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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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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보호|2022년 5월 22일|크기=작게}}
{{정치인 정보
{{저작권 의심|날짜=2018-01-18}}
{{대통령 정보
|이름 = 문재인
|이름 = 문재인
|원래 이름 =
|그림 = Moon0001.jpg
|명칭 = 대통령
|그림크기 =
|그림 = Moon Jae-in May 2017.jpg
|그림설명 =
|크기 = 250px
|설명 =
|국가 = 대한민국
|대수 = 19
|취임일 = [[2017년]] [[5월 10일]]
|퇴임일 =
|부통령명칭 = 국무총리
|부통령 = [[이낙연]] (2017년 ~ )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53|1|24}}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53|1|24}}
|출생지 = {{국기|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사망일 =
|국적 = {{국기|대한민국}}
|사망지 =
|학력 = [[경희대학교|경희대학교 법과대학]] LL.B.
|거주지 = {{국기|대한민국}}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 (양산시)|매곡동]]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청와대]]
|국적 = [[대한민국]]
|종교 = [[천주교]] (세례명 : 디모테오)
|본관 = [[남평 문씨|남평]]
|부모 = 아버지 문용형, 어머니 강한옥
|배우자 = 김정숙
|별명 = 약칭 文
|자녀 = 슬하 1남 1녀
|경력 =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과 강사<br/>청와대 시민사회수석<br />[[청와대 민정수석]]<br/>제2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br/>[[민주통합당]] 상임고문<br/>[[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br/>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br/>[[더불어민주당]] 당대표<br/>[[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군복무 = 육군병장 만기전역
|정당 = [[더불어민주당]]
|정당 = [[더불어민주당]]
|학력 = [[경희대학교]] 법학 학사
|지역구 = 前 [[부산 사상구의 국회의원|부산 사상구]]
|별명 = 이니, 달님, 문프, 명왕
|소속상임위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ref>{{뉴스 인용|제목=천주교 신자 文 대통령 관저서 축복식…세례명은?|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322443|뉴스=매일경제|날짜=2017-05-15|확인날짜=2017-06-15|인용문=문 대통령의 세례명은 디모테오, 김 여사의 세례명은 골롬바이다. 디모테오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자', 골롬바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뜻한다.}}</ref>
|소속위원회2 =
|배우자 = [[김정숙 (1954년)|김정숙]]
|의원 선수 = 1
|자녀 = 1남 1녀
|의원 대수 = 19
|부모 = 아버지 문용형, 어머니 강한옥
|당내 직책 = 상임고문
|서명 = 文在寅 簽名.svg
|국회 내 직책 =
|전임 = 박근혜
|서명 = Moon Jae In Signature.png
|전임대수 = 18
|후임 =
|후임대수 = 20
|웹사이트 = http://www.president.go.kr/
|복무 = [[대한민국 국군]]
|복무기간 = 1975년 8월 - 1978년
|소속 = [[대한민국 육군]]
|계급 = {{대한민국 국군 계급장|병장|육군}}
|지휘 =
|근무 =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참전 =
[[한반도 분쟁]]
*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서훈 =
}}
}}
'''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 農心 꿰뚫는 '20년 지기'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168255|출판사=매일경제|저자=이태규 기자|날짜=2003-01-23|확인일자=2013-09-16}}</ref>


'''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이다. 본관은 [[남평 문씨|남평]](南平)이다.<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과 남평문씨'…나주 곳곳에 남평문씨 흔적|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09/0200000000AKR20170509105100054.HTML|날짜=2017-05-10|뉴스=연합뉴스}}</ref>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가 서대문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대학에서 제적 당했다. 출소 후에는 바로 군에 강제징집 되었다. 제대 후에 다시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청량리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옥중에서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합격하며 극적으로 풀려나왔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판사 임용이 거부되고 나서, 고향 [[부산광역시|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변호사로 활동했다.

[[경희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가 [[1975년]] [[서대문형무소|서대문구치소]]에 투옥됐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에는 바로 군에 강제징집 됐다.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제대 후 복학해 다시 학생운동을 이끌며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1980년]] 청량리구치소에 투옥됐으나, 옥중에서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극적으로 풀려났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최우수 성적<ref>{{뉴스 인용|저자=최영해|제목=민정수석 내정 문재인씨,82년 盧와 변호사동업 20년 친구|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175240|뉴스=동아일보|날짜=2003-01-23|확인날짜=2003-01-23}}</ref>으로 수료했으나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거부되자 [[부산광역시|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2003년]]에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의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했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 산맥]]으로 트래킹을 떠났으나, 도중에 [[노무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ref>{{뉴스 인용|제목=康법무 '탄핵 변론' 논의 파문 ‥ 문재인 前수석 만나|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5&aid=0000694465|출판사=한국경제|저자=이태명 기자|날짜=2004-03-22|확인일자=2015-01-24}}</ref>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이후 정계입문 제의를 받아 사의를 표해왔으나 [[2012년]]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의 국회의원|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동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2월 8일]]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선출되었고, [[2016년 1월]]까지 새로 개편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제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다녔다.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저자=김정남|제목=문재인 "탄핵 반드시 될 것이라 확신"|url=http://www.nocutnews.co.kr/news/4692110|뉴스=노컷뉴스|날짜=2016-11-28|확인날짜=2017-05-18}}</ref>
[[2003년]]에 [[참여 정부]]의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하였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로 트랙킹을 떠났고, 히말라야 체류 중 [[노무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ref>{{뉴스 인용|제목=康법무 '탄핵 변론' 논의 파문 ‥ 문재인 前수석 만나|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5&aid=0000694465|출판사=한국경제|저자=이태명 기자|날짜=2004-03-22|확인일자=2015-1-24}}</ref>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 (징계)|파면]]되어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대권에 재도전하였고, [[이재명 (1964년)|이재명]], [[최성]], [[안희정]]과 겨루어 전체 표수의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 없이 [[2017년]] [[4월 3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승리하여 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선]] 후보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로 대권 재도전…경선 득표율 57%(종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03/0200000000AKR20170403185300001.HTML|출판사=연합뉴스|저자=이상헌 기자|날짜=2017년 4월 3일|확인날짜=2017년 4월 3일}}</ref> [[2017년]] [[5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41.1%를 득표하여 24%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ref>{{뉴스 인용|저자=류정민|제목=19대 대선 개표완료, 文 41.1%…역대 최다표차 승리(속보)|url=http://news1.kr/articles/?2989226|뉴스=뉴스1|보존url=http://archive.is/2017.05.20-113626/http://news1.kr/articles/?2989226|보존날짜=2017-05-20|날짜=2017-05-10|확인날짜=2017-05-20}}</ref>,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이 파면되어 치러진 궐위선거이기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인 결정 시간인 [[2017년]] [[5월 10일]] 8시 9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바로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했다.<ref>{{뉴스 인용|저자=염혜원|제목=문재인 대통령 첫 행보...약식 취임식으로 5년 임기 시작|url=http://www.ytn.co.kr/_cs/_ln_0101_201705101036177774_005.html|뉴스=YTN|날짜=2017-05-10|확인날짜=2017-05-20}}</ref>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에 출마하여 [[부산 사상구의 국회의원|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되었다. 이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였고, 같은 해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2월 8일]]에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선출되었고, [[2016년 1월]]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에서 물러난 후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다녔다. 2016년 11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상임고문이자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2위로서 정치적 역할을 했다.<ref>손봉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44&aid=0000461378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문재인 2위 ]. 스포츠경향. 2016년 11월 17일.</ref> <ref>김정남.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2900031 문재인 "탄핵 반드시 될 것이라 확신"]. 노컷뉴스. 2016년 11월 28일.</ref> <ref>나혜윤. [http://www.viewsnnews.com/article?q=139083 문재인 "이재명 '사이다' 맞지만, 탄산음료가 밥은 아니다"]. 뷰스앤뉴스. 2016년 12월 2일.</ref>


