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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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프랑스
Logo de l'Équipe de France de Football.png
별칭 Les Bleus (파랑)
Les Tricolores (삼색기)
La Sélection (국가대표팀)
연맹 프랑스 축구 협회 (FFF)
대륙 유럽 축구 연맹 (UEFA)
감독 디디에 데샹
주장 위고 로리스
최다 출전자 릴리앙 튀랑 (142)
최다 득점자 티에리 앙리 (51)
FIFA 코드 FRA
FIFA 랭킹 9위 (2015년 6월 4일 기준)
최고 순위: 1위
(2001년 5월- 2002년 5월)
최저 순위: 27위
(2010년 9월)
ELO 랭킹 7위 (2015년 3월 31일 기준)
최고 순위: 1위
(가장 최근이 2007년 7월)
최저 순위: 44위
(1928년 5월; 1930년 2월)
첫 국제
경기 출전
벨기에 벨기에 3 - 3 프랑스 프랑스
(벨기에 브뤼셀; 1904년 5월 1일)
최다 점수차
승리
프랑스 프랑스 10 - 0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프랑스 파리; 1995년 9월 6일)
최다 점수차
패배
덴마크 덴마크 17 - 1 프랑스 프랑스
(영국 런던; 1908년 10월 19일)
유니폼
홈경기
원정경기
FIFA 월드컵
출전 횟수 14회 (1930년에 처음 출전)
최고 성적 우승 (1998년)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출전 횟수 8회 (1960년에 처음 출전)
최고 성적 우승 (1984년, 2000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출전 횟수 2회 (2001년에 처음 출전)
최고 성적 우승 (2001년, 2003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프랑스어: Équipe de France de football) 은 국제 축구 경기에서 프랑스를 대표한다. 프랑스 축구스포츠 행정부프랑스 축구 협회 (프랑스어: Fédération Française de Football) 가 관리하며, 유럽 축구를 관리하는 UEFA의 회원이다. 국가대표팀의 고유 유니폼색은 청색이며 프랑스 삼색기의 나머지 색상인 백색과 적색이 조함되어 삼색기 (drapeau tricolore) 라고도 불리기도 하며 갈리아 수탉 (coq gaulois) 이 대표팀 상징으로 사용된다. 프랑스는 흔희 파란 군단 (Les Bleus) 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데, 이 별칭은 청색 상의를 사용하는 프랑스의 타 종목 국가대표팀 별명으로 쓰인다.

프랑스는 1904년에 첫 공식 경기를 치렀고, 현재 대부분의 홈경기를 파리 근교 생드니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치른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을 한 차례,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을 두 차례, 올림픽을 한 차례, 그리고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을 한 차례 우승해, 아르헨티나와 더불어 FIFA가 주관한 남자 대회에서 모든 대회를 우승한 유이한 팀이 되었다. 프랑스는 이웃 이탈리아와 강력한 라이벌 관계를 가지고 있고, 역사적으로 벨기에, 브라질, 잉글랜드, 독일, 그리고 스페인과도 라이벌 관계를 지니고 있다.

국가대표팀은 세 차례의 "황금기"에 많은 성공을 거두어드렸다: 황금기는 1950년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말에서 2000년대초로, 이 시대에 수 많은 주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들였다. 프랑스는 1930년에 열린 초대 FIFA 월드컵에 참가한 유럽의 4팀들 중 하나로, 비록 예선전에서 6차례 탈락했으나, 매 FIFA 월드컵 주기에 참가한 3팀들 중 한팀이다.[1] 1958년, 레몽 코파쥐스트 퐁텐이 이끄는 팀은 1958년 FIFA 월드컵에서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1984년, 발롱도르 수상자인 미셸 플라티니가 이끄는 프랑스는 UEFA 유로 1984를 우승했다. 디디에 데샹의 지도 하에 3차례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쟁된 지네딘 지단의 협력 하에, 프랑스는 1998년 FIFA 월드컵을 우승하고, 개최국으로써 이 영예를 달성한 8개팀 중 하나가 되었다. 2년 후, 팀은 UEFA 유로 2000에서도 우승을 거두었고, 이후에는 FIFA 랭킹 1위에 처음으로 오르기도 했다. 프랑스는 그 후로, 2001년과 2003년에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두 차례 추가했고, 2006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도 올랐으나, 이탈리아에게 승부차기에서 3-5로 패했다.

역사[편집]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1904년 5월 21일 FIFA가 창립될 때를 부근으로 창립되었고, 1904년 5월 1일, 브뤼셀에서 열린 벨기에첫 공식 국제 경기를 치렀고, 경기는 3-3 무승부로 끝났다.[2] 이듬해인 1905년 2월 12일, 프랑스는 스위스와 모국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 경기는 500명 관중이 웅집한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렸다. 프랑스느는 이경기에서 가스통 시프레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길 수 있었다. FIFA와 프랑스의 스포츠 연합프랑스 체육 스포츠 사회 연합 (Union des Sociétés Françaises de Sports Athlétiques, USFSA) 간의 갈등으로, 프랑스는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애로가 많았다. 1908년 5월 9일, USFSA와 상반된 입장을 지닌 프랑스 국제연합 위원회 (CFI) 는 USFSA가 아닌 FIFA가 향후 올림픽 대회에서 클럽의 출전에 관여할 것이라고 손들어주었다. 1919년, CFI는 프랑스 축구 협회로 재조직되었다. 1921년, USFSA가 프랑스 축구 협회에 합병되었다.

1930년 7월, 프랑스는 우루과이에서 열린 초대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몬테비데오의 에스타디오 포시토스에서 열린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경기에서, 프랑스는 멕시코를 4-1로 꺾었다. 뤼시앵 로랑은 프랑스의 월드컵 1호골을 득점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월드컵 역사상 1호골을 득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프랑스는 이후 아르헨티나칠레와의 나머지 조별 리그 경기에서 연달아 0-1로 패했고, 결국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듬해, 국가대표팀은 처음으로 흑인을 승선시켰다. 라울 디아뉴는 세네갈계로, 2월 15일에 2-1로 이긴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첫 출전의 영예를 안았다. 디아뉴는 이후 북아프리카계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가대표팀에 승선한 라르비 벤바레크와 함께 1938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1934년 FIFA 월드컵에서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에게 2-3으로 패하며 또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팀이 파리에 귀환했을때, 4,000명의 웅집한 팬들은 영웅으로 칭송하며 환영했다. 프랑스는 1938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해 8강에 올랐으나,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에게 패해 탈락했다.

