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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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
출생 1974년 4월 22일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거주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학력 경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미학 학사
직업 기자, 시사평론가
종교 없음 (무신론자)
웹사이트 미디어 워치

변희재(邊熙宰, 1974년 4월 22일 ~ )는 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이자 미디어 비평가이다. 인터넷 언론 빅뉴스의 창간, 발행인이다. 1994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였다. 1999년 대학 재학 중 《대자보》신문의 창간에 참여한 뒤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빅뉴스, 미디어워치 등을 창간하였다. 그 밖에 대자보, 신데렐라, 시대소리, 브레이크뉴스 등에서도 활동하였다.[1]

1999년 《대자보》신문 창간에 참여하여 고정필진으로 활동했고 강준만이 주도하는 정치평론지인 《인물과 사상》에도 참여하여 필진으로 활동하였으며, 2003년 1월에는 서프라이즈의 운영자, 3월부터 5월 19일까지는 서프라이즈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 교육 개혁론을 주장하고 전성은 후보자 추천과 이창동 문화부 장관의 언론개혁책 등을 지지하였다. 2003년부터는 한겨레신문 객원논설과 브레이크뉴스의 기자로도 활동하고, 2004년에는 브레이크뉴스의 기획국장, 기획위원이었다. 2005년부터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등의 객원논설로도 활동하였고, 신데렐라뉴스를 창간하였으며, 기업 활동으로는 실크로드CEO포럼 등에서 활동하였다. 그밖에 방송 토론회에도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변희재는 2004년부터 매체 비평 시장을 진보 매체가 독점하여 매체 비평이 왜곡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우파로 전향, 2009년 3월 15일 매체 비평지 《주간 미디어워치》를 창간하였으며 여기에 이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등이 공동대표로 참가하였다.[2] 2011년 11월 5일 보수인터넷매체 뉴데일리 논설실장을 겸하게 되었다. 언론 활동 외에도 《실크로드 CEO포럼》의 대표, 청년창업가포럼 대표, 포털사이트 피해자 모임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언론 활동[편집]

초기 활동[편집]

서울 출신으로 1994년 2월 경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로 진학하였다. 한때 그는 경문고등학교의 전교조 윤리 교사 허아무개를 비판하는 칼럼을 기고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논객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에서 사회문제에 관한 글을 쓰다가 후에 1999년 대자보라는 인터넷신문의 창간에 참여하게 된다.[3] 대학 재학 중 군 복무를 마쳤으며, 2000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대학 재학 중 PC 통신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다 진보 인터넷 언론대자보, 친노무현 성향의 서프라이즈를 거쳐 우파 성향 빅뉴스등의 인터넷 언론매체 창간에 참여하였다. 1999년부터 2003년 9월까지 인터넷신문 대자보의 창간에 참여하여 필진으로 활동하고, 1999년에는 대자보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또한 안티조선에도 잠시 참여하였다. 이후 조선일보 객원논설위원을 시작으로,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 한겨레신문 객원논설위원으로 수차례 기고를 했었다.

언론 활동 초반[편집]

언론, 논객 활동 초기[편집]

변희재는 1999년 1월 23일 인터넷 언론지 《대자보》 창간 참여, 강준만이 주도하는 정치평론지인 《인물과 사상》 수차례 기고 등 한 때 진보성향 평론가로 활동하였다. 이후 민경진과 함께 인터넷신문 《대자보》의 대표 논객으로 활동하였다.[4] 2000년에는 16개 인기 인터넷 사이트의 대표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해 11월 저서 '아이러브 인터넷'을 출간하였다.[5] 또한 강준만 등과 공저 '쾌락의 독재'를 집필하였다.[6] 2000년대부터는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 노무현을 지지하는 평론가들의 인터넷 모임인 《서프라이즈》 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그는 서프라이즈의 논객이자 친노무현 성향의 인터넷 논객으로 활약하였다. 2002년 10월 14일부터는 공희준 등과 함께 친노무현 성향의 포털사이트 서프라이즈의 고정필진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7]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인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하고, 김민석 의원의 탈당 등 노 후보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10월 17일 변희재, 장신기, 공희준 등 9명의 논객들이 의기투합해 노 후보에 대한 지원사격을 퍼부으며 노 후보 지지자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8] 이후 그는 서프라이즈에서 '취미 정치[4]'라는 코너를 맡기도 했다. 2003년 1월에는 서프라이즈 사이트의 운영을 맡아보기도 했다.[8]

2003년에는 조선일보의 안티 사이트인 안티조선의 필진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9]

논객, 사회 활동[편집]

2003년 서프라이즈의 운영자와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사회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2003년 2월 12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이 주최한 'KBS 신임사장 개혁과제 토론회'에 패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10] 2월 22일에는 오마이뉴스경인방송 공동 주최 국민대통령 시대는 오는가에 패널로 참여하였다.[11] 이후 2003년 KBS 방송국 시청자위원이 되었으며 청년창업가포럼 대표 등을 지내기도 했다.

2003년 3월에는 참여 정부의 교육부총리 인선이 늦어지자 그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전성은 교장 추천 서명운동을 주도했다.[12] 그러나 노무현은 윤덕홍을 낙점한다. 2003년 2월 21일부터 2004년 4월까지는 라디오 21에 참여하였다.[13] 이때 그는 홍석천, 노정렬 등과 함께 진행자의 한 사람으로 출연했다.[14] 3월에는 서프라이즈 대표로 위촉되었다.[15] 2003년 3월에는 신임 문화부 장관인 이창동의 언론 개혁론을 지지하였다.[15] 3월 23일 KBS 100인 토론에서 이창동 장관의 홍보 업무 운영 방안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15] 이때 그는 이창동 장관의 개혁안을 지지하며 다른 패널들과 논쟁하였다. 5월 22일 한겨레 신문에 '지면 특화전략 강화해야'라는 칼럼을 기고한다.[16] 이후 2004년 4월 17일까지 한겨레 신문의 논설위원의 한 사람이자 객원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2003년 5월 15일에는 같은 서프라이즈 논객 출신 장신기와 함께 시대소리뉴스(www.sidaesori.com)의 창간에 참여하였다.[17] 5월 19일에는 서프라이즈 대표직에서 물러났으며 서프라이즈는 서영석을 새 대표로 추대했다.[17] 시대소리 뉴스 창간 배경에 대해 변씨는 “정치개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서프라이즈와 뜻이 같지만, 전문 필자의 확보와 독자 참여의 강화 등을 통해 차별화를 꾀할 것”이라며 “이미 전문필진 20여명이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17] 시대소리뉴스의 논설위원이자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서프라이즈에는 정치 담당 고정 필진으로 계속 참여했다. 5월 22일 서울에서 라디오 21 주최 '네티즌 정치참여 한마당: 신당 이렇게 가자!'에 패널로 참여하였다.[18]

