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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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근(惠勤: 1320년 2월 24일(음력 1월 15일) ~ 1376년 6월 2일(음력 5월 15일))은 고려 공민왕승려이다.[1] 속성(俗性)은 아(牙), 속명은 원혜(元惠), 호는 나옹(懶翁)이다.[1] 법호는 보제존자(普濟尊者)이다.[2]

문하에 무학을 위시해 백여 인이 있었고 혼수[3] 에게 법맥을 잇게 하였다.[2] 지공(指空)과 무학(無學)과 함께 삼대(三大) 화상(和尙) 중 한 사람이다.[1] 태고와 함께 고려말 선종의 고승으로서 조선 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4] 서예그림에도 뛰어났다.[4]

생애[편집]

1340년(충혜왕 1년) 20세에 출가하여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에게 득도하고 전국의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찾아 돌아다녔다.[1][2]

1344년(충혜왕 복위 5년) 회암사에서 4년 간(間) 좌선(坐禪)하여 개오(開悟)했다.[4]

1347년(충목왕 3년)에 (元)의 연경(燕京)[5] 으로 건너가 고명(高名)한 승려들을 찾아 교시(敎示)받고 인도지공선사(地空禪師)의 법을 이어받았다.[1][2] 중국 대륙에서 광제선사(廣濟禪寺)의 주지(住持)로 있다가 1358년(공민왕 재위 7년)에 고려로 귀국하였다.[4]

고려로 귀국한 후, 공민왕 때 왕명으로 내전에서 설법하고 회암사(檜巖寺)의 주지가 되었다.[1] 1371년, 가사와 법복을 하사받았으며 왕사에 봉해졌다.[1] 공민왕에게 존숭(尊崇)받고서 법호(法號) 보제존자(普濟尊者)를 받았다.[2]

1376년, 우왕(禑王) 때 왕명을 받고 밀양영원사(塋原寺)로 가다가 여주신륵사(神勒寺)에서 죽었다.[1] 이색(李穡)이 글을 지어 세운 비(碑)와 부도(不到)가 회암사에 남아 있다.[1] 제자들이 원주 영전사에 세운 승탑(僧塔)인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原州 令傳寺地 普濟尊者塔]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다.

전설(傳說)[6][편집]

조선 영조 재위 24년인 서기 1748 함경도 출신의 승지(承旨) 위창조(魏昌祖)가 함경도 내에 있는 이성계(李成桂) 일가의 무덤을 조사한 '북로릉전지(北路陵殿志)'를 임금에게 바쳤다. 여기에 이성계의 부친 이자춘(李子春)의 장지(葬地)에 관한 일화(逸話)가 나온다. 공민왕 재위 9년인 서기1360 부친이 죽자 이성계는 명당(明堂)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데 사제지간(師弟之間)인 두 승려가 명당을 주제로 대화한다. 스승이 동산(東山)을 가리키면서 “여기에 왕이 날 땅이 있는데 너도 아느냐?”라고 묻자 제자가 “세 갈래 중에서 가운데 낙맥(落脈)인 짧은 산기슭이 정혈(正穴)인 듯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스승은 “네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구나. 사람에게 비유하면 두 손을 쓰지만 오른손이 긴요(緊要)하듯이 오른편 산기슭이 진혈(眞穴)이다”라고 교정(矯正)해 주었다. 가동(家僮)[7] 에게 이 대화 내용을 들은 이성계는 말을 달려 뒤쫓아 함관령(咸關嶺) 밑에서 두 승려를 만났다. 이성계가 절을 하면서 간청(懇請)해 ‘왕이 날’ 장지를 얻었다는 전설(傳說)이다.[8]

『북로릉전지』(北路陵殿志)보다 150여 년 전에 문신 차천로(車天輅·1556~1615)가 편찬(編纂)한 『오산설림』(五山說林)'에는 더 자세한 전설(傳說)이 기록됐다. 이성계가 두 승려를 극진히 대접하면서 장지(葬地)를 가르쳐 달라고 애걸하자 두 승려는 산에 지팡이를 꽂고 말했다. “첫째 혈에는 왕후(王侯)의 조짐이 있고 둘째 혈은 장상(將相)의 자리이니 하나를 택하시오.” 이성계가 첫째 혈을 택하자 노승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라고 탓했다. 이성계가 “사람의 일이란 상(上)을 얻으려 하면 겨우 하(下)를 얻게 되는 법”이라고 변명했더니 두 승려는 웃으면서 “원(願)대로 하시오”라고 말하고 가버렸는데 노승이 나옹(懶翁)이고 젊은 승려가 무학(無學)이라고 한다. 부친 장지(葬地)에 관한 이런 일화는 이성계가 만 25세 때부터 반역(叛逆)을 꿈꾸었다는 전설(傳說)이 된다.[8][9]

저서[편집]

관련 문화재[편집]

각주[편집]

  1. 인명사전 > 한 국 인 명 > ㄴ > 나옹,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동양사상 > 한국의 사상 > 고려시대의 사상 > 고려시대의 불교사상 > 혜근,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3. 1320년[고려 충숙왕 재위 7년]∼1392년[조선 태조 재위 1년]. 고려 후기에 활동한 고승. 속성(俗性)은 조씨(趙氏). 자는 무작(無作), 호는 환암(幻庵). 법명은 혼수(混修). 현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인 용주(龍州) 출신. 부친은 숙령(叔領)이다. 공민왕에게 불법(佛法)을 전했고 계율을 굳게 지키고 선교(禪敎)의 모든 경전에 통달하였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시호(諡號) 보각(普覺)과 탑호(塔號) 정혜원융(定慧圓融)을 내렸다. 충주시 지역에 소재한 청룡사(靑龍寺) 폐허(廢墟)에 비(碑)와 탑이 있다.
  4. 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 > 고려 후기의 문화 > 나옹,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5. 중국 대륙 북경(北京)의 고명(古名), 옛날 연(燕)의 도읍(都邑)이였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6. 자고(自古)로 관청이나 행정부를 위시해 기관(機關)에 속하지 않은 일반 백성 사이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로서 주로 말을 이용하여 옮기며 어떤 목적이나 행동이나 생활을 같이하는 집단의 지금까지 지내온 경로나 경력이나 자연계에 저절로 생긴 물상의 유래와 이상(異常)한 체험을 소재로 한다.
  7. 한 집안에 매인 종을 이르던 말
  8. “21세 ‘격구 천재’ 이성계, 고려 조정에 얼굴을 알리다”. 중앙SUNDAY. 2010년 8월 22일. 2013년 1월 15일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9. “천보산과 회암사(檜巖寺)의 국사 무학대사”. 경기일보. 2012년 12월 3일. 2013년 1월 15일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참고 문헌[편집]

기타[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