== 생애 ==
== 생애 ==
=== 유년 시절 ===
=== 유년 시절 ===
문재인은 [[1953년]] [[1월 24일]]에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 694-1번지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의 [[남평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23일]]에 [[흥남 철수 작전]] 무렵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가족과 함께 몸을 싣고 남쪽으로 겨우 피난해 내려왔다.<ref name="경향신문">{{뉴스 인용|제목=대선 후보 인물탐구 가족 이야기 문재인
문재인은 [[1953년]] [[1월 24일]]에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 694-1번지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 대통령 당선자 주요 약력|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0837&yy=2017|뉴스=매일신문|날짜=2017-05-09|확인날짜=2017-05-20}}</ref>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의 [[남평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23일]]에 [[흥남 철수 작전]] 무렵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가족과 함께 몸을 싣고 남쪽으로 겨우 피난해 내려왔다.<ref name="경향신문">{{뉴스 인용|제목=대선 후보 인물탐구 가족 이야기 문재인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280129|출판사=경향신문|저자=김진우 기자|날짜=2012-12-04|확인일자=2012-12-04}}</ref> 아버지는 [[거제시|거제]]에 정착한 후 공무원 경력을 제시하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나,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계란 행상을 해야만 했다. 문재인의 가족은 [[거제도]]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문재인이 태어날 때에도 셋방을 살던 주인집에 임산부가 있다는 이유로, 산모가 진통 중에 이웃 집에 옮겨가 출산을 해야할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했으며, 이에 문재인의 생가는 실제 그가 살던 집이 아니었다. 결국 문재인의 부모는 자녀들의 교육을 생각해 [[부산광역시|부산]]으로 이사했으며, 문재인의 서류상의 본적은 [[부산광역시|부산]] [[영선동]]으로 되어 있다. 문재인은 남항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난 때문에 학교 바로 위의 '신선성당'에서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서 정기적으로 배급을 타먹어야 했다. 배급을 받으러 온 문재인에게 수녀들이 귀엽다며 자주 사탕과 과일을 쥐어주었기 때문에 문재인에게는 수녀들의 모습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로 감화가 되어 그는 [[천주교]]에 입교하고 세례를 받았다.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280129|출판사=경향신문|저자=김진우|날짜=2012-12-04|확인일자=2012-12-04}}</ref><ref>{{뉴스 인용|저자=이상우|제목=[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은 누구인가]인권변호사에서 '새로운 대한민국 리더'로|url=http://www.incheonilbo.com/?mod=news&act=articleView&idxno=762346|뉴스=인천일보|날짜=2017-05-10|확인날짜=2017-05-20}}</ref> 아버지는 [[거제시|거제]]에 정착한 후 공무원 경력을 제시하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나,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계란 행상을 해야만 했다. 문재인의 가족은 [[거제도]]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문재인이 태어날 때에도 셋방을 살던 주인집에 임산부가 있다는 이유로, 산모가 진통 중에 이웃 집에 옮겨가 출산을 해야할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했으며, 이에 문재인의 생가는 실제 그가 살던 집이 아니었다. 결국 문재인의 부모는 자녀들의 교육을 생각해 [[부산광역시|부산]]으로 이사했으며, 문재인의 서류상의 본적은 부산 [[영선동]]으로 되어 있다. 문재인은 [[남항초등학교|남항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난 때문에 학교 바로 위의 '신선성당'에서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서 정기적으로 배급을 타먹어야 했다. 배급을 받으러 온 문재인에게 [[수녀]]들이 귀엽다며 자주 사탕과 과일을 쥐어주었기 때문에 문재인에게는 수녀들의 모습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로 감화가 되어 그는 [[천주교]]에 입교하고 [[세례]]를 받았다.


=== 학창 시절 ===
=== 학창 시절 ===
[[1965년]]에 남항국민학교를 졸업한 문재인은 당시 명문이던 [[경남중학교]]에 입학했고,<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78063.html ‘1년 선후배’ 김무성-문재인, 경남중 동창회서 나란히],한겨례</ref> [[1968년]] 졸업한 후에는 당시 명문고라 불리던 [[경남고등학교]]에 입학했다.<ref>[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685441 [뉴 파워엘리트 50인]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 문재인·김무성과 경남고 동문… 심상정과도 ‘친분’],이투데이</ref> 고교 시절 초기에는 '문과에 문재인, 이과에 [[승효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말기에는 극도로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낙망, 술·담배에도 손을 대며 방황을 하다 입시에 실패, [[서울대학교]] 진학도 이루지 못했다.<ref name="중앙SUNDAY">{{뉴스 인용|제목=문재인, 1등 하면서도 별명이 문제아 두 번째 경남고 대통령 동기들 들썩
[[1965년]]에 [[남항초등학교|남항국민학교]]를 졸업한 문재인은 당시 명문이던 [[경남중학교]]에 입학했고,<ref>{{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78063.html|제목=‘1년 선후배’ 김무성-문재인, 경남중 동창회서 나란히|신문=[[한겨레]]}}</ref> [[1968년]]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당시 '한강 이남 최고의 명문고'라 불리던 [[경남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685441|제목=[뉴 파워엘리트 50인]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 문재인·김무성과 경남고 동문… 심상정과도 ‘친분’|신문=[[이투데이]]}}</ref> 고교 시절 초기에는 학내에서 '문과에 문재인, 이과에 [[승효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말기에는 극도로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낙망, 술·담배에도 손을 대며 방황을 하다 결국 대학 입시에 실패하였다.<ref name="중앙SUNDAY">{{뉴스 인용|제목=문재인, 1등 하면서도 별명이 문제아 두 번째 경남고 대통령 동기들 들썩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353&aid=0000011202|출판사=중앙SUNDAY|저자=서상현 기자|날짜=2012-09-16|확인일자=2012-09-16}}</ref> 문재인은 졸업 후 [[1971년]]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도 일등을 하며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지만,<ref name="국민일보">{{뉴스 인용|제목=문재인과 감나무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353&aid=0000011202|출판사=중앙SUNDAY|저자=서상현 기자|날짜=2012-09-16|확인일자=2012-09-16}}</ref> 문재인은 졸업 후 [[1971년]]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도 일등을 하며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다.<ref name="국민일보">{{뉴스 인용|제목=문재인과 감나무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5&aid=0000526644|출판사=국민일보|저자=손병호 기자|날짜=2012-09-20|확인일자=2012-09-20}}</ref> 서울에서 계속 재수 생활을 이어갈 만큼의 형편이 되었기 때문에, 끝내 자신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이북에서 내려와 부산과 서울에서 [[경희대학교]]를 일으킨 [[조영식]] 박사의 권유를 받고,<ref name="일요시사">{{뉴스 인용|제목=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학력 학창시절|url=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1576|출판사=일요시사|저자=김명일 기자|날짜=2012-08-03|확인일자=2012-08-03}}</ref>[[1972년]] 4년 전액장학금을 약속한 [[경희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5&aid=0000526644|출판사=[[국민일보]]|저자=손병호 기자|날짜=2012-09-20|확인일자=2012-09-20}}</ref> 이후 [[경희대학교]] 설립자이자 당시 경희대 총장이었던 [[조영식]]이 문재인에게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경희대 입학을 권유하였고, 문재인은 권유를 받아들여 재수 후, [[1972년]] 경희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ref name="일요시사">{{뉴스 인용|제목=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학력 학창시절|url=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1576|출판사=일요시사|저자=김명일 기자|날짜=2012-08-03|확인일자=2012-08-03}}</ref>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 시절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예비 검속에 걸린 총학생회장을 대신해 집회를 주도하다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되어 [[서대문구치소]] 수감되었고, 그 해 6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대학에서도 제적당했다.