1950년대, 프랑스는 쥐스트 퐁텐, 레몽 코파, 장 뱅상, 로베르 종케, 마량 위스니에스키, 타데 시소우스키, 그리고 아르망 팡베른 등의 선수들을 앞세워 처음으로 황금기를 맞이했다. 1958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준결승전까지 진출했으나 브라질에 패하였다. 3위 결정전에서, 프랑스는 퐁텐의 4골에 힘입어 서독을 6-3으로 격파했고, 그에 따라 퐁텐은 FIFA 월드컵 역대 한대회 최다 기록인 13골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1960년에 열린 초대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였고, 2대회 연속으로 준결승전에 올랐다. 본선에서, 프랑스는 유고슬라비아한테 75분까지 4-2로 앞서나갔으나 4-5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하였다. 3위 결정전에서,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에 0-2로 패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들어 프랑스는 여러 다른 감독의 지휘 하에 주요 대회 본선행에 실패했다. 1964년 4월 25일, 앙리 게랭이 공식적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올랐다. 게랭 감독의 지휘 하에, 프랑스는 1962년 FIFA 월드컵1964년 유럽 네이션스컵 진출에 실패했다. 국가대표팀은 1966년 FIFA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해 국제 대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호세 아리바스장 스넬라는 한때 공동으로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 두 감독이 동시에 지휘한 것은 4경기로, 이후 쥐스트 퐁텐 전 국가대표가 취임해 단 두경기만 지휘했다. 루이 뒤고게는 퐁텐의 후임으로 취임했으나, 1970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고, 조르주 불로뉴가 뒤를 이었으나, 팀을 본선에 진출시키지 못했다. 불로뉴도 1974년 FIFA 월드컵 본선행 실패 여파로 경질되었고, 루마니아의 슈테판 코바치가 사령탑을 맡았으며, 그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유일한 외국인이 되었다. 코바치 또한 1974년 FIFA 월드컵UEFA 유로 1976 본선행 실패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는데 그쳤다. 그도 2년 후에 경질되었고, 미셸 이달고가 후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미셸 플라티니UEFA 유로 1984에서 주장으로 참가해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달고의 지휘 하에, 프랑스는 다시 부흥했는데, 마리위스 트레소르막생 보시와 같은 수비수, 도미니크 로슈토와 같은 수비수, 그리고 팀의 중심이자 "마방진" (carré magique) 을 구성한 미셸 플라티니장 티가나, 알랭 지레스, 그리고 루이스 페르난데스등의 우수한 인재로 1982년 FIFA 월드컵을 시작으로 상대의 수비를 무너뜨리고, 서독을 상대한 준결승전까지 올라가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준결승전 경기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경기로 손꼽히는 것과 동시에 논란이 수반된 경기였다.[3] 프랑스는 그로부터 2년 후,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을 거두었는데, UEFA 유로 1984를 개최해 우승하였다. 대회에서 역대 한 대회 최다골인 9골을 기록한 플라티니의 지휘 하에,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스페인을 2-0으로 꺾었다. 이 경기에서 득점한 선수들은 플라티니와 브뤼노 베욘이었다. 유로 대회를 우승한 후, 이달고가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전 국가대표 앙리 미셸이 그의 뒤를 이었다. 프랑스는 이후 올림픽 국가대표팀1984년 하계 올림픽 축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고, 이듬해에는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전신인 아르테미오 프란키 트로피에서 우루과이를 2-0으로 꺾고 우승했다. 결승골은 도미니크 로슈토조세 투레가 넣었다. 1년의 기간 안에 프랑스는 3개의 주요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우승 후보로 점쳐졌고, FIFA 월드컵 2대회 연속으로 준결승전에 올라 또다시 서독을 상대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번에도 서독에 또 패했다. 벨기에와의 3위 결정전에서 4-2로 이긴 프랑스는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디디에 데샹1998년 FIFA 월드컵UEFA 유로 2000에서 주장으로 참가해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8년, 프랑스 축구 협회는 국가 축구 단지인 클레르퐁텐을 개장했다. 개장식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참석했다. 클레르퐁텐 개장 5개월 후, 앙리 미셸 감독이 경질되었고, 플라티니가 후임이 되었으나, 그는 1990년 FIFA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했다. 플라티니는 비록 UEFA 유로 1992 본선행에 성공하였고, 대회 전에 19경기 무패행진 기록을 세웠으나,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대회 종료 1주 후, 플라티니는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그의 수석 코치였던 제라르 울리에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울리에 감독의 지휘 하에, 프랑스 국가대표팀과 팬들은 이스라엘전과 불가리아전에서 1994년 FIFA 월드컵 본선행을 목전에 두었으나, 실패로 돌아가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프랑스는 이스라엘전에서 2-3으로 패했고, 불가리아전에서도 1-2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후 공공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 울리에는 해임되었고, 국가대표팀에 활약하던 몇몇 선수들이 은퇴했다. 그의 수석 코치인 에메 자케가 뒤를 맡게 되었다.

에메 자케의 지도 하에 국가대표팀은 가장 성공적인 시대를 겪었다. 베테랑으로 조직된 팀이 1994년 FIFA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하자, 거물급 신예들이 팀에 합류했다. 프랑스는 UEFA 유로 1996에서 준결승전에 진출해 체코에게 승부차기에서 5-6으로 지면서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다음 주요 대회인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자케는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브라질을 3-0으로 이기고 우승하였고, 프랑스 축구 역사의 정점을 찍었다. 자케는 월드컵 우승 후 감독직을 그만두었고, 수석 코치인 로제 르메르가 이어받아 UEFA 유로 2000 우승으로 이끌었다. FIFA 올해의 선수인 지단의 지휘 하에,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2-1로 잡았다. 트레제게가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득점했다. 이 대회 우승으로 프랑스는 1974년 서독 이래 처음으로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를 모두 우승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 결과, 프랑스의 FIFA 랭킹이 1위로 상승했다.

프랑스는 이어지는 주요 대회에서 이전의 성공을 반복해 내지 못했다. 비록 프랑스는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정상에 올랐으나, 프랑스는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충격적인 무득점 1라운드 탈락을 경험했다. 프랑스는 이 대회에 처녀 출전한 세네갈에게 개막전에서 0-1로 패하면서 FIFA 월드컵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결과를 냈다. 프랑스는 1950년의 이탈리아와 1966년의 브라질의 뒤를 이어 1라운드에서 탈락한 FIFA 월드컵 세번째 전대회 챔피언으로 목록에 올랐고, 그 후로 2010년에 이탈리아가 한번 더, 2014년에는 스페인이 이 목록에 등재되었다.[4] 프랑스가 대회에서 조 최하위로 탈락하자, 르메르가 자리했던 사령탑은 자크 상티니가 차지했다. 다시 힘을 회복한 프랑스는 UEFA 유로 2004를 인상적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8강에서 나중에 우승을 차지할 그리스에게 무기력하게 패해 떨어졌다. 상티니 감독이 사임하자 레이몽 도메네크가 그를 대신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초반에 부진한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 도메네크는 전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국가대표팀 은퇴를 번복하고 본선행을 도와달라고 설득했고, 이는 예선 최종전에서 키프로스를 상대로 4-0으로 이기면서 달성되었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을 차례로 제압하고 조별 리그에서부터 무패로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했고, 연장전에서 논란의 신경전 끝에 지네딘 지단이 퇴장 당했고, 결승골 득점에 실패했으며, 이탈리아에게 승부차기에서 3-5로 패해 2006년 FIFA 월드컵 우승에 실패했다.

