 우정을 시험하기 위한 의도로 신화 멤버 앤디를 인질로 납치하는 모습이 그려졌다.[79] 그는 이를 두고 남성에 대한 성희롱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성재기는 이 방송에 대해 앤디는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갔지만 이것은 남자에 대한 성희롱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남자도 사람이라며, 남자들도 원치 않는 성적 행동에 불쾌감,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고 항변했다.[79]

남성 비하 광고 항의[편집]

2011년 11월 '불스원샷' TV광고의 남성 비하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80] 성재기는 3월 12일 불스원 측에 이를 남성 비하라며 항의하였다.

2013년 5월 2일부터는 아모레퍼시픽 미쟝센의 광고 문구 중 '어린 수컷들이여 스타일 반전의 기회에 동참하라'는 구절에 문제가 있음을 꾸준히 지적, 남성연대 대표 명의로 광고문구 삭제 혹은 수정을 요청, 아모레퍼시픽 미쟝센에서는 5월 16일 문제가 된 '어린 수컷들'을 '어린 형제들'로 개정하였다.

2010년 한 음료회사가 '날은 더운데 남친은 차도 없네'라는 광고 카피에 항의, 결국 광고를 철회시켰다.[13]

노총각, 독신남 차별에 저항[편집]

결혼 못한 남자, 연애 못하는 남자를 루저로 낙인찍는 것 역시 부당한 편견이자 차별대우라며 결혼하지 않은 남자, 연애하지 않는 남자들에 대한 편견을 거둘 것을 촉구하였다.

30대 이상의 노처녀, 싱글 여성들은 깨인 여자로 취급하지만 독신남, 노총각들은 이상한 사람, 못난 사람 취급하고 이상한 편견을 갖고 쳐다본다며 독신남과 노총각들에 대한 편견과 부당한 시선을 버릴 것을 촉구했다. 각종 퍼포먼스와 인터넷 칼럼, 기고문, 트위터 등을 통해 독신남과 노총각이 이상하게 보인다면 안 보면 그만이 아니냐며 그는 한국사회의 노총각, 독신남에 대한 부당한 편견을 항의하였다. 그는 노총각이 되는 것, 독신남성이 되는 것이 범죄는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노총각, 독신 남성에 대한 이상한 편견을 버릴 것을 호소하였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론[편집]

그는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도 우리가 인정해줘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조장은 안되지만 저는 충분히 성적소수자들은 약자잖아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권리를 배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81]' 라는 것이다. 성재기는 성 소수자들도 한 사람의 인간이자 국민이며,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성 대표는 <딴지일보> 기자가 "동성애게이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질문에 "성적 소수자들은 약자잖아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권리를 배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82] 그는 성적 소수자라고 해서 차별하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감싸야 된다고 주장했다.

기타 활동[편집]

2013년 1월에는 정부 주도로 관공서에서 여성기업제품 구매의무화 하는 정책을 철회할 것을 요청하였다. 2013년 2월 10일부터 대림미술관 화장실문 부착광고를 시정 요청하여 2월 20일 성사시켰다.

2012년 11월부터는 올림픽 수영장 평일 오전 여성전용 운영은 남성 차별이라며 시정을 요구하였다. 11월 19일 올림픽 수영장측에 전화하였으나 거절당하자 11월 20일 정식 공문을 발송하였다.

업무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남성연대에서는 현재 올림픽 수영장 에서 평일 오전 ‘여성 전용’으로 운영하는 원인에 대한 회신과 함께 남성 또한 이용할 수 있도록 수영장 운영 방침을 수정하여 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의 한국체육산업개발㈜ 에서 운영하는 올림픽 수영장을 어째서 평일 오전에 남성이 이용할 수 없는지, 남성이 이용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요청 드리며, 남성 또한 평일 오전에 본인이 원하는 경우 사용할 수 있도록 수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1월 19일 오전 10시 경 유선으로 요청 드린 바 있으나 공문발송을 요청하시어 본 공문을 발송하여 드리니, 한국체육산업㈜ 에서는 본 건 검토하신 후 회신 부탁 드립니다. 신속한 협조를 당부 드립니다.
-이상-
남성연대 상임대표
성 재 기

