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마라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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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
개인 정보
본명 Diego Armando Maradona Franco
출생일 1960년 10월 30일(1960-10-30)(63세)
출생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라누스
165cm
포지션 은퇴 (과거 공격형 미드필더)
청소년 구단 기록
1969-1976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76-1981
1981-1982
1982-1984
1984-1991
1992-1993
1993-1994
1995-1997
통산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보카 주니어스
바르셀로나
나폴리
세비야
뉴웰스 올드 보이스
보카 주니어스
1670(115)
0400(28)
0360(22)
1880(81)
0260(5)
0050(0)
0300(7)
491 (259)
국가대표팀 기록
1979
1977-1994
아르헨티나 U-20
아르헨티나
0060(6)
0910(34)
지도자 기록
1994
1995
2008-2010
2011-2012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
라싱 클럽
아르헨티나
알와슬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프랑코 (스페인어: Diego Armando Maradona Franco, 1960년 10월 30일 ~ )는 아르헨티나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축구 감독이다. 여러 논란거리가 있었지만 펠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보카 주니어스의 중심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도 라 봄보네라를 자주 찾는 열렬한 보카 팬이다.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에도 선정되었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두 차례 짧은 감독 경력을 보낸 마라도나는 2008년 10월 28일,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1] 전술상의 문제를 노출하며 기대를 모았던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독일에게 0-4로 대패하여 준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그를 유임하는 대신 마라도나의 밑에서 일하고 있던 코칭 스태프들을 경질하려 했다. 그런데 마라도나는 자신이 이끄는 코칭 스태프들을 배신할 수 없다며 2010년 7월 27일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물러났다. 그 이후 알 와슬의 감독이 되었으나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선수 경력

디에고 마라도나는 역사상 축구황제 펠레와 함께 축구의 신으로 불리며 역대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이다. 마라도나는 1980년대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였다.프랑스미셸 플라티니, 브라질지쿠, 서독카를하인츠 루메니게와 같은 수많은 스타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선수였다. 더불어 마라도나는 1960년대 펠레와 1970년대의 요한 크라위프, 프란츠 베켄바워, 1950년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준하거나 혹은 능가하는 평가를 받고있으며 그에 합당한 완벽한 재능을 지닌 위대한 선수였다.

클럽팀 경력

아르헨티노스

1976년 10월 20일,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노스에서 처음으로 프로에 데뷔했고, 아직 어린 아르헨티나 축구선수로서 개인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보카 주니어스

1981년, 이제 21세가 된 마라도나는 보카 주니어스에 입단해 축구선수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제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주목받을 나이가 된 것이다.

바르셀로나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는 것을 시작으로 유럽 리그에 진출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FC바르셀로나 에서의 축구선수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첫 시즌부터 간염에 걸려 심하게 고생했고 1983년 9월 23일 어슬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혼 안도니 고이코에체아에게 백태클을 당해 왼쪽 발목 골절상을 입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부상을 극복하고 일어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는 좋지 않은 대중적 평판에 시달려야 했다. 마라도나는 이 무렵부터 코카인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으며 인생이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했다.

결국 FC바르셀로나 의 선수로서 마라도나는 모든 대회 도합 38골의 기록을 남긴 것이 전부였으며 두 시즌만에 종결되었다. 그런데 두 시즌에 38골은 골을 굉장히 많이 넣은 것으로 평가된다. 1984년 5월 빌바오와의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결승에서 마라도나는 집단 난투극의 주동자가 되어 폭력사태에 휩싸였으며 이것이 원인이 되어 마라도나는 FC바르셀로나 에서 강제로 퇴출당했다.

SSC 나폴리

FC바르셀로나 에서 퇴출당한 마라도나는 SSC 나폴리로 이적했다. 마라도나가 이적하기 직전까지 나폴리는 단 한 차례의 리그 우승도 차지하지 못한 약체였다. 게다가 나폴리는 당시 시즌 11위에 머물렀던 클럽이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클럽팀에서의 마라도나가 위대한 황금기를 누리기 시작한 시발점이면서 동시에 나폴리의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 되었다. 마라도나가 이적한 그 시즌에 나폴리는 8위로 상승했으며, 그 다음 시즌에는 3위까지 올라갔다. 1987년 5월 10일, 나폴리는 마라도나의 맹활약으로 마침내 클럽 역사상 최초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고 이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나폴리에서도 ‘신’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나폴리와 계약을 연장한 마라도나는 1989년 팀을 UEFA컵 정상으로 인도했으며 이듬해에는 유럽챔피언 AC 밀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다시 한 번 세리에A에서 정상에 등극했다. 이 당시의 이탈리아 세리에A가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운집한 최고의 리그였음을 고려하고 또한 SSC 나폴리는 SSC나폴리 역사상 이 때 유일하게 우승한 것을 감안한다면 마라도나가 나폴리에서 이룬 활약의 크기가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다.

