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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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중심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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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주의, 가톨리시즘(영어: Catholicism), 보편교회주의동서 교회의 분열이 일어난 11세기 이전의 초기 기독교, 즉 하나의 보편교회로 하나의 신앙 조직체, 보편적 기독교 신앙의 구성요소, 분리 이전의 신학과 교리, 전례와 윤리, 사상적, 실천적인 특징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기독교의 용어이다. 대한민국 신학계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 사상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 보편교회주의 또는 공교회주의로 번역한다.[1] [2] 가톨릭, 즉 보편적 교회는 이미 1세기 경부터 사용된 용어로 이후에는 주로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도 전승, 그리고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를 따르는 교회를 의미하였다.

11세기 5개 교회 연합체인 하나의 교회에서 유럽 서방의 로마교회가 분리되며 스스로를 보편교회 즉, 가톨릭교회라고 칭하며 로마가톨릭교회가 형성되면서 서방 로마가톨릭 교회의 보편교회 사상과 동방의 정교회의 보편교회 사상이 다르게 발전하였고, 이후 16세기 서방교회 내에서 복음에 바탕을 둔 보편적 교회를 재형성해야 한다는 개신교회의 등장으로 보편교회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근래 교회 일치 운동을 통해 전 세계 교회의 근본적 의미를 고찰하고 연합의 의미를 되살리며 가톨릭주의 즉, 보편교회주의는 점차 활기를 띄고 연구되고 공통적 요소의 재발견을 이루고 있으나, 여전히 교파별, 지역별로 보편교회에 대한 인식과 관점은 다르게 나타난다.

보편교회 용어의 유래[편집]

‘보편교회’라는 용어를 맨 처음 사용한 것은 1세기 경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35 - 107?)가 스미르나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간인 《스미르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이다. 그는 신자들이 자신들의 주교와 단단히 결속하기를 권고하고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보편)교회가 존재하듯, 주교가 있는 곳에 교회 공동체가 존재한다.”[3][4]

보편교회 용어에 대한 교파별 해석[편집]

오늘날 많은 기독교 종파들이 사도전승을 비롯하여 저마다 나름의 이유를 들어 보편적(가톨릭)이라고 주장한다. 스스로 보편 교회(가톨릭교회)라고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방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는 자신들이 초대 교회로부터 이어지는 사도전승을 지니고 있는 진정한 보편교회라 본다. 동방 정교회는 동방의 알렉산드리아 주교좌, 안티오키아 주교좌, 예루살렘 주교좌,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좌와 서방의 로마 주교좌 등 다섯 주교좌가 모두 동등하게 보편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연합하는 것이라고 본다.[5][6][7][8]

로마 가톨릭교회는 하나의 신앙 고백, 하느님 예배와 성사의 공통 거행, 성품성사를 통한 사도직 계승 그리고 전체 교회의 지도자인 교황과의 완전한 친교를 가톨릭주의의 필수적인 요소로 본다. 가톨릭교회는 크게 라틴 전례동방 전례로 나뉘어 있으며, 각자 독자적인 전통과 교계제도와 전례 양식을 갖고 있지만, 모두 교황과의 친교 아래 일치된 보편교회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9]

루터교성공회, 감리교 등의 개신교 종파들도 초대 교회부터 이어져 온 복음의 회복과 중요성을 진정한 사도 전승으로 보며, 복음을 회복하여 사도들의 전승이 담긴 성경과 그리스도 복음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진정한 보편교회라고 본다.

이밖에도, 일부 개신교와 몇몇 기독교 계열 신흥 종교들은 역사적인 사도 전승에 대한 인식은 없으며 가톨릭이라는 용어를 로마 가톨릭교회를 연상한다는 이유로 꺼려하며 스스로 보편 교회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초대교회로 회복한 사도들의 영적인 후계자라고 자처한다.

교회 역사의 대략적인 개론[편집]

펜타르키아 이론에 따르면, 초기의 기독교에는 로마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총대주교좌가 세워졌으며, 나중에 콘스탄티노폴리스예루살렘에도 추가로 세워지게 되었다. 로마 수도 시기에는 로마총대주교는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 가장 중요한 주교로 인식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아타나시우스는 동방 주교들이 티레 회의(335년)를 열어 자신에 대한 불신임을 결의하자 당시 로마주교 율리오 1세에게 상소하였다. 로마주교는 그 결의안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아타나시우스가 자신의 도시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천도 이전인 4세기까지는 주요한 사안이나 문제의 결정을 로마주교를 중심으로 해결하곤 하였다. 4세기까지 로마주교는 세계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4세기 중엽 비잔틴 로마제국 시대가 열리며, 로마 제국의 수도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전하게 되면서부터 로마는 상징적 중심지로 남았으며 4세기 중엽 이후에는 콘스탄티노플 주교가 주요한 의사결정을 내렸으며, 교회 대분열 시기인 12세기까지 로마에 대한 권한이 정교회에 지속되었고, 현재까지 동방 정교회에는 로마를 제외하고는 그 전통이 남아있다. 로마는 성 베드로성 바오로 사도들이 순교하고 유해가 안장된 곳이라는 상징성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제3차 세계 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구분을 강조하는 네스토리우스주의를 주된 문제로 다루었는데, 네스토리우스는 인간인 예수를 낳은 동정녀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았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에페소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주의를 배격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를 낳은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는 곧 하느님을 낳은 여인, 테오토코스(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에페소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교회 안에 첫 번째 분열이 일어나게 되었다. 주로 페르시아 지역의 교회들이 공의회의 결정을 거부하였는데, 이들은 오늘날 아시리아 동방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아시리아 동방교회는 예전처럼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을 더는 추종하지 않는다. 이들은 종종 고대 동방교회라고도 불린다.