11월 20일 한국체육산업개발㈜에서 '평일 오전을 ‘여성 전용’으로 운영하는 이유가 평일 오전 이용객의 대부분이 ‘주부’이기 때문이며, 남성의 경우 대부분 직장 및 사회활동으로 해당 시간의 이용률이 현저하게 낮기 때문이며, 인근지역의 수영장 들 또한 운영상의 이유, 즉 영리의 극대화를 위하여 평일 오전을 ‘여성 전용’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답변에 대하여 납득하기 어렵다'며 2차 시정 건의문을 보냈다. 한편 그는 2012년 9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남성 회원들의 출입 제한은 성차별이므로 시정조치시킬 것을 진정하였다. 그러나 11월 7일11월 21일 인권위 심사에서 기각되었다.

2012년 12월부터는 서강대학교 여성전용 휴게실 운영관련 남성전용 휴게실도 신설할 것을 촉구하였다.

논란[편집]

여성 혐오 딱지에 대한 반론[편집]

그는 자신이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트위터에 거듭 밝혀왔다. 그러나 그는 여성혐오론자로 몰렸다. 그러나 자신을 여성혐오가 아니냐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 일부 여성의 이기심을 비판하는 것이 어떻게 여성 혐오냐고 거듭 항변하였다.

생리휴가 특권 논란[편집]

그는 한국 여성들에게만 지급되는 생리휴가가 지나친 특혜라고 여러번 지적했다. 2012년 11월 13일에 그는 공개 석상에서 생리휴가, 월경권이 여성에게 부여된 특혜라고 비판하였다. 성재기는 "페미(니스트)들이 월경권(생리휴가)을 달라는 것은 한국여자가 보슬아치라는 사실을 확정등기하는 것"이라며 "행하는 의무책임에 비례해 권리와 혜택이 배분되는 사회가 가장 합리적인 이성국가인데, (생리휴가는)성별로 권리를 정해 다른 성을 영원히 배제하고 봉건 사회신분제로 하자는 것"이라고 성토하였다.[1] 그는 여성들은 병역의 의무를 사실상 수행하지 않고 남성들의 희생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면서 그것이 고마운 줄 모른다며 이보다 더한 후안무치, 적반하장이 어디있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병역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생리휴가를 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무책임과 이기심의 발상이라고 공박했다.

그는 월경권이나 생리휴가가 여성에게만 부여된 특혜이자 남자들에 대한 역차별임을 지적했다.[1] 성재기 대표 발언에 대해 누리꾼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주로 일베를 중심으로 한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성재기님이 속 시원하게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줬다" "김치녀 된장녀들은 욕하겠지만 성재기 말이 옳다" "성재기가 바로 영웅" 등의 반응이 보이기도 했다.[1] 그는 과거 생리에 대한 보호론 주장은 모성 보호의 취지로 시작된 것이라며, 이미 결혼하지 않는 싱글 여성들이 젊은여성 열 명 중 3~4명인데 대체 보호해야 할 모성은 있느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나도 남자지만 성재기 말이 이해가 안 된다" "여자한테 왜 저렇게 억하심정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남자인데 성재기같은 대표 둔 적 없음" "오늘 소개팅 있는데 남성연대 소속이면 어쩌지?" "유럽의 백인 우월단체 보는듯" 등 부정적 반응도 있었다.[1] 성재기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나도 당신들의 의견까지 대변할 마음은 없다며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부터가 반(反) 민주적인 발상이라고 맞받아쳤다.