8월 28일 제14기 KBS 방송 시청자 위원에 위촉되었다.[19] 그밖에 스포츠서울 등의 객원논설로도 투고하였다.

인터넷 실명제 반대론[편집]

2003년부터 인터넷 실명제 여론이 등장하자 그는 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해 왔다. 8월 21일 오후 2시부터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선거법 개정과 인터넷 언론> 세미나에 참석한 그는 인터넷 실명제 반대편에 섰더, 그는 "지난 대선때 비방·명예훼손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고, 명예훼손이 이루어질 경우 현재도 형법상 처벌이 가능하고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20] 당시 이강래 민주당 국회의원과 김학원 자민련 국회의원,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등은 실명제도입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의견을 펼쳤다.[21]

그는 원희룡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재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과 함께 “인터넷에서 활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것은 바로 ‘익명성’ 덕분으로 비방이나 흑색선전은 현행법으로도 IP 추적 등을 통해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며 강제적인 실명제를 반대했다.[21] 변희재 운영위원은 실제 사이트 운영현실을 예로 들며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할 수 없는 규정이 유지되는 한 주장과 칼럼을 중심으로 하는 인터넷사이트들은 언론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선관위의 선거법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21]

평론 활동[편집]

변희재는 2004년 반노무현 성향으로 돌아섰고, 서프라이즈에서 탈퇴하였다. 한편 브레이크뉴스의 기획국장으로 임명되었다.[22] 2004년 4월 17일 이진우 브레이크뉴스 공동대표와 인터넷 토론사이트 신데렐라를 개설하였다.[22] 변희재 대표는 같은 날 올린 새 매체 소개 글에서 “지금의 정치판과 언론판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객관성 있는 보도로는 이 현상을 해석하고 대안을 담아낼 수 없다”며 매체의 지향점을 시사했다.[22] 4월 17일 브레이크뉴스 기획국장직을 사직하고, 브레이크뉴스에 기획위원으로 남는다. [22] 신데렐라 뉴스에서 그는 이름쟁이와 함께 추미애의원 추대 활동을 하다 인터넷 언론인 브레이크뉴스에 기자로 활동하며 반노무현 논조의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는 브레이크뉴스 기자 활동 및 논설위원 활동과 함께 시민단체인 포털사이트 피해자 모임에 참여하여 대표로 선임되기도 했다. 2005년 12월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정보보호법 관련 법률 당시 일부 포털사이트가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정보는 임의로 삭제, 조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포털사이트 피해자 모임의 대표였던 변희재는 "포털이 자사에 불리한 것만으로 선별적으로 삭제하는 등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를 일부 침해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23] 2005년부터 2006년에는 시대소리뉴스의 필진, 정치토론장 다요기의 필진 등으로도 참여하였다.

그는 기자 생활 외에 인터넷 활동을 즐겨 하였다. 2008년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보통 인터넷을 하며 지냅니다. 생활이 특별할 게 없어요. 우리 세대는 어딜 다니지 않잖아요. 다만 여러 사이트를 방문할 뿐이지.”라고 하였다.[1] 신동아의 기자에 의하면“그렇다면 하루에 인터넷을 얼마나 사용하느냐”고 묻고선 곧 후회했다 한다. 그는 밥 없이는 살아도 인터넷 없이는 못 사는 세대 사람이 사용 시간을 염두에 둘 리 없다. 인터넷 웹진을 운영하며 관심 분야에 대한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변씨는 역시 취재도 글도 인터넷을 통해 해결한다고 했다.[1]

미디어, 사회 단체 활동[편집]

2005년 이후부터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기고하며 평론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 작성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촛불시위나, 진중권을 비롯한 여러 진보적 인물들을 비판하는 글을 보수언론을 통하여 발표하였다.[24] 2006년 11월 1일부터 인터넷 언론매체 빅뉴스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백분토론 같은 시사토론 프로그램에도 강경 우파 성향의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그 밖에 2007년 3월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정책위원회 위원장이 되고, 2008년 5월 16일 《실크로드 CEO포럼》이라는 모임을 조직해 대표로 활동하였으며, 모임 이름에서 따온 〈실크세대론〉을 주장한 글을 언론 매체에 기고하기도 하였다.

기성세대는 요즘 20, 30대를 88만원세대, 청년실업세대라 부릅니다. 무능하다는 거지요. 그러나 사실은 다릅니다. 이들은 대중문화와 IT로 무장한데다 수준 있는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서태지, 박찬호 등 국내 스타에 열광하며 서구 문화에 대한 열등감 없이 자랐어요. 이를 바탕으로 현재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등에 한류를 전파하고 있지요. 이런 장점을 과거 동서양 문화와 경제 교류의 통로였던 실크로드에 빗대 실크세대라 이름 붙였습니다.[1]
현재 정계·학계·경제계·언론계·문화계를 통틀어 실크세대가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1990년대 개성과 창의력으로 주목받던 세대가 정작 30대에 이르러서는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는 386세대에 일부 책임이 있습니다. 아랫세대를 무능하다고 낙인찍고 자리를 내어주려 하지 않으니까요.[1]

오마이뉴스와 같은 진보 매체는 그의 진보에서 보수로의 성향 변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25] 자신이 변절했다는 비판에 대해 변희재는 기고를 통해 스스로를 이념적으로 진보좌파진영이며 구세대의 잘못된 기득권 논리를 박살내기 위하여 행동한 것이 그들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 평했다.[26] 2008년 9월 미디어발전국민연합 공동대표에 선임되었다.

