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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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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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과 함께 TV토론회에 참여한 진중권(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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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63년 4월 27일 (50세) |
| 거주지 | |
| 국적 | |
| 학력 | 서울대학교 미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학 석사 |
| 경력 | 중앙대학교 독어독문과 겸임교수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
| 직업 | 시사문화평론가, 학자, 대학 교수 |
| 배우자 | 미와 교코 |
| 자녀 | 1남 |
| 친척 | 누나 진은숙 누나 진회숙 |
| 웹사이트 | 진중권 Daum 개인 블로그 진중권 blogspot 개인 블로그 진중권 Twitter |
진중권(陳重權, 1963년 4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대학교수, 교육자, 비평가, 문화평론가, 언론인이다.
서울대학교 졸업 후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서 인터넷과 방송 등에서 활동하고 교육자로서 강연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비평 활동을 하였다. 대표 저서로 《미학 오디세이》등의 저서가 있다. 중앙대학교와 카이스트의 겸임 교수로 재직하였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임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 경북 영주시 동양대학교의 교양학부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독일 유학 시절에 만난 일본인 미와 교코(三輪今日子)와 결혼하였고 둘 사이에 아들 1명을 두었다.
목차 |
생애 [편집]
학창 시절 [편집]
1963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2녀 2남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사이며 어머니는 피아노 교습을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충청도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다니다가 생활고로 학비가 들지 않는 신학대학으로 전신하여 목사가 되었다.[1]
작곡가 진은숙, 음악평론가 진회숙의 동생이며, 컴퓨터 프로그래머 진중걸의 형이다. 고등학교 시절 흡연 두 번, 폭행 한 번으로 세 번 정학을 맞았다. 198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1986년 졸업했고, 1992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유리 로뜨만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진보적 문화운동 단체 문학예술연구회,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에서 활동하였다.
1993년에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1994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에서 미학, 해석학, 언어철학을 공부하며 '언어 구조주의 이론'으로 박사과정을 다니다 학위를 받지 못하고 자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3] 1999년 10월에 귀국했다. 독일 유학 중 미와 교코와 1997년에 결혼하였다.
평론 활동 [편집]
1998년 4월부터 인물과 사상에 '극우 멘탈리티 연구'를 연재하였으며, 1999년부터는 김정란, 홍세화, 김규항 등과 함께 아웃사이더를 만들었다. 이후 정치사회비평지 ‘아웃사이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3] 그 밖에 방송 출연과 문학과 비평, 인물과 사상 등의 잡지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SBS 라디오 `진중권의 SBS전망대'를 진행하기도 했다.[4]
인터넷과 언론 등 다양한 매체에 사회 문제나 미학에 대한 기고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때 민주노동당의 당원이었으며, 진보신당의 창당 당시 홍보대사로 활동하였으나 2010년 9월 탈당하였다.
과거 조선시절 황쭌쏀의 조선책략이라는 책이 들어온적이 있다. 그 책에는 친중국 결일본 연미방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는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결합하며 미국과 이어지는 것이 조선에게 유리하다는 내용으로 풀이 될 수 있다. 진중권은 특이하게도 진중권-친중국, 결일본-배우자, 연미방-진중권은 jtbc의 동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수논객 둔도 전원책 변호사와 설전을 벌인일이 있었는데 여기서 진중권은 지나가는 말로 미국을 적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결과적으로 조선책략과 진중권의 내용은 연미방에서 차이점이 드러나고 있다.
2008년 대한민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해 왔으며,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시위에서 진보신당의 인터넷 생방송 '칼라TV'를 진행하고 있다. 5월 31일의 시위 도중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였다.
교육 활동 [편집]
교육활동으로는 2009년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겸임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5]등으로 재직하였다.