유급 알바생 고용 논란[편집]

10여 명의 자원봉사자로 현장 활동, 홍보, 문건 작업 등에 문제가 있다고 본 그는 2013년 3월부터 공지, 유급 직원을 고용하였다. 그러나 유급 직원이자 일베저장소 회원이었던 최모는 그해 5월 자신이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일베저장소에 올리기도 했다. 이 내용에는 "남성연대에서 털리고 나온 애들이 뭉쳐서 남성 인권운동 단체를 만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83]

2013년 5월 월급 체불을 이유로 남성연대의 노트북을 무단으로 들고 나간 최모는 일베저장소 짤방게시판에 그가 여론 조작을 사주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83]

한강 투신 논란[편집]

성재기는 2013년 7월 25일 트위터를 통해 남성연대 부채해결을 위해 1억 원 지원을 호소하며 한강 투신을 예고했다. 다음 날 26일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성재기는 남성연대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며, 한강 투신과 1억 원 지원 호소는 1억 원어치의 관심을 가져달라는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또한 트위터를 통해 한강 투신에 대해 말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후회하고 있으나 이미 공언한 내용이기에 실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후,[84] 마포대교에서 한강으로 투신했다. 26일 오후 3시 19분경 성재기의 투신 신고를 받은 영등포소방서는 구조대원 30여 명과 구급차 등 차량 7대, 특수구조단 소속 헬기 1대를 동원해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찾지 못했고, 8시 54분 경 수색 작업이 중단되었다. 3시 30분경에는 성재기 트위터에 현장에 있던 남성연대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과 투신 사진이 올라왔다. 한편 현장에서 함께 있던 남성연대 한승오 사무처장을 포함한 직원 3명과 KBS 촬영기자 1명이 투신 현장을 촬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살 방조 논란이 일고 있다. 그 후 7월 29일시신마포대교에서 1.4 km 가량 떨어진 서강대교 남단 밤섬 인근에서 발견되었다.[85] 성재기는 투신 전 살아남겠다는 말을 남성연대 회원들에게 남겼으며 안전한 방법을 조사하기도 하였다. 경찰은 성재기가 자살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자살방조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였다.[86]

그가 투신을 계획하자 강태호 등 일부 지인들은 그의 투신을 만류하였다. 7월 29일 강태호가 공개한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강태호가 성재기에게 "대표님. 위험한 결정 안하실거라 믿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렇게 하셨겠나 하는 생각뿐입니다. 성재기 파이팅!"이라고 말하자 성재기 대표가 "미친 짓을 벌였더니 분명한 피아 구분이 되는군요. 고맙습니다. 꼭 살아남겠습니다"라고 답했다.[87]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이 문자 메시지 캡처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며 "강태호가 공개한 문자에서 보듯이, 성재기 대표의 주위 사람들 대부분 문자로, 전화로 직접 방문으로 다들 말렸습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87]

한편 성 대표의 죽음으로 표면화 된 남녀 갈등을 진정한 평등을 고민하는 기회가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88]

방송사의 사고 방조 논란[편집]

2013년 7월 26일 성재기가 마포대교 남단 140m 지점에서 뛰어내릴 때 KBS 방송국 기자가 취재하고 있었다. 이 기자들이 취재하면서 투신을 만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타나기도 했다.[89]

당시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퍼진 성 대표의 투신 당시 사진엔 마포대교 난간 밖에 매달린 성 대표와 이를 카메라로 찍고 이는 남성연대 회원 2명, KBS 카메라 기자가 나와있다.[90]

KBS 측은 '취재진은 취재보다도 인명구조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경찰과 수난구조대에 1차 구조신고를 했고, 뛰어내린 직후 수난구조대에 2차 구조신고를 했다'며 '정황상 구조에 나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밝혔다.[89]

자살설 루머[편집]

2013년 퍼포먼스와 실종, 죽음을 놓고 일각에서는 자살설을 주장했고, 다른 일각에서는 자살은 아니라는 설이 나타났었다. 한때 그는 자살할 것처럼 알려졌다. 그러나 2013년 7월 25일 성재기는 자신은 자살하는 것이 아니며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지인들에게 알렸고, 같은 내용의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91] 그는 남성연대의 열악한 재정 사정과 한국 남성 인권의 현주소를 고발하기 위해 투신하는 것이라며 '자살 소동'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27] 7월 26일 오후 3시 15분쯤 마포대교에서 실제로 뛰어내렸다.[27]