듣보잡 논쟁[편집]

1차 '듣보잡' 논쟁[편집]

2009년 1월 중앙대학교 미학 교수 진중권이 그를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의 준말)이라고 칭하였다. 2009년 1월 26일 진보신당 게시판에 진중권은 《가엾은 조선일보》라는 제목으로 “이제는 듣보잡 데려다가 칼럼란 채우는 신세가 됐다”고 변희재를 비난하였다. 2009년 2월 8일 《2030에게 필요한 건 냉소가 아닌 열정》이라는 글에서 〈오찬호씨의 비판에 답하며〉부제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오찬호씨는 스스로 서강대에서 사회학 박사과정 수료까지만 했다고 밝혔고, 솔직히 말해 나는 이번에 오찬호라는 이름을 처음 알았다. 내 입장에서는 오찬호씨는 듣보잡이다. 그래도 내가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 있기에 답글을 쓰는 것이다.[27]

이후 2009년 5월 27일 변희재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국민 세금 단 돈 1원도 들이지 말라”는 발언에 대해 인터넷 언론 와이텐 앵커 전유경이‘듣보잡’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말 그대로 웬 '듣보잡'이 관심 받고 싶어 이때다 하고 튀어나온 것일까”라는 발언을 하자 이후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변희재는 “수년 간 분석하고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쓴 글에 듣보잡이란 비속어까지 동원하며 비난한 데에는 나름의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자신의 발언에 확신이 있고 논리가 서 있다면 당당히 공개토론을 하고 싶다. 일대일로 맞짱토론을 벌이자”고 반론하며 감정 대립으로 이어졌다. [28] 이에 대해 변희재는 ‘듣보잡’이라는 모욕적 표현 남용에 대해서 진중권과 전유경 등을 서울지검에 고소하였다. 변희재는 진중권과 김상기, 권택근 등 공적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모욕을 행하니 네티즌들이 이에 선동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29] 2010년 2월 5일 법원은 진중권에게 변희재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모욕행위를 물어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였다.[30] [31]

2차 '듣보잡' 논쟁[편집]

2009년 5월에는 노무현의 죽음과 국민장에 대해 국민의 세금이 1원도 쓰여서는 안 된다며 비판했다. 이때 방송인 전유경은 다시 그를 듣보잡이라 불러 논란이 되었다.

방송채널 와이텐뉴스의 전유경 아나운서는 5월 27일 변희재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조폭 보스'라고 비난한 것에 대해 "말 그대로 웬 '듣보잡'이 관심받고 싶어서 이 때다 싶어 튀어나온 것일까요"라며 일침을 가했다.[32] 그는 이어 "영결식도 하기 전에 (국민장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이런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와 예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자꾸 변희재, 변희재 하니까) 제 입이 더러워질 것 같아 양치질이나 좀 하고 오겠다"고 말했다.[32] 전유경은 "한동안은 국민들의 패닉상태가 이어질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두고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며 “지금은 어떠한 말보다 잠시라도 조용히 그 분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마지막으로 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고 지적했다.[33]

이어 전유경은 “말 그대로 웬 ‘듣보잡’이 관심 받고 싶어서 이 때다하고 튀어나온 것 일까요”라며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지러운 시기에는 반기를 들고 나온 사람이 논객으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사람이나 시기나 영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33] 이와 관련해 변희재 대표는 "전유경 씨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고 싶지만 전씨가 공개토론에 응한다면 법적 대응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와이텐뉴스에 명예훼손 게시물 삭제요청을 했으며 삭제가 늦어질 경우에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32]

방송 활동과 안철수 논쟁[편집]

2010년 이후에는 방송의 공개 토론에도 출연하여 활동하였다. 2013년 5월부터는 안철수가 거짓말을 했다고 의혹을 제기하였다.

그는 안철수가 거짓말을 했다는 몇가지 의혹을 제기하였다.

첫째,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군대에 입대했다는 것 둘째, 직원들에게 1.5%의 주식을 나눠준 뒤, KBS 9시뉴스의 취재를 피해 손가락만 나왔다는 것 셋째, 안정적인 의대 교수직을 포기하고 벤처기업 도전에 나섰다는 것. 넷째, 1997년도 미국 맥아피사로부터 천만불의 투자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는 내용이다.[34]

변희재는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명의로 안철수 의원실, MBC 문화방송(대표 김종국),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문환)에, 2009년 6월 17일에 방영된 MBC 무릎팍 도사에서 안철수 의원이 직접 유포한 세 가지 거짓말과 한가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정정하라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34]

저작[편집]

저서[편집]

  • 《2007 대권 포털이 결정한다》2006년 5월
  • 《아이러브 인터넷》2000년 11월
  • 《스타비평 3》
  • 《스타비평 2》
  • 《스타비평 1》

공저[편집]

  • 《억지와 위선》2009년 12월, 북마크, 김광동,김성욱,변희재 공저
  • 《코리아 실크 세대 혁명서》2008년 5월 변희재, 여원동 공저

약력[편집]

활동[편집]

미디어 비평[편집]

2000년 5월에는 화상 채팅 등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글쓰기로 말하면 1인칭 방식이다. 자기의이름, 자기의 얼굴로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에는 두렵고 어색하지만 오히려익명이 주는 위선과 기만을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카타르시스를줄 수 있다”는 것이다.[36] 2000년에는 16개의 인기 인터넷 사이트의 운영자들과 면담, 인터뷰를 하고 '아이 러브 인터넷'을 출간하기도 했다.

