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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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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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현광 |
한국의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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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玄光, ?~?)은 6세기경 백제의 고승이다.[1] 《송고승전(宋高僧傳)》 제18권에는 "진신라국현광전(陳新羅國玄光傳)"이라는 제목 하에 현광에 대한 전기가 들어 있다.[2]
《송고승전》에 나타난 제목에 의거하여 현광이 진나라(陳: 557~589) 때에 활동한 신라의 승려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3][4] 그러나 한국의 고대 불교 전공 학자들에 따르면 현광이 백제의 승려인 것이 확실하다.[1][5][6]
현광은 웅주(熊州: 백제의 옛 수도였던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5])에서 태어났으며, 중국 진나라(陳: 557~589)에 가서 중국 천태종의 종조인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 지의(智顗: 538-597)의 스승이었던 남악대사(南嶽大師) 혜사(慧思: 515~577)[7][8][9]로부터 법화삼매(法華三昧)를 배우고 돌아와서 웅주(熊州) 옹산(翁山)에 절을 짓고 법화를 전함으로써 한국의 법화종(法華宗)의 조사가 되었다.[1]
각주
[편집]- ↑ 가 나 다 동양사상 > 한국의 사상 > 삼국시대의 사상 > 삼국시대의 불교사상 > 현황,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 (중국어) 송(宋) 찬녕(贊寧) (988년). 《송고승전(宋高僧傳)》 제18권 Archived 2008년 9월 5일 - 웨이백 머신, 대정신수대장경, T50 No. 2061. T50n2061_p0820c13(00) - T50n2061_p0821a04(02). 2011년 3월 23일에 확인:
- ↑ (중국어) "玄光"[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11년 3월 23일에 확인:
- "新羅國熊州人。自幼頴悟,出家後即有遠遊之志,遂來中國,於陳太建五年(573)登南嶽,謁見慧思,受學法華安樂行義,奉行精勤,不久即證法華三昧。"
- ↑ 운허 & 동국역경원. "玄光(현광)" Archived 2016년 3월 6일 - 웨이백 머신, 《불교 사전》. 2011년 3월 23일에 확인:
- ↑ 가 나 안계현 (1983). 《한국불교사상사연구》, 동국대학교 출판부, p.15.:
- 해동의 웅주 또는 웅천이라 하면 백제의 구도인 오늘의 충청남도 공주를 가리킨다. 현광이 그 웅주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후에 그가 중국에서 돌아와 자리잡은 곳도 웅주였다. 더욱이 그가 사사했던 천태종 제2조 혜사가 광주 대소산으로부터 남악형산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진 광대 2년(568)의 일이었고, 그 후 태건 9년(577)에 임종할 때까지 전후 10년간을 내내 그 형산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므로 현광이 형산의 혜사에게 배우고 귀국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의 일이 되는 셈이다. 이 무렵의 해동 웅주인이 백제인이었음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중략) 그런데 일찍이 1930년에 홀활곡쾌천사(忽滑谷快天師)가 신라승이라고 발설한 이래 아무런 검토와 비판없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광을 신라승으로 다루어 온 경향이 짙었다.
- ↑ 고익진 (1989). 《한국 고대 불교 사상사》, 동국대학교 출판부, p. 106.:
- 고구려승 반야가 천태지의의 교시를 받고 천태산 화정봉에서 16년간(598~613) 수선(修禪)한 뒤 하산 · 입적 했다는 것은 앞서 소개한 바와 같다. 그런데 백제의 현광은 그보다도 앞서 진의 남악 형산에 들어가 그곳 혜사(천태종 제3조, 515~577)에게 "법화안락행문"을 밀수받고 "법화삼매"를 증한다.
- ↑ 운허 & 동국역경원. "慧思(혜사)" Archived 2016년 3월 6일 - 웨이백 머신, 《불교 사전》. 2011년 3월 23일에 확인.
- ↑ 운허 & 동국역경원. "南嶽(남악)" Archived 2016년 3월 6일 - 웨이백 머신, 《불교 사전》. 2011년 3월 23일에 확인.
- ↑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분파 > 중국불교의 종파> 천태종,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