2010년에 임시 주장을 맡은 후, 위고 로리스 골키퍼는 2012년 2월을 기점으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정주장이 되었다.

프랑스는 UEFA 유로 2008예선전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쳤고, 스코틀랜드전 2패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본선행에 올랐다. 프랑스는 죽음의 조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를 포함한 조) 에서 탈락해 1라운드만에 퇴장했다. 전 대회 FIFA 월드컵 예선전처럼,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전도 프랑스는 실망스럽게 시작해 참사에 가까운 패배와 예기치 못한 승리를 거두었다. 결국 프랑스는 조에서 2위를 차지해 아일랜드남아프리카 공화국 본선행을 가지고 UEFA 플레이오프에서 경합했다. 1차전에서, 프랑스는 아일랜드를 1-0으로 이기고, 2차전에서 논란의 상황 끝에 1-1로 비겨 FIFA 월드컵 본선에 안착했다.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도, 프랑스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고, 공공적으로 국가대표팀은 부정적인 평을 받아 프랑스 복귀 이후에도 더 많은 파장이 불어왔다. 대회 도중, 멕시코에게 0-2로 패하자 스트라이커 니콜라 아넬카레이몽 도메네크 국가대표팀 감독과의 언쟁 끝에 국가대표팀에서 쫓겨났다.[5][6] 아넬카와 선수들, 코칭스태프, 협회간의 불화로 인해, 선수들은 조별 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훈련을 단체 거부하는 사태가 나기도 했다.[7][8][9] 훈련 거부 사태의 여파로, 로슬린 바슐로 체육 장관은 선수들에게 "프랑스의 치욕적인 FIFA 월드컵을 A조 조별 리그 최종전 전날의 감정적인 연설과 분루로 바꾸었다"라며 선수들을 꾸짖었다.[10] 프랑스는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최종전에서 1-2로 패해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프랑스가 1라운드에서 탈락한 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다수 언론을 통해 티에리 앙리 주장의 요청에 따라 그와 만나 국가대표팀과 연관된 사건들에 대해 토론해 볼 것이라 보도되었다.[11] FIFA 월드컵 대회 종료 후, 장-피에르 에스칼레트 협회 회장이 사임했다.

이미 경질이 확정된 도메네크의 후임은 전 국가대표 로랑 블랑으로 확정되었다. 2010년 7월 23일, 블랑 감독의 요청에 따라, 협회는 노르웨이와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FIFA 월드컵에 참가했던 23명의 선수에게 모두 징계가 내려졌다.[12] 8월 6일, 5명의 선수가 2010년 FIFA 월드컵 훈련 불참 사태의 주모자인 것으로 밝혀졌고, 그에 따른 징계가 내려졌다.[13][14]

홈구장[편집]

프랑스의 초창기에 국립경기장으로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콜롱브스타드 올랭피크 이브-뒤-마누아르를 번갈아 사용하였다. 프랑스는 스타드 페르싱, 스타드 드 파리, 그리고 스타드 뷔팔로에서도 홈경기를 간혹 주최하기도 하였다. 시대가 흐르면서, 프랑스는 낭트소팽, 마르세유스타드 벨로드롬, 그리고 리옹스타드 드 젤랑 등 파리 외 도시에서도 국가대표팀 경기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1972년, 파르크 데 프랭스은 리모델링을 통해 파리의 최대 경기장으로 발돋움했고, 프랑스는 이 구장을 정식 홈구장으로 활용하였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전 경기들 중 중요도가 떨어지는 경기들을 여전히 이곳에서 치르곤 한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해외 영토에서 홈경기를 두번 열었는데, 한번은 2005년에 마르티니크 포르-드-프랑스에서 코스타리카를, 2010년에는 레위니옹 생드니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상대하였으며, 이 두 경기 모두 친선전이었다.

1998년 FIFA 월드컵을 앞둔 1998년, 스타드 드 프랑스가 프랑스 국립경기장으로 개장하였다. 파리 교외의 생드니에 위치한 경기장은 81,338명을 수용 가능한 전좌석 구장이다. 프랑스가 이곳에서 치른 첫 경기는 1998년 1월 28일에 열린 스페인전이었다. 프랑스는 이 경기에서 지네딘 지단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이 경기 이후로, 프랑스는 대부분 홈경기를 이곳에서 치렀다.

홈경기나 원정경기 직전, 국가대표팀은 클레르퐁텐-앙-이블린에 위치한 클레르퐁텐 단지에서 훈련에 임한다. 클레르퐁텐은 국립 축구 단지로 국내 12개의 엘리트 단지들 중 하나이다. 이 단지는 1976년, 페르낭 사스트르 전 협회장에 의해 개설되었고, 1988년에 공식적으로 개장되었다. 이 단지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이 1998년 FIFA 월드컵을 우승할 당시 사용했던 거처로써 그 시기를 기점으로 언론의 주목 대상이 되었다.

팀 이미지[편집]

중계권[편집]

국가대표팀은 현재 프랑스의 국영 텔레비전 채널 TF1을 운영하는 그루프 TF1과 계약되어 있다. 기존 계약은 2010년 FIFA 월드컵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2009년 12월 18일, 프랑스 축구 협회의 위원회에서 TF1과의 독점 계약 기간을 연장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새 계약의 조항에 따라, TF1은 2010년 8월부터 2014년 6월까지 4년간의 친선경기와 국제대회를 포함한 국가대표팀 경기 중계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TF1은 인터넷 상과 주간 프로그램인 텔레푸트에서 국가대표팀의 시각적 방송 권한도 얻어냈다.[15] 협회는 연간 €45M의 수입을 확보하게 되었는데, 이는 전의 2006년 계약에서 확보했던 €55M보다 €10M이 적은 금액이었다.[16]

유니폼[편집]