교회의 두 번째 분열은 451년 칼케돈 공의회 이후에 일어났다. 칼케돈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하고 인성은 부정한 단성설을 배척하였다. 칼체돈 공의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한 위격이면서도 그 안에는 신성뿐만이 아니라 인성도 온전히 존재하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인 동시에 참 사람이라고 선포하였다.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칼케돈 공의회의 결의를 따르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결국 교회 공동체에서 갈라져 나간 이들은 오리엔트 정교회라고 부르게 되었다.

기독교의 세 번째 분열은 11세기에 발생하였다.이는 지역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대규모 분열이이었다. 10세기 무렵 프랑코 제국의 성장으로 힘을 얻은 서방 교회는 점차 동방 교회의 교리와 교회 주도권에 대해 반기를 표시하기 시작하였고 11세기에는 5 지역교회(로마, 콘스탄티노플, 안디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의 연합인 보편교회에서 로마교회가 분리하였다. 내부적으로 언어문제인 라틴어와 헬라어(코이네 그리스어)로 인한 몰이해와 전례 방식이나 관습에 있어서도 서로 달라 이질감이 커져가다가 11세기에 이르러서는 비잔틴로마제국에서의 이슬람 침략으로 인한 교도권의 약화와 십자군의 비잔틴로마제국 약탈 등으로 교회 내 반목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로마교회는 서유럽지역인 잉글랜드, 프랑스, 신성 로마 제국, 폴란드, 보헤미아, 슬로바키아, 스칸디나비아, 발트 3국 등의 지역으로 보편교회의 연합에서 탈퇴하였다.[10] 그리고 그리스루마니아, 러시아 및 기타 슬라브 지역, 아나톨리아, 시리아, 이집트 등에서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따른 비잔틴 로마 지역은 콘스탄티노플, 안디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을 중심한 4개의 연합교회로 남았다. 서방 교회인 로마교회의 분리로 분열이 생겨 동서 교회의 분열이라고 한다.

교회의 네 번째 분열은 서방교회에서 발생하였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촉발되면서 찾아왔다. 서방 교회 내부에서는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회 경제적 문제와 교리의 문제로 인해 서유럽 중세 시대 형성된 서방 교회의 교리와 교황 중심을 거부하고 보편교회 시기 공의회의 가르침과 복음을 중심으로 하는 복음주의 교회, 프로테스탄트 또는 개신교회라는 교회가 형성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서유럽에서 독일,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등의 지역이 복음주의 기독교, 즉 개신교 지역이 되었다.

주석[편집]

  1. 이국헌. 《교회사 콘서트》. 파주: 한국학술정보, 2012.
  2. 클라우스 샤츠.《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칠곡: 분도출판사, 2005.
  3. Chapter VIII.—Let nothing be done without the bishop.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21 November 2008에 확인.
  4. Angle, Paul T. (2007). 《The Mysterious Origins of Christianity》. Wheatmark, Inc.. ISBN 9781587368219
  5. Milton V. Anastos, ''Aspects of the Mind of Byzantium (Political Theory, Theology, and Ecclesiastical Relations with the See of Rome)'', Ashgate Publications, Variorum Collected Studies Series, 2001. ISBN 0-86078-840-7). Myriobiblos.gr. 2011년 6월 30일에 확인.
  6. L'idea di pentarchia nella cristianità. Homolaicus.com. 2011년 6월 30일에 확인.
  7. Pontifical Council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press release on the suppression of the title "Patriarch of the West" in the 2006 Annuario Pontificio. Vatican.va. 2011년 6월 30일에 확인.
  8. Catholic Online (2006년 3월 22일). Vatican explains why pope no longer "patriarch of the West". Catholic.org. 2011년 6월 30일에 확인.
  9. Richard McBrien, Catholicism (Minneapolis, MN: Winston Press, 1981), 680.
  10. 한스 큉.《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 이종한 옮김. 칠곡: 분도출판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