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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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용어

아라한·응공·무학

중국어: 阿羅漢, 羅漢
(병음ēluóhàn)
팔리어: arahant
산스크리트어: arhat
버마어: ရဟန္တာ
(yahanda)
베트남어: a-la-hán
영어: arhat
일본어: 阿羅漢, 羅漢
(로마자: arakan)
태국어: อรหัน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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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교의 ·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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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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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종파
원시 부파 상좌부 대승
경전
경장 율장 논장
팔리어 한역 티베트
성지
팔대성지
지역별 불교
몽골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 일본 중국
타이 티베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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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阿羅漢, 산스크리트어: arhat, 팔리어: arahant, 영어: perfected one (who has attained nirvana),[1] enlightened, worthy, venerable, saintly one[2][3])은 줄여서 나한(羅漢)이라고 하는데, 산스크리트어 아르하트(arhat)의 음역어로 다음의 분류, 그룹 또는 체계의 한 요소이다.[4][5][6]

아라한(阿羅漢)은 다른 음역어로 아라가(阿羅呵) 또는 아라하(阿羅呵)라고도 한다.[7][8] 의역하여 살적(殺賊) · 불생(不生) · 응수공양(應受供養) 또는 응공(應供)이라고도 하며, 더 배워야 할 것 또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는 유학(有學)의 성자에 대비하여, 성도(聖道)를 모두 성취했기에 더 배워야 할 것 또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다는 뜻에서 무학(無學)이라고도 한다.[9][10][11][12]

원래는 부처여래10가지 명호여래10호(如來十號) 또는 불10호(佛十號) 가운데 하나로 부처의 지위증득유정, 즉 부처 또는 여래를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이후 부파불교 시대에서는 고타마 붓다에 대한 존경이 커져서 부처와 수행자로서의 아라한과는 구분하게 되었고, 성문4향4과의 최고위인 아라한향 · 아라한과유정을 통칭하여 아라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4][6] 나아가 부파불교에서는 모든 유정성문으로서의 최고위인 아라한은 될 수 있으나 부처가 되지는 못한다는 견해까지 나타났고, 이에 대해 모든 유정성불할 수 있다는 대승불교가 출현하면서 대승불교에서는 아라한이라는 낱말을 부파불교의 폄칭인 소승(小乘) 즉 성문 · 연각2승(二乘)의 최고위의 성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게 되었다.[4]

대승불교의 논서인 《대지도론》 등에서 아라한을 부처의 다른 명칭으로 해설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7][8][주해 1] 아라한은 넓은 뜻에서는 대승불교보살 수행계위부파불교4향4과의 수행계위에서 최고의 계위의 성자를 가리키며, 좁은 뜻에서는 부파불교4향4과의 수행계위에서 최고의 계위의 성자를 가리킨다.[5] 불교 경전과 논서들에서의 아라한의 의미는 이러한 문맥에 따라 달리 해석하여야 한다.

역사[편집]

원시불교에서는 불십호(佛十號)의 하나로서 응공이 쓰여져서 불타도 아라한이라고 불렸으나 부파불교에서는 불타에 대한 추모의 염이 높아짐과 동시에 불타를 신격화하는 경향이 강해져서 불타는 과거 수백천생(數百千生)의 장기에 걸쳐서 갖가지 이타(利他)의 선행을 해온 특별한 인격이며 석존 혼자만이 불타로 될 수 있는 것으로서 제자들은 이 인격완성자로서의 불타의 가르침을 듣고(聲聞) 그에 따라서 수행함으로써 성문으로서의 최고위인 아라한으로 될 수 있지만 불타로는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윽고 모든 사람이 불타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대승불교가 흥기(興起)한 후 아라한은 소승(小乘)의 성자(聖者)에게만 국한하게 되었다.[4]

다른 이름[편집]

음역어[편집]

의역어[편집]

대지도론의 해석[편집]

살적[편집]

불생[편집]

응수공양[편집]

기타[편집]

아라한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옥황상제에게 직접 보호를 받으며 아라한을 살해할 경우 불교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인 아비지옥에 떨어진다.[출처 필요 문단]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내용주[편집]