아디다스UEFA 유로 2000 당시 제작한 지네딘 지단의 10번 유니폼.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청색, 백색, 그리고 적색을 조합한 삼색의 조합을 사용한다. 국가대표팀의 3색은 프랑스 국기삼색기 (drapeau tricolore) 에서 유래하였다. 프랑스는 1904년, 벨기에와의 첫 국제경기를 기점으로 사용하면서 유니폼에 특색을 입혔다. 첫 경기를 시점으로, 프랑스는 홈경기에서 대체로, 청색 상의, 백색 하의, 그리고 적색 양말을 사용하였고, 원정에서는 상, 하의, 양말이 모두 백색인 유니폼을 사용하거나, 적색 상의, 청색 하의, 그리고 청색 양말을 사용했는데, 원정 유니폼으로는 전자의 조합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헝가리와의 1978년 FIFA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두 팀이 백색 유니폼을 준비해 에스타디오 호세 마리아 미네야에 감에 따라, 프랑스는 킴벨리의 녹백 줄무늬 유니폼을 빌려 사용하였다.[17]

1966년부터, 프랑스는 1971년까지 르꼬끄 스포르티브의 유니폼을 착용했었다. 1972년, 프랑스는 독일 스포츠 용품 회사 아디다스유니폼 계약을 맺었다. 이어지는 38년간 프랑스와 아디다스는 돈독한 파트너십을 구축하였는데, 이 기간동안 프랑스는 UEFA 유로 1984, 1998년 FIFA 월드컵, 그리고 UEFA 유로 2000에서 유명한 아디다스의 삼색 삼선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을 우승을 거두었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결승전까지 포함해 4차례의 토너먼트전에서 상, 하의, 양말이 모두 백색인 원정 유니폼 (상의에 삼색기 그라데이션이 새겨짐) 을 착용하였다.[18] 2008년 2월 22일, 프랑스 축구 협회아디다스와의 파트너십을 종료하고 2011년 1월 1일부터 미국 스포츠 용품회사 나이키와 계약한다고 발표했다. 계약금액은 역대 최고인 €320M으로 7년간 (2011년 1월 1일부터 2018년 7월 9일까지) 유효하다.

프랑스의 나이키 계약은 국가대표팀의 청색 유니폼을 축구 역사상 최고액의 유니폼 기록을 지니게 되었다.[19][20] 나이키가 제작한 유니폼을 착용하고 임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역사상 첫 주요대회는 UEFA 유로 2012이였으며, 홈 유니폼은 상, 하의, 양말이 모두 암청색이고, 금색 등번호가 새겨져 있었다.[21] 2013년 2월, 나이키는 상, 하의, 양말이 모두 연청색인 원정 유니폼을 공개하였다.

유니폼 제작사[편집]

기간 유니폼 제작사
1966–1971 프랑스 르꼬끄 스포르티브
1972–2010 독일 아디다스
2011–현재 미국 나이키

유니폼 변천사[편집]

1962년
1972년
1990년
1994년
2009년
2011년
원정
2011년
2013년

1 헝가리전에서 사용[17]

별칭[편집]

프랑스는 언론과 팬들에 의해 흔히 청색 군단 (Les Bleus) 으로 지칭되며, 국제대회에 참가하며 청색 유니폼이 조합된 모든 프랑스 스포츠 국가대표팀의 별칭으로 사용된다. 국가대표팀은 삼색기 (Les Tricolores) 나 삼색기 군단 (L'Equipe Tricolore) 으로도 불리는데, 자국 국기 색상인 청색, 백색, 그리고 적색을 사용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1980년대에 프랑스는 미셸 플라티니가 지휘하는 "마법의 사각형" (carré magique) 에 대한 찬사로 "유럽의 브라질"로도 불리었다. 미셸 이달고 감독의 지휘 하에, 프랑스는 남아메리카의 비교대상이 되는 팀과 같은 영감을 주고, 우아하며, 기술적이며, 기술적으로 진보된 공격적 축구를 보여 주기도 했다.[22]

다인종 프랑스를 대표하며[편집]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오랜 기간동안 자국의 다인종성을 반영해왔다.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선수는 1931년의 라울 디아뉴였다. 디아뉴는 최초의 아프리카계 프랑스 국회의원블레즈 디아뉴의 아들이었다. 7년 후, 디아뉴는 압델카델 벤 부알리, 미셸 브뤼소와 함께 1938년 FIFA 월드컵에 같이 참가하였는데, 벤 부알리와 브뤼소는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최초의 북아프리카계 선수들이었다. 4강까지 올랐던 1958년 FIFA 월드컵의 프랑스 선수단에는 레몽 코파, 쥐스트 퐁텐, 로제 피앙토니, 마량 위스니에스키, 그리고 베르나르 시아레이 등 다수의 이주민 자손들이 국가대표팀의 선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미셸 플라티니, 장 티가나, 마뉘엘 아모로스, 에리크 캉토나, 지네딘 지단, 파트리크 비에이라, 다비드 트레제게, 티에리 앙리, 클로드 마켈렐레, 사미르 나스리, 아템 벤 아르파, 그리고 카림 벤제마 등 최소한 한쪽의 부모가 외국인인 프랑스 선수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다인종 국가대표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1990년대에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자국의 다인종 표본으로 전국에 비추어졌다.[23] 1998년 FIFA 월드컵 우승을 거둔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프랑스 문화"의 사회적 통합에 관한 전망에 있어 자긍심을 고무시킨 것에 자축하였고, 찬사를 받았다.[24] 당시 선수단에 이름을 올린 22명의 선수들은 아르메니아, 알제리, 과들루프, 뉴 칼레도니아, 아르헨티나, 가나, 세네갈, 이탈리아, 프랑스령 기아나, 포르투갈, 그리고 마르티니크가 있었고, 주축 선수지네딘 지단의 경우에는 알제리계 이민자 부모를 둔 마르세유 출신이었다.

다인종 팀을 꾸리는 것은 한때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근래 극우전선에 의하면 프랑스 백인들이 인종적 비율에 비해 대표 수가 적다고 발언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국민전선의 정치인 장-마리 르 펜은 1998년에 월드컵을 우승한 흑인, 백인, 마그렙의 팀은 충분히 프랑스스럽지 못하다고 선동하기도 했다. 2002년, 가나 출신의 마르셀 드사이의 지휘 하에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공개적으로 프랑스 유권자들에게 르 펜의 당선을 막고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밀어달라고 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2006년, 르 펜은 레이몽 도메네크가 흑인을 너무 많이 발탁한 것에 대해 선동질을 계속하였다.[25] 2005년, 유대인 혈통의 보수주의 프랑스 기자 알랭 핑키엘크로는 이스라엘 신문 하러츠 (Haaretz) 에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사실 흑인 투성이다"라고 사설을 투고한데 이어 "그로 인해 프랑스는 유럽을 우습게 보았다" 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사설이 누구에 피해를 줄 생각이 없었다고 사죄하는데 이르었다.[26]

대중과 팀간의 사회적-인종적 분열은 2010년 FIFA 월드컵 기간에 들어 절정에 치닫았다. 국가대표팀은 본선에 진출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주장이 을 사용해 골을 넣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도착한 후, 국가대표팀은 처음 두 경기에서 득점하는데 실패하였고,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방법 외에는 16강 진출 방법이 남지 않게 되었다. 결국, 선수들은 니콜라 아넬카 사태에 대한 잘못된 대응으로 태업을 벌이게 되었다. 아넬카는 퇴출되면서 언론에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 언론에 밝혀졌다. 선수들은 그의 말이 틀렸으며, 코칭스태프로부터 고발 용의자, 언론, 그리고 협회를 비난하였다. 훈련 대신에 레이몽 도메네크 감독은 방송을 통해 선수들의 진정서를 낭독하였고, 기자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친 사르코지 정치 인사들은 반란을 불복적 행위, 선수들을 불한당으로 묘사하기에 이르었고, 발언은 인종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 명백했다.