그의 지인이었던 강태호 English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고사임을 밝혔다. 그는 "극단적인 퍼포먼스가 사고로 이어진 어이없는 익사입니다. 지금 인터넷에선 억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자살할 이유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는 분입니다. 너무 안타깝고 불쌍합니다"라고 전하고 자신이 투신 직전 성재기와 나눈 카톡을 공개하며 투신을 말렸던 과정을 전하기도 했다.[92]

성재기 시신이 발견되자 진중권변희재의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동양대학교 교수 진중권은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을 언급했고, 이에 미디어 워치 대표 변희재는 "성재기씨 부인과 아이도 있는데 그 입 다물라"고 비난하기도 했다.[92] 한편 남성연대와 기타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수정은 "논리적인 방법에 의한 불만 말고 성재기씨가 한 행동은 개인 행동이라고 봐야 하는거 아닌가.[88]" 라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지원 논란[편집]

2013년 투신 직전 그는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그는 정부에 문의해봤지만 일반 시민단체와는 달리 여성단체들처럼 여성가족부의 관할이라 했고, 그는 여성가족부의 지원은 거부하였다. 그는 성 대표는 "남성연대는 정부지원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기업 후원도 없다. 늘 궁핍해 돈과 싸워야했다.[93]"며 자금난을 호소하기도 했다.

회원 활동을 한 적이 있다고 밝힌 김모씨는 "대부분의 단체 운영비는 성 대표의 사비로 지출됐다"며 "하루에 겨우 1~2끼 컵라면을 먹었고 밥과 햄, 김치가 있으면 진수성찬이었다"고 말했다.[94] 그는 쪼들린 상황 내에서도 성폭행, 성매매 무고 피해자들과 허위 누명을 쓰고 이혼 소송을 당한 피해자들의 변호 비용을 댔다. 그는 성폭행 무고 피해자, 여성의 잘못인데 역이혼 소송을 당한 남성 등의 소송 비용 지원과 변호사 선임 등을 모두 자비로 지원하였다.

2013년 7월 당시 회원인 장모(25)씨는 "사이트로 활동하는 이들은 1000명 정도로 알고 있지만, 정기적인 후원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운영비가 모자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94] 그는 2008년 1월부터 정부에 시민단체 등록을 추진, 2011년 시민단체로 등록되었지만 여성가족부의 관할, 지원을 받으라는 권고를 받자 지원을 포기하였다.

전직 항공사직원 발언 논란[편집]

2013년 7월 31일에는 인터넷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인 트위터에 한 여성이 성재기의 죽음은 관심병자의 죽음이라며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을 무지한 인간들로 모는 트위터를 올렸다. 그는 성재기의 죽음은 관심병자의 죽음이고, 추모할 가치도 없는 개죽음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그 여성은 또 성재기를 추모하는 사람들을 정신병자, 무지몽매한 인간이라고 비꼬는 트윗을 날렸다. 해당 트위터는 곧 계정 폭파하였지만, 이 트위터가 아시아나 항공사 제복을 입은 사진을 올린 것이 일부 네티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아시아나항공사는 자체 조사 후 8월 1일 퇴사한 전직 직원임을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여성 승무원 출신 A씨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트위터에 “성재기의 죽음에는 참 뭐라 할까, 관심병자의 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며 “죽은 이에게는 명복을 빌어줘야겠지만 앞뒤 분간 못하는 무지한 인간들이 미화할까봐 걱정 된다”고 적었다.[95] 파문이 확산되자 아시아나 항공 측은 이날 공식 트위터를 통해 “담당 부서와 확인 결과 글쓴이는 현재 당사에 재직 직원이 아닌 2010년부터 1년간 근무 후 현재는 퇴사한 직원으로 확인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A씨) 프로필 사진은 당사 근무시절 촬영했던 사진으로 해당 글로 인해 아시아나항공 및 임직원들에 대한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95]

인터넷 방송사와 송사 사건[편집]