국가 대표팀 경력

그는 1977년 2월 27일,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16살의 어린 나이에 국제 경기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2년 뒤인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최우수 선수 상을 받았다. 같은 해 6월 2일에는 햄튼 파크에서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국제 경기 첫 골을 넣으면서 팀이 3-1로 이기는데 공헌하였다. 그리고 그는 FIFA U-20 월드컵FIFA 월드컵 두 대회 모두 최우수 선수 상을 받은 유일한 선수이다.

1978년 FIFA 월드컵

원래 마라도나는 이 월드컵에서 차출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어린 나이와 더불어 마라도나의 성격이 매우 불같은 데다가 잦은 돌출행동 때문에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안그래도 호르헤 비델라에게 우승을 못하면 총살시켜버리겠다면서 협박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라도나를 차출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마라도나는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했다.

1982년 FIFA 월드컵

월드컵에 첫 발을 내디딘 마라도나가 속한 당시의 아르헨티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팀이었다. 1978년 FIFA 월드컵을 우승으로 이끈 뛰어난 축구선수 마리오 켐페스에다가 마라도나까지 가세한 아르헨티나팀에게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당시 축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켐페스와 마라도나 둘 중 하나만 있어도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아르헨티나는 이 둘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나 극강의 팀임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는 이 시기에 자국 내에서 포클랜드 전쟁이 벌어진 상황이었고 이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항복하는 바람에 팀 내부의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으며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제 실력을 하나도 발휘하지 못하고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벨기에에게 패했다. 그래도 디팬딩 챔피언다운 저력을 보이며 간신히 2라운드에 진출했지만 2차 리그 브라질전에서 마라도나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조국이 잉글랜드에게 패배한 것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상대 선수에게 린치를 가하는 바람에 퇴장당했으며 아르헨티나는 지난 대회 우승 팀의 자격으로 본선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2라운드 탈락이라는 쓰디쓴 결과물을 맞이해야 했다. 2라운드에서 마라도나를 비롯한 아르헨티나는 작전을 짜는 대신 락커룸 구석에서 내내 울다가 경기에 임했다.

한편 잉글랜드 역시 2라운드에서 서독에 밀려 탈락하여 아르헨티나잉글랜드가 본선에서 만나 맞대결을 하여 제2의 포클랜드 전쟁을 기대했던 축구팬들은 다소 실망하였다.

1986년 FIFA 월드컵

마라도나는 1982년 월드컵 당시의 부진을 씻고 1978년 FIFA 월드컵의 주장이었던 다니엘 파사레야, 레알 마드리드 CF호르헤 발다노 등과 함께 아르헨티나가 또 다시 정상에 오르게 하였고 자신 역시 화려하게 재기하는 데에 성공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차범근, 허정무 등이 있던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3-1로 승리했으며 지난 대회(1982년 FIFA 월드컵) 우승국이었던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는 골을 기록하며 1-1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불가리아와의 경기도 2-0으로 이기면서 아르헨티나는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전에서 엔초 프란체스콜리가 있는 우루과이를 만났지만 1-0으로 승리하며 8강에 올라갔다.

그리고 8강전에서 브라이언 롭슨, 게리 리네커 등이 있던 잉글랜드와 경기를 갖게 되었다. 이 경기 당일 양팀 응원단끼리 패싸움을 벌이는 등 초반 분위기부터 엄청나게 험악했다.

이 상황으로 인해 경기 당일 경기장에는 많은 숫자의 경찰들이 배치되기도 했으며 양팀 선수들간의 분위기 역시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상황 속에 치러진 경기에서 첫 골은 아르헨티나 쪽에서 득점하였는데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마라도나가 피터 실턴 골키퍼와의 경합 도중 손으로 골을 넣은 것이었다. 이 사건은 월드컵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추한 행동인 신의 손 사건이 되었다.

디에고 마라도나의 8강전(vs. 잉글랜드) 첫 번째 골 진행 방향

그런데 심판들은 이상하게도 이 골을 득점으로 인정했는데 이로써 아르헨티나가 앞서게 되었다.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첫 골을 넣었지만, 불과 단 4분 후 마라도나는 이 불명예스러운 골을 단번에 만회할 만큼 멋진 골을 성공해 냈다. 혼자 수비수 6명을 한꺼번에 제치고 파고들어 슛을 날린 것이 성공한 것이었다. 이후 게리 리네커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 경기는 그 점수로 종료되어 아르헨티나가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 경기를 더할 나위 없는 포클랜드 전쟁의 복수라 생각하게 되었는데, 두 골 중 한 골은 명백한 사기행위를 저지름으로서 영국인들을 분노케 했고, 다른 한 골은 잉글랜드라는 팀을 개인 기량만으로 완벽히 농락한 골이었기 때문이다.