국가대표팀이 프랑스가 식민지 지배의 과거를 너머 소수를 융합하는데 끼친 영향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2001년, 프랑스는 알제리를 상대로 1998년 FIFA 월드컵 우승의 성지인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친선전을 벌였었다. 이는 1954년과 1962년 사이에 전쟁을 벌였던 나라이자, 과거 식민지로 지배했던 국가와의 첫 만남이었고, 결국 경기는 논란의 도마에 오르기까지 했다. 경기 전의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 가 연주되는 와중에 알제리 팬들이 야유를 퍼부었고, 후반전에 프랑스가 4-1로 앞서나가는 골이 터지자, 관중이 난입하였고, 경기가 중단되었다. 경기는 다시 재개되지 않았다.

2011년 4월, 프랑스의 수사 웹사이트인 메디아파르 (Mediapart) 는 프랑스 축구 협회가 비밀리에 쿼터제를 도입해 국가 단지 입소하는 이중국적 선수들의 수 제한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폭로하였다. FFF의 성인 대표 수치에 따르면, 협회는 12-13세 연령대의 이중국적 선수들을 30%까지 제한하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27] FFF는 웹사이트에 "위원회의 누구도 승인하거나 단지 입소 쿼터제를 승인한다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라고 메디아파르의 발표 내용을 부인하는 공식 선언문을 발표해 대응하였다.[28] 협회는 이 사태에 대한 정밀조사를 추진하였고, 그 결과, 프랑수아 블라콰르 국가 기술 디렉터가 수사 결과에 따라 직위가 정지될 수도 있게 되었다.[29] 릴리앙 튀랑 전 국가대표팀 선수는 주장에 대해 "저는 이것이 농담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망연자실해서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표의하였고, 파트리크 비에이라는 주장은 로랑 블랑이 낸 것이며 회의는 "심각하고 수치스럽다"고 주장하였다. 프랑스 정부 또한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진심으로 어느 형태의 쿼터제든 반대한다." 라고 발언하였고, "쿼터제 실행은 공화국의 종말이 될 것이다." 라고 덧붙였다. 수사 후, 블랑은 무죄로 밝혀졌다.

코칭스태프[편집]

현재 프랑스 국가대표팀 감독직은 디디에 데샹이 맡고 있다.
2012년 8월 12일 기준.[30]
지위 성명
감독 디디에 데샹
수석 코치 기 스테팡
골키퍼 감독 프랑크 라비오
팀 닥터 프랑크 르 갈
접골사 장-이브 방드와유
물리치료사 크리스토프 조프로이
물리치료사 티에리 로랑

선수[편집]

최소 20회 이상의 국제 경기에 출전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를 확인하려면 이곳을 확인하십시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모든 선수 목록을 보려면 이곳을 확인하십시오.

현재 선수 명단[편집]

다음 선수들은 2015년 6월 7일과 13일에 각각 열릴 벨기에전과 알바니아전을 앞두고 차출된 선수들이다.[31]
출장 및 득점 기록은 2015년 3월 29일, 덴마크전을 기준으로 되어 있다.

# 포지션 선수 이름 생일 (나이) 출장 클럽
1 GK 위고 로리스 (주장) 1986년 12월 26일(1986-12-26) (28세) 65 0 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
16 GK 스테브 망당다 1985년 3월 28일(1985-03-28) (30세) 20 0 프랑스 마르세유
23 GK 스테판 뤼피에 1986년 9월 27일(1986-09-27) (28세) 3 0 프랑스 생테티엔
2 DF 크리스토프 자예 1983년 10월 31일(1983-10-31) (31세) 8 1 프랑스 리옹
3 DF 파트리스 에브라 1981년 5월 15일(1981-05-15) (34세) 65 0 이탈리아 유벤투스
4 DF 라파엘 바란 1993년 4월 25일(1993-04-25) (22세) 19 2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5 DF 마마두 사코 1990년 2월 13일(1990-02-13) (25세) 25 2 잉글랜드 리버풀
13 DF 엘리아킴 망갈라 1991년 2월 13일(1991-02-13) (24세) 5 0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
15 DF 바카리 사냐 1983년 2월 14일(1983-02-14) (32세) 47 0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
17 DF 베누아 트레물리나 1985년 12월 28일(1985-12-28) (29세) 3 0 스페인 세비야
21 DF 로랑 코시엘니 1985년 9월 10일(1985-09-10) (29세) 22 0 잉글랜드 아스널
6 MF 요안 카바예 1986년 1월 14일(1986-01-14) (29세) 38 3 잉글랜드 크리스탈 팰리스
8 MF 마티외 발뷔에나 1984년 9월 28일(1984-09-28) (30세) 46 6 러시아 디나모 모스크바
12 MF 디미트리 파이예 1987년 3월 29일(1987-03-29) (28세) 13 3 잉글랜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14 MF 블레즈 마튀이디 1987년 4월 9일(1987-04-09) (28세) 34 4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18 MF 무사 시소코 1989년 8월 16일(1989-08-16) (26세) 28 1 잉글랜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19 MF 폴 포그바 1993년 3월 15일(1993-03-15) (22세) 22 5 이탈리아 유벤투스
22 MF 막심 고날론 1989년 3월 10일(1989-03-10) (26세) 6 0 프랑스 리옹
24 MF 조프리 콩도비아 1993년 2월 15일(1993-02-15) (22세) 3 0 프랑스 모나코
7 FW 나빌 페키르 1993년 7월 18일(1993-07-18) (22세) 2 0 프랑스 리옹
9 FW 올리비에 지루 1986년 9월 30일(1986-09-30) (28세) 37 10 잉글랜드 아스널
10 FW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1991년 5월 28일(1991-05-28) (24세) 6 1 프랑스 리옹
11 FW 앙투안 그리즈만 1991년 3월 21일(1991-03-21) (24세) 16 5 스페인 AT 마드리드
20 FW 폴-조르주 은테프 1992년 7월 29일(1992-07-29) (23세) 0 0 프랑스

최근 차출된 선수[편집]

다음 선수들은 근래 12달 이내에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던 선수들이다.