2009년 8월 14일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됐다. 진중권은 2003년 겸임교수로 임용된 이래 7년 동안 이미 3차례 재임용 되었기 때문에[6] 탈락 사유가 정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학교측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재임용 탈락에 강력하게 반발하였고, 이 과정에서 총장실 난입건으로 7 명의 학생이 징계를 받았다. [7]시사평론가 변희재는 그의 임용탈락 이유에 대해 근거를 제시하며 임용탈락 결정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였다.[8] 2009년 8월 28일 카이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홍익대 강의가 무산됐다.[9]
2012년 2월 20일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부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다시 대학에 서게 되었다. 겸임교수나 외래교수, 강사가 아닌 정식으로 임용이 되어 강단에 서게 되는 진중권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취직한다"고 재치있게 말하기도 하였다.
비평 활동 [편집]
우파 지식인에 대한 비평활동 [편집]
진중권의 본격적 비평 활동은 1997년 여름부터 시작된다. 그는 당시 《인간의 길》의 저자 이인화가 편집위원으로 있었던 문예지 《상상》에 서양미술에 나타난 악마주의에 관한 글을 청탁받았다. 그는 이 청탁이 광신도를 비판하는 글로 생각했지만, 실제 책에서는 박정희를 찬양하는 글 사이에 그의 글이 포함되었다. 이에 진중권은 반론을 요청했지만 이인화에 의해 거절되고, 대신 《문학동네》에 반론을 싣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조선일보 비판 부분은 삭제된 채 출판되었다.[10]
이후 진중권은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 지식인들에 대한 비평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다. 이러한 활동의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1998년에 발표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였다. 여기서 진중권은 조갑제, 이인화 등 우파 논객들을 '극우파'로 정의하고 그들을 신랄하게 비판 공격하였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적인 언론권력과 박정희, 전두환 등의 유사 파시즘을 비판해 왔다.[11]
월장 논란 [편집]
2001년 여성언론 월장이 대학내의 예비역에 의한 군사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예비군을 대학의 적으로 규정하는 등 과도한 표현으로 논란이 되었고 이에 반발한 예비역들이 군복무의 신성함을 주장하며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다가 급기야 안티월장 사이트가 개설되며 감정싸움으로 변했다. 진중권은 이 논란에 가세해 군대의 집단문화와 비양심 폭력 등을 비판하였다. 그 중에 똥개훈련, 수평폭력 등 군을 비하하는 몇몇 표현이 문제가 되었고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http://www.womennews.co.kr/board.asp?bo_id=free&page=77&wr_id=858 (진중권의 글 본문)} 이른바 월장사태로 알려진 이 사건은 사이버 공간에서 최초로 일어난 성갈등의 표출이다. 이 사건으로 진중권이란 이름이 누리꾼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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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활동 [편집]
그 후, 대한민국의 군사문화와 획일주의 문화 그리고 황우석 사태와 디워 논란, 미국산 쇠고기 협상 논란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문화현상 및 사회현상에서 비판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8년 3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양촌리 김회장 댁 둘째 아들”이라며 특유의 화법으로 비판하였다. [12] 그리고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에서 분리되어 나온 진보신당의 당원이자 홍보대사로써 활동하면서 진보신당의 대중적 인지도를 넓히기 위해 정치, 문화, 사회에 관한 전반적이고 다양한 글을 기재하면서 노력하였고, 2008년 여름 시작된 촛불 집회에서 진보신당이 인터넷 미디어 방송인 '칼라TV'를 개국하면서 촛불 집회 중계 리포터로써 적극적인 활동을 하며 경찰의 무력진압에 비판을 했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 담배를 피워 빈축을 샀고 이를 비꼬는 네티즌들이 담배송을 만들기도 했다.[13] 2008년 6월 단박인터뷰에 나와 촛불 시위에 동참해 비평활동을 벌였다.[14] 그는 진보신당 인터넷 게시판에 변희재를 '듣보잡' 이며 매체를 창간해다 망하기를 반복하고 정부와의 연결고리를 추적해 보아야 한다는 비방글을 올렸다가 기소되었다. 2010년 2월 5일 법원은 진중권에게 변희재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모욕행위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2012년 1월 26일 변희재는 진중권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행위(모욕행위 배제)에 대해 5천만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15] 2012년 11월 11일 변희재와 NLL 논란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진중권은 "팩트에서 밀렸다"며 패배를 인정하였다.