실무인사 기관장 추천론[편집]

2003년 2월 12일 KBS 신임 사장 인선 관련 공청회에 참여했을 때는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가 아닌 방송을 잘 아는 인물이 선임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당시 인터넷사이트 '서프라이즈' 운영자였던 변희재는 "KBS 사장은 늘 '지사풍'의 언론인이 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잘못된 인선을 부른다"며 "지금 이 자리에서 언급되고 있는 언론인 정모씨나 강모 교수가 사장으로 선임이 된다고 해도 보도국과 교양프로만 챙기는 사장이 될 것이다. 언론인 중 방송을 아는 인물이 와서 현재 문제가 많은 오락프로 등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35] 그는 또 "시청률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KBS는 이제 '공정성'이라는 말보다는 '실험성'을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35]

그는 'KBS 사장으로는 개혁성·도덕성·전문성을 갖춘 인물이 선임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3박자를 고루 갖춘 인물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장 선임 문제 외에도 KBS는 실험정신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37] 이어 '시청자로부터 시청료를 받는 공영 방송으로서의 이점을 살려야 한다. 프로그램 개발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서는 일선 PD들 간에 정보 공유가 활발히 이루어 져야 한다. 이를테면 오락프로그램의 PD들은 개혁적인 공익프로그램으로부터 개혁성을 배워야 하고, 공익 프로그램은 오락프로그램의 장점인 '재미'를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37] 그는 또 "KBS 사장은 늘 '지사풍'의 언론인이 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잘못된 인선을 부른다[35]"며 우국지사형 인물보다는 그 분야의 일을 잘 아는 인물을 선임, 인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 개혁론[편집]

2003년 2월 25일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그는 교육 개혁론을 주장하며 전성은 거창 샛별중학교 교장의 교육부총리 추천 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서프라이즈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전성은 교장 추천 서명운동을 하던 변희재는 한국의 교육은 "지금껏 낮은 교육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은 스카이대학 출신 대학 총장들이 교육계의 수장이 되면 절대로 교육개혁이 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며 "정말로 교육을 한번 바꾸어보겠다면 이제는 낮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초중고교 교사 출신을 교육부총리에 앉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2] 당시 그는 "설사 전성은 교장이 수구세력의 기득권에 좌절한다 할지라도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모든 이들이 개혁을 지키려 나설 것"이라며 "제도나 학교 자체가 바뀌지 않더라도 이런 과정 하나 하나가 모두 교육개혁의 힘이 된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하고 있다.[12]

그의 이와 같은 주장에 상당수 네티즌들도 동의하였다. 아이디가 '심중석'인 한 네티즌은 "두 아들녀석을 각각 중학교,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출근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행복하게 인간답게 살수 있는 교육환경을 전성은 교장님이 만들어 주실것을 믿습니다"라며 전 교장을 추천했다.[12] '맘대로'라는 아이디를 가진 네티즌은 "제발 노무현 끝내기 안타로 경기를 끝내다오!'라고 말하며 노 대통령이 전 교장을 뽑는다면 이번 내각과 관련한 각종 딴지걸기와 잡음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밝히기도 했다.[12] 특히 한 네티즌(libero66)은 '전성은 교육부장관'이 "노무현 내각의 화룡정점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는 2003년 2월~3월 내내 전성은 지지 운동과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는 교육 개혁을 원한다면 서울대나 연고대 등 명문 학교 출신 인사보다는 낮은 자리에서 일한 실무형 인사를 추천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전성은 대신 윤덕홍을 선택했다.

방송 사회자 임명차별 비판[편집]

2003년 6월에는 각 방송사에서 젊은 여성 앵커들을 간판스타로 내세우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 비판하였다. 2003년 6월에 발간된 <인물과 사상> 6월호는 ‘왜 여성앵커는 젊고 예뻐야 하는가’ 라는 글을 실었다.[38] 여기서 그는 방송 앵커의 성차별, 그리고 여성 앵커의 연령 차별 문제를 다루었다.

이 글에서 변희재는 남녀앵커구도에 대해 “40대의 최소 차장급 이상 남성앵커를 앉혀서 보수적인 중년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여성앵커는 자기들 입맛에 맞는 예쁘고 젊은 여성을 택하게 되어있다. 그게 바로 1987년 백지연 카드였고 이 카드가 성공하는 바람에 2003년도까지 성차별적 뉴스가 매일 공중파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고 비판했다.[38]

그는 인물과 사상 6월호에서 방송사의 앵커, 진행자 임명의 비합리성을 지적, 논박했다. 이후 방송사에서는 중장년 남성과 젊은 여성 진행자 위주로 선정하던 것을 개정, 젊은 여성 사회자 외에도 중년 여성 사회자, 중년 여성과 젊은 남성 사회자로 편성한 방송, 프로그램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논란 및 이슈[편집]

여기자 비판과 그에 대한 논란[편집]

변희재는 브레이크뉴스 편집장 시절인 2004년 9월 24일 〈기자가 몸팔아 스타 인터뷰하는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변희재는‘여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몸을 팔고 여자 방송작가들도 그런 경우가 많다’는 주장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39] 한 언론사는 변희재가 ‘방송작가들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놀라지 않는데 여기자들은 엄청난 모독을 느낀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하였으나, 변희재는 자신이 방송작가를 언급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였다.[39] 한 인터넷 언론사 편집장은 이 기사를 두고 사실확인 없는, 의식 수준이 의심스런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지적하였다.[40]

결국 변희재는 2004년 10월 15일 ‘여기자협회 전체 회원들과 패션지와 여성지 기자 분들에게 사과한다’며 사과문을 브레이크뉴스에 올렸다.[41]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발언과 논란[편집]