준결승에서도 아르헨티나는 엔조 시포가 있던 벨기에전에서도 2골을 넣으면서 팀이 2-0으로 이기게 했는데, 이러한 마라도나의 활약에 벨기에 감독은 "마라도나를 막으려면 12명의 선수가 필요하다."라고까지 말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결승에서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로타어 마테우스, 루디 푈러가 있는 서독을 상대로 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마라도나와 호르헤 발다노의 맹활약으로 초반 2-0으로 앞섰다. 그러나 교체 투입된 서독의 루디 푈러 또한 만만치 않게 활약하여 푈러로 인하여 점수는 2-2가 되어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때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부루차가가 골을 성공하여 경기는 3-2로 아르헨티나가 승리함으로써 아르헨티나는 2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마라도나는 그 눈부신 활약으로 멕시코 월드컵에서 MVP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1990년 FIFA 월드컵

지난 대회 우승국의 자격으로 출전한 아르헨티나임에도 불구하고 로제 밀라가 있던 카메룬과의 경기에서 오맘 비크의 일격을 받아 0-1로 패배하였다. 그리고 리나트 다사예프가 있던 소련을 2-0으로 이기고 게오르게 하지가 있던 루마니아와 1-1로 비기면서 아르헨티나는 1승 1무 1패의 전적으로 조 3위로 16강에 턱걸이 진출을 하는 수모를 겪었다.

16강에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을 만나 클라우디오 카니히아의 결승골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는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로베르트 프로시네치키, 데얀 사비체비치 등이 있던 유고슬라비아를 맞아 양 팀 모두 골을 못 넣은 체 승부차기까지 고전 끝에 그가 3번째 주자로 나와 실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3-2로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준결승에서 개최국 이탈리아를 만났고, 대회 득점왕인 살바토레 스킬라치가 먼저 골을 넣었지만 클라우디오 카니히아가 만회 골을 넣으면서 1-1, 결국 8강과 마찬가지로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 이때 마라도나는 4번째 주자였는데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까지 4명의 키커가 모두 성공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4번째 주자인 로베르토 도나도니와 5번째 주자인 알도 세레나가 모두 실축하여 아르헨티나의 5번째 주자에게는 승부차기의 기회가 오지 않은 채로 아르헨티나의 결승 진출이 확정되었으며 그렇게 이 경기가 종료되었다.

결승전에서는 또다시 서독과 겨루게 되었지만 아르헨티나는 2명이 퇴장당하였고, 후반 막판에 페널티골을 허용하여 준우승에 그쳤다.

1994년 FIFA 월드컵

"펠레가 여러차례 월드컵 제패를 이룩함과 동시에 축구의 범대중화를 이끌며 축구계에 첫번째 혁명을, 요한 크라이프가 토탈풋볼로서 전술적인 혁신을 일으키며 두번째 혁명을, 지단이 각 대륙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아트풋볼로서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보이며 세번째 혁명을 일으켰다면 마라도나는 경기장에 선 그 자체가 혁명이었다. "

- 아리고 사키 -

남미예선에서 이미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0-5라는 기록적인 대패를 당하고 플레이오프로 떨어졌다. 거기서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겨우 이기고 본선에 진출했다. 이 때문에 이 당시 축구관계자들은 콜롬비아를 1994년 FIFA 월드컵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았고 반면 아르헨티나는 우승후보에서 제외되는 분위기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에서 마라도나는 조별 예선 리그 2번째 경기가 종료된 시점에서 도핑 테스트 결과 코카인 양성 반응에 걸려 리그 도중에 아르헨티나로 귀국했고, 마라도나를 잃은 아르헨티나는 세 번째 경기에서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를 앞세운 불가리아에게 패배하며 2승 1패의 전적으로 와일드 카드를 통해 16강에 간신히 진출했으나 16강전에서 게오르게 하지를 앞세운 루마니아에게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이 월드컵이 마라도나의 현역 시절 마지막 월드컵 대회가 되었다.

감독 경력

국가 대표팀 경력

2010년 FIFA 월드컵

마라도나는 감독으로서 그의 자질은 초반에는 선수로서의 자질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노출되었다.

2010년 FIFA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에서 볼리비아를 상대로 경기시작 2시간을 앞두고서야 간신히 선수소집을 완료하는 바람에 현지적응에 실패하여 1-6으로 완패하고, 특히 에콰도르를 상대로는 0-2로 패하여,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 위기에 몰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우루과이를 누르고 간신히 자력진출에 성공했다.

그 원인은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의 감독이 된 이후 50여 명의 선수들을 돌려가면서 기용하면서 선수들의 특성을 무시한 채 아무렇게나 포지션을 정해준 탓이다. 이 때문에 리오넬 메시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었으며 아르헨티나는 남미 지역 예선에서 한수 아래의 팀들인 파라과이, 칠레, 볼리비아 등에게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이다.[2]

하지만 그 이후 마라도나는 아예 대놓고 메시에게 메시가 원하는 포지션을 부여한다고 제안했다. 메시는 최전방에서 약간 뒤로 처지는 공격수로 전방보다는 약간 후방에서 활약하기를 원했다. 마라도나는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였으며 매 경기 다른 전술을 선보였다. 또한 그 이후의 모든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있다. 2010년 3월에 치러진 평가전에서는 뮌헨에서 치러진 독일과의 시합에서 시종일관 압도하며 1-0으로 신승을 거뒀으며 또한 캐나다를 상대로는 리오넬 메시와 가브리엘 밀리토를 뺀 상태에서 5-0 대승을 거두는 등 아르헨티나는 평가전을 전승으로 이끌었다.