포지션 선수 생년월일 (나이) 출장 최근 소집
GK 베누아 코스틸 1987년 7월 3일(1987-07-03) (28세) 0 0 프랑스 스타드 렌 FC 2015년 3월 29일, 덴마크 덴마크
DF 퀴르 주마 1994년 10월 27일(1994-10-27) (20세) 1 0 잉글랜드 첼시FC 2015년 3월 29일, 덴마크 덴마크
DF 뤼카 디뉴 1993년 7월 20일(1993-07-20) (22세) 8 0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FC 2014년 11월 18일, 스웨덴 스웨덴
DF 마푸 양가-음비와 1989년 5월 15일(1989-05-15) (26세) 4 0 이탈리아 AS로마 2014년 11월 18일, 스웨덴 스웨덴
DF 레뱅 퀴르자와 1992년 9월 4일(1992-09-04) (22세) 2 0 프랑스 AS모나코 2014년 11월 18일, 스웨덴 스웨덴
DF 로이크 페랭 1985년 8월 7일(1985-08-07) (30세) 0 0 프랑스 AS생테티엔 2014년 11월 18일, 스웨덴 스웨덴
DF 제레미 마티외 1983년 10월 29일(1983-10-29) (31세) 4 0 스페인 FC바르셀로나 2014년 10월 14일,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DF 마티외 드뷔시 1985년 7월 28일(1985-07-28) (30세) 26 2 잉글랜드 아스널FC 2014년 9월 7일, 세르비아 세르비아
MF 모르간 슈나이덜린 1989년 11월 8일(1989-11-08) (25세) 9 0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5년 3월 29일, 덴마크 덴마크
MF 오호수아 길라보기 1990년 9월 19일(1990-09-19) (24세) 7 0 독일 VfL볼프스부르크 2015년 3월 29일, 덴마크 덴마크
MF 레미 카벨라 1990년 3월 8일(1990-03-08) (25세) 4 0 잉글랜드 뉴캐슬 유나이티드FC 2014년 10월 14일,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MF 리오 마뷔바 1984년 3월 8일(1984-03-08) (31세) 13 0 프랑스 릴 OSC 2014년 9월 7일, 세르비아 세르비아
MF 프랑크 리베리 1983년 4월 7일(1983-04-07) (32세) 81 16 독일 FC바이에른 뮌헨 은퇴, 2014년 FIFA 월드컵
MF 클레멍 그르니에 1991년 1월 7일(1991-01-07) (24세) 5 0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 2014년 FIFA 월드컵
FW 카림 벤제마 1987년 12월 19일(1987-12-19) (27세) 78 25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2015년 3월 29일, 덴마크 덴마크
FW 앙드레-피에르 지냑 1985년 12월 5일(1985-12-05) (29세) 21 5 프랑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14년 11월 18일, 스웨덴 스웨덴
FW 로이크 레미 1987년 1월 2일(1987-01-02) (28세) 30 7 잉글랜드 첼시FC 2014년 10월 14일,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범례

: 국가대표팀 은퇴
: 부상으로 선수단에서 제외

결과 및 일정[편집]

2015년[편집]

2016년[편집]

대회 기록[편집]

국가대표팀의 단일 경기 결과를 확인하려면 프랑스 축구 시즌 문서와 결과 문서를 확인하십시오.

FIFA 월드컵[편집]

프랑스는 1930년에 열린 초대 FIFA 월드컵에 참가한 4개의 유럽팀들 중 한팀으로, 14차례의 FIFA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였고, 역대 5위로 동률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 우승을 경험해 본 8개의 국가대표팀들 중 한팀이다. 프랑스는 1998년에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FIFA 월드컵 우승을 거두었다. 대회는 홈 안방에서 개최되었고, 프랑스는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3-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2006년에 프랑스는 이탈리아와의 승부차기에서 3-5로 패하며 준우승을 거두었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1958년, 1986년에도 두 차례 3위를 차지하였고, 1982년에는 4위를 차지하였다. 본선 참가팀 수가 32팀으로 늘어난 이래 국가대표팀의 역대 최악의 성적은 2002년2010년에 1라운드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2002년에 프랑스는 세네갈과의 경기에서 충격패를 당해 무득점으로 탈락하였고, 2010년에는 멕시코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연달아 패하고 우루과이로부터 승점 1점을 버는데 그쳤다.[32][33]

FIFA 월드컵 기록 예선 기록
연도 결과 순위 무* 무*
우루과이 1930년 조별 리그 7위 3 1 0 2 4 3 초대를 통해 자동출전
이탈리아 1934년 1라운드 9위 1 0 0 1 2 3 1 1 0 0 6 1
프랑스 1938년 8강 6위 2 1 0 1 4 4 개최국으로 자동출전
브라질 1950년 기권 3 0 2 1 4 5
스위스 1954년 조별 리그 11위 2 1 0 1 3 3 4 4 0 0 20 4
스웨덴 1958년 3위 3위 6 4 0 2 23 15 4 3 1 0 19 4
칠레 1962년 진출 실패 5 3 0 2 10 4
잉글랜드 1966년 조별 리그 13위 3 0 1 2 2 5 6 5 0 1 9 2
멕시코 1970년 진출 실패 4 2 0 2 6 4
서독 1974년 4 1 1 2 3 5
아르헨티나 1978년 조별 리그 12위 3 1 0 2 5 5 4 2 1 1 7 4
스페인 1982년 4위 4위 7 3 2 2 16 12 8 5 0 3 20 8
멕시코 1986년 3위 3위 7 4 2 1 12 6 8 5 1 2 15 4
이탈리아 1990년 진출 실패 8 3 3 2 10 7
미국 1994년 10 6 1 3 17 10
프랑스 1998년 우승 1위 7 6 1 0 15 2 개최국으로 자동출전
대한민국 일본 2002년 조별 리그 28위 3 0 1 2 0 3 전 대회 우승팀으로 자동출전
독일 2006년 준우승 2위 7 4 3 0 9 3 10 5 5 0 14 2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년 조별 리그 29위 3 0 1 2 1 4 12 7 4 1 20 10
브라질 2014년 8강 7위 5 3 1 1 10 3 10 6 2 2 18 8
합계 1회 우승 14/20 59 28 12 19 106 71 101 58 21 22 198 82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편집]