영화 디 워 비평 [편집]
그는 2007년 8월 9일 MBC <100분토론>은 ‘디 워, 과연 한국영화의 희망인가’라는 주제로 방송할 당시청년필름 대표 김조광수, 스포츠조선 김천홍 기자, 문화평론가 하재근 등과 함께 패널로 출연했다. 이때 디 워의 작품성을 놓고 '기본 플롯과 스토리에 문제가 많고, 애국주의-시장주의-CG-인생극장 등의 코드만 있지, 영화에 대한 철학이나 내용은 없었다', '마치 황우석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모험이다', '비평할 가치가 없는 영화인데 댓글 때문에 꼭지가 돈다, 엉망진창이다, 개판이다' 며 비판하였다.[3][16].[17]
한편 일부 네티즌들은 '진중권 교수가 평론가고 지식인이면 한사람의 열정이 담긴 영화를 그렇게까지 비판해야하는가', '진 교수는 시장주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괜한 불구덩이에 뛰어든 것 아닌가란 오해가 든다' 등 그의 발언 대한 비판 여론을 가하였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긍정이 있으면 비판도 있는 법이다. 평론가는 어느 한 쪽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비평을 가하는 것', '솔직히 <디 워>가 볼 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희망’으로까지 불리기에는 민망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며 반론을 제시하기도 했다.[3]
진중권의 디워 비판에 반발하는 네티즌들의 격렬한 반발에 봉착하였다. 진중권은 '디 워’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려면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정상인가' 하며 문제를 제기[18]하였으나 황우석 사태 당시의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라는 분석과 지식인의 오만이 더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18] 그러나 진중권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 영화 '디 워'의 팬들은 2007년 8월 10일 진중권의 개인블로그에 집단으로 접속하여 마비시켰고, 8월 12일에는 그의 중앙대학교 홈페이지까지 마비시키고 악플을 달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진중권은 이들을 고소, 고발하지는 않았다.[출처 필요]
인터넷 실명제 비판 [편집]
인터넷 실명제를 비판했던 그는 100분 토론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찬성하는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주성영을 논파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8년 6월 20일의 100분 토론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찬성하던 주성영은 '100분 토론'에서 주성영의원이 '천민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진중권 교수는 "그런 표현은 없다. '천민자본주의'라는 표현은 있다. '천민민주주의'라는 말은 이회창 전 총재의 말이다"라며 지적했다.[19]
진중권은 또 "몇 년 전 국감 기간에 피감기관과 폭탄주를 마시며 광란의 밤을 보내며 화끈한 대구의 밤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던 국회의원이 있었다"며 주성영의원을 빗대어 말해 화제가 됐다.[19] 이어 "인터넷 실명제가 효과를 발휘할 경우 한나라당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해 주성영 등 실명제 찬성쪽을 당황하게 했다.[19]
임재범 나치복장 퍼포먼스 논란 [편집]
진중권은 록 가수 임재범이 '다시 태어난 거인' 콘서트에서 나치복장으로 공연한 것을 보고 혹평을 하여 작곡가 김형석과 설전을 벌였고 이 논란은 조선일보에서 한겨레 신문 등의 수많은 오프라인 신문과 각종 인터넷 미디어와 포털 뉴스 그리고 잡지와 새롭게 등장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트위터을 타고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이 논란은 점점 커졌고 한상길과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20] 등의 유명 논객의 참여와 '빅뉴스' 칼럼니스트 '김휘영'의 반론인 "궤변으로 사기쳐 온 진중권은 주제파악부터 하라!" [21]의 칼럼기사에 이르기까지, 후진 미감이라는 진중권의 비난에서 김형석의 표현의 자유 옹호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의견들이 크게 부정-중도-옹호 등의 세 갈래로 나뉘어 격한 논쟁의 양상을 띄었다.
