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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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
경기 1986년 FIFA 월드컵
날짜 1986년 6월 22일
장소 멕시코시티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심판 알리 빈 나세르 (튀니지)
관중수 114,580

신의 손(神 - , 스페인어: La Mano de Dios)은 , 아르헨티나잉글랜드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 경기 도중, 디에고 마라도나가 터뜨린 골을 말한다. 마라도나가 골키퍼와 헤딩 경합하면서 손으로 공을 건드리는 반칙을 했으나 주심은 이를 득점으로 인정했다. 이 골은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 축구 팀 사이의 라이벌 관계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는 사건 중의 하나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6월 22일마라도나교의 오순절이다.

배경[편집]

아르헨티나는 영국계 이주민들에 의해 19세기에 축구를 접하게 되었다.[1]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악연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준준결승 경기에서 홈팀 잉글랜드는 아르헨티나와 맞붙어 경기 종료 12분 전에 터진 제프 허스트의 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장 안토니오 라틴은 독일인 주심에게 퇴장 명령을 받았다. 라틴은 이에 불복해 주장 완장을 보이며 통역을 부를 것을 요구했고, 10분 동안이나 그라운드에서 나가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 잉글랜드 감독은 선수들에게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유니폼을 교환하지 말도록 지시했고,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짐승들’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라이벌 관계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해서 더욱 심화되었는데, 이런 와중에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이 터진 것이다.

사건 개요[편집]

1986년 6월 22일
12:00 (CST)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2 : 1 잉글랜드 잉글랜드 멕시코시티,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관중수: 114,580명
심판: 알리 빈 나세르 (튀니지)
마라도나 득점 51'55' 리포트 리네커 득점 81'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GK 18 네리 품피도
DF 5 호세 루이스 브론
DF 9 호세 쿠치우포
DF 19 오스카르 루헤리
MF 2 세르히오 바티스타 60분에 경고를 받음 60'
MF 7 호르헤 루이스 부르차가 75분에 교체로 나옴 75'
MF 10 디에고 마라도나 득점 51'55' (주장)
MF 12 엑토르 엔리케
MF 14 리카르도 기우스티
MF 16 훌리오 올라르티코에체아
FW 11 호르헤 발다노
교체 명단:
MF 20 카를로스 타피아 75분에 교체로 들어감 75'
감독:
아르헨티나 카를로스 빌라르도
잉글랜드
잉글랜드:
GK 1 피터 실턴 (주장)
DF 2 게리 스티븐스
DF 3 케니 샌섬
DF 14 테리 펜윅 9분에 경고를 받음 9'
DF 6 테리 버처
MF 4 글렌 호들
MF 16 피터 리드 69분에 교체로 나옴 69'
MF 17 트레버 스티븐 74분에 교체로 나옴 74'
MF 18 스티브 하지
FW 10 게리 리네커 득점 81'
FW 20 피터 비어슬리
교체 명단:
FW 11 크리스 웨이들 69분에 교체로 들어감 69'
FW 19 존 반스 74분에 교체로 들어감 74'
감독:
잉글랜드 보비 롭슨

과정[편집]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 그림 요약

1986년 6월 22일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는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서 격돌했다. 전반 경기는 득점 없이 끝났으나 후반전 아르헨티나가 첫 골을 뽑아냈다. 후반전 6분경 마라도나는 잉글랜드 벌칙 구역 근처에서 호르헤 발다노와 2:1 패스를 시도했으나 공은 잉글랜드 왼쪽 미드필더였던 스티브 호지의 발에 굴절되며 벌칙 구역 안으로 붕 떠서 날아올랐다. 이때 벌칙 구역에 단독으로 침투한 마라도나는 잉글랜드 골키퍼였던 피터 실턴과 1:1 상황에서 헤딩 경합을 했다. 당시 잉글랜드 선수가 마지막으로 공을 건드렸기 때문에 마라도나는 오프사이드가 아니었다. 마라도나는 키가 168cm에 불과한 반면, 쉴튼은 185cm였고 게다가 손을 쓸 수 있는 골키퍼였기 때문에 쉴튼이 마라도나보다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헤딩 경합 도중 왼손 주먹으로 공을 건드려서 공을 잉글랜드 골문에 밀어넣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주심이 이것을 득점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후에 경기의 주심은 자기는 손으로 넣었는지 머리로 넣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었으나, 선심에게 문의한 결과 손으로 넣은 것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골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격렬하게 항의했으나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 골은 결국 득점으로 인정되었고, 후에 마라도나가 다시 한 골을 추가해서 아르헨티나가 2-0으로 앞서게 된다. 잉글랜드는 게리 리네커가 한 골을 추격했지만, 결국 경기는 아르헨티나가 2-1로 승리하게 된다. 경기가 끝난 후 마라도나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골은 ‘신의 손에 의해서 약간, 나머지는 마라도나의 머리에 의해서’ 득점한 것이라고 답해서 논란은 더욱 심해졌다. 마라도나는 2002년에 발간된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 골은 손으로 넣은 것이라고 인정했다.