=== 군복무 ===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 시절 운동권으로서 총학생회장이던 강삼재를 대신하여 당시 총학생회 총무부장로서 집회를 주도하다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되어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그 해 6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 강제로 군에 징집되어 [[1975년]] [[8월]]에 [[대한민국 육군|육군]]에 입대하였고 [[대한민국 39향토보병사단]] 훈련소를 거쳐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서 복무했다. 군복무 중 당시 [[특전사]] 사령관 [[정병주]]와 여단장 [[전두환]]으로부터 두 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했다.<ref>[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19856 특전사 및 표창장 기사문]</ref> 전역 후 [[1980년]]에 [[경희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다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청량리구치소에 수감 중, [[경희대학교]]의 [[조영식]] 총장의 신원보증 아래 제22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에 극적으로 석방될 수 있었다.
출소 후 신체검사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군에 징집된 문재인은 [[1975년]] 8월 [[대한민국 육군|육군]]에 입대하였고 [[대한민국 39향토보병사단]] 신병훈련소를 거쳐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대대본부 작전과에서 복무했다. 특전사 부대 내에서 주어진 주특기는 화기, 의무, 통신, 폭파 등이었으며, 실제 필요시 낙하산을 타고 적진에 침투하여 게릴라 전등을 수행하기 위한 공수 특수 훈련을 여러 차례 수행하였다. 문재인은 특수 훈련에서의 우수한 평가 결과로 인해 특전사 복무 중 당시 특전사령관 [[정병주]]와 공수여단장 [[전두환]]으로부터 두 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ref>[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19856 특전사 및 표창장 기사문]</ref> 특전사 전역 후에는 경희대학교에 복학해 [[1980년]] 복학생 대표로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다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하루 전에 시행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시행 당일 밤 형사 5~6명에 권총이 겨누어진 채로 긴급 체포되었고 바로 청량리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경희대학교 조영식 총장의 신원 보증 아래 제22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에 극적으로 석방될 수 있었다.


=== 사회 생활 ===
=== 사회 생활 ===
[[1980년]] 5월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내려지면서 실시된 예비 검속으로 체포되어, 사법시험 합격 통지서는 청량리구치소에서 받았다. 이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동기였던 [[박원순]], [[고승덕]], [[조영래]] 등 걸출한 인재들 사이에서도 일등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사법연수원 시험성적이 수석<ref name="동아일보">{{뉴스 인용|제목=민정수석 내정 문재인씨,82년 盧와 변호사동업 20년 친구
제22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 합격 , 문재인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동기였던 [[박원순]], [[고승덕]], [[조영래]] 등 걸출한 인재들 사이에서도 일등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사법연수원 시험성적이 수석<ref name="동아일보">{{뉴스 인용|제목=민정수석 내정 문재인씨,82년 盧와 변호사동업 20년 친구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175240|출판사=동아일보|저자=최영해 기자|날짜=2003-01-23|확인일자=2003-01-23}}</ref>이었고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도 수상했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성적이 차석으로 밀리고<ref name="동아일보"/> 원하던 [[판사]]는 물론 아무런 임용도 되지 않았다. 당시 사법연수원에서 12등이었던 고승덕이 판사로, 상위권이 아니었던 박원순도 검사로 임용되었기 때문에 불합리한 처사였다.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175240|출판사=[[동아일보]]|저자=최영해 기자|날짜=2003-01-23|확인일자=2003-01-23}}</ref>이었고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도 수상했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성적이 차석으로 밀리고<ref name="동아일보"/> 원하던 [[판사]]는 물론 아무런 임용도 되지 않았다. 당시 사법연수원에서 12등이었던 고승덕이 판사로, 상위권이 아니었던 박원순도 검사로 임용되었기 때문에 불합리한 처사였다.


이후 문재인은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오랜 인권변호사 생활을 했으며, [[부산광역시]]에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영원한 비서실장 문재인 항상 盧곁에서 이제는 홀로|url=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hotissue/2009/0525/20090525101140300000000_7018424032.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저자=박형남 기자|날짜=2009-5-25|확인일자=2012-6-8}}</ref>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하여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부산변호사협회 인권 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 변호사로 일했으며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그는 1996년 8월 발생한 [[페스카마호 사건]]에서 [[조선족]] 선원들의 변호를 맡았다.<ref>{{웹 인용|제목="선상폭력이 빚은 조선족의 우발적 범행… '운명' 처럼 변호 맡았다"|url=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10/h2011101502303521950.htm|출판사=[[한국일보]]|저자=배성재 기자|날짜=2011-10-15|확인일자=2012-12-1}}</ref> [[한겨레신문]] 설립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문재인은 무료로 변론하게 되면 자칫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이 재판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료 변론은 하지 않았는데, [[경상대학교]] 교수들이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저서를 강의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5년 간 변론을 맡아 항소심에서 승소했을 때 고작 1백만∼2백만원대의 수수료를 받기도 했다.{{출처|날짜=2011-8-19}}
이후 문재인은 대형 로펌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ref name=":1"/> 고향인 [[부산광역시|부산]]으로 내려갔다.<ref name=":1"/> 그곳에서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오랫동안 인권변호사 생활을 했다. 또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영원한 비서실장 문재인 항상 盧곁에서 이제는 홀로|url=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hotissue/2009/0525/20090525101140300000000_7018424032.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저자=박형남 기자|날짜=2009-05-25|확인일자=2012-06-08}}</ref>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하여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부산변호사협회 인권 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 변호사로 일했으며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그는 1996년 8월 발생한 [[페스카마호 사건]]에서 [[조선족]] 선원들의 변호를 맡았다.<ref>{{웹 인용|제목="선상폭력이 빚은 조선족의 우발적 범행… '운명' 처럼 변호 맡았다"|url=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10/h2011101502303521950.htm|출판사=[[한국일보]]|저자=배성재 기자|날짜=2011-10-15|확인일자=2012-12-01}}</ref> [[한겨레신문]] 설립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문재인은 무료로 변론하게 되면 자칫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이 재판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료 변론은 하지 않았는데, [[경상대학교]] 교수들이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저서를 강의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5년 간 변론을 맡아 항소심에서 승소했을 때 고작 1백만∼2백만원대의 수임료를 받기도 했다.{{출처|날짜=2011-08-19}}


[[1988년]]에는 [[김영삼]]으로부터 [[노무현]], [[김광일]]과 함께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문재인은 3명 중 유일하게 정치입문을 거절했으며<ref name="매일경제">{{뉴스 인용|제목=문재인, 노무현과 동시에 국회입성할 뻔|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2810634|출판사=매일경제|저자=김대영 기자|날짜=2012-09-26|확인일자=2012-09-26}}</ref> , 정계입문을 결심한 [[노무현]]과 [[김광일]]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88년]]에는 [[김영삼]]으로부터 노무현, [[김광일 (1939년)|김광일]]과 함께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문재인은 3명 중 유일하게 정치입문을 거절했으며<ref name="매일경제">{{뉴스 인용|제목=문재인, 노무현과 동시에 국회입성할 뻔|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2810634|출판사=매일경제|저자=김대영 기자|날짜=2012-09-26|확인일자=2012-09-26}}</ref>, 정계입문을 결심한 노무현과 김광일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 참여정부 시절 ===
=== 참여정부 시절 ===
[[변호사]] 활동을 하며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특히 [[2002년]] [[대한민국 제3회 지방 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몇 차례 [[부산광역시의 시장 목록|부산광역시장]] 출마를 권유했음에도 '나는 참모용'이라며 '더 나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고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문재인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변호사 활동을 하며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특히 [[2002년]] [[대한민국 제3회 지방 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몇 차례 [[부산광역시의 시장 목록|부산광역시장]] 출마를 권유했음에도 '나는 참모용'이라며 '더 나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고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문재인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참여정부]]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민정 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 도중<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 전 민정수석, 네팔로 여행 떠나|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71683|출판사=오마이뉴스|저자=김범현 기자|날짜=2004-2-28|확인일자=2012-6-8}}</ref>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영자 신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렸으며<ref>{{뉴스 인용|제목=盧 대통령 변호인단 오늘 선임|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2&aid=0000030295|출판사=연합뉴스|저자=윤경민 기자|날짜=2004-3-15|확인일자=2012-6-8}}</ref>,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참여정부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 도중<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 전 민정수석, 네팔로 여행 떠나|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71683|출판사=[[오마이뉴스]]|저자=김범현 기자|날짜=2004-02-28|확인일자=2012-06-08}}</ref>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영자 신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렸으며<ref>{{뉴스 인용|제목=盧 대통령 변호인단 오늘 선임|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2&aid=0000030295|출판사=[[연합뉴스]]|저자=윤경민 기자|날짜=2004-03-15|확인일자=2012-06-08}}</ref>,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ref name=":1"/>