논란 [편집]
노무현 대통령 비판 [편집]
- 진중권은 “노 전 대통령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었고 거의 종교적 열정에 가까울 정도로 그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어리석을 정도로 무구했던 그 순수한 신뢰를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배신해도 되는 것인지 안타깝다”라고 비판했다.[22]
자살세 발언 [편집]
2004년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가 있었고, 며칠후 남 전 사장이 투신자살하였다. 또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안상영 전 부산시장, 박태영 전남지사의 자살이 잇따르자, 진 교수는 2004년 서프라이즈와 인터뷰에서 "자살할 짓 앞으로 하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웃음) 그걸 민주열사인 양 정권의 책임인 양 얘기를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고, 앞으로 ‘자살세’를 걷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시체 치우는 것 짜증 나잖아요”라고 했다.[23] 또 자살한 남상국 전 대우 사장에 대해서도 “그렇게 명예를 중시하는 넘이 비리나 저지르고 자빠졌습니까?…검찰에서 더 캐물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넘들이 있다고 합니다…. 검찰에서는 청산가리를 준비해놓고, 원하는 넘은 얼마든지 셀프 서비스하라고 하세요…”라는 말을 하였다.[23] 그렇게 자살을 비판하던 진중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자 이중잣대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23]
이로부터 4년 후, 진보신당 사이트 게시판에 한 유저가 반성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자, 진중권은 게시판에 '변명의 여지가 없지요'라는 제목으로'그 분들의 죽음을 부당한 정치적 탄압의 결과인 양 묘사하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태도가 역겨워서 독설을 퍼붓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던 것 같다'며 '아프게 반성한다'라고 하였다.[24]
사망유희 사건 [편집]
약력 [편집]
저술활동 [편집]
저서 [편집]
- 《미학 오디세이》 1~3 (새길, 1994, 휴머니스트, 2003년 재간)
- 《춤추는 죽음 1,2》 (세종서적, 1997년, 2005년 재간)
- 《천천히 그림읽기》 (웅진출판, 1999년)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1~2 (개마고원, 2000년)
- 《시칠리아의 암소》 (다우출판사, 2000년)
- 《페니스 파시즘》 (개마고원, 2001년) - 공저
- 《폭력과 상스러움》 (푸른숲, 2002년)
- 《진중권의 현대미학강의》 (아트북스, 2003년)
- 《레퀴엠: 죽은 자를 위한 미사》 (휴머니스트, 2003년)
-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휴머니스트, 2005년)
- 《성의 미학》(세종서적 2005년)
- 《첩첩상식》 (새움, 2006년)
- 《호모 코레아니쿠스》 (웅진출판, 2007년)
- 《(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한겨례출판, 2007년)
- 《서양미술사 1권 고전예술편》 (휴머니스트, 2008년)
- 《진중권의 이매진》 (씨네21, 2009년)
- 《교수대위의 까치》 (휴머니스트, 2009년)
- 《크로스》(웅진지식하우스, 2009년) - 공저
- 《청년들 지성에게 길을 묻다》(전망, 2010년) - 공저
-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 2010년) - 공저
- 《서양미술사 2권 모더니즘편》 (휴머니스트, 2011년)
- 《서양미술사 3권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편》 (휴머니스트, 2013년)
역서 [편집]
- 《미학강의 1, 2 (Vorlesungen zur marxistisch leninistischen Asthetik)》(M.S. 까간, 새길, 1998년)
- 《예술 기호 정보》 (가와노 히로시, 새길, 1999년)
-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오스카 라퐁텐, 중앙M&B, 2000년)
- 《청갈색책》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그린비, 2006년)
- 《컴퓨터 예술의 탄생》 (가와노 히로시, 휴머니스트, 2008년)
- 《미디어아트-예술의 최전선》 (휴머니스트, 2009년)
관련 항목 [편집]
주석 [편집]
- ↑ 이나리, 열정과 결핍 (출판사 웅진닷컴 | 2003) 223페이지
- ↑ 인용 오류:
<ref>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jungt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 ↑ 가 나 다 라 ‘가혹한 혹평’ 진중권 교수, “디 워는 엉망진창 영화” - 데일리안
-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135314
- ↑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진 명단
- ↑ 고재열의 독설닷컴 :: 중앙대 학생들, '진중권 해임이 부당한 세 가지 이유'
- ↑ 총장실 난입학생 징계추진 연합뉴스
- ↑ 진중권 처음부터 겸임교수 자격 미달
- ↑ 이성희 기자. “진중권 홍익대 강의도 무산 좀 황당하다”, 《경향닷컴》, 2009년 8월 28일 작성. 2009년 8월 29일 확인.