마라도나는 이후에도 리오넬 메시가 원하는 대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구조를 변경했으며 심지어는 메시가 경기에 임하기 편하게 FC 바르셀로나의 전술을 차용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전술이 대성공으로 이어진 데다가 앙헬 디 마리아가 결장 해제되고 곤살로 이과인까지 팀에 합류시키자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력은 지역예선때와는 달리 수직상승하여 2010년 1월 이후에 치러진 모든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전승을 기록하게 되었다.

마라도나와 코치진은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르헨티나 진영의 측면 공격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미리 파악하고 대한민국 팀의 공격을 원천봉쇄했으며 승리를 거두었다.[3] 또한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후보 선수 위주로 엔트리를 짜서 내보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2-0으로 이기고 조별리그 3전 전승의 기록을 달성했다. 마라도나는 이 경기에서 경고누적을 우려하여 일부러 결장시킨 마스체라노를 대신하여 메시에게 주장완장을 착용시켜 주었다. 이 덕분에 대한민국은 16강에 안착했다.[4]

16강에 진출한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멕시코를 상대로 첫 골은 테베스의 오프사이드였으나 골로 인정되었다. 이로 인하여 멕시코를 손쉽게 제압했다. 그러나 8강에서 독일을 상대로 훨씬 많은 유효슈팅을 쏘고도 독일에게 대패를 당했다. 특히 세르히오 로메로는 그 경기에서 2개의 상대 유효슈팅 중 1개꼴로 실점을 하는 치욕을 겪었다. 결국 마라도나는 이 문제와 아르헨티나의 입장에서 한수 이상 아래인 독일에게 2대회 연속 패배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탓에 자질부족으로 판정되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축구감독직에서 퇴출당했다. 특히 앙헬 디 마리아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포지션으로 그라운드에 올려보낸 것과 에스테반 캄비아소를 아예 아무 이유 없이 엔트리에서 제외시킨 점은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마라도나의 축구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사실상 바닥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국가대표 소속 선수들이 속해있는 클럽팀과의 연계능력도 심각하게 부족해서 2010년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볼리비아전을 앞둔 상황에서는 선수 소집을 못하고 쩔쩔매다가 경기시작을 2시간을 남겨둬서야 라파스에 도착하게 만들어서 팀을 역사에 길이 남을 점수인 1-6으로 대패를 하게 만들었으며 쓸데없이 고집만 부려서 브라질과의 홈경기는 그냥 기존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해도 상관없는 것을 일부러 로사리오를 고집해서 역시 1-3으로 패배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후안 로만 리켈메와는 사소한 것으로 다투어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시켰으며 누가 생각해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야 마땅했던 에스테반 캄비아소, 페르난도 가고[5], 하비에르 사네티 등을 대거 제외시키고 그 자리에 자기가 좋아하는 니콜라스 오타멘디와 실력은 있지만 잦은 부상으로 활용도가 낮은 왈테르 사무엘을 포함시켜서 수비 조직력을 붕괴시켰다. 특히 하비에르 사네티의 경우는 마라도나 본인 혼자만의 잘못으로 볼리비아에게 1-6 대패를 당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경질당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그 책임을 사네티에게 뒤집어씌워서 국가대표 엔트리에서 퇴출시켰다. 이는 마라도나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으로 마라도나는 SSC 나폴리에서 선수생활을 할 당시 세금을 한 번도 낸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마라도나는 이탈리아에 가기만 하면 귀금속이나 현금을 몰수당했다. 이 때문에 마라도나는 이탈리아를 방문하기 점점 힘들어졌으며 이로 인하여 이탈리아 리그의 선수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검증이 불가능한 선수들 대신 자국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 중에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선수들 위주로 엔트리를 짠 것이었다. 결국 세계 최고의 선수들인 리오넬 메시, 곤살로 이과인, 세르히오 아구에로, 앙헬 디 마리아, 카를로스 테베스등 거의 세계 올스타 수준의 선수진을 이끌고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8강전에서 독일에게 4골이나 허용하면서 0-4로 대패하였다.

요컨대, 마라도나는 늘상 축구를 더럽힌 적이 없다고 말한 것과는 달리,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축구를 철저하고 확실하게 더럽혔다.

알와슬

현재는 UAE 1부 리그 알와슬에서 감독을 맡다가 2012년 7월 11일, 감독직에서 경질되었다. 경질 사유는 감독으로서 지나치게 무능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는 가는 곳마다 축구감독 제안을 거절당하고 있다.

