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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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地藏菩薩, 산스크리트어: क्षितिगर्भ Kṣitigarbha, 크시티가르바)은 석가모니불열반 후 세상에 내려올 때까지의 무불 시대(말법 시대)에 육도 중생(六道衆生)을 교화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대비보살)이다. 지장으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보는 여래장사상에서 비롯된 보살로, 지장신앙은 대체적으로 민중 지향적인 성격이다. 생명을 낳고 기르는 대지를 모태로 한다는 뜻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 데메테르와 비교된다.[1]

석장으로 땅을 쳐 지옥의 문을 열고 여의주로 악귀를 쫓아 유정을 해방시키는 지장보살

모양[편집]

한국의 지장보살은 천관(天冠)을 쓰고 가사(袈裟)를 입었으며, 왼손에는 연꽃을, 오른손에는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말기 사천, 돈황 지역의 지장보살은 원형광배에 두건을 쓰고 석장을 쥔 모습이며, 명대에는 민머리를 한 승려의 형상에 석장과 지물이 등장한다.

육도윤회의 장면을 도해하는 경우도 있으며, 보통 독존을 위주로 하지만, 아미타불, 관음보살, 미륵보살, 대세지보살, 칠불 등 다양한 존상과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2]

중국[편집]

중국의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은 지장삼부경이라 불리는 대승대집지장십윤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이 한역되면서 당대이후에는 민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대승대집지장십윤경은 서기 661년 당나라 현장이 한역했는데, 지장보살의 구제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며 참회를 통한 죄업 소멸을 설명했다. 지장보살본원경은 7세기경 실차난타가 한역했는데, 지장보살의 공덕과 육도중생을 모두 구제하고자 하는 지장보살의 서원을 설명했다. 점찰선악업보경은 수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삼세 선악의 과보를 점찰하는 것과 참회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천이나 돈황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했다.[2]

이밖에 《염라왕수기사중역수생칠왕생정토경》이나 《지장보살발심인연시왕경》(地蔵菩薩発心因縁十王経) 등의 위경에서는 도교의 시왕사상과 결합해 지장보살이 염라대왕 또는 시왕의 한 사람으로써 간주되는 신앙이 널리 퍼졌다. 염라대왕은 지장보살로써 사람들의 모습을 세세히 지켜보고 있기에 죽는 자를 면밀하게 재판한다고 알려졌고 태산왕(泰山王)와 함께 시왕의 중심 인물에 속한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지장왕보살(地藏王菩薩)이라 불리며, 주로 사후의 지옥으로부터의 구제를 발원해 명계의 교주로써 신앙을 모았다. 일본의 가나가와 현(神奈川県) 요코하마 시(横浜市) 중구에도 죽은 자의 영안(永眠)을 제사지내는 지장왕묘(地藏王廟)가 현지 화교들에 의해 세워졌다.

명(明) 왕조의 민간설화를 집대성한 《서유기》(西遊記)에도 명계를 주관하는 지장왕보살이 손오공(孫悟空)의 난폭함을 지옥에서 하늘의 옥황대제(玉皇大帝)에게 아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지장왕보살의 성지는 안후이 성(安徽省)에 있는 구화산(九華山)이다. 이곳에는 신라의 지장이라 불리는 승려(696년 - 794년, 속명 김교각金喬覚으로 속세의 이름과 법명을 이어 김화상金和尚 또는 김지장金地蔵이라고도 부름)가, 이 곳의 화성사(化城寺)에 머물렀던 데서 연유한다. 99세로 이곳에서 입적한 그는 3년 뒤 관을 열어 그 시신을 탑에 안치하였고, 그 얼굴이 생전의 용모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으므로 지장을 지장왕보살과 동일시하는 신앙이 생겨났고, 이 탑이 세워진 땅이 그대로 지장왕보살의 성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사로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성지 오대산(五台山),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성지 아미산(峨眉山), 관음보살(観音菩薩)의 성지 보타산(普陀山)와 함께 중국 불교의 성지(중국 4대 성지)로써,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국[편집]

신라의 왕자 출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출가해 승려가 되고 사후 구화산의 지장보살로써 모셔진 김교각이 유명하다.

후기에는 율사(律師) 진표(眞表)가 미륵과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하는 법상종을 성립하였고 이는 고려 전기까지 유행하였다. 태조 왕건은 개경에 10찰을 지었는데 이 가운데 지장사가 포함되어 있다.

고려 후기에는 기존 참회수행(懺悔修行)에서 지옥 구제와 내세의 극락 왕생으로 신앙의 중심이 변화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아미타, 관음, 지장으로 구성된 아미타삼존이 성행했다.[2]

임진왜란 이후 대부분 사찰에 지장보살을 모신 하나의 독립 전각으로 명부전(冥府殿)이 세워지고 지장보살은 명부전의 주존으로 확립된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함께 무독귀왕, 도명존자의 삼존과 시왕(十王), 판관, 사자상 등 20여 구의 존상이 배치되어 지옥 세계의 심판 장면을 표현한다.[2]

일본[편집]

일본에서는 정토 신앙이 보급된 헤이안 시대 이후, 극락왕생을 염원하지 않는 중생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졌고, 지장에 대해서도 지옥에 떨어지는 고난으로부터 구제를 바라는 신앙이 늘어났다.

지장의 형상은 출가한 승려의 모습이 대부분이고, 지옥・아귀・수라 등 육도(六道)를 돌며 중생이 지옥에서 겪는 고난을 대신 함께 짊어지면서 설법을 하는 대속(代贖)의 보살로써 묘사된다. 어린 아이들의 수호 본존으로써 「자안지장(子安地蔵)」이라 불리며 아이를 안고 있거나 사미승의 모습을 한 보살상도 많다.

삼도천 강가에서 지옥 나졸들에게 괴롭힘받는 아이들을 지장보살이 지키는 모습은 중세부터 불교 가요「서원하원지장화찬」(西院河原地蔵和讃)를 통해서 널리 알려지고 있으며, 어린 아이나 갓난아기의 공양을 위한 지장신앙이 생겨났다. 일본 간사이(関西)에는 지조본(地蔵盆)이 아이의 축제로써 여겨진다.

또한 도조신(道祖神)과 습합해 일본 전국의 길가에는 지장보살의 석상이 많이 세워져 있다.

주석[편집]

  1. “불교용어사전”. 부다피아. 2012년 5월 13일에 확인함. 
  2. 유대호 (2011). “조선 전기 지장보살상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함께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