프랑스는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가장 성공적인 팀들 중 하나로, 1984년2000년에 두 차례 우승을 거두었다. 프랑스는 각 세 차례씩 우승을 거둔 스페인독일 다음으로 많은 우승을 거두었다. 프랑스는 1960년에 초대 대회를 개최하였고, 그 후로 7차례의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역대 4위로 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는 홈 안방에서 열린 1984년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두었고, 당시 발롱도르 수상자인 미셸 플라티니가 지휘했다. 2000년, FIFA 올해의 선수 지네딘 지단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열린 대회에서 두번째 우승을 거두었다. 프랑스의 대회 역대 최악의 성적은 1992년2008년의 1라운드 탈락이다.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기록 예선 기록
연도 결과 순위 무* 무*
프랑스 1960년 4위 4위 2 0 0 2 4 7 4 3 1 0 17 6
스페인 1964년 진출 실패 6 2 1 3 11 10
이탈리아 1968년 8 4 2 2 16 12
벨기에 1972년 6 3 1 2 10 8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1976년 6 1 3 2 7 6
이탈리아 1980년 8 4 1 1 13 7
프랑스 1984년 우승 1위 5 5 0 0 14 4 개최국으로 자동진출
서독 1988년 진출 실패 8 1 4 3 4 7
스웨덴 1992년 조별 리그 6위 3 0 2 1 2 3 8 8 0 0 20 6
잉글랜드 1996년 준결승 4위 5 2 3 0 5 2 10 5 5 0 22 2
벨기에 네덜란드 2000년 우승 1위 6 5 0 1 13 7 10 6 3 1 17 10
포르투갈 2004년 8강 6위 4 2 1 1 7 5 8 8 0 0 29 2
오스트리아 스위스 2008년 조별 리그 15위 3 0 1 2 1 6 12 8 2 2 25 5
포르투갈 우크라이나 2012년 8강 8위 4 1 1 2 3 5 10 6 3 1 15 4
프랑스 2016년 미정 개최국으로 자동진출
합계 2회 우승 8/14 32 15 8 9 49 39 102 59 26 17 206 8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기록[편집]

프랑스는 9번의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 중 2번을 출전하였고, 출전한 2대회 모두 우승을 거두었다. 프랑스는 2번의 우승으로 4차례 우승을 거둔 브라질의 뒤를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는 1998년 FIFA 월드컵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한 2001년에 대회 첫 우승을 거두었다. 프랑스는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1-0으로 승리하였다. 그 다음 컨페더레이션스컵인 2003년 대회에서 프랑스는 UEFA 유로 2000 우승팀 자격과 개최국으로써 대회에 진출하였고, 카메룬과의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1-0으로 이겨 우승을 거두었다.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기록
연도 라운드 순위 무*
사우디아라비아 1992년 진출 실패
사우디아라비아 1995년
사우디아라비아 1997년
멕시코 1999년 불참[34]
대한민국 일본 2001년 우승 1위 5 4 0 1 12 2
프랑스 2003년 우승 1위 5 5 0 0 12 3
독일 2005년 진출 실패
남아프리카 공화국 2009년
브라질 2013년
합계 2회 우승 2/9 10 9 0 1 24 5
* 무승부 횟수는 승부차기로 승부가 결정된 녹아웃 토너먼트 경기도 포함된다.
** 금색은 우승한 대회를 나타낸다.

기타 대회[편집]

연도 라운드 순위 무*
벨기에 1904년 트로페 드 에방스 코페 공동우승 1위 1 0 1 0 3 3
브라질 1972년 브라질 독립컵 조별 리그 8위 4 3 1 0 10 2
프랑스 1985년 아르테미오 프란키 트로피 우승 1 1 0 0 2 0
프랑스 1988년 투르누아 드 프랑스 우승 1위 2 2 0 0 4 2
쿠웨이트 1990년 쿠웨이트 토너먼트 우승 1위 2 2 0 0 4 0
일본 1994년 기린컵 우승 1위 2 2 0 0 5 1
프랑스 1997년 투르누아 드 프랑스 조별 리그 3위 3 0 2 1 3 4
모로코 1998년 투르누아 하산 II 드 푸트볼 우승 1위 2 1 1 0 3 2
모로코 2000년 투르누아 하산 II 드 푸트볼 우승 1위 2 1 1 0 7 3
남아프리카 공화국 2000년 넬슨 만델라 챌린지 컵 공동우승 1 0 1 0 0 0
합계 8회 우승 20 12 7 1 41 17
* 무승부 횟수는 승부차기로 승부가 결정된 녹아웃 토너먼트 경기도 포함된다.
** 금색은 우승한 대회를 나타낸다.

수상[편집]

다음은 프랑스 성인 국가대표팀의 수상 목록이다

FIFA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올림픽 축구

기타 우승[편집]

트로페 드 에방스 코페

아르테미오 프란키 트로피

  • 우승: 1985

기린컵

  • 우승: 1994

투르누아 하산 II 드 푸트볼

투르누아 드 프랑스

  • 우승: 1988

넬슨 만델라 챌린지컵

  • 우승: 2000

나사시의 바통

  • 우승: 1977, 1978, 1982, 1983, 1984, 1991, 2001

통계[편집]

최다 출장 선수[편집]

릴리앙 튀랑은 프랑스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출전 선수로, 142번의 국제경기에 출전하였다.
  현역 선수는 강조 표시가 되어있다.
# 성명 기간 출장
1 릴리앙 튀랑 1994–2008 142 2
2 티에리 앙리 1997–2010 123 51
3 마르셀 드사이 1993–2004 116 3
4 지네딘 지단 1994–2006 108 31
5 파트리크 비에이라 1997–2009 107 6
6 디디에 데샹 1989–2000 103 4
7 로랑 블랑 1989–2000 97 16
8 빅상트 리자라쥐 1992–2004 97 2
9 실뱅 윌토르 1999–2006 92 26
10 파비앵 바르테즈 1994–2006 87 0

2014년 10월 14일 기준
출처: 프랑스 축구 협회

최다 득점 선수[편집]

티에리 앙리는 51골로 프랑스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득점자이다.
# 선수 경력 출장 골평균
1 티에리 앙리 1997–2010 51 123 0.42
2 미셸 플라티니 1976–1987 41 72 0.57
3 다비드 트레제게 1998–2008 34 71 0.47
4 지네딘 지단 1994–2006 31 108 0.28
5 쥐스트 퐁텐 1953–1960 30 21 1.42
6 장-피에르 파팽 1986–1995 30 54 0.55
7 유리 조르카에프 1993–2002 28 82 0.34
8 실뱅 윌토르 1999–2006 26 92 0.28
9 카림 벤제마 2007–현재 25 75 0.34
10 장 뱅상 1953–1961 22 46 0.47

2014년 10월 14일 기준
출처: 프랑스 축구 협회

감독[편집]