2009년 5월 29일 전 대통령 노무현의 사망 직후 그의 국민장에 대해 극도로 비난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변희재는 '노 대통령 장례에 국민세금 들이지 마라'는 글을 자신이 운영하는 매체에 발표했다.[42] 변희재는 노무현국민장에 대해 ‘국민의 한 명으로서, 내가 번 돈으로 세금을 국가에 내는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국민 세금은 단 1원도 투입돼서는 안 된다’며 ‘측근을 살리기 위해 장렬히 몸을 던지는 조폭의 보스나 다름없는 사고’라고 자신이 운영하는 빅뉴스의 홈페이지에 기고하여 논란을 일으켰다.[43]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절차에 국민 세금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42]

이후 여러 언론들이 변희재의 발언을 비판하였으며 그중 조선일보가 “상당수 국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의지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며 “망자에 대한 순수한 연민과 애도에 상처를 내는 건, 진정한 보수의 길, 사람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고 변희재의 발언을 비판하자[44] 이에 변희재는 반발하여 빅뉴스에 “조선일보가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도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의혹을 받아 왔으면서, 어떻게 그 신문의 부장이 다른 사람의 글을 ‘정치적으로 해석했다’ 비판하느냐”며 반박했고[45], 며칠 후 미디어워치 발행인 컬럼을 통해 “아직도 짙게 깔려 있는 안티조선의 잔재를 완전히 걷어내려면 필자와 언론사가 서로 순수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조선일보에 순수성을 되찾자는 제안을 했다.[46]

김민선 발언 비난[편집]

2008년 5월 광우병 파동 당시 김민선정진영 등을 비난했다. 탤런트 김민선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 넣겠다’는 발언을 하면서, 이후 2009년 8월 10일, 미국산 쇠고기 유통업체 에이미트가 MBC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방송 프로그램과 김민선의 발언을 두고 MBC PD수첩 제작진 5명과 김민선 씨에게 3억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자, 한나라당 국회의원 전여옥은 연예인의 발언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이를 두고 연예인은 발언이 사실에 기초하는지 알아보아야 하며 발언에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배우 정진영은 미니홈피에 올렸던 사회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정치 행위가 아닌 시민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라고 전여옥을 비판하였다.

이를 두고 변희재는 “배우 김민선은 공인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매우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이어 김민선정진영을 두고 사회적으로 파장을 미칠 만한 자기 의견을 개진할 지적 수준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김민선의 당시 글은 미국산 쇠고기가 청산가리 정도로 위험하다는 사실적 판단에 기초한 의견 개진이다. 김민선미국산 쇠고기가 청산가리 정도로 위험하다는 사실 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47] 이에 대해 다시 박중훈트위터에 ‘지적 수준 평가 고시라도 만들어서 일정 시험에 통과된 국민만 말할 수 있는 법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비꼬았다.[48]

이에 대해 변희재는 “사회적 발언을 하려면 최소한 1주일에 2~3권 이상의 사회과학서, 인문과학서 책을 읽고, 매일 신문과 잡지의 글을 최소 3시간 이상 읽고,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보고서도 주마다 서너 편씩 읽어라”라고 반론했다.[49] 이어 이것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블로그나 트위터에 글을 못 쓸 것이야 없지만, 김민선처럼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 소송의 위협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충고해주는 것이다. 참고로 나의 경우는 수많은 공격적 글을 쓰지만, 10년 간 오직 단 한번 소송에 걸렸으나 법적 책임을 물은 바 없고, 언론중재위에서 정정보도 판결도 받은 바 없다. 아무리 공격적인 글이라 하더라도 법적 선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노력해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심해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공적 글이다[49]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작곡가 방시혁일간스포츠에 칼럼을 기고, "변희재가 내 후배인 것이 부끄럽다"며 “변희재의 이번 발언은 사실관계를 왜곡했을 뿐더러 추측으로 일관하고 있는 불건전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며 그렇기에 이 주장에 근거한 모든 비판 전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런 프로로서의 기본 윤리조차 안 지키는 분이 버젓이 논객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또 “나는 인문대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변희재도 대학 졸업 이후의 학력이 따로 없는 걸로 알고 있으니 지적 수준 운운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방시혁의 칼럼에 변희재는 빅뉴스를 통해“작곡가는 음악으로 승부를 해야지 쓸데없이 사회적 논쟁에 승부를 걸 필요는 없다”고 맞대응했다.[50]

공지영 비판과 논쟁[편집]

공지영이 투표 독려 관련 자신의 민낯을 트위터로 공개하였다. 그러자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트위터를 통해 “공지영 생얼(민낯) 보고 토할 뻔 했다”는 글을 올려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공 작가가 반격에 나섰다.[51]

변 대표는 지난 4·11 총선 당시 공 작가가 투표 인증샷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총선 때 공지영이 투표 독려한다고 자기 생얼 올렸잖아요. 진짜 토할 뻔했어요. 50 먹은 여자가 생얼 왜 올립니까? 공주병은 확실해 보여요”라는 글을 2일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했다.

이어 그는 “공지영 생얼 검색해서 보세요. 정말 끔찍합니다. 공지영 님의 외모를 비하한 게 아니라 정신 상태를 비하한 것이니 오해 없기 바랍니다” “공지영이 특별히 역겹게 생겼다는 게 아니라 자기 생얼 올려주면 투표독려가 될 거라는 미친 여자의 정신 상태를 지적한 겁니다”라고 공격했다. 이에 공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중학생 아들이 포털사이트 보고 ‘엄마 공지영 생얼 이거 뭐야?’ 묻는다 ㅠㅠ”며 “집 앞에서 약속인데 생얼로 못 나가겠다 흑!”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논란이 불거지자 변 대표는 이날 오후 6시52분께 트위터에 “공지영 생얼 이야기 시작은 제가 공지영은 그나마 진실성이 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다만 정신이 이상하다 덤으로 붙인 거죠. 그런데 제가 공지영 보고 토할 거 같다는 게 기사로 공식화되니, 어처구니 없는 겁니다. 이게 대체 한국 언론 수준입니까”라고 비난했다.[51]