- ↑ 이상 진중권이 《네 무덤에 책을 뱉으마》의 서문에서 밝힌 내용
- ↑ 편집부 엮음, 《시사인물사전 2》 pp 163~170, 인물과사상사, 2000
- ↑ 진중권 “악역이 필요한 때 아닌가, 李정권이 나를 자꾸 불러낸다”. 경향신문 (2008년 3월 26일). 2008년 3월 28일에 확인.
- ↑ 계속되는 진중권 패러디...비꼬는 '담배송'도 인기
- ↑ 1TV 단박 인터뷰
- ↑ 박주연 기자. “변희재, 진중권 허위사실 유포 민사 5천만원 소송”, 《빅뉴스》, 2012년 1월 27일 작성. 2012년 4월 7일 확인.
- ↑ 진중권 “‘디 워’는 엉망진창” 혹평…인터넷 ‘들썩’ - 경향신문
- ↑ 진중권 “엉망인 ‘디워’ 일방 옹호에 꼭지 돌아” - 서울신문
- ↑ 가 나 '마녀사냥'인가 '지식인의 오만'인가 - 세계일보
- ↑ 가 나 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life/565881.htm?imgPath=life/social/2008/0620/
- ↑ {{뉴스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7061735341119&ext=na%7C제목=김어준, "나치 복장, 옥주현이 했으면 씹혀서 우주 먼지 됐을 것"|성=이|이름=승록|발행일자=2011-07-06|출판사=마이데일리|확인일자=2011-07-06|
- ↑ {{뉴스 인용|url=http://www.bignews.co.kr/news/article.html?no=232833%7C제목=김형석-임재범 Vs 진중권 설전의 결과:김형석 KO승-진중권 응급실행 |성=김|이름=휘영|발행일자=2011-07-10|출판사=빅뉴스|확인일자=2011-07-10|
- ↑ 진중권 “盧, 이 정도로 한심한 수준일 줄이야" 뉴스앤뷰스, 2009-04-08
- ↑ 가 나 다 진중권 “자살세 걷자. 노무현씨 왕자병” 인터뷰 주목 받아 - (프런티어 타임즈)[깨진 링크]
- ↑ 진중권, "자살세 발언 사과…넘어서는 안 될 선 넘었다" -(뉴스한국)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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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편집]
- 《한겨레21》에 1999년 1월부터 8월까지 연재된 진중권의 ex libris 칼럼을 모아 놓은 개인 웹사이트
- 《씨네21》칼럼, 진중권의 이매진
- 《시사IN》칼럼, 진중권의 까칠거칠
- 《한겨레21》칼럼,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 《한겨레21》칼럼,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
토론 [편집]
- 100분 토론 "디워" 출연분 (요약)
- 2007년 8월 20일 백분 토론 디워 논쟁 출연분 (전체)
- CBS 지만원과의 논쟁
- CBS 특집 토론 "한국기독교, 세상과 어떻게 대화 할 것인가?" 출연분
- 백분 토론 출연분 - 2007년 6월 7일 시청앞 광장 공개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