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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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현
국적대한민국
소속조계종 25대, 26대 총무원장
직업승려

의현(1936년 ~ )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승려로, 전 25대, 26대 총무원장이다.[1]

생애[편집]

  • 1936년 : 대구에서 출생
  • 1952년 : 해인사에서 상월 스님을 은사로 수계
  • 1969년 12월 : 제2대 중앙종회의원 보궐선거 당선, 이후 3대 ~ 8대로 연이어 선출.
  • 1967년 : 대승사 주지, 이후 은해사, 동화사 주지 역임
  • 1980년 10월 27일 : 신군부 만행을 규탄하다가 보안사 서빙고실에서 1달 간 고문을 당하는 법난을 당함
  • 1981년 6월 : 7대 중앙종회의장
  • 1983년 1월 : 중앙종회의장
  • 1986년 8월 : 25대 조계종 총무원장
  • 1990년 6월 22일 : 제26대 총무원장으로 당선[2]

각주[편집]

  1. 권, 오영 (2020년 3월 16일). “31. 25·26대 총무원장 의현 스님-상”.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4년 2월 16일에 확인함. 의현 스님은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 의현 스님은 1952년 해인사에서 상월 스님을 은사로 수계했다. ~~~ 그러나 의현 스님이 조계종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10여년 뒤인 1969년 12월 제2대 중앙종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부터다.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종단 정치를 시작했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뛰어난 정치 감각으로 스님은 일찌감치 종단의 중심그룹으로 성장했다. 3~8대 중앙종회의원에 잇따라 선출됐고, 1967년 대승사 주지를 시작으로 은해사, 동화사 주지를 맡았다. 1980년대 들어 의현 스님은 월주, 초우, 진경, 천장, 봉주, 벽파 스님 등 40대 중진그룹과 더불어 종단의 핵심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의현 스님이 종단의 중심으로 성장하기까지 순탄한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스님은 1980년 10·27법난 당시 “신군부의 만행을 규탄”하는 발언으로 보안사 서빙고실에 끌려가 1달여간 모진 고문을 받았고, 풀려난 이후에도 신군부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1981년 6월 7대 중앙종회의장으로 피선됐지만, 당시 총무원장 초우 스님과의 갈등으로 6개월 만에 동반 퇴진했다. 1983년 1월에도 중앙종회의장에 선출됐지만, 그해 8월 신흥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중앙종회가 해산되고 비상종단이 출범하면서 다시 중앙종회의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럼에도 의현 스님은 탁월한 정치적 수완으로 종단이 혼란할 때마다 총무원장 후보로 꾸준히 거론됐다. 의현 스님이 조계종 제25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것은 1986년 8월이었다. 
  2. 권, 오영 (2020년 3월 27일). “33. 25·26대 총무원장 의현 스님-하”.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4년 2월 16일에 확인함. 1990년 6월22일 의현 스님은 조계종 중앙종회 100차 임시회에서 제26대 총무원장으로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