[[청와대]] 안에서 [[이정호]]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이호철]]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등과 함께 PK인맥을 대표했는데, '왕수석'으로 불리며 [[새누리당|한나라당]]으로 부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는 비난을 받으며 2인자로 주목받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실체적 권능의 2인자 행보로 구설수|url=http://weekly.hankooki.com/whan/200306/w2003061111384861510.htm|출판사=주간한국|저자=염영남 기자|날짜=2003-6-11|확인일자=2012-6-8}}</ref> 비서실장 시절 [[이해찬]]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하기도 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 비서실장, 직언 서슴지않는 대통령 복심|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7&no=121478|출판사=연합뉴스|저자=서양원 기자|날짜=2007-3-9|확인일자=2012-6-8}}</ref>,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노 前대통령 국민장) 위기마다 늘 곁에… 영원한 비서실장 문재인|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300233&cp=nv|출판사=국민일보 쿠키뉴스|저자=남도영 기자|날짜=2009-5-25|확인일자=2012-6-8}}</ref> 또한 [[참여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문재인과 [[이호철]] 비서관의 [[경남고등학교]] 동문은 한 명도 없었는데, 두 사람은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또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ref>{{뉴스 인용|제목=(박종렬 교수의 제왕학) 문재인, 박근혜의 운명적 대항마인가?|url=http://news.sportsseoul.com/read/ptoday/949972.htm|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저자=박종렬 가천의과학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날짜=2011-6-23|확인일자=2012-6-8}}</ref>
청와대 안에서 [[이정호 (1959년)|이정호]]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이호철 (1958년)|이호철]]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등과 함께 PK인맥을 대표했는데, '왕수석'으로 불리며 [[한나라당]]으로 부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는 비난을 받으며 2인자로 주목받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실체적 권능의 2인자 행보로 구설수|url=http://weekly.hankooki.com/whan/200306/w2003061111384861510.htm|출판사=주간한국|저자=염영남 기자|날짜=2003-06-11|확인일자=2012-06-08}}</ref> 비서실장 시절 [[이해찬]]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하기도 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 비서실장, 직언 서슴지않는 대통령 복심|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7&no=121478|출판사=연합뉴스|저자=서양원 기자|날짜=2007-03-09|확인일자=2012-06-08}}</ref>,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노 前대통령 국민장) 위기마다 늘 곁에… 영원한 비서실장 문재인|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300233&cp=nv|출판사=국민일보 쿠키뉴스|저자=남도영 기자|날짜=2009-05-25|확인일자=2012-06-08}}</ref> 또한 참여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문재인과 이호철 비서관의 [[경남고등학교]] 동문은 한 명도 없었는데, 두 사람은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또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 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ref>{{뉴스 인용|제목=(박종렬 교수의 제왕학) 문재인, 박근혜의 운명적 대항마인가?|url=http://news.sportsseoul.com/read/ptoday/949972.htm|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저자=박종렬 가천의과학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날짜=2011-06-23|확인일자=2012-06-08}}</ref>


[[2006년]] [[11월 6일]] [[대한민국 국가원로자문회의|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을 보궐할 때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與, 국정자문위원회 대폭 확대|url=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26|출판사=기호일보|저자=강봉석 기자|날짜=2006-11-6|확인일자=2012-6-8}}</ref>,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재인에 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종탁이 만난 사람)노무현 재단 상임이사 문재인 변호사|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5171759355&code=210000|출판사=경향신문|저자=이종탁 기자|날짜=2010-5-17|확인일자=2012-6-8}}</ref>
[[2006년]] [[11월 6일]] [[대한민국 국가원로자문회의|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을 보궐할 때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與, 국정자문위원회 대폭 확대|url=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26|출판사=기호일보|저자=강봉석 기자|날짜=2006-11-06|확인일자=2012-06-08}}</ref>,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재인에 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종탁이 만난 사람)노무현 재단 상임이사 문재인 변호사|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5171759355&code=210000|출판사=경향신문|저자=이종탁 기자|날짜=2010-05-17|확인일자=2012-06-08}}</ref>


== 정치 활동 ==
== 정치 활동 ==
[[파일:2011년 2월 26일 정치인 문재인(Moon Jae-in).jpg|thumb|right|250px|[[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 [[봉하마을]] [[봉화산 (김해)|봉화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장례 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았으며, 이후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 [[특수전사령부]] 출신,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 등 이력으로 인하여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 중 지지율이 높은데, [[2011년]] [[8월]] 언론사 여론 조사에서 '당신이 원하는 국회의원' 부문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ref>{{뉴스 인용|제목=신동아 80주년 여론 조사, 문재인 1위 차지했다|url=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962|출판사=미디어오늘|저자=류정민 기자|날짜=2011-8-22|확인일자=2012-6-8}}</ref>, [[2012년]] [[4월 11일]]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의 국회의원|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통합당의 대선 예비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다가 [[6월]]초, 출마를 결정하게 된다.
[[파일:경희대 문재인.jpg|thumb|right|250px|[[경희대학교]]에서 연설하는 문재인(201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장례 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았으며, 이후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ref name=":1"/>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출신,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 등 이력으로 인하여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 중 지지율이 높은데, [[2011년]] 8월 언론사 여론 조사에서 '당신이 원하는 국회의원' 부문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ref>{{뉴스 인용|제목=신동아 80주년 여론 조사, 문재인 1위 차지했다|url=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962|출판사=미디어오늘|저자=류정민 기자|날짜=2011-08-22|확인일자=2012-06-08}}</ref>, [[2012년]] [[4월 11일]]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의 국회의원|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통합당의 대선 예비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다가 6월 초, 출마를 결정하게 된다.


=== 2012년 대통령 선거 ===
===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
{{참고|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참고|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2012년]] [[6월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보통사람이 중심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4&aid=0002396083 문재인 고문 대선 출마 선언...경선 열기 고조] YTN 2012년 6월 17일</ref>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 캠프명은 "담쟁이 캠프"로 정해졌다. 이후, [[8월 25일]]부터 [[9월 16일]]까지 열린 국민참여경선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18일]] 2기 지도부 총사퇴에 의해 [[민주통합당]]의 대표권한 대행이 되었다.
[[2012년]] [[6월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보통 사람이 중심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4&aid=0002396083 문재인 고문 대선 출마 선언...경선 열기 고조] YTN 2012년 6월 17일</ref>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 캠프명은 "담쟁이 캠프"로 정해졌다. 이후, [[8월 25일]]부터 [[9월 16일]]까지 열린 국민참여경선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18일]] 2기 지도부 총사퇴에 의해 [[민주통합당]]의 대표권한대행이 되었다.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른 [[안철수]]와 단일화를 추진하였지만,<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4&aid=0002441190 야권 단일화 협상 개시 "국민 참여 단일화" vs. "박근혜 이기는 단일화"] YTN 2012년 11월 13일</ref> 단일화 과정을 둘러싼 문제로 11월 23일 안철수가 사실상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2462674 안철수 후보 전격 사퇴한 이유는?] 조선일보 2012년 11월 23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222808 안철수 후보 사퇴 배경은?‥단일화 의견차 좁히지 못해] MBC 2012년 11월 24일</ref>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대선 후보도 후보 등록을 앞두고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또, [[상도동계]]인 [[김현철]], [[김덕룡]], [[문정수]]의 지지를 받았으며, 대선후보급인 [[문국현]], [[박찬종]]의 지지를 받았다. 또, 보수인사로 알려졌던 [[윤여준]]의 찬조연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이혜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12&aid=0002372891 윤여준, 文 찬조연설, "반대 진영도 설득하는 사람"], 헤럴드경제, 2012년 12월 12일</ref> 그밖에 김영삼의 측근으로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폭로한 것으로 유명한 강삼재는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다.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른 [[안철수]]와 [[단일화]]를 추진하였지만,<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4&aid=0002441190 야권 단일화 협상 개시 "국민 참여 단일화" vs. "박근혜 이기는 단일화"] YTN 2012년 11월 13일</ref> 단일화 과정을 둘러싼 문제로 11월 23일 안철수가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2462674 안철수 후보 전격 사퇴한 이유는?] 조선일보 2012년 11월 23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222808 안철수 후보 사퇴 배경은?‥단일화 의견차 좁히지 못해] MBC 2012년 11월 24일</ref> [[정의당 (대한민국)|진보정의당]]의 [[심상정]] 대선 후보도 후보 등록을 앞두고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또, [[상도동계]]인 [[김현철 (1959년)|김현철]], [[김덕룡]], [[문정수]]의 지지를 받았으며, 대선후보급인 [[문국현]], [[박찬종]]의 지지를 받았다. 또, 보수인사로 알려졌던 [[윤여준]]의 찬조연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이혜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12&aid=0002372891 윤여준, 文 찬조연설, "반대 진영도 설득하는 사람"], 헤럴드경제, 2012년 12월 12일</ref> 그밖에 김영삼의 측근으로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폭로한 것으로 유명한 강삼재 또한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다.<ref>{{뉴스 인용|저자=김성휘|제목=강삼재 전 한나라당 부총재 文 지지선언|url=http://news.mt.co.kr/mtview.php?no=2012121415282069801|뉴스=머니투데이|날짜=2012-12-14|확인날짜=2017-05-22}}</ref>