  1. 용수의 저작을 구마라습이 번역한 한역본 《대지도론》에서는 여래10호로서의 아라한과 성문4과의 성자로서의 아라한을 구분하여, 전자의 경우에는 아라가(阿羅呵: '아라하'라고도 읽는다)라고 표기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표기하여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의 원어는 동일하다.[10] 말하자면, 원어상으로는 문맥에 따라 구분해야 하는데, 구마라습이 이미 문맥에 따라 구분하여 《대지도론》을 번역해 놓은 상태인 것이다.

참조주[편집]

  1. Warder 2000, 67쪽.
  2. 고려대장경연구소, "아라한 阿羅漢".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3. DDB, "阿羅漢".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4.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교 > 불교의 사상 > 근본불교의 사상 > 부파불교의 사상 > 아라한",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아라한: 阿羅漢 아르하트(arhat)의 음역(音譯)으로서 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을 뜻하는 데서 응공(應供)이라고 번역된다. 즉 일체의 번뇌를 끊고 해야 할 일을 완성하고 다시 더 배울 바가 없으며(無學),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 원시불교에서는 불십호(佛十號)의 하나로서 응공이 쓰여져서 불타도 아라한이라고 불렸으나 부파불교에서는 불타에 대한 추모의 염이 높아짐과 동시에 불타를 신격화하는 경향이 강해져서 불타는 과거 수백천생(數百千生)의 장기에 걸쳐서 갖가지 이타(利他)의 선행을 해온 특별한 인격이며 석존 혼자만이 불타로 될 수 있는 것으로서 제자들은 이 인격완성자로서의 불타의 가르침을 듣고(聲聞) 그에 따라서 수행함으로써 성문으로서의 최고위인 아라한으로 될 수 있지만 불타로는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윽고 모든 사람이 불타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대승불교가 흥기(興起)한 후 아라한은 소승(小乘)의 성자(聖者)에게만 국한하게 되었다."
  5. 星雲, "阿羅漢".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6. 해주. "아비달마 불교 - 알기 쉬운 교리 강좌", 《월간 불광》. 제196호. 2013년 2월 22일에 확인.
    "선업에 의해 선한 과보를 받아 선취에 태어남도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아비달마에서 목표로 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이처럼 업보의 계박에서 벗어나 윤회를 초월하는 것이다. 무루의 지혜에 의해 번뇌를 소멸하고 깨달음의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 출세간의 길, 곧 성도이다.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에서는 이에 견도, 수도, 무학도의 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무학도는 수도의 과정이라기보다 견도 수도에 의한 목적이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것이 무학이다. 견도의 견은 4제를 관한다는 의미이다. 견도 후에 알기는 해도 여전히 끊어지지 않는 애욕과 같은 번뇌까지도 수도의 과정에서 다 끊었을 때 비로서 아비달마에서 최고의 성자로 불리는 아라한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도중에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네단계 계위가 설정되어 있다.
    아라한인 응공은 여래십호의 하나이다. 부처님도 스스로를 아라한이라고 부르셨다. 그러한 아비달마논서에 있어서 수행자가 도달하는 궁극적 깨달음의 경지로서의 아라한과 불타의 경지는 분명히 구별되고 있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석존을 깊이 숭앙하는 마음에서 불타의 위대함을 극찬하면서 스스로 목적하는 바의 아라한과 불타의 거리를 엄격히 유지하였다. 그들이 도달한 아라한이 결코 불타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7. 용수 조, 구마라습 한역 T.1509, 제2권. p. T25n1509_p0071b19 - T25n1509_p0071c01. 아라가(阿羅呵).
  8. 용수 지음, 구마라습 한역, 김성구 번역 K.549, T.1509, 제2권. pp. 83-84 / 2698. 아라가(阿羅呵).
  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제2권. p. 85 / 1397. 무학(無學).
  10. 운허, "阿羅漢(아라한)".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11. 운허, "無學(무학".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12. 星雲, "無學".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