기타

2006년, 마라도나
  • 마라도나는 반미주의자로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우고 차베스, 쿠바의 정치인 피델 카스트로 등의 반미주의 정치인들을 지지하며 특히 미국의 전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아돌프 히틀러와 동급으로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마라도나는 버락 오바마에게 많은 희망을 걸고 있으며 오바마의 지지자가 되었다.
  •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한민국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그는 허정무에게 발길질로 걷어차여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경기 내내 허정무에게 발길질로 계속 구타를 당하던 마라도나는 대한민국과의 경기를 3-1로 승리함으로써 종료하자마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에게 태권도로 두들겨 맞았다고 호소했다. 이를 두고 태권 축구라고 한다.[6]
  •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신의 손’으로 득점했다.[7]
  • 그 직후, 하프라인 부근부터 50여미터를 홀로 드리블로 골키퍼 포함, 총 여섯명의 상대 수비를 돌파하여 경이적인 골을 만들어 냈다.[8]
  • 1990년 FIFA 월드컵 당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으로서 준결승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시합하게 되었다. 이 때, 마라도나는 관중석을 향해 "나폴리 국민들이여, 북녘의 주적들을 응원하지 말고 나폴리의 진정한 친구인 아르헨티나를 응원해 다오!"라고 외쳤다. 경기 결과는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가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마라도나의 관중석을 향한 외침이 이탈리아 조직위원회의 성격을 건드리게 되어, 결국 이탈리아 조직위원회는 대놓고 아르헨티나의 결승전 상대인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을 우승시켜 주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고, 결승전이 시작되자 논란의 퇴장을 아르헨티나 선수 2명에게 내린데 이어, 안드레아스 브레메에게 논란의 페널티킥까지 주어 성공시킴으로써, 결국 아르헨티나는 서독에게 0-1로 지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 자신을 과잉 취재하는 기자에게 공기총을 발사했다.
  • 1998년 10월 30일, 그가 38번째 생일을 맞이하던 그날 그를 신으로 숭배하는 마라도나교가 창시되었다. 최근 축구 선수 카를로스 테베스가 이 종교의 사도로 임명되었다고 한다.[9][10] 이는 마라도나가 직접 창시한 것은 절대 아니다.
  • 2001년에 영화 마이크 바셋[11]2008년 축구의 신:마라도나 라는 두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 코카인 중독으로 사경을 헤맸던 마라도나는 2005년 3월 5일 콜롬비아카르타헤나의 메디헬프 병원에서 위 절제 수술을 받았다. 수술 당시 마라도나는 키 168cm에 몸무게는 121kg까지 나갔으나 1년 만에 50kg을 감량했다.
  • 2005년 12월 22일에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제 공항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5시간 동안 구류되었다. 지쿠의 초청으로 12월 21일에 열렸던 자선 경기에 참가했던 마라도나는 공항 터미널을 착각하여 탑승구에 늦게 도착했다. 직원이 너무 늦게 도착해서 비행기에 탈 수 없다는 말을 하자, 마라도나는 격렬히 항의하면서 탑승구의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등 난동을 일으켰다.
  • 2006년 축구 월드컵 이후에는 조국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벌어지면 어디든 달려가서 열렬하게 응원했다.
  • 2007년 아르헨티나 국영방송 채널 13번에서 10번의 밤이라는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었는데 첫 게스트로 펠레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는 마라도나가 사용했던 등번호 10번을 영구 결번 처리를 하려 하였으나 FIFA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그 등번호는 리오넬 메시가 계승했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2008 베이징 올림픽의 축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자 결승에서 패배한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선수들은 마라도나를 모셔와 자신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 마라도나의 둘째 딸인 지아니나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인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결혼하여 2009년 2월 19일 아들 벤자민을 낳았다. 벤자민은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아들이자 마라도나의 외손자이다. 그러나 이 부부는 2013년이 되자마자 이혼했으며 벤자민은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결정되었다. 한편, 마라도나는 이혼을 한 세르히오 아구에로에 대해 계속 저주를 퍼부었으며, 특히 일반인들이 모여있던 길거리에서 아구에로를 비난하는 욕설을 내뱉고 빈 병을 던지는 등의 행패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12]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 후보답지 않게 간신히 2010 FIFA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을 통과하자 기자회견장에서 마라도나는 이를 마치 자신의 공로인 양 떠벌리며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것들을 제외한 모든 분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발언한데 이어 "나와 대표팀을 믿지 못하는 기자와 언론 사람들은 엿이나 먹어라!"라는 욕설까지 대놓고 함으로써 기자회견장의 분위기에 찬물을 크게 끼얹었다.[13] 이에 대해 FIFA에서는 욕설로 물의를 일으킨 마라도나에 대해 자격정지 2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14] 한편 이런 마라도나의 행동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선수들마저 이미 마라도나에게 등을 돌린 상태이며 심지어 카를로스 테베스는 "마라도나에게 시달리는 게 너무나 힘들어서 대표팀에서 더 이상 견딜 자신이 없다. 언론과 팬들이라도 우리들의 이 힘겨운 상황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나도 은퇴할 지도 모른다."[15] 라고 발언했다.
  • 마라도나는 이탈리아에서 현역 선수시절에 3000만 유로에 해당되는 세금을 탈세했기 때문에 그가 이탈리아를 방문할 때마다 귀걸이, 손목시계, 목걸이 등 예물을 몰수당했다. 이 중 2009년 9월에 몰수당한 귀걸이는 2010년 1월 14일 경매에 나왔고 이를 한 여성이 25,000유로에 구매해 갔다.[16]
    • 이러한 마라도나의 상황이 그가 감독으로서 활동하는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뛰는 자국 선수들 중에 상당수를 검증할 수가 없었으며 그 결과 에스테반 캄비아소에르난 크레스포는 엔트리에 포함시키기 위한 테스트조차 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에 입국했을 경우 몰수당하는 금액이 감독으로서 자신의 급여보다 더 큰 액수의 금액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때문에 에스테반 캄비아소 대신 니콜라스 오타멘디를 엔트리에 포함시켰으며 결국 아르헨티나는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8강에 머물러야 했다.