문재인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6·15 남북 공동선언|6·15 공동선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공동선언]]에 기초해 대북 포용 정책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TV토론회 등에서 "대북정책을 남북 간 화해를 열어 새 비전과 성장동력을 찾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기존 남북합의서, 6·15 공동선언 등을 이행하고, [[개성공단]]과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등을 재개하겠다"고 피력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 평화체제 구축, 북핵 문제를 함께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동시 행동' 원칙에 따라 비핵화 진전과 함께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의지였다. '선북핵문제 해결, 남북교류 재개'를 주장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와는 차이를 보였다.<ref name="maeil_park_moon">{{뉴스 인용|저자1=서상현|저자2=유광준|날짜=2012-12-11|제목=[박근혜-문재인 대선공약 비교] 대북 정책, 안보·외교정책|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5423&yy=2012|출판사=매일신문|보존url=http://archive.is/KOSe8|보존날짜=2017-05-13|확인날짜=2017-05-13}}</ref> 그는 "새누리당과 박 후보처럼 전제조건을 달면 안 된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전제조건을 다는 동안 북핵 문제가 더욱 악화한 만큼 남북 관계의 발전과 북핵 해결을 병행해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전면에 내세워 남북문제 해결에 속도는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봉쇄 정책인 5`24 조치를 조건 없이 해제하고 남북경협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인프라개발기구'(KIDO)를 세워 북한 내 산업기반 시설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ref name="maeil_park_moon"/> 금강산 관광 재개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금강산 관광객 신변 안전 문제와 관련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약속한 내용을 공식 사과로 받아들이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속한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다소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놨다. 그는 "미국이나 중국 정상과도 충분히 조율해야겠지만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곧바로 북쪽에 특사를 보내 제 취임식부터 초청하고 가능하다면 임기 첫해에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ref name="maeil_park_moon"/> 그는 외교정책과 관련,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관련국가들과 한반도 문제를 함께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한`중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있고 일본과 관련해선 과거사 문제를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한`미 FTA와 관련해 독소조항은 반드시 재협상한다는 입장이었다. 'FTA 무역이득공유제'를 검토해 농민들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ref name="maeil_park_moon"/>
한편 문재인은 12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와 함께 토론에 참석했다. 문재인 후보 측은 국가정보원에서 자신을 비방하는 여론조작을 벌인다고 [[12월 11일]] 공개하였다. 문재인 후보측은 그런 활동을 벌인 직원중 한명을 지목했다. 3차 TV 토론이 끝난 [[12월 16일]] 오후 11시 서울지방경찰청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는데,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이는 뒤에 허위로 밝혀졌다]].


이후 12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와 함께 토론에 참석했다. 문재인 측은 국가정보원에서 자신을 비방하는 여론조작을 벌인다고 [[12월 11일]] 공개하였다. 문재인 측은 그런 활동을 벌인 직원중 한명을 지목했다. 3차 TV 토론이 끝난 [[12월 16일]] 오후 11시 서울지방경찰청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는데,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이러한 경찰의 발표는 뒤에 허위로 밝혀졌다]]. 이후 2012년 12월 19일 선거에서 탈락 후보 사상 최다이자,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들 중 두 번째로 많은 14,692,632표(48.0%)를 득표했지만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약 100만 표 차이로 패배하였다.<ref name=":1"/> 다음날 문재인은 패배를 승복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ref>{{뉴스 인용|저자=김덕원|날짜=2012-12-20|제목=문재인 후보 “패배 승복”…야권 개편 불가피|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2585773|뉴스=KBS|보존url=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giTQ3laVpL8J:mn.kbs.co.kr/news/view.do%3Fncd%3D2585923+&cd=2&hl=ko&ct=clnk&gl=kr&client=firefox-b-ab|보존날짜=2017-10-28|확인날짜=2017-12-30}}</ref>
==== 2012년 문재인 대선공약 ====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에 기초해 대북 포용 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관련국가들과 한반도 문제를 함께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문 후보는 한`중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있고 일본과 관련해선 과거사를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 대통령 선거 탈락 ====
=== 대선 패배 이후 ===
[[파일:Sim Sangjung and Moon Jaein in 2015.jpg|thumb|right|250px|2015년 7월 [[정의당 (대한민국)|정의당]] 대표 [[심상정]]과 악수를 나누는 문재인]]
2012년 12월 19일 선거에서 탈락 후보 사상 최다이자,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들 중 두 번째로 많은 14,692,632표(48.0%)를 득표했지만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약 100만표 차이로 패배하였다. 다음날 문재인은 패배를 승복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파일:South Korea Buddha's Birthday ceremony 2015.jpg|thumb|right|250px|2015년 [[부처님 오신 날|석가탄신일]] 기념행사에 참석한 문재인(왼쪽), [[김무성]](가운데), [[천호선]](오른쪽)]]


2013년 4월 9일 발표된 [[민주통합당]]의 대선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패배의 주원인은 캐릭터 정립 실패로 국민들에게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또한, 설문조사 결과 당내에서 4번째로<ref>1위는 [[한명숙]], 2위는 [[이해찬]], 3위는 [[박지원]] 순이다.</ref> 패배의 책임이 크다고 평가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19&aid=0001975127|제목="친노, 살아있네!" 대선평가 '문재인 책임' 삭제|신문=[[데일리안]]|저자=김지영|날짜=2013-05-20}}</ref>
=== 18대 대선 이후와 당대표 출마 ===
2013년 4월 9일 발표된 [[민주통합당]]의 대선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패배의 주원인은 캐릭터 정립 실패로 국민들에게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또한, 설문조사 결과 당내에서 4번째로<ref>1위는 [[한명숙]], 2위는 [[이해찬]], 3위는 [[박지원]] 순이다.</ref> 패배의 책임이 크다고 평가되었다.<ref>김지영,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19&aid=0001975127 "친노, 살아있네!" 대선평가 '문재인 책임' 삭제], 데일리안, 2013년 5월 20일</ref>


그러나, 오랫동안 칩거하던 기존의 대선 패배 후보들과는 달리 빠르게 정계에 복귀하며 패배책임을 지고 물러나 있어야하지 않냐는 논란이 일었다.<ref>박석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8&aid=0002337912 문재인측 '너무 빠른 정치 복귀 아니냐' 당안팎 지적에…], 한국일보, 2013년 1월 3일</ref>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도식을 기점으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현안에 대한 입장도 자주 밝히며 대선 재도전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ref>하어형,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189092 '3대비전' 가다듬는 문재인…정치복귀 수순], 한겨레, 2013년 5월 23일</ref><ref>전창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2&aid=0000391101 "5년 뒤엔 바꾸자"는 문재인, 대선 재도전?], 부산일보, 2013년 5월 20일</ref>
그러나, 오랫동안 칩거하던 기존의 대선 패배 후보들과는 달리 빠르게 정계에 복귀하며 패배책임을 지고 물러나 있어야하지 않냐는 논란이 일었다.<ref>박석원, {{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8&aid=0002337912|제목=문재인측 '너무 빠른 정치 복귀 아니냐' 당안팎 지적에…|신문=[[한국일보]]|저자=박석원|날짜=2013-01-03}}</ref>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도식을 기점으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현안에 대한 입장도 자주 밝히며 대선 재도전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189092|제목='3대비전' 가다듬는 문재인…정치복귀 수순|신문=[[한겨레]]|저자=하어형|날짜=2013-05-2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2&aid=0000391101|제목="5년 뒤엔 바꾸자"는 문재인, 대선 재도전?|신문=[[부산일보]]|저자=전창훈|날짜=2013-05-20}}</ref>