인터넷 방송인 <마로니에방송>은 명예훼손 혐의로 성 대표를 고소했다.[96] 성 대표가 국회에서 “야동을 보는 것 갖고 일반 남성까지 모두 잠재적 성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은 문제”라고 발언한 내용을 마로니에방송이 내보내고 이를 한 누리꾼이 인터넷에 올린 데 대해, 성 대표가 트위터에서 마로니에방송을 “쩨쩨한 녀석들”이라고 비난한 게 원인이 됐다.[96] 영등포경찰서2013년 6월 24일 성 대표를 조사했고, 투신 당일인 26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96]

가족 관계[편집]

성재기는 방송 토론에서 자신에게 딸이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딸은 초등학생이었므로 실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그의 숙부 중 1명은 대구에서 경찰관을 지냈다 한다.

기타[편집]

사후 9월 7일 그의 부인은 "남성연대 성재기, 그 아름다운 남자를 오래도록 기억해 주기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 2013년 9월 7일 오후 남성연대 홈페이지에는 '성재기 대표님 사모님의 글'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97] 그의 부인은 "비록 안타까운 사고로 이 자리는 떠났지만 나라의 미래를 사랑했던 제 남편을 기억해 달라"며 "지금 그 분은 제 옆에 없지만 바람처럼 늘 제 곁에, 가슴 안에 살아 계실 것"이라고 전했다.[97] 이어 "돈보다 사랑이 먼저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사람"이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은 여자는 어머니와 너밖에 없다며 목숨보다 저를 아껴주던 사람이다"고 말했다. 또 "무엇보다 감사드리는 것은 그 더운 여름에도 전국 각지에서 제 남편을 기려 주시고 빈소를 찾아 주셨던 한 분 한 분의 마음이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97]

그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열정,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존경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토스카니니를 가리켜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특히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레너드 번스타인의 혼을 불어넣는 뭔가를 볼 때마다 뭉클하다며 특히 토스카니니의 변함없는 열정을 보면 위대하다 못해 숭고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는 유교 사상을 버리지 않는 한 이런 인물들이 나올 수 없으리라고 전망했다. 성재기는 평소 유교사상을 가리켜 역겨운 압제, 숨막히게 만드는 혐오스러운 사상이라고 지적했다.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작가로는 이문열, 이윤기의 작품을 좋아하였다. 이윤기그리스 신화 번역본을 늘 구해서 읽었고, 2008년에는 이문열의 팬클럽 조직에 참여하고 이문열 팬클럽 사색의 대표를 맡아보기도 했다.

참고 항목[편집]

주석[편집]