또한 빅뉴스 측에서는 공지영이 자신의 외모를 무기로 이용하려 든다며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공지영이 자신의 생얼을 공개한 행위가 얼굴을 무기로 정권 심판론을 부추기려 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자 친노종북매체의 선동으로 그녀 자신의 피해만 확산되고 있을 뿐이라 평했다.[51]

19대 총선 발언[편집]

2012년 4월 그는 총선 직전 투표 권고에 대한 비판을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제19대 총선 때 그는 "투표율은 정치 후진국일수록 높습니다. 동남아 정치후진국들 투표율 80% 다 넘어요"라고 높은 투표율과 후진국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하였고 "투표하지 않는 60%의 2030세대 청년들이 대한민국의 기둥입니다"라고 했다.[52]

낸시 랭 발언 진위논란 제기[편집]

2012년 4월 행위예술가 낸시 랭과 변희재가 온라인 채널 인사이트 TV의 '3분토론'에 출연하여 논쟁을 벌인 이후, 변희재는 2013년 4월부터 낸시 랭의 여러 발언들에 대한 진위 의혹을 집중 제기하였다.

가족사 진위 논란[편집]

먼저 낸시 랭의 아버지 생존 여부가 논란이 되었다. 그간 낸시 랭은 방송 및 언론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낸시 랭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원 졸업할 당시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보냈고, 17년 동안 암 투병하시던 어머니는 지난 2009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외할머니마저 그 후로 1년 돌아가셨다.[53]'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변희재는 동년 4월 16일 낸시 랭의 아버지 박상록은 생존해 있으며, 2012년 3월 종로에서 공연을 했다는 주장을 트위터에 올려놓은 데 이어 "대학원 졸업 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낸시 랭의 부친 박상록의 2011년 안산 자원봉사 공연이다. 인간성 좋기로 유명한 분이다. 하여간 한국에 팝을 최초로 보급하고, 인성 좋아 후배 가수들 챙기는 걸로 유명한 분"이라며 관련 동영상을 공개하면서[54]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관련 언론사들은 부친 생존설이 사실로 확인되었다며 정정 보도문을 발표하였고,[55][56] 이후 낸시 랭 본인도 가수 박상록이 아버지라고 사실상 인정하였다.[57] 박상록의 최측근의 증언에 의하면, 낸시 랭은 아버지의 소재가 확인되기 전까지 실제로 아버지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58]

강원도 속초시에 칩거하고 있던 박상록은 이후 자신의 가까운 후배와 함께 e뉴스24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족사, 자신과 낸시 랭과의 관계, 대중의 오해에 관하여 해명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58]

BBC 초청 주장 진위 논란[편집]

2013년 4월 19일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BBC 방송의 초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5월 초 변희재는 전화 확인 결과 낸시 랭이 영국 BBC 방송의 초청을 받은 일이 없다고 주장하고,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하였다.

이후 낸시 랭의 주장을 보도하였던 언론사들은 "BBC가 낸시 랭을 초청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하였다"고 밝히고 이에 대한 정정 보도를 발표하였다.[59][55][60][56]

출생년도 및 출생지 논란[편집]

낸시 랭 본인은 자신이 1979년 미국 뉴욕 출생이라고 주장해 왔고 대한민국의 주요 포털사이트 프로필에도 1979년 미국 출생으로 되어 있으나 가수 박상록의 누이(낸시 랭에게는 고모)는 그녀가 1976년 대한민국 서울 출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며,[61] 변희재는 1976년 서울 출생으로 되어있는 낸시 랭의 석사 논문 표지와 '박혜령'이라는 그녀의 한국 이름으로 기재된 졸업사진 및 1989년도 서울 구정초등학교 졸업 앨범 표지를 공개하면서 출생년도와 출생지를 속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였다.[62][63]

2013년 5월 21일, 대한민국의 연예 언론사 e뉴스24는 최측근과의 인터뷰 및 자체 조사를 통해 낸시 랭은 1976년생이 맞으나 그 동안 나이를 속여온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보도하였으며,[64] 대한민국의 다른 언론사에서도 이를 사실로 단정하지 않을 뿐 공식 나이의 진위 여부에 대해 조심스럽게 의혹을 제기하는 등[65][66] 논란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낸시 랭은 현재까지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낸시 랭 종북 주장 발언[편집]

변희재는 행위 예술가 낸시 랭에 대해서 종북이라고 주장하여 논란이 되었다.[67] 그는 '사람 하나의 머리와 양심을 재단하지 말고, 밖으로 드러난 노선과 정치적 행위와 발언만 갖고 세력을 판단해야 한다'며 정치적 세력으로서의 종북 세력의 개념을 주장했다. 이에 이후 낸시 랭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했을 때 종북에 관한 물음에 대해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답하고, 이 날 방송에서'얼마나 주목받고 싶고 뜨고 싶으면 저를 보고 종북주의자라고 말하겠느냐'고 답했다.[67]

안철수 라면값 발언 비난[편집]

2013년 6월 4일 안철수는 국회의원 당선 직후 첫 정책간담회에서 라면 값이 얼마냐는 영세 대리점주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변희재는 이를 두고 일침을 놨다. 변 대표는 "라면 마니아 안철수, 라면 값 모를 수 있습니다.... (중략) 협찬 받아 먹었으면... (중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안철수는 라면 마니아. 신제품은 모조리 먹어본다', 아무리 라면 협찬받았다 해도 이건 좀 심하네요. 라면 마니아가 어떻게 라면 가격을 모릅니까."라며 한 매체에 올라온 관련 동영상을 올렸다.[68]

