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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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운 野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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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야운(野雲) |
출생 | 미상(1330년대 중후반 추정) |
입적 | 미상(1380년대 초중반 추정) |
입적원인 | 병사(대략 추정) |
거주지 | 고려 개경[1] |
국적 | 고려 |
속명 | 우각우(玗覺牛) |
활동 기간 | 1353년~1383년 |
종파 | 대승불교 |
소속 | 고려 양광도 양주 회암사 |
출가 | 1350년대 초중반 고려 공민왕 치세 초기 |
저작 | 《야운자경서(野雲自警書)》 |
직업 | 불교 승려(佛敎 僧侶) |
스승 | 혜근 |
배우자 | 無 |
자녀 | 無 |
웹사이트 | 몽암도인 야운(野雲) 선사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한국의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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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운(한국 한자: 野雲[2], 본명: 우각우(玗覺牛), 생몰년 미상)은 14세기 중후반 시대의 고려 말기의 불교의 고승이다.
앞서 언급한 야운(野雲)은 14세기 시대의 고려(高麗) 말의 선승(禪僧)이자 철학인(哲學人)으로, 속성(俗姓)이 우(玗)이며, 휘(함자)가 각우(覺牛)이기에, 속명(俗名)은 우각우(玗覺牛)이고, 호(號)는 몽암도인(夢岩道人)이다.
그는 행적이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고려 말기 시대의 고승 혜근(惠勤, 1320~1376)의 제자(弟子) 겸 시자(侍者)로, 그는 그야말로 혜근(惠勤, 속명 아원혜(牙元慧))이라는 선사(禪師)의 곁에서는 오랫동안 수제자(首弟子)로 있다가, 1376년(우왕 2)에 스승 혜근(惠勤)이 입적(서거)한 뒤, 잠시 중국 명(明)의 닝보(寧波)를 거쳐 스자좡(石家莊)으로 들어가, 수몇수권의 불교 법도 철학 서책(佛敎 法道 哲學 書冊)을 구하여 가지고, 1377년(우왕 3)에 고려(高麗)로 귀국했다고 한다.
1378년(우왕 4)에는 당시 모두 고려 시대의 말엽의 문관(문신 겸 관료)이었던, 훗날의 모두 조선 시대의 초엽의 정치가인 동정 윤소종(桐亭 尹紹宗)·양촌 권근(陽村 權近) 등과의 다소 없지아니한 철학적(哲學的)인 교류가 있었다.
1380년대 초중반에, 병으로 인하여 40대 중후반에 입적한 그는, 저서에 《야운자경서(野雲自警書)》가 있다.[3]
각주
[편집]- ↑ 중국 원(元)의 한단(邯鄲)과 지난(濟南)의 한(漢)족계의 후손 출신의, 고려(高麗)로 이민을 온, 이른바 14세기 중엽대 시절의 원나라 시대의 말엽대에 고려(高麗)로 이주한, 원나라의 한족(漢族)계의 고려 이민자 내외의 아들(무녀독남)로, 1330년대 중후반에 태어났다는 이외에는, 행적이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음.
- ↑ 속명(俗名)은 우각우(한국 한자: 玗覺牛)이며, 호(號)는 몽암도인(한국 한자: 夢岩道人)이라 알려짐.
- ↑ 이 저서는 훗날 1395년(태조 3)의 조선 초엽에 접어들면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라는, 이른바 한 가지의 편집본의 불교 철학 강론의 집대성 규율 서책으로 합본 저술되었다.
외부 링크
[편집]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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