  • 축구감독으로서 마라도나는 전반적으로 미흡하다. 2010년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볼리비아의 원정경기에서는 선수소집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현지적응훈련도 제대로 못하고 결국 경기시작 2시간 전에야 선수소집을 완료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볼리비아에게 1-6으로 대패를 당했다. 또한 홈그라운드 선정을 잘못해서 브라질에게 홈에서 1-3으로 패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탈리아에서 선수로 뛸 당시 세금을 아예 안내는 바람에 이것이 원인이 되어 인테르 등 이탈리아 리그팀 소속 선수들을 테스트하지 못하고 국내 리그 선수들로 대체하는 바람에 심각한 수비적인 어려움에 시달렸고 결국 팀은 졸전 끝에 8강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거의 공짜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고 탈락했다.
    • 선수 선발을 오직 자기 기분내키는 대로 선발했다.
      • 하비에르 사네티는 자신이 지역예선 볼리비아전에서 선수 소집과 스켸쥴 조정을 게을리 하는 바람에 소속구단에 제대로 통보를 못해서 경기시작 2시간만에 완료하여 선수들간 손발도 제대로 맞춰보지 못한 채 뛰어서 1-6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패배를 당하게 만들고 나서는 모든 책임을 사네티에게 뒤집어씌우고 면피용으로 사네티를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 에스테반 캄비아소는 그냥 제외시켰다.
      • 후안 로만 리켈메에게는 사소한 것으로 시비를 걸고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 반면 니콜라스 오타멘디하비에르 파스토레는 그냥 친하니까 엔트리에 넣었다.
    •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역예선에서 1994년 FIFA 월드컵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그나마도 자력진출을 못하고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겨서야 간신히 본선에 직행했다.
    • 마라도나는 포메이션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감독이다. 그 때문에 그가 포메이션을 짜 놓으면 특정 방향으로 선수들이 기울어서 반대 방향은 텅 빈 상태가 되었다. 2010년 FIFA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패배한 팀들은 선수 개개인간의 격차가 매우 심한 팀들 뿐[17] 으로 정작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과 선수 개개인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게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손에 꼽는 기록적인 패배를 당했다.
    •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이 이끄는 팀은 그 어떠한 팀이라 할지라도 역전승이 절대로 불가능한 팀이었다. 화려한 선수들로 기선을 제압하기만 할 뿐인 마라도나식 전술에는 리오넬 메시 같은 뛰어난 스타 플레이어에게 주눅이 든 팀들을 상대로는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으나 리오넬 메시에게 주눅이 들지 않는 팀에게는 무조건 고전했다. 특히 동급인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원정경기에서 마음껏 갖고 논 끝에 3-1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며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6-1로 대파했다. 특히 볼리비아는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단지 선제골 1골만 넣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이로 인하여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가 엄청난 졸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앙헬 디 마리아가 퇴장당하자마자 아주 힘없이 자멸했다. 마라도나가 지휘하는 팀들의 모든 경기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선제골을 넣어도 역전당해서 패하는 경기는 있어도 선제골을 당하면 절대로 역전을 못한다는 점이다. 2014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똑같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똑같은 상황에 몰린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이 마지막 30분동안 3골을 내리 넣어 결국 무승부를 만든 것과는 아주 대조된다. 선제골을 당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압도적인 선수들의 능력에 의지하여 경기를 풀어나갔으나 선제골을 당하거나 역전을 당하면 전혀 달라져서 그냥 힘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FIFA 월드컵 관련 경기에서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패배한 사례는 마라도나가 감독이었을 때가 유일하다.
연도 라운드 아르헨티나 칠레 결과 아르헨티나 감독 칠레 감독
우루과이 1930년 조별리그 3 1 아르헨티나 승 아이모헤 모헤이라/후안 호세 트라무톨라 괴르기 오르츠
스웨덴 1958년 지역예선 1차전 2 0 아르헨티나 승 기예르모 스타빌레 레디살로 파코찌
스웨덴 1958년 지역예선 2차전 4 0 아르헨티나 승 기예르모 스타빌레 레디살로 파코찌
프랑스 1998년 지역예선 1차전 1 1 무승부 다니엘 파사레야 넬슨 아코스타
프랑스 1998년 지역예선 2차전 2 1 아르헨티나 승 다니엘 파사레야 넬슨 아코스타
대한민국일본 2002년 지역예선 1차전 4 1 아르헨티나 승 마르셀로 비엘사 페드로 가르시아
대한민국일본 2002년 지역예선 2차전 2 0 아르헨티나 승 마르셀로 비엘사 호르헤 가르세
독일 2006년 지역예선 1차전 2 2 무승부 호세 페케르만 넬슨 아코스타
독일 2006년 지역예선 2차전 0 0 무승부 호세 페케르만 넬슨 아코스타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년 지역예선 1차전 2 0 아르헨티나 승 알피오 바실레 마르셀로 비엘사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년 지역예선 2차전 0 1 칠레 승 디에고 마라도나 마르셀로 비엘사
브라질 2014년 지역예선 1차전 4 1 아르헨티나 승 알레한드로 사베야 클라우디오 보르기
브라질 2014년 지역예선 2차전 2 1 아르헨티나 승 알레한드로 사베야 호르헤 삼파올리
합계
  • 마라도나는 크로아티아계 쿼터 혼혈인데, 이는 그의 할머니의 아버지가 크로아티아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아르헨티나로 건너와서 마라도나의 할머니가 태어났다.
  •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자 마라도나는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하면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 한복판에서 벌거벗고 세레모니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 2차전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 직전에 박지성을 만나자마자 박지성에게 뜨겁게 포옹을 했다.
