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 (고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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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우'''(普愚: [[1301년|1301]]~[[1382년|1382]])는 [[고려]] 말에 [[불교]] 개혁에 힘쓴 [[승려]]이다. 흔히 '''태고'''(太古) 또는 '''태고국사'''(太古國師)라 불리는데, 태고는 그의 호이다.<ref name="글로벌-보우">[[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중세사회의 발전/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고려 후기의 문화#보우|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 > 고려 후기의 문화 > 보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보우'''(普愚: [[1301년|1301]]~[[1382년|1382]])는 [[고려]] 말의 고승으로 [[불교]] 개혁에 힘쓴 [[승려]]이다. 흔히 '''태고'''(太古) 또는 '''태고국사'''(太古國師)라 불리는데, 태고는 그의 호이다.<ref name="글로벌-보우">[[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중세사회의 발전/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고려 후기의 문화#보우|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 > 고려 후기의 문화 > 보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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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5년]]([[충숙왕]] 12년) [[승과]](僧科)에 급제했으나 명리(名利)를 버리고 [[감로사]](甘露寺)에서 고행(苦行)을 하였다.<ref name="글로벌-보우"/> [[삼각산]]에 [[태고사 (고양시)|태고사]](太古寺)를 지었고, [[1346년]]([[충목왕]] 2년) [[원나라]]에 가서 하무산(霞霧山) [[청공]](淸珙)의 법을 이어받아 [[임제종]](臨濟宗)의 시조(始祖)가 되었다.<ref name="글로벌-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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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보기 ==
== 함께 보기 ==

2011년 6월 18일 (토) 08:54 판

보우(普愚: 1301~1382)는 고려 말의 고승으로 불교 개혁에 힘쓴 승려이다. 흔히 태고(太古) 또는 태고국사(太古國師)라 불리는데, 태고는 그의 호이다.[1]

생애

13세에 승려가 되어 가지산(迦智山)에서 도를 닦았다.[1]

1325년(충숙왕 12년) 승과(僧科)에 급제했으나 명리(名利)를 버리고 감로사(甘露寺)에서 고행(苦行)을 하였다.[1] 삼각산태고사(太古寺)를 지었고, 1346년(충목왕 2년) 원나라에 가서 하무산(霞霧山) 청공(淸珙)의 법을 이어받아 임제종(臨濟宗)의 시조(始祖)가 되었다.[1]

귀국하여 공민왕의 청으로 왕사(王師)가 되었으나 신돈의 횡포를 미워하여 소설사(小雪師)로 돌아갔으며 그의 참해를 피하여 법주사에 은거하였다.[1][2] 그후 신돈이 죽은 후 우왕국사(國師)가 되었다.[1]<ref name="글로벌-보우2">

활동

보우는 대각국사 의천이 치선(痴禪)이라고 갈파한 9산(九山)을 통합하고 구이지학(口耳之學)을 지양(止揚)하고자 원융부(圓融府)를 건립하고 선사(先師)의 품법(稟法)으로 전(全) 불교를 총섭(摠攝)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ref name="글로벌-보우2">

함께 보기

주석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