  1. 성재기 "월경권 주장 한국여자 X슬아치"…누리꾼 갑론을박 SBS 2012.11.13
  2. 투신 남성연대 대표 실종
  3. '한강 투신' 성재기 대표 마포대교 인근서 시신으로 발견 스포츠서울
  4. [전문공개] 남성연대 성재기를 만나다
  5. “남성-가장 위한 정책은 없는데 가족部라뇨” 동아일보 2012.01.09
  6. 故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빈소, 유가족 없이 '차분' 한국경제 2013.07.30
  7. 그는 왜 여성부 폐지에 '목숨'을 걸었나? 머니투데이 2012.01.04
  8. 그는 제2의 ‘미시마 유키오’가 되고자 했나 한겨레신문 2013.08.02
  9. 성재기, 강용석 NLL 발언에 "욕 좀 하겠다" 뉴스1 2013.07.05
  10. 여성 할당제
  11. 남성연대 사무실은 2011년 1월 4일 영등포구 여의도동 45-13 코오롱포레스텔 1306호로 옮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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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남자들이 외친다… 세상은 왜, 여성 편만 드는가 조선일보 2012.10.31
  14. 문재인 됐으면, 영화 '광해' 만든 CJ 좋았겠네!
  15.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gomgom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16. '조성민 친권 반대 카페' 카네이션 달기 운동 스포츠한국 2008/11/30
  17. 손숙·허수경 "조성민 친권 절대 반대" 노컷뉴스 2008.11.11
  18. “아나운서 되려면 다 줘야…” 여성 비하 강용석 의원 한나라당 제명키로 국민일보 2010.07.20
  19. “대통령이 너만 보더라”…강용석 의원 성희롱 발언 파문 서울신문 2010.07.20
  20. 성재기, '썰전' 강용석에 "옹호한 걸 후회한다, XXX아"…왜? 조선일보 2013.07.05
  21. 강용석에 'XX놈아' 욕설 트윗… 성재기는 누구? 한국경제 2013.07.05
  22. 리얼TV '시사인터뷰쇼', 군가산점제 논란 연합뉴스 2011.06.09
  23. 리얼TV, ‘군가산점제는 정당한 보상인가’편 방영 경제투데이 2011.06.09
  24. "성매매 안하겠다" 약속만 하면 현금 41만원? 매일경제 2011.11.28
  25. 여성가족부 "남성연대 주장 사실무근 법적대응 검토" 머니투데이 2011.12.29
  26. 그는 왜 여성부 폐지에 '목숨'을 걸었나? 머니투데이 2012.01.04
  27. 성재기 남성권익 증진 운동하다 숨진 열사 푸른한국닷컴 2013.07.27
  28. 성재기, 강용석 ‘NLL 포기 아니다’ 발언에 “응원 후회한다” 맹비난 이투데이 2013.07.05
  29. 남성연대 숙소를 개방합니다.
  30. 남성연대 숙소를 재개방 합니다.
  31. 남성연대 대표 "여자 보호할 이유 있나요?" 아시아경제 2013.03.12
  32. 성매매 안 하겠다고 약속하면 41만원 번다? 스포츠경향 20111.11.29
  33. 남성연대 "성매매 안하면 41만원 준다"...여가부 발끈 아시아경제 2011.11.30
  34. 남성연대, 성매매여성 보호대책 비판 일요시사 2012.01.06
  35. 남성연대 "성매매 안하면 41만원 입금" 알고보니 머니투데이 2011.11.29
  36.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제한적 공창제가 무분별한 성매매 방지에 효과적” 일간전북 2011.11.16
  37. 법원 "여성가족부 '가족' 명칭 문제없다" 한국일보 2012.08.22
  38. "여성가족부에서 '가족' 빼라" 남성연대 신청 기각 법률신문 2013.08.22
  39. [국회보 2012년 10월호]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 반대 - 종신형 등 형량강화가 보다 효과적 국회보 2012.10.09
  40. 한터연합 “시대착오적인 성매매방지법 즉각 폐지하라” 해럴드생생뉴스 2012.09.26
  41. 여성부 디도스 공격 10대 알고 보니 남성연대 前 회원 동아일보 2012.03.19
  42. 제천여성도서관 강제진입 시도 무산 충청투데이 2012.07.27
  43. [휴지통]“남성의 출입을 약간 許하노라” 동아일보 2013.01.09
  44. 한터연합 “시대착오적인 성매매방지법 즉각 폐지하라” 헤럴드경제 2012.09.26
  45. 성재기 "생리휴가, 봉건사회 신분제 같아" 파이낸셜뉴스 2012.10.28
  46. 성재기 "월경권 주장 한국여자 X슬아치"…누리꾼 갑론을박 SBS 2012.11.12
  47. 누구를 위하여 법을 만드나 토요경제 201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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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지금 SNS에서는]SNS로 뜨고 진 성재기 동아일보 2013.08.09
  50. 성재기 "화이트데이에 명품백 받겠다는 X녀들" 독설 머니투데이 2013.03.14
  51. 가모장제(家母長制)로 변화된 한국사회 일요서울 2013.08.05
  52. 대구지하철 ‘여성전용칸’ 설치 시끌 한겨레 2013.01.16
  53. 여성전용 흡연구역?… “남성 역차별 아니냐” 시끌 동아일보 2013.04.04
  54. [미리보는 동아일보] 청계천, 도시의 삶을 바꾼 10년 채널A 2014.04.11
  55. '여성 마라톤대회' 앞둔 성재기 트위터 발언 '눈길' 이데일리 2013.05.25