감독 임기 승률 (%)
프랑스 게랭, 앙리앙리 게랭 1964–1966 15 5 4 6 33.3
스페인 아리바스, 호세호세 아리바스
프랑스 스넬라, 장장 스넬라
1966 4 2 0 2 50.0
프랑스 퐁텐, 쥐스트쥐스트 퐁텐 1967 2 0 0 2 0.0
프랑스 뒤고게, 루이루이 뒤고게 1967–1968 9 2 3 4 22.2
프랑스 불로뉴, 조르주조르주 불로뉴 1969–1973 31 15 5 11 48.4
루마니아 코바치, 슈테판슈테판 코바치 1973–1975 15 6 4 5 40.0
프랑스 이달고, 미셸미셸 이달고 1976–1984 75 41 16 18 54.7
프랑스 미셸, 앙리앙리 미셸 1984–1988 36 16 12 8 44.4
프랑스 플라티니, 미셸미셸 플라티니 1988–1992 29 16 8 5 55.2
프랑스 울리에, 제라르제라르 울리에 1992–1993 12 7 1 4 58.3
프랑스 자케, 에메에메 자케 1994–1998 53 34 16 3 64.2
프랑스 르메르, 로제로제 르메르 1998–2002 53 34 11 8 64.2
프랑스 상티니, 자크자크 상티니 2002–2004 28 22 4 2 78.6
프랑스 도메네크, 레이몽레이몽 도메네크 2004–2010 79 41 24 14 51.9
프랑스 블랑, 로랑로랑 블랑 2010–2012 27 16 7 4 59.3
프랑스 데샹, 디디에디디에 데샹 2012– 35 20 8 7 57.1
이탤릭체로 쓰여진 감독은 대행 감독이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나머지 두 팀은 미국 (1938년에 경기를 치르지 않고 기권) 과 브라질 (모든 대회 본선 진출) 이다.
  2. “France v. Belgium 1904 Match Report”. FFF. 2010년 7월 4일에 확인함. 
  3. “France v. Germany 1982 Match Report”. FFF. 2010년 6월 4일에 확인함. 
  4. Krishnan, Joe (2014년 6월 18일). “World Cup 2014: Spain and the World Cup holders who crashed out at the group stage”. The Independent. 2015년 4월 18일에 확인함. 
  5. “Communiqué de la Fédération”. 《FFF》 (fff.fr). 2010년 6월 19일. 2010년 6월 21일에 확인함. 
  6. “World Cup 2010: Nicolas Anelka sent home after bust-up”. UK: BBC. 2010년 6월 19일. 2010년 6월 19일에 확인함. 
  7. “French football in chaos after players' mutiny”. 《Agence France Press》 (Google). 2010년 6월 20일. 2010년 6월 21일에 확인함. 
  8. “Brazil advances, Italy held to another WCup draw”. Google. Associated Press. 2010년 6월 20일. 2010년 6월 21일에 확인함. 
  9. “Communiqué de la FFF”. 《FFF》 (FFF). 2010년 6월 20일. 2010년 6월 21일에 확인함. 
  10. http://usatoday30.usatoday.com/sports/soccer/2010-06-22-3046509653_x.htm
  11. Kim Willsher (2010년 6월 23일). “Sarkozy to quiz Thierry Henry over French World Cup fiasco”. UK: The Guardian. 
  12. “France World Cup squad suspended for Norway friendly”. BBC Sport. 2010년 7월 23일. 2010년 7월 24일에 확인함. 
  13. “Nicolas Anelka laughs at 'nonsense' 18-match French ban”. BBC Sport. 2010년 8월 18일. 2010년 8월 18일에 확인함. 
  14. Davies, Lizzy (2010년 8월 17일). “Nicolas Anelka suspended for 18 matches by France over World Cup revolt”. UK: The Guardian. 2010년 8월 18일에 확인함. 
  15. “TF1, diffuseur exclusif des matches de l’Equi...”. Investegate. 2009년 12월 18일. 2010년 6월 4일에 확인함. 
  16. “TF1 restera le diffuseur de l’équipe de France de football entre 2010 et 2014.”. Sport24. 2009년 12월 18일. 2010년 6월 4일에 확인함. 
  17. Murray, Scott (2010년 5월 21일). “The Joy of Six: Things we miss about the World Cup”. UK: The Guardian. 2010년 5월 21일에 확인함. 
  18. “FIFA World Cup 2006 Knock Out Stages”. Historical Football Kits. 2013년 4월 19일에 확인함. 
  19. “Nike prochain équipementier”. L'Equipe. 2008년 2월 22일. 2010년 6월 4일에 확인함. 
  20. “You Are All Invited to the France-Nike Wedding, the Couple is Registered for €320m”. Soccer Lens. 2008년 2월 22일. 2010년 6월 4일에 확인함. 
  21. “2012 UEFA European Football Championship”. Historical Football Kits. 2013년 4월 19일에 확인함. 
  22. “One-On-One: Michel Platini”. FourFourTwo. 2010년 6월 4일에 확인함. 
  23. Marcotti, Gabriele (2010년 3월 1일). “Wider view of France ’98 gives Emmanuel Petit opportunity to look back in anger”. UK: The Times. 2010년 7월 27일에 확인함. 
  24. “France's multicultural World Cup-winning team (1998) achieved little for integration”. United for Peace of Pierce County. 2005년 11월 11일. 2010년 7월 28일에 확인함. 
  25. “The Sword is Mightier than Le Pen”. ESPN. 2006년 7월 7일. 2006년 8월 17일에 확인함. 
  26. “Finkielkraut sur Europe 1”. France: Le Nouvel Observateur. 2005년 11월 25일. 2005년 11월 25일에 확인함. 
  27. “French football body to investigate 'race quota' claim”. BBC. 2011년 4월 30일. 2011년 5월 9일에 확인함. 
  28. “Le DTN suspendu de ses fonctions” (프랑스어). 프랑스 축구 협회. 2011년 4월 30일. 2011년 5월 9일에 확인함. 
  29. “Précision de la FFF” (프랑스어). 프랑스 축구 협회. 2011년 4월 30일. 2011년 5월 9일에 확인함. 
  30. “Le staff des Bleus” (프랑스어). 프랑스 축구 협회. 2010년 8월 5일. 2010년 8월 5일에 확인함. 
  31. “Matches amicaux France-Belgique et Albanie-France des 7 et 13/06/2015”. fff.fr. 2015년 5월 23일. 
  32. “Senegal stun France”.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2002년 5월 31일. 2010년 6월 24일에 확인함. 
  33. “Dismal France eliminated from World Cup”. Cable News Network. 2010년 6월 22일. 2010년 6월 25일에 확인함. 
  34. 1998년 FIFA 월드컵 우승팀 자격으로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