마라도나의 두 번째 골[편집]

한편, 마라도나는 이 경기에서 두 골을 터뜨렸는데 ‘신의 손’으로 기록한 첫 골 말고 두 번째 골은 마라도나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멋진 골이었다. 중앙선 근처에서 드리블을 시작한 마라도나는 5명의 잉글랜드 선수들을 한 명씩 드리블로 농락하고, 마지막에는 골키퍼 실튼까지 제치고 슛을 성공시켰다. 이 골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멋진 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2002년에는 ‘세기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마라도나가 이 경기에서 기록한 두 골을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골과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역대 월드컵 경기[편집]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는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다섯 번 마주쳤으며 현재 잉글랜드가 3승 2패로 다소 우위를 점한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잉글랜드와의 월드컵 경기를 포클랜드 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 1962년 월드컵 조별 경기: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친 것은, 1962년 6월 2일, 칠레 월드컵에서의 조별리그 4조 2차전 경기이다. 잉글랜드는 17분에 플라워스의 페널티골로 우위를 점한 뒤, 이어지는 42분과 67분에 보비 찰턴지미 그리브스의 골로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아르헨티나는 호세 산필리포의 만회골로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쳤다. 경기는 잉글랜드의 3-1 완승으로 끝났다. 이후 양팀은 조별예선 최종전에서 모두 무승부를 기록하였고, 이에 따라 잉글랜드는 조 2위로 브라질과 8강전을 치루게 되었고, 아르헨티나는 헝가리와 잉글랜드에 밀려 조별예선에서 조기 탈락하였다.
  • 1966년 월드컵 8강전: 잉글랜드가 78분 제프 허스트의 골로 1-0으로 승리하고 4강에 진출했다.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장 안토니오 라틴은 35분 퇴장 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10분 동안이나 그라운드에서 나가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 잉글랜드 감독 알프 람지는 선수들에게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유니폼을 교환하지 말도록 지시했고, 후에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짐승들’이라고 비난했다.
  • 1986년 월드컵 8강전: 마라도나의 두 골을 앞세워 아르헨티나가 2-1로 승리했다. 마라도나는 첫 골을 손으로 집어넣어 물의를 일으켰으나 전무후무할 정도로 훌륭한 두 번째 골도 기록했다. 80분 리네커의 골로 승부는 아르헨티나의 2-1 승리로 끝났다. 아르헨티나는 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 1998년 월드컵 16강전: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는 서로 전반전에만 각각 두 골씩을 성공시켰으나 후반전에는 득점을 하지 못했고 승부차기 결과 아르헨티나가 8강에 진출했다. 양팀의 간판 공격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앨런 시어러가 각각 페널티킥을 성공하는 등 경기는 초반부터 접전이었다. 당시 20살에 불과한 마이클 오언이 그림 같은 골을 터뜨렸으나 종료 직전에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하비에르 사네티가 득점하여 동점으로 만들었다. 후반전에는 데이비드 베컴이 아르헨티나의 노련한 수비형 미드필더 디에고 시메오네의 심리전에 말려들어 퇴장당했다. 승부차기 결과 양 팀에서 5명의 주자가 나섰는데 아르헨티나는 에르난 크레스포 혼자 실축한 반면 잉글랜드에서는 2명이 실축했다.
  • 2002년 월드컵 조별 경기: 마이클 오언마우리시오 포체티노를 상대로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데이비드 베컴이 성공시켜 1-0으로 잉글랜드가 승리했다. 그로 인해 아르헨티나는 1승 1패(승점 3)가 되면서 1승 1무(승점 4)인 잉글랜드보다 뒤쳐지게 되었으며 그 전에 나이지리아를 이겨 1승 1무(승점 4)가 된 스웨덴에게도 밀리며 탈락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마지막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나이지리아와 득점 없이 비겼음에도 불구하고 16강에 진출했고, 꼭 스웨덴을 이겨야만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는 1-1 무승부에 그치며 탈락했다.

비슷한 사건[편집]

마라도나의 신의 손 이후로도 축구계에서는 현재까지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특히 루이스 수아레스가 손을 자주 사용하여 언급되고 있는데 2010년 FIFA 월드컵 가나와의 8강전에서는 손으로 공을 막았고, 2013년 1월 7일 FA컵 리버풀맨스필드 타운의 경기에서는 공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쳐서 발 앞에 떨군 뒤 골로 연결했다.

대한민국에서의 신의 손[편집]

  • 1999년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부산 대우 로얄즈의 경기에서 전후반 1:1로 끝나 연장전까지 돌입한 상황에서 수원의 샤샤가 왼팔로 건드린 공이 그대로 골로 인정되었고 골든골이 적용되어 샤샤의 골이 결승골이 되어 수원의 2번째 리그 우승이자 리그 2연패를 달성하게 되었다. 이에 부산측에서는 항의가 있었고 향후 논란이 지속되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팔에 맞은 것은 맞으나, 워낙 공이 빨라 주심이 확인하지 못했고 샤샤의 반칙에 고의성이 없다는 판단하에 골로 인정하면서 논란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그 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샤샤는 이 여파로 인해 MVP를 준우승 팀인 부산의 안정환에게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2]
  • 1992년 K리그 일화 천마로 이적한 골키퍼 발레리 사리체프는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때문에 다른팀에서도 외국인 골키퍼를 구하는데 힘을 쏟았고 그로인해 국내 골키퍼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악영향 때문에 결국 외국인 골키퍼를 금지하는 방안이 내려졌다. 이에 사리체프는 2000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였고 이름을 자신의 별명이었던 신의손으로 개명하였다.

주석[편집]

  1. The conflict lives on Kuper, Simon; The Guardian; 25-02-02; Accessed 26-01-09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472604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