  56. [기자의 눈/조동주] 男權을 대변한다며 몸던진 비극 동아일보 2013.07.29
  57. 성재기 투신 촬영한 KBS "두 차례나 신고, 자살방조 아냐" 오마이뉴스 201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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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성재기, 투신 사흘 만에 결국 시신으로… 죽음으로 이어진 퍼포먼스 국민일보 2013.07.29
  60.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빈소 여의도성모병원에 차려져 오마이뉴스 201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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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故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오늘 발인…전국분향소 추모발길 중앙일보 2013.08.01
  65. 최민희 민주당 의원 고(故) 성재기 빈소 조문 프레스바이플 2013.07.30
  66. 뿔난 변희재 “새누리당, 故 성재기 빈소 찾지 않고 있어” 국민일보 2013.07.31
  67. [포토] 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마포대교 분향소 현장 애도 물결
  68. 투신 남성연대 대표 분향소 설치 충청매일 2013년 07월 31일자
  69. 美 남성인권단체 "성재기 사망은 비극" 노컷뉴스 2013.08.01
  70. 변희재 "조윤선 여성부 장관, 정계 은퇴해라" 독설 한국일보 2013.08.01
  71. 변희재 "조윤선 장관에게 아주아주 심각한 유감" 조선일보 2013.08.01
  72. 남성연대 "故 성재기 뜻 여성혐오 아냐…무분별한 비하 자제하자" 프레스바이플 2013.08.02
  73. 남친 성폭력 고소로 5년 징역형, 페이스북에는 "거짓말" 프레스바이플 2012.11.19
  74. 성재기 “생리휴가, 봉건사회 신분제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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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남성연대 대표 "남자 주인에 여성 펫, 용납되겠나?"
  77. 남성연대, 백지영 ‘굿보이’ 유통금지 신청 문화일보 2012.05.23
  78. 백지영 ‘굿보이’ 음원유통금지신청, 13일 양측 입장 밝힌다 한국일보 2012.06.05
  79. '무한걸스' 신화방송에서 '앤디 성추행 논란'…성재기 "제작진 대중들 성희롱" 프레스바이플 2013.06.03
  80. "차도 힘이없네"? 남성연대, CF에 "비하" 반발 미디어투데이 201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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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성재기 "여성과 성소수자는 약자 이해하고 배려해야" 프레스바이플 2013.08.02
  83.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jeollldo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84. "[/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90136 성재기, 투신 3시간 전 인터뷰 "관심 가져달라는 것"]", 《오마이뉴스》, 13.07.26 23:57 작성.
  85. 시신 발견 성재기, 투신전 마지막 남긴 문자 "꼭 살아남겠다"
  86. 박초롱,경찰, '성재기 투신' 자살방조죄 적용 안하기로 "자살 의도 없이 일종의 퍼포먼스 준비한 것으로 파악",노컷뉴스
  87. 故성재기 대표, 투신 전 강태호와 주고받은 문자내용 보니… 동아일보 2013.07.29
  88. 성재기 대표 투신 사망…남성 운동의 현 주소? OBSNews 2013.07.31
  89. '성재기 대표 자살방조 논란' KBS, :구조 여유 없었다"
  90. 성재기 투신 목격자, "마침 마포대교 건너다…" 중앙일보 2013.07.26
  91.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donggnes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92. 성재기 빈소, 장지 공지…"성재기 대표 어머니와 시신확인" 스포츠조선 2013.07.30
  93. 성재기 투신…여성부 한해 예산 얼마길래? 머니투데이 2013.07.26
  94.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inkwontss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95. “성재기는 관심병자” 女승무원, 성재기 비하? 아시아나 해명 ‘진땀’ 국민일보 201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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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예고투신 성재기씨 부인 "남편에게 소중한 여자는…" 뉴스1 2013.09.07

참고 자료[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