2014년 3월 새로 창당된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과 [[손학규]]를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5763298</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458893</ref> 29일 경남도지사 후보 [[김경수 (정치인)|김경수]]와 [[구동태]] 목사를 방문한 뒤 "신당이 영남지역에서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며, "정당공천제 폐지가 통합의 고리"라는 입장을 보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2579171</ref> 4월 18일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사망자 수가 늘어난 것에 대하여 "왜이렇게도 무기력하냐"며 "우리의 수준이 부끄럽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ref>http://www.ajunews.com/view/20140418083007787</ref>
2014년 12월 29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ref>[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12/30/16381616.html?cloc=olink|article|default 문재인, 당대표 출마 선언 "정치인생 걸겠다"…사실상 '총선 지면 정계은퇴' 중앙일보, 2014년 12월 30일]</ref> 그는 당 대표가 되면 2016년에 치러질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며, 출마 선언 이후 약 5개월 만에 [[박원순]] 현 서울 시장을 제치고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탈환하였다.<ref>[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1230000223&md=20141230092254_BL 문재인 당대표 출마 선언, 대선후보 지지율 5개월만 1위 탈환! 헤럴드경제, 2014년 12월 30일]</ref>


6월 15일 새 총리 후보로 [[문창극]]이 지명되자 "국민도 불행하고 박근혜 정부에도 불행한 길"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5905697</ref> 이튿날 본인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 사건 및 논란 ==
=== 부산 정권 발언 논란 ===
문재인은 [[2006년]] 부산 지역 기자들과 만나 "참여 정부를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 것 이해 안돼",<ref name="busan">{{뉴스 인용|제목=문재인 '부산정권' 발언 안팎서 뭇매|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news/200605/e2006051617363270290.htm|출판사=서울경제|저자=이성기 기자|날짜=2006-5-16|확인일자=2012-6-8}}</ref>,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한 지역에서 한 정당이 지방선거를 독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 라고 한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역 감정 조장 발언이라면서 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 (대한민국, 2005년)|민주당]]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가 국민과 호남인을 대상으로 사기극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ref name="busan" />


{{인용문|
=== 이인규 수사관과의 충돌 ===
문창극 총리 후보자 강행은 통합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반쪽 정부를 고집하고 오히려 폭을 더 좁히는, 거꾸로 가는 길입니다. 국민도 불행하고 박근혜 정부에도 불행한 길입니다. … 세월호 이후 이제는 제발 국민통합의 길로 가달라는 민심을 외면하면 안됩니다.|문재인<ref>http://www.seoulfn.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162</ref>}}
문재인은 [[2011년]] [[6월 14일]]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서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인 [[노무현]]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수사관이었던 [[이인규 (법조인)|이인규]]에 대하여 "검찰은 박연차 회장의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할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대단히 건방졌다"라고 주장했다.<ref>{{뉴스 인용|제목='盧전 대통령 수사' 놓고 이인규-문재인 충돌|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115620|출판사=연합뉴스|저자=송수경 안희 기자|날짜=2011년 6월 16일}}</ref> 이런 문재인의 주장에 대해 [[이인규 (법조인)|이인규]]는 수사 태도에 대하여서 "당시 노 대통령을 처음 뵈었을 때도 내가 상석에 앉거나 태도를 건방지게 해서 조금이라도 언짢게 느낄 만한 상황은 전혀 없었다. 조사 전에 한 10분에서 15분 정도 함께 있으면서 차를 마셨는데 여러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마쳤을 무렵에는 내가 직접 중수부 특별조사실로 올라가서 '수고하셨습니다'는 말을 하고는 20분 정도 선 채로 있었다. 그때 노 대통령은 앉아 계셨고 나는 예를 차리려고 최대한 노력했다"라고 밝혔고, 문재인의 증거 주장에 대하여 "그날 조사 당일 오후 5시께 미국의 핀센이라는 기관에서 노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미국에서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일종의 단서가 우리 수사팀에 도착했었다. 정연씨가 얼마짜리 주택을 구입했는지 금액을 특정할 수는 없고, 구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도 아니었다. 다만 수사의 단서로 쓸 수 있는 자료였다"라고 밝혔으며, [[노무현]]과 [[박연차]]와의 대질을 하려는 발상 자체가 무례하다는 문재인에 주장에 대하여서는 "두 사람의 말이 틀리니까 어느 쪽이 진실인가 밝히기 위해서는 당연한 절차 아니냐.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것이다"라고 언론에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이인규 "노 前대통령에 충분히 예의 갖췄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115379|출판사=연합뉴스|저자=옥철 기자|날짜=2011년 6월 17일}}</ref>


17일 "사회적 가치 기본법"을 발의했다.<ref name="moon_asiae_social">{{뉴스 인용|저자=김혜원|제목=문재인 '사회적 가치 기본법' 발의, 무슨 내용 담겼나|url=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61710185622003|뉴스=아시아경제|날짜=2014-06-17|확인날짜=2017-05-17}}</ref> 이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이윤과 효율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인권, 노동권, 안전, 생태, 사회적 약자 배려, 양질의 일자리, 상생 협력 등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ref name="moon_asiae_social"/> 또한 대통령 직속의 "사회적 가치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또한 포함하고 있다.<ref name="moon_asiae_social"/> 10월 27일에는 [[신해철]]의 쾌유를 기원하기도 했다.<ref>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14389512788500002</ref>
또 [[이인규 (법조인)|이인규]]는 문재인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검찰이 박 전 회장과 대통령 간 통화 기록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며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에 대해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처음부터 대통령이 달라고 해서 (돈을) 줬다"라고 진술, "박 전 회장은 [[2007년]] [[6월]] 말 100만달러를 전달하기 전에 청와대 만찬에 초대돼 돈을 요구받았고, (돈을 준 후)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은 만찬에 혼자 초대받아 노 전 대통령 부부와 세 사람이 식사를 했을 때 [[권양숙]] 여사가 노 전 대통령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아이들(노건호씨와 노정연씨) 집이라도 사줘야 하는데…'라는 식의 얘기를 꺼냈고, 이 얘기를 들은 자신이 직원 130명을 동원해 환전한 100만달러를 측근을 시켜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은 또 돈을 전달한 뒤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았고, 고맙다는 취지로 받아들였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박 전 회장과 정승영 사장의 청와대 출입 기록, 달러 환전 기록 등을 확보했으나, 박 전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통화 기록은 보존기간(1년) 경과로 이미 폐기돼 확보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아이들 집이라도 사줘야 한다며 盧 전 대통령 부부가 돈 요구"|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17/2011061700251.html|출판사=조선일보|저자=이명진 기자|날짜=2011년 6월 17일}}</ref>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이 헌재 판결로 해산되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으며,<ref name="views_tongjindang">{{뉴스 인용|저자=박정엽|제목=문재인 "헌재 결정 너무나 안타깝다"|url=http://www.viewsnnews.com/article?q=116954|뉴스=뷰스앤뉴스|날짜=2014-12-20|확인날짜=2017-05-17}}</ref><ref name="sstv_tongjin_moon">{{뉴스 인용|제목=[통합진보당 해산] “정당은 국민으로 존재가치 심판 받는 것이 원칙”…문재인 소신 발언|url=http://www.starseoultv.com/news/articleView.html?idxno=288465|뉴스=스타서울TV|날짜=2014-12-20|확인날짜=2017-05-17}}</ref> "민주주의가 상처를 입었다"고 비판했다.<ref name="views_tongjindang"/><ref name="sstv_tongjin_moon"/> 그러면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는 다름을 포용하는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1176758</ref> 한편 이 무렵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15.8%가 "다음에는 문재인을 찍겠다"는 반응을 보였다.<ref>http://www.ajunews.com/view/20141219174131958</ref>
=== 다운계약서 작성에 따른 세금 탈루 의혹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선대위 안형환 대변인은 문 후보가 지난 2003년 일부 지분을 갖고있던 부산 부민동의 상가를 팔면서 기준시가보다 9천여만 원 낮춰 신고해 '다운계약서' 작성에 따른 세금 탈루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문재인 후보 선대위 우상호 공보단장은 부민동 상가는 당시 법원·검찰청 이전에 따라 일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 공시지가보다 1억 가까이 낮은 2억 3천여만 원에 손절매한 것이라며 '다운계약서' 주장은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6&aid=0000001825 여야, 문 후보 부산 상가 '다운계약서' 공방] KBS 2012년 11월 30일</ref>


