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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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근(惠勤: 1320년 2월 24일(음력 1월 15일)~1376년 6월 2일(음력 5월 15일))은 고려승려이다. 속명은 아원혜(牙元惠), 호는 나옹(懶翁), 법호는 보제 존자(普濟尊者)이며 영해부(寧海府: 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출신이다.[1]

생애[편집]

1320년(충숙왕 7년) 음력 1월 15일에 아버지 아서구(牙瑞具)와 영산군(靈山郡) 출신의 어머니 정씨(鄭氏) 사이에서 태어났다.[1]

1339년(충숙왕 후8년) 20세에 출가했으며,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에게 득도했다.[1]

1344년(충목왕 즉위년)에 회암사에서 4년 동안 밤낮으로 홀로 앉아 정진하던 중에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1]

1347년(충목왕 3년)에 원나라의 연경(燕京: 현 베이징)으로 건너가 이름 난 승려들을 찾아 가르침을 받고 인도지공선사(地空禪師)의 법을 이어받았다.[1]

그 후 1351년(충정왕 3년)부터 1354년(공민왕 3년)까지 중국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1]

1355년(공민왕 4년)에 광제선사(廣濟禪寺)의 주지(住持)로 있었다.[1]

1358년(공민왕 7년)에 고려로 귀국했으며, 1360년(공민왕 9년)에 오대산에 머물렀다.[1]

1361년(공민왕 10년)에 왕과 태후의 청으로 신광사에 잠시 머물렀으며, 11월에는 홍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사찰을 지켰다.[1]

1363년(공민왕 12년)에는 구월산에 들어갔으며, 1365년(공민왕 14년)에는 물러나는 것을 허락받았으며 그 후 여러 산사(山寺)를 돌아다녔다. 1366년(공민왕 15)에 금강산에 있었고 1369년(공민왕 18년)에 오대산으로 다시 들어갔다.[1]

1370년(공민왕 19년)에 회암사에 스승의 유골을 안치했고, 음력 9월 10일에는 공부선(功夫選)을 거행했다.[1]

1371년(공민왕 20년)에 법복(法服)과 발우(鉢盂)를 하사받았으며, 왕사(王師) 대조계종사(大曹溪宗師)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 근수본지중흥조풍복국우세보제존자(勤修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로 봉했다. 그 후 송광사에 있었다가 회암사의 주지가 되었으며, 또한 절을 중축했다.[1]

1376년(우왕 2년)에 낙성(落城)을 축하하는 법회를 크게 열었는데 대간(臺諫)의 탄핵으로 혜근은 밀양시의 영원사(靈源寺)로 옮기게 되었다. 이 때 병이 도졌다. 한강에 이르렀을 때 호송 관원이었던 탁첨(卓詹)에게 자신의 병세가 위중해 뱃길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결국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7일 만에 여흥(驪興: 현 경기도 여주시)에 도착해 신륵사에 머물렀다. 탁첨(卓詹)이 재촉해 다시 떠나자고 말했지만 떠나지 않고 음력 5월 15일 진시(辰時: 오전 7시부터 9시 사이)에 조용히 입적(入寂)했다. [1]

저서[편집]

관련 문화재[편집]

전기 자료[편집]

  • 이색, 『목은문고』 권14, 보제존자 시 선각탑명

각주[편집]

  1. 이색, 『목은문고』 권14, 보제 존자 시 선각의 탑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