  • 리오넬 메시의 생일이 다가오자 마라도나는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 3차전에서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원래 주장인 마스체라노를 벤치에서 쉬게 조치한 다음 메시에게 생일선물로 주장완장을 부여했다. 이로써 메시는 2010년 FIFA 월드컵 최연소 주장이 되었으며 메시의 축구인생 역사상 처음으로 주장의 자격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 앙헬 디 마리아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자신에게 전혀 맞지 않는 포지션을 부여한 것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 남미 지역예선에서의 잇달은 패배, 아무렇게나 정한 포지션(특히 앙헬 디 마리아), 월드컵 본선에서 독일에게 0-4로 대패(특히 이 경기에서 유효슈팅은 13대 8로 오히려 아르헨티나쪽이 훨씬 많았다.) 등 감독으로서 문제점이 원인이 되어 결국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로부터 감독직을 박탈당했다. 마라도나가 이끌고 있던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본선에 올라온 이후부터 독일에게 패하기까지 전승을 기록했으며 특히 2010년 FIFA 월드컵 모든 경기 중에서 해트트릭은 아르헨티나 대 대한민국전에서 곤살로 이과인이 달성한 해트트릭이 유일했다.
  • 일각에서는 그가 리오넬 메시를 심각하게 질투했기 때문에 고의로 성의없게 감독직을 수행했으며 독일에게는 고의로 패배해 줬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딴지일보에서 마라도나를 평하기를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도 스쿼드에 구멍이 없는데, 감독 스스로가 구멍인걸 넘어서 알아서 스쿼드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라든가 "그냥 중간만 가도 졸라 무서울 팀이 하나도 안무서운 팀이 되버렸다."[18] 라고 묘사해가면서 마라도나가 고의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력을 약화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2010년 10월 27일, 그 전날 독일의 점쟁이 문어 파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마라도나는 "잘 죽었다"며 악담을 퍼부었다. 당시 파울이 독일을 승자로 지목했고, 지목한 대로 아르헨티나가 독일에 대패했기 때문이었다.[19]
  • 그에게는 디에고 시나그라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자신이 아들에게 의절을 요구해서 의절된 상태이다. 다만 마라도나는 자신의 아들에게 부양비만은 꾸준히 송금하고 있다. 아들인 시나그라는 아직도 아버지인 마라도나에게 아들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한편 시나그라는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축구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못해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뽑히기는커녕 세리에에서조차 2부 리그를 전전하고 있다.
  • 2013년 2월 13일 득남했다.[20]
  • 2013년이 되자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이에 대한 경력조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세계최강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수 아래의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1-6, 두 수 아래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21]에게 0-4로 대패를 당한 전력이 드러나자 바로 이라크 축구협회는 마라도나에게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수행을 취소하고 그 자리에 이라크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하킴 샤키르를 내정하였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세계축구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간주된 마라도나는 모든 종류의 국가대표 축구팀의 감독을 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클럽도 이름없는 클럽만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22] 결국 2010년 FIFA 월드컵 당시 너무 엉망으로 팀을 운영하였으며 특히 엔트리를 일반인이 편성한 것보다도 못하게 매우 엉망으로 편성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가 부진한 것을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축구협회에서 마라도나는 국가대표 감독직 기피대상 0순위 인물이 되었다.[23]
  • 2013년 초에 마라도나가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수행해 주겠다고 나서자 모든 사람들이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팬들은 "너 따위가 메시를 죽일 권한은 없다."[24] 라고 말하며 항의했고 헤라르드 피케는 마라도나를 비웃었다. 다만 리오넬 메시는 그래도 한때나마 자기가 모셨던 감독이었던 탓에 마라도나에 대한 일체의 비방은 하지 않았지만 "하늘이 두쪽나더라도 마라도나가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담당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2013년 U-17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따위는 절대 응원하지 않겠다. 나는 아랍에미리트를 내 조국으로 인식하고 응원하겠다."고 발언하여 아르헨티나 내부에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25] 이유인 즉,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와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며 이로 인하여 아르헨티나 사람들조차 마라도나에 대해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볼리비아와 독일에게 어이없는 대패를 당하게 만들었더니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다."고 마라도나를 평가하기도 했다.
  • 인간성에 큰 결함이 있는 사람이며 참을성이 부족하고 화를 매우 잘내는 성격으로 악명이 높다. 게다가 마라도나는 주먹도 쉽게 휘두르는데 이런 점 때문에 197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을 정도였다. 마라도나는 자신의 주먹을 너무 쉽게 휘둘러서 여러번 낭패를 봤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FC 바르셀로나에서 방출당한 원인을 제공하게 만든 폭력사태와 1982년 FIFA 월드컵 2라운드 브라질전에서 아무 이유없이 브라질 선수를 폭행해서 퇴장당한 사건 등이다. 이 정도로 마라도나는 주먹을 쉽게 휘두르는 성격이라 인격에 결함이 많다.
  • 2014년 FIFA 월드컵 준결승에서 브라질이 독일에게 1-7이라는 다시 없을 점수 차의 대패를 당하자 마라도나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비웃었으며, 특히 손가락 7개를 펴보이며 미소를 찍은채로 인증샷을 찍어서 브라질 축구팬들의 속을 확 긁어놓았다. 그것도 모자라서 펠레 "브라질은 201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우승한다."라고 말하자 오히려 펠레를 비웃었으며, 이에 대한 답변으로 한다는 말이라는 게 "웃기고 자빠졌네!"였다.[26]
  • 2014년 FIFA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자청하며 나섰으나 베네수엘라 축구협회에서는 마라도나가 자질이 심각하게 부족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자국의 축구영웅을 감독으로 내정하고 베네수엘라팀의 감독을 하기를 원하는 마라도나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27]
  • 2014년 8월 9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국립 극장에서 공연 관람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에 자신이 탄 차를 가로막고 질문하는 취재 기자에 대해 뺨을 때렸다. 취재 기자가 마라도나의 연인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집요하게 질문을 한 것이 그 이유였다.[28]

