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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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개고기.

개고기(문화어: 단고기)는 고기로서 한자로는 구육(狗肉)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보신탕, 수육, 개소주 등의 음식이 있다.

역사[편집]

중국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기원전 6세기 경 중국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며, 일반 연회와 제사에 오르는 제물로 쓰였던 기록이 있다.[1]

유럽의 일부 지방에서도 20세기 초반까지 식용 개고기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1870년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는 특히 파리에 개고기 정육점이 들어섰다는 기록이 있다. 세계대전 당시에는 개고기처럼 보다 질 낮은 고기로 여겨지는 육류를 먹게 될 기회가 많아졌으며 1차 세계대전 당시의 견식문화를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사자(死者)의 집>의 한 글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Quelques-uns nous quittèrent
Devant une boucherie canine
Pour y acheter leur repas du soir »

견육점(犬肉店) 앞에서 사람들 몇몇이 우리를 떠난다.
그곳에서 저녁 식사거리를 사기 위해서.

개고기를 먹는 문화권[편집]

개고기는 현재 베트남타이완에서도 식용하고 있으며, 중국 남동부 광둥성 지역에서도 여름에 개고기를 먹는다.[2] 한편 동아시아에서도 목축을 하던 몽골인, 위구르인, 롤로인, 티베트인들은 식용 개고기를 즐기지 않는다.[출처 필요]

한국[편집]

한국에서 개고기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필요] 16세기 조선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에 의하면 “개고기는 오장을 편하게 하고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서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양도(陽道)을 일으켜서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적고 있다.[3] 18세기의 책 동국세시기의 삼복조에는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끊인 것을 개장이라고 부르고, 고추가루를 타서 밥을 말아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출처 필요] 당시의 실학자인 정약용박제가는 개고기 요리법에 정통했다는 기록이 있다.[4] 조선 왕실에서도 개고기를 즐겼는데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식단에 개고기 찜이 올랐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시대 개고기는 서민뿐만 아니라 양반 같은 지배층까지 두루 즐긴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대의 대한민국 식품위생법에서는 식품에 쓸 수 있는 동물성 원료로서의 개고기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다. 축산법에는 개를 가축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축산물가공처리법에는 개를 포함시키고 있지 않다. 서울특별시1984년부터 보신탕을 혐오식품이라 하여 판매를 금지시킨 상태이며, 식용 개고기에 대한 논쟁도 활발하다.

20세 이상의 한국 남성 중 약 70%는 개고기를 한 번 이상 먹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하였다. 그러나 1년에 한 두 번 이상 개고기를 먹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28%였다.[2]

미디어[편집]

  • KBS (한국방송공사)
    • 소비자 고발 - 당신은 애완견을 먹고 있습니다》(2008년 7월 11일)
    • 소비자 고발 - 위험한 보양식, 개고기의 불편한 진실》(2009년 8월 19일)
  • MBC (문화방송)
    • 뉴스데스크 카메라 출동- 개 도살 처리현장 고발》(1993년 10월 10일)

주석[편집]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7111024341&code=960201
  2. 음식전쟁 문화전쟁, 주영하, 2000 사계절
  3. http://www.nfm.go.kr/Data/cMjune02.jsp
  4.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087000/2003/08/021087000200308130472025.html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