=== 채용 특혜 논란 ===
=== 당대표 재임 시절 ===
[[파일:Kim Moosung and Moon Jaein in 2015.jpg|220px|섬네일|왼쪽|[[김무성]]과 함께한 문재인 (2015년)]]
[[한나라당]] [[정진섭]] 의원은 [[2007년]] [[4월 24일]] 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이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들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고용정보원은 '문재인 아들의 경우 외부 수상경력과 외국어 실력(TOEFL 250점) 등이 높게 평가됐다'며 특혜 의혹을 부인했고<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씨 아들 취업 특혜"|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704/h2007042500103721000.htm|출판사=한국일보|저자=김지성 기자|날짜=2007-4-25|확인일자=2012-6-8}}</ref>, 문재인 측은 '동영상을 특정하지 않고 전산 부문으로 세부 공고를 한 부분이 오히려 특혜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ref>{{뉴스 인용|제목=(후보를 털어드립니다) ① 부산 사상구|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2&aid=0000333584|출판사=부산일보|저자=이재희·박세익·이자영 기자 |날짜=2012-3-26|확인일자=2012-6-8}}</ref>
2014년 12월 29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ref>{{뉴스 인용|url=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12/30/16381616.html?cloc=olink|제목=문재인, 당대표 출마 선언 "정치인생 걸겠다"…사실상 '총선 지면 정계은퇴'|신문=[[중앙일보]]|날짜=2014-12-30}}</ref>
그는 당 대표가 되면 2016년에 치러질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며, 출마 선언 이후 약 5개월 만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제치고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탈환하였다.<ref>[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1230000223&md=20141230092254_BL 문재인 당대표 출마 선언, 대선후보 지지율 5개월만 1위 탈환! 헤럴드경제, 2014년 12월 30일]</ref> 이후 2015년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제1차 전당대회에서 41.8%를 얻은 [[박지원 (1942년)|박지원]] 후보를 앞선 45.3%를 얻으며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당선되었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2679856 문재인 당선 '45.3%' 득표…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 노컷뉴스, 2015년 2월 8일]</ref>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개편된 후에도 계속 대표를 지냈다.


4월 6일 "국회의원 정수가 부족하다"며, "국민에게는 그렇게 인식되지 않고 있지만, OECD([[경제 협력 개발 기구]])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인구수 대비 의원 비율이) 낮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ref name=":0">{{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4/06/0200000000AKR20150406085800001.HTML|제목=문재인 "국회의원 정수 부족…400명은 돼야"|성=임형섭|이름=|성2=김동현|날짜=2015-04-06|뉴스=연합뉴스|출판사=|위치=|통신사=|확인날짜=2017-05-20}}</ref> 새정치민주연합 내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었으나,<ref name=":0" /> [[안철수]]는 이러한 문재인의 주장을 비판했으며,<ref name="wt_400">{{뉴스 인용|저자=정윤훈|날짜=2015-04-06|제목=문재인, 국회의원 400명 발언 논란 커지자 "개인적 생각"|url=http://www.weekly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2027|뉴스=위클리오늘|확인날짜=2017-05-20}}</ref> [[새누리당]]은 그를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ref name="wt_400"/> 같은날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의 증인으로 서겠다고 밝혔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합류를 요구했으나,<ref>{{뉴스 인용|저자=위미정|제목=자원외교 국정조사 마감 D-1…문재인 대표 "증인 서겠다"|url=http://www.ob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80804|뉴스=OBS NEWS|날짜=2015-04-06|확인날짜=2017-05-23}}</ref> 새누리당은 이를 "정치 공세"라고 비난했다.<ref>{{뉴스 인용|저자=정동욱|제목=문재인 "MB, 청문회 증인 같이 나가자"…새누리 "정치 공세"|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485157|뉴스=MBC|날짜=2015-04-06|확인날짜=2017-05-23}}</ref>
그러나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201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해당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새누리당]] 의원들과 일부 언론에서는 문재인의 아들이 한국고용정보원에 취업할 때 문재인과 당시 기관장은 절친한 사이였던 점, 해당분야에 문재인 아들 한 명만 응시해 합격한 점, 일반인은 알기 힘들게 채용 공고를 낸 점, 기한 내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고 양 귀에 귀걸이를 하는 부적절한 용모에도 합격한 점 등의 부정취업 의혹을 제기하면서 문재인 후보에 해명을 요구하였다.<ref>{{뉴스 인용 |title=새누리 "文 아들, 기한내 서류 미제출..부정취업" |url=http://www.yonhapnews.co.kr/vote2012/2012/10/23/2901190000AKR20121023142500001.HTML |work=연합뉴스 |date=2012년 10월 23일}}</ref><ref>{{뉴스 인용 |title=문재인 아들, 盧정권 때 노동부 산하기관 특혜취업 의혹 |url=http://shindonga.donga.com/3/all/13/110946/1 |work=신동아 |date=2012년 2월 22일}}</ref>


5월 말부터 메르스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6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의 메르스 대처에 대해 "정부의 대응을 보면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무능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ref>{{뉴스 인용|저자1=박태정|저자2=박소영|제목=문재인 "메르스 대응, 세월호 때처럼 무능하고 부실"|url=http://news1.kr/articles/?2264201|뉴스=뉴스1|날짜=2015-06-04|확인날짜=2017-05-23}}</ref>
=== 고급 의자 논란 ===
2012년 11월 27일부터 TV를 통해 방송하고 있는 60초짜리 대선 후보 광고에 나오는 문재인 후보의 자택광고에 나오는 가죽의자가 "[[:en:Eames Lounge Chair|임스 라운지 체어(Eames Lounge Chair)]]"로 밝혀져 논란이 시작되었다. 문재인후보의 배우자인 김정숙씨가 트위터에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전시됐던 소파를 아는 분이 땡처리로 싸게 샀고 나중에 그걸 제가 50만 원에 산 중고"라고 해명했다.<ref>{{뉴스 인용|제목=TV광고 속 문재인 의자가 700만원짜리? 네티즌 "서민 맞나", 부인 "50만원 준 중고"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29/2012112900173.html|출판사=조선일보|저자=조백건 기자|날짜=2012년 11월 29일}}</ref> 임스 라운지 체어의 미국 현지 가격은 4500달러 정도지만, 국내에서 중국산 OEM 제품은 50~100만원에 구할 수 있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733543 문재인 의자 논란, 임스 라운지 체어는 어떤 의자길래… ] 2012년 11월 28일 아시아투데이</ref><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1128125303185 文후보 광고 속 의자, '고가 명품' 주장 제기되자] 2012년 11월 28일 조선일보</ref>


