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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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유신(十月維新)은 1972년 박정희 정권이 헌법을 개헌한 일을 말한다. 이 때의 헌법을 유신 헌법이라 하며, 유신헌법이 발효된 기간을 유신 체제라고도 부른다.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967년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제3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직을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게 하고 있었으나, 박정희는 1969년 3선개헌을 통하여 자신이 다시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여러분께 다시는 나를 찍어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였는데, 이에 상대 후보였던 김대중은 박정희가 헌법을 고쳐 선거가 필요없는 총통이 되려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대중을 가까스로 누르고 대통령에 3선된 후,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우리의 정치체제를 개혁한다'고 선언했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국회를 해산하고,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했다. (제3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부여하지 않았으므로, 이 때의 국회해산은 위헌, 불법적인 것이었다)
한태연, 갈봉근 등의 어용학자들과 김기춘과 같은 젊은 검사들이 만든 이른바 유신헌법안이, 10월 27일 이른바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11월 21일 국민투표에서 확정되고, 12월 27일에 발효되었다.
유신헌법은, (1)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간접 선거하도록 하였으며, (2)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의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고, (3)대통령에게 헌법의 효력까지도 일시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을 부여하고, (4)국회 해산권, 법관 임면권을 대통령이 갖도록 하여 대통령이 3권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보장하였으며, (5)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연장하고 연임 제한을 철폐하여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를 통하여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것조차 금지하고 처벌하였으므로, 국민의 기본권은 극도로 위축되었으나, 어용 학자들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표현으로 이를 미화하였다.
유신체제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