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토종에서 넘어옴)

정토교(淨土敎)는 정토종(淨土宗) 또는 정토문(淨土門)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토교는 아미타불의 구원을 믿고, 염불을 외어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에 왕생(往生)하여 깨달음을 얻는다고 설하는 종파이다.[1]

정토교는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의 이른바 《정토3부경(淨土三部經)》에 바탕을 두고 인도 불교에서 용수(龍樹) · 세친(世親) 등의 사상적 조직화를 거쳐, 중국 불교에 이르러 발달하였다.[1]

중국 불교에서 정토교는 남북조 시대부터 당나라 시대의 담란(曇鸞: 476~542· 도작(道綽: 562~645· 선도(善導: 613~681) 등에 의해 주창되었다.[1] 한국 불교에서 정토교는 남북국 시대 신라에 유행하였는데 원효가 주창하였다.[2]

도작은 "지금이 말법시대로다. 바야흐로 오탁악세에 이르렀으니 오직 정토교 일문(一門)만이 있어 들어가야 할 길이로다"라고 설파하고 구칭염불(口稱念佛) 또는 창명염불(唱名念佛)이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야말로 말법시대에 어울리며 이 방법만이 현실사회에서 유효한 불교적 실천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불교적 실천을 전수염불(專修念佛)이라고 한다.[3]

중국의 정토교[편집]

중국불교에서는 동진시대(東晋時代: 317~420)에 여산(廬山)의 혜원(慧遠: 335~417)에 의한 염불결사(念佛結社)로서의 백련사(白蓮社)에서 교단적인 움직임이 있었으나, 참다운 중국의 정토교(淨土敎)로서 구칭염불(口稱念佛)에 의한 극락왕생의 교의를 중심으로 하여 최초로 조직화를 완성한 사람은 담란(曇鸞: 476~542)이었다.[1][4]

담란보리유지(菩提流支: 5세기말~6세기초)가 번역한 《정토론》을 주석하여 《정토론주(淨土論註)》를 저술하여 범부(凡夫)의 왕생타력(他力)에 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토교 교리의 기초를 확립했다.[1][4]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역설된 염불관(念佛觀)이 담란에 의해 칭명염불(稱名念佛)로 옮겨졌다.[1] 그리고 담란의 사상이 수나라(隋)와 당나라 초기에 걸쳐 활약한 도작(道綽: 562~645)에게 계승되어 《안락집(安樂集)》이라는 정토교의 근본성전(根本聖典)을 낳았다.[1] 그는 불교를 성도(聖道) · 정토(淨土)의 둘로 나누어 말법5탁(末法五濁)의 세상에는 오로지 아미타불에 귀의하여 정토왕생을 기원하는 정토교가 유일한 길이라 했다.[4]

나아가 정토교는 당나라 초기의 선도(善導: 613~681)에 의해 대성되었다.[1] 그리고 이와 동시에 염불(念佛)이 바로 서민 사이에 퍼졌다.[4] 선도도작의 가르침을 따라 염불을 실행하여 《관무량수경소(觀無量壽經疏)》를 저술했고, 일반 서민층에 정토교를 깊이 침투시키는 역할을 하였다.[1]

한편, 선도의 계통과는 별도로 자민삼장 혜일(慈愍三藏慧日: 680~748)이 주창한, 선종과 정토교의 가르침이 일치한다는 선정일치(禪淨一致)의 입장에 선 선정토교(禪淨土敎)가 있다.[1]

결국 중국의 정토교에는 여산 백련사(白蓮社)의 혜원류(慧遠流), 담란 · 도작 · 선도선도류(善導流), 자민삼장자민류 등 3파가 존재했다.[1]

특히 담란은 불교 수행의 길을 난행도(難行道)와 이행도(易行道)로 판별하였는데 이들 중 이행도가 그 후의 정토교의 주류를 이루었다.[1] 한편 선도는 일체행(一切行)을 정행(正行)과 잡행(雜行)으로 판별하여, 일심전념(一心專念)하여 미타(彌陀)의 명호(名號)를 염(念)하는 것을 정행(正行)으로 하고 그 밖의 제행(諸行)을 잡행(雜行)으로 하여 정행만이 왕생(往生)에의 근본도(根本道)임을 역설했다.[1] 이처럼 미타의 명호를 욈으로써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일행전념(一行專念)의 순수한 신앙의 입장은 당나라 시대까지이며, 송나라 시대 이후는 선정쌍수(禪淨雙修: 선정염불을 함께 행함)의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1]

한국의 정토교[편집]

한국의 정토교(淨土敎)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 이후의 남북국 시대부터 주로 민중의 지지를 받은 불교의 한 종파이다.[2]

불교 교의에 대한 깊은 연구를 주로 하는 다른 5교의 종파들과 달리 정토교는 아미타불에 귀의한다는 뜻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외우는 염불만으로 죽은 후 서방정토(西方淨土), 즉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2] 무식하고 압박받는 하층 사회에서 환영받은 정토교는 현세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를 고해(苦海)라 여기고, 내세(來世)인 극락에 왕생(往生)하는 것을 소원한다.[2] 이리하여 많은 민중이 현세를 등지고 입산하였으며, 육신의 산 몸으로 하늘을 날아 서방정토로 왕생한다는 설화가 많이 전하게 되었다.[2]

한국 불교에서 정토교가 유행한 것은 신라의 사회적 모순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원효가 주창하였다.[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