변희재는 안철수가 거짓으로 서민 흉내를 낸다고 비난했다. 6월 5일 그가 첨부하여 동영상 속 안 의원은 라면 한 묶음을 박스에서 꺼내 가격을 묻는 대리점주의 질문에 '천원...'이라고 얼버무리는 모습이다.[68] 이 장면을 포착한 변 대표는 "안철수 이거 서민흉내 내느라 라면 마니아라고 사기치고 다니다 걸린 게 명확하네요. 안철수 다음 뉴스에 나올 때, 알고 있는 라면 이름 다 대보라 그러세요. 두 개도 제대로 못 댈 겁니다.”라고도 비난 했다.[68]

고기집 고기값 할인 논쟁 및 할인 거부에 대한 변리바바와 600인의고기도적 페러디 사건[편집]

2013년 12월 17일 저녁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근처의 고깃집에서는 '보수대연합 발기인대회' 뒷풀이가 열렸다. '보수대연합 발기인대회' 에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대한민국종북감시단, 납북자가족모임, 자유대학생연합 등 25개 우파단체 회원 600여명이 모였다. 발기대회를 마치고 뒤풀이때에는 원래 200명으로 예약된 식당에 400여명의 인파가 몰려서 북새통을 이루었으며 (변희재측 워딩으로는 "최소한 200명 이상 올 것이니, 400석 전체 예약하고, 넉넉히 준비하라")뒷풀이가 끝나고 뒷풀이 비용을 지불할때 발기대회의 주최측은 서비스 불량(초벌이 안 된 생고기를 업체측에서 내었다, 서빙을 하는 인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뒷풀이에 참가한 회원들이 직접 셀프 서빙을 했다고 주장함.)을 이유로 총 비용 1,300만원 중 300만원을 할인을 요청하였으나 식당측에서는 할인을 거부하였다. 이 사건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대중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변 대표는 자신의 언론 매체인 미디어 워치를 이용하여 해명하는 과정에서 종북 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2014년 1월 9일 "낭만창고 식당 주인이 종북 편향의 사람들과 어울렸다"는 내용의 주장을 펴면서 방어에 나선 것이 그 계기이다.

'미디어워치'는 "보수대연합, 1천만원 매출 올려주고 '창고'에 뒤통수 맞아"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서 "보수대연합 측은 현재 1000만원을 먼저 지급하고 나머지 약 3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상황이다"라며 '미지급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변희재는 "식당의 서빙 인력이 3명밖에 없어 행사 진행이 안되자 서빙을 보수대연합 회원들 및 미디어워치 직원들이 행사 내내 직접 했으며, 밑반찬, 식사 등에 대해서 제대로 공급 받지 못했고, 직화구이 고기가 아니라 생고기가 나오는 등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였다"는 보수대연합 쪽의 주장을 전했다.

이에 관해 식당 측은 총 관련 인원수는 주방과 홀 인원을 포함하여 8명 이었으며 200명 예약이었지만 실제 방문한 사람은 600명 이었고, 생고기 논란에 대해서는 본래 초벌을 구워서 제공하는 가게로 예약인원수에 맞춰 준비하였으나 예약인원수의 3배였기에 초벌구이가 부족했으며, 초벌 고기가 부족하자 생고기라도 내줄것을 요청한 쪽은 변희재측이라고 증언하였다.[69]

이사건은 변리바바와 600인의 고기도적이라는 풍자 페러디를 유행시켰다.

기타[편집]

닮고 싶은 인물로는 전북대 강준만 교수와 언론인 출신의 시사평론가 조갑제를 꼽았다. 성향을 떠나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 방식이 배울 만하다는 것이다.[1]