경력

수상

국가대표

개인

관련 항목

각주

  1. 한준 (2008년 10월 29일).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대표팀 새 감독으로 선임”. 스포탈코리아. 2008년 10월 29일에 확인함. 
  2. 마라도나호에 ´최강 메시´는 없다?!
  3. 우리 전술 완전히 읽혀… 무리하게 만회골 노리다 자멸
  4. 네이버 스포츠 - 2010 남아공으로!
  5.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알레한드로 사벨라 감독이 다시 불러 기용했는데 가고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에 버금가는 활약으로 팀을 이 월드컵 결승전까지 끌어올렸다.
  6. 마라도나 "태권 축구 허정무 기억한다" - 연합뉴스
  7. Maradona Hand of God - youtube
  8. Don't Cry for me England - Maradona 1986 - youtube
  9. 돌아온 마라도나
  10. 칸찾은 마라도나, "그라운드의 중심에서 정치를 외치다"
  11. 마이크 바셋 :: 네이버 영화
  12. 마라도나, 전 사위 아구에로에 육두문자
  13. 마라도나, '욕설 파문' 징계 위기
  14. `욕설 파문' 마라도나, 2개월 자격정지
  15. 테베스 "아르헨 대표팀 은퇴 할 수도"
  16. 압류당한 마라도나 귀걸이 4000만원에 팔려
  17.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등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보다 인적자원이 부족한 팀들뿐이었다.
  18. 월드컵 아는척 메뉴얼! 딴지일보 2010-06-09
  19. 마라도나, '점쟁이 문어' 파울 죽음에 "잘 죽었다" 악담
  20. 마라도나, 53세에 5번째 아들 '정력왕 등극'
  21. 2010년 FIFA 월드컵 당시 독일을 격파한 세르비아는 2006년 FIFA 월드컵 시절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라는 명칭으로 출전했던 팀으로써 아르헨티나에게 0-6으로 대패를 당한 전력이 있었다.
  22. 이라크 대표팀 감독, 마라도나 아닌 샤키르
  23. 사실 2010년 FIFA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엔트리를 짜기 너무나 쉬운 팀이었다. 자신없으면 그냥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멤버 전원과 곤살로 이과인, 하비에르 사네티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엔트리 편성을 해도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이 쉬운것도 못하는 마라도나였기 때문에 이라크같이 강팀도 아닌 국가대표팀조차 마라도나는 외면하는 것이다.
  24. 마라도나, "바르샤 감독 원해...사람들 메시 죽일 권리 없어"
  25. 영웅의 배신… 마라도나, “아르헨 응원하지 않겠다
  26. 마라도나 "독일이 브라질 가지고 놀았다" 손가락 7개 세운 이유가…
  27.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 마라도나 감독 선임 무산
  28. 기자 뺨 때린 ‘축구의 신’ 마라도나 논란
  29. 분야는 다르지만 행적은 동일했다.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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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파올로 로시
제2대 FIFA 월드컵 골든볼
1986년
다음
 이탈리아 살바토레 스킬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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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프레벤 엘케르
제3대 FIFA 월드컵 브론즈볼
1990년
다음
 불가리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이전
독일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제2대 FIFA 월드컵 실버슈
1986년
공동 실버슈
브라질 카레카
스페인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다음
 체코슬로바키아 토마시 스쿠라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