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요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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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요(劉繇, 156년 ~ 197년)는 중국 후한 말기의 정치가로, 정례(正禮)이며, 동래군(東萊郡) 모평현(牟平縣) 사람이다.

생애[편집]

사적은 《삼국지》 유요전에 남아 있다.

172년, 종부(從父)인 유위(劉韙)가 도적에게 붙잡혀 인질이 되었는데 유요가 도적들에게서 유위를 구하여 명성을 얻었다. 이후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고, 낭중(郞中)이 되었으며 하읍현의 장으로 임명됐으나, 군수의 청탁을 받자 관직을 버렸다. 청주에서 불러들여 제남군위로 삼았고, 제남상이 중상시의 아들로 탐욕스러워 뇌물로 자기 배를 채우기에 상주하여 파면시켰다. 일찍이 형 유대를 무재로 천거한 도구흥에게 무재로 천거되었다. 사공연으로 초빙되고 시어사를 제수받았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그가 회포에서 난을 피하고 있을 때, 조정으로부터 양주자사로 임명한다는 조서가 내려왔다. 원술이 이미 전임 양주자사 진온 사후 스스로 양주자사를 임명하고 양주의 치소가 있는 회남 일대를 점거했기에, 이를 두려워해서 유요는 감히 부임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요가 남쪽으로 장강을 건너려고 하자 오경손분이 그를 영접하였으며 유요를 곡아에 두었다. 원술은 칭제를 기도하여 여강태수 육강을 공격하는 등 양주의 여러 군현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유요는 번능장영을 파견해 원술에게 대항토록 하고, 오경과 손분이 원술로부터 관직을 받은 것을 힐책하며 쫓아냈다. 원술은 자기 부하로 양주자사를 새로 임명하고 손분과 오경에게 병사를 주어 번능, 우미, 장영을 공격했으나 1년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 유요가 원술로부터 항거하자 조정은 양주목, 진문장군을 더했고 수만의 병졸을 주었다.

흥평 원년(194년), 손책이 손분과 오경을 도우러 와, 장강을 건너 장영과 번능 등을 격파했다. 흥평 2년(195년)에는 우저를 빼앗겼고, 유요에게 의지하며 말릉성을 지키고 있던 착융설례도 손책에게 격파당했으며, 설례, 번능, 우미가 반격하여 우저를 되빼앗았다가 도로 빼앗겼다. 착융이 성을 견고히 지키자 손책은 방향을 돌려 곡아에 있는 유요를 공격하였고, 유요는 단도로 달아났다가 예장을 지키고자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팽택에 머물렀다. 처음 손책의 군사와 맞닥트렸을 때, 마침 태사자가 유요와 동향 사람인 연고로 곡아로 내려와서 유요에게 나아왔다. 태사자를 장군감으로 권하는 말이 있었으나, 유요는 허소의 비웃음을 사지 않고자 태사자를 임용하지 않았다.

당초 유요는 회계로 달아나려 했으나, 허소가 손책이 회계를 공격할 것이므로 반대하고 예장으로 가면 조조 · 유표와 연락하며 지킬 수 있다고 권하여 예장으로 경로를 바꾸었다.[1] 당시 예장에서는 유표가 임명한 태수 제갈현과 조정이 임명한 태수 주호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유요는 주호를 후원하여 착융을 파견하여 제갈현을 치게 했다. 허소는 착융은 명분을 돌아볼 사람이 아닌데 주호는 사람을 믿으니, 마땅히 사람을 보내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2] 과연 착융은 주호를 죽이고 예장을 점거했다. 유요는 착융을 쳐, 한 번은 졌으나 마침내 착융을 무찔렀다.

〈제갈량전〉에 인용된 헌제춘추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제갈)현은 서성으로 물러났고, …. 건안 2년(197년) 정월, 서성의 민이 반란을 일으켜 (제갈)현을 죽이고 그 머리를 유요에게 보냈다.” 이를 보면 유요는 197년까지 살아 있던 것 같다. 이후 병이 들어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손책은 병사한 유요의 시신을 거두고 그의 식솔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가계[편집]

유요는 한나라 제효왕(齊孝王)의 작은 아들 모평후의 가계에 속한다. 유요의 백부 유총(劉寵)은 한나라 태위(太衛)였다. 유요의 형 유대는 자가 공산이고, 시중과 연주자사를 역임했다. 자식으로는 유기, 유삭, 유상이 있다. 이중 큰 아들 유기손권을 섬기며 수려한 용모로 총애를 받았고 나중에 광록훈의 직위에까지 올랐다. 손권의 아들 손패는 아내로 유기의 딸을 맞이하였다.

유요.png

유요를 섬긴 사람들[편집]

진횡나관중(羅貫中)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이다.

주석[편집]

  1. 원굉, 《한기》
  2. 《헌제춘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