여론을 집중시키는 진보인사를 겨냥하여 논문표절을 밝혀내는 전문집단이 있다고 21세기청년아카데미 워크샵에서 발언했다.[70]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실크세대 전도사 미디어평론가 변희재 신동아
  2. 김상만 기자. "미디어오늘 겨냥 미디어워치 3월 창간", 2009년 3월 6일 작성. 2009년 2월 23일 확인.
  3. <일요초대석> '트러블메이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4. ‘서프라이즈’ 사이버논객 집합소 미디어오늘 2003.05.19
  5. [읽어보세요] 우리 국토 위에 詩를 쓰자 등.. 한국일보 2000.11.19
  6. [책꽂이] 일본 전후 경제사 外 중앙일보 2000.10.01
  7. 아햏햏한 정치판에 '똥침' 놓는다정치적 커밍아웃, 실명 걸고 비판 오마이뉴스 2002.11.11
  8. 인터넷 논객들의 '노무현 일병 구하기' - <신간> 정치칼럼사이트 서프라이즈 책으로 출간 프레시안 2003.01.20
  9. 조선, 안티논객에 “비판글 써달라” 미디어오늘 2003.06.07
  10. ‘KBS 신임사장 개혁과제 토론회’ 12일 개최 미디어오늘 2003.02.07
  11. 국민대통령 시대 '현안 1순위'는 뭐라고 보십니까? 오마이뉴스 2003.02.16
  12. 교육부총리 '전성은 카드' 재부상 오마이뉴스 2003.03.04
  13. ‘라디오21’ 언론개혁 ‘볼륨을 높여라’ 미디어오늘 2003.03.16
  14. 인터넷 매체 ‘빅뱅’ 문화일보 2003년 03월 18일자
  15. 이창동 장관의 '홍보 방안' , 언론 개혁인가 언론 통제인가 오마이뉴스 2003.03.24
  16. 지면 특화전략 강화해야/ 변희재 한겨레신문 2003.05.22
  17. 정치토론 웹진 ‘춘추전국시대’ 서프라이즈 2003.06.10
  18. 오프라인 토론회도 ‘쌍방향시대’ 미디어오늘 2003.05.26
  19. KBS 14기 시청자委 구성 한국일보 2003.08.21
  20. "인터넷매체 기준 · 게시판 실명제 놓고 논쟁" 오마이뉴스 2003.08.21
  21. 선관위, '인터넷 선거보도' 심의 추진 프레시안 2003.08.22
  22. 브레이크뉴스 ‘신데렐라’로 분화 미디어오늘 2004.04.28
  23.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
  24. [이명박정부 출범] 취임사 어떻게 나왔나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25. 진보에서 보수로 변신한 '꺼삐딴변' 변희재 오마이뉴스
  26. "젊은 논객들, 전문성에 목숨 걸 자신있나" 변희재
  27. 빅뉴스
  28. 세상을 밝히는 자유언론 - 프리존뉴스
  29. [변희재, "진중권, 전유경 등 4인 검찰 고소" http://www.bignews.co.kr/news/article.html?no=230733] 빅뉴스, 2009-06-09
  30. 채은하 기자. ""변희재 듣보잡" 진중권 씨 벌금 300만 원 선고", 《프레시안》, 2010년 2월 5일 작성. 2010년 2월 5일 확인.
  31. 박주연 기자. "변희재, 진중권 허위사실 유포 민사 5천만원 소송", 《빅뉴스》, 2012년 1월 27일 작성. 2012년 4월 7일 확인.
  32. 전유경 "변희재, 웬 '듣보잡'이…" 노컷뉴스 2009.05.27
  33. "싸다구 한대 날려", '개념 앵커' 떴다 머니투데이 2009.05.27
  34. 인미협, "안철수와 MBC는 거짓말 정정하라" 공문 발송 빅뉴스 2013.05.21
  35. "공영 KBS 空器 아닌 사회적 공기돼야" 프레시안 2003.02.13
  36. [문화풍경2000] 사회전반 보여주기 열풍
  37. "KBS, 인적청산·관료문화 개선 필요" 오마이뉴스 2003.02.17
  38. 여성앵커 여전히 ‘말하는 꽃’ 미디어 오늘 2003.06.09
  39. ""여기자 · 작가 몸 판다" 큰 논란", 《데일리안》.
  40. [제530호] [인터넷세상] 몸 팔아 취재했나요? : 사회 : 뉴스 : 맛있는 뉴스 : 한겨레21
  41. 김상만 기자. "브레이크뉴스 '몸파는 여기자' 사과", 《미디어오늘》, 2004년 10월 18일 작성.
  42. 변희재 "노무현前대통령 장례에 세금쓰지 마" 프라임경제 2009.05.27
  43. 조현우 기자. "변희재,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안 돼… 자살은 조폭적 사고방식", 2009년 5월 29일 작성. 2009년 6월 6일 확인.
  44. 박, 은주, "[태평로 상복은 검고 국화는 희다]", 《조선일보》, 2009년 5월 28일 작성. 2009년 6월 13일 확인.
  45. 변, 희재, "유창선, 변상욱, 조선일보, 논쟁 제대로 하자", 2009년 5월 28일 작성. 2009년 6월 13일 확인.
  46. "조선일보가 '변희재'를 버렸다?", 《빅뉴스》, 2009년 6월 1일 작성. 2009년 6월 13일 확인.
  47. 김혜영 기자. "변희재 "김민선-정진영, 지적 수준도 안되는 자들이..."", 《뷰스 미디어》, 2009년 8월 14일 작성.
  48. 권태욱 기자. ""본인의 지적 수준은 높은가"", 《시티신문》, 2009년 8월 17일 작성.
  49. 박중훈과 김민선
  50. My스타뉴스 신현정 기자. "방시혁 “변희재 주장은 사실 왜곡” 지적수준 논쟁 가세", 《메디컬투데이》, 2009년 8월 17일 작성.
  51. 공지영 생얼은 '가카 헌정용', 정치투쟁 도구 빅뉴스
  52. 박수진. "변희재 “투표않는 청년들이 대한민국 기둥” 궤변", 《한겨레》, 2012년 4월 11일 작성. 2012년 5월 6일 확인.
  53. [이 사람] 뇌가 섹시한 낸시랭, "천재란 소문, 들어보셨죠?" 이데일리 2013.01.14
  54. 변희재, "낸시랭 부친 멀쩡히 살아 있는데" 패륜 논란 뉴스24 2013.04.16
  55. "BBC, 낸시랭 초청 '퍼포먼스' 전면 취소"보도관련 정정보도문 노컷뉴스 2013.08.14
  56. 낸시랭, BBC로부터 행사초청 받은 사실 없는 것으로 밝혀져 뉴스엔 2013.08.14
  57. 낸시랭, ‘아버지 박상록’ 포털 사이트 프로필 정정 마이데일리 2013-04-19
  58. "박상록 “내 딸 낸시랭, 더 이상 상처주지 말라”", 《enews24》, 2013년 5월 10일 작성.
  59. 7월 31일 바로잡습니다 한겨레신문 2013.07.30
  60. 낸시랭, BBC로부터 행사초청 받은 사실 없는 것으로 밝혀져 조선일보 2013.08.14
  61. "고모의 폭로 "낸시랭, 미국 유학 간 적도 없다!"", 《뉴데일리》, 2013년 4월 19일 작성.
  62. "낸시랭, '석사논문에는 76년 서울출생, 회사 등기부등본에는 미국인으로 표기'", 《미디어워치》, 2013년 4월 23일 작성.
  63. 변희재 '낸시랭 실제나이' 뭐가 충격?‥"나이 안속인게 뉴스" 한국경제 2013.05.21
  64. "낸시랭, 나이 거짓말 드러나… ‘76년 생 확인, 나이논란 종지부’'", 《enews24》, 2013-05-21 09:13 작성.
  65. "낸시랭 실제 나이 의혹…“측근, ‘79년생 아닌 76년생이다’ 주장”", 《강원일보》, 2013년 5월 21일 작성.
  66. "낸시랭 실제나이 알고보니 79년생 아닌 76년생? 대체 무엇이 진실?", 《SBS》, 2013년 5월 2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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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변희재 “안철수, 라면 마니아라더니...그동안 서민 흉내내느라 사기쳤어”
  69. '고기값 논란' 변희재, "식사비 지불 후 손해배상 청구", 마이데일리, 2014년 1월 9일
  70. 변희재 강연 21세기청년아카데미 워크샵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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