연말이 다가오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분열조짐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고, 이 무렵 안철수를 필두로 한 "신당 창당설"이 제기되었다.<ref name="newsis_party_split">{{뉴스 인용|저자=전혜정|제목=문재인 "분당, 처음부터 없었다…'혁신'에 職 걸겠다"|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831_0010259013|뉴스=뉴시스|날짜=2015-08-31|확인날짜=2017-05-28}}</ref> 하지만 문재인은 이에 대해 그런 일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당의 혁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f name="newsis_party_split"/> 그러나 이후 분열조짐을 보이더니, 결국 12월 13일 [[안철수]]의 탈당을 필두로 당은 분열되고 만다.<ref name="ahn_out">{{뉴스 인용|제목=‘안철수 새정치연합 탈당’…문재인 “정말 정치가 싫어지는 날” 심경 토로|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1213500311|뉴스=서울신문|날짜=2015-12-13|확인날짜=2017-05-28}}</ref> 문재인은 이를 두고 "정말 정치가 싫은 날"이라고 한탄했으나, "아무리 파도가 높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총선승리에 이르는 새정치연합의 항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포기하지는 않을것임을 선언했다.<ref name="ahn_out"/> 하지만 당내의 비판이 계속되는 가운데, 27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원 67명이 문재인에게 "총선에서 공천 권한 일체를 선거대책위원회에 위임할 것"을 요구했다.<ref>{{뉴스 인용|저자1=최지용|저자2=이준호|제목="새정치 의원 67명, 문대표 2선 후퇴 요구"|url=http://omn.kr/fpk2|뉴스=오마이뉴스|날짜=2015-12-27|확인날짜=2017-05-28}}</ref> 다음날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개명했는데,<ref>{{뉴스 인용|저자=권인경|제목=새정치민주연합, 새 당명 ‘더불어민주당‘ 확정|url=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1220174&year=2015|뉴스=스타투데이|날짜=2015-12-28|확인날짜=2017-05-28}}</ref> 이는 안철수계의 흔적을 지우는 행보라는 평을 받는다.<ref>{{뉴스 인용|저자=이권열|제목=새정치 당명 '더불어민주당'…안철수 흔적 지웠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7&aid=0000868771|뉴스=MBN|날짜=2015-12-28|확인날짜=2017-05-28}}</ref>
=== 대북관 논란 ===


2016년 1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사퇴한다고 밝혔으며,<ref name="herald_jongin">{{뉴스 인용|저자=김현민|날짜=2016-01-19|제목=문재인 기자회견, 당대표 사퇴의사에 김종인 “시기의 문제일 뿐”|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6&aid=0000974829|뉴스=헤럴드경제|보존url=http://archive.is/mdALP|보존날짜=2017-05-28|확인날짜=2017-05-28}}</ref><ref>{{뉴스 인용|날짜=2016-01-27|제목=[사설] 사퇴하는 문재인 대표|url=http://www.vop.co.kr/A00000986207.html|뉴스=민중의소리|확인날짜=2017-05-28}}</ref> 이에 [[김종인]]은 "그러리라 믿어요",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ref name="herald_jongin"/>
==== 이석기 특별사면 논란 ====
문재인이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있었던 시절 공안사범이었던 [[이석기 (1962년)|이석기]]가 특별한 이유 없이 두 차례 사면을 받았던 사실이 논란이 되었다. 이석기는 [[민족민주혁명당 사건|민혁당 사건]]으로 2002년 구속되어 2003년 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판결문에 의하면, 이석기는 1980년대 초반 한국외국어대(용인캠퍼스) 중국어과 재학생 시절 "[[김일성]]은 절세의 애국자" "[[주체사상]]은 영원 불멸의 등불" 등의 발언으로 후배들의 사상교육을 주도했으며, 1989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전신인 [[민족민주혁명당|반제청년동맹]]과 1992년 민혁당 설립에 참여하면서 [[김일성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한 계급투쟁을 강조하였다.<ref>{{뉴스 인용 |title=청년시절 이석기 "김일성은 영원 불멸의 등불" |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09/01/20130901002685.html?OutUrl=naver |work=세계일보 |date=2013년 9월 1일}}</ref>


=== 당 상임고문 시절 ===
그러나 이석기는 2003년 노무현 정부의 광복절 특사로 곧바로 가석방되었다.<ref name="chosunstone">{{뉴스 인용 |title=이석기, 盧정부때 두번 광복절 특사|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19/2012051900175.html?Dep0=twitter&d=2012051900175 |work=조선일보 |date=2015년 5월 19일}}</ref> 이석기는 2003년 광복절 특사 대상자 15만여명 중 유일한 공안사범이었다.<ref name="chosunstone"/> 이어 2005년에 또 한번 광복절 특사로 특별복권 되어 공무담임권 및 피선거권의 제한이 풀리면서 국회의원 후보 등 선출직에 나설 수 있게 됐다.<ref name="chosunstone"/>
[[파일:Kim Jongin's press conference in 2016.jpg|200px|섬네일|오른쪽|문재인과 [[김종인]] 외 당내 최고위원]]
3월 19일 차기 정권교체를 위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ref name="newsis_candidacyX">{{뉴스 인용|저자=박주연|날짜=2016-03-19|제목=문재인 "대선 정권교체 위해 불출마…약속 지킬 것"|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319_0013968370&cID=10301&pID=10300|뉴스=뉴시스|판=수정|보존url=http://archive.is/6VQAU|보존날짜=2017-05-13|확인날짜=2017-05-13}}</ref> 그는 "불출마선언을 하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배재정이라는 훌륭한 사람을 사상의 차기 국회의원으로 예약해놓고 떠난다는 것"이라며 "배재정을 국회로 보내주시면 제가 함께 사상을 책임지고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ref name="newsis_candidacyX"/>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행사에 참여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2116632</ref> 27일 [[안동]]을 방문했고,<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2&aid=0000847190</ref> 7월 25일 [[울릉도]]에 이어 [[독도]]를 방문했다.<ref>{{뉴스 인용|저자=장영락|날짜=2016-07-25|제목=문재인, 울릉도·독도 방문… 오늘(25일) 경비대원 '식사 봉사'|url=http://moneys.mt.co.kr/news/mwView.php?type=1&no=2016072506598031047&outlink=1|뉴스=MoneyS|보존url=http://archive.is/h6oEb|보존날짜=2017-05-13|확인날짜=2017-05-13}}</ref><ref name="joins_dokdo">{{뉴스 인용|저자=강태화|날짜=2016-07-25|제목=문재인 오늘 독도 방문 “영토주권 확고히”|url=http://news.joins.com/article/20352212|뉴스=중앙일보|판=수정|보존url=http://archive.is/klXWi|보존날짜=2017-05-13|확인날짜=2017-05-13}}</ref> 이를 두고 "오래전부터 한·일 역사 문제의 상징인 독도 방문을 추진해 왔다"며, "이번 방문은 8·15 광복절을 앞두고 영토 주권을 확고히 하자는 목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ref name="joins_dokdo"/> 이번 독도 방문에는 [[최낙정]] 전 해양수상부 장관이 동행했다.<ref name="joins_dokdo"/> 안동 방문에 대해서는 TK 민심을 잡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2&aid=0000847190</ref> 8월 6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모행사에 참여했다.<ref>http://news1.kr/photos/view/?2067836</ref>
이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제|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이석기가 또다시 내란 음모를 기도한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구속된 [[이석기 사건]]이 일어나자, 노무현 정부 시절 특별사면이 재조명되며 파장이 일었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 민정수석이 특별사면 대상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가 이를 진행하는데,<ref name="chosunstone"/><ref name="ytnamnesty">{{뉴스 인용 |title=광복절 일반사범 대규모특사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4&aid=0000033323 |work=YTN |date=2003년 7월 13일}}</ref><ref>{{뉴스 인용 |title=靑, 8.15 특사 검토 착수 .. 안희정씨 포함여부 관심 |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6072079531 |work=한국경제 |date=2006년 7월 20일}}</ref> 이석기의 두 번의 사면이 이루어졌을 때 실무자는 모두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ref name="chosunstone"/><ref name="ytnamnesty"/> 2015년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은 [[민족민주혁명당 사건|국가 내란]]을 기도했던 [[이석기 (1962년)|이석기]]가 사면된 것에 대하여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이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였다.<ref name="hkstone">{{뉴스 인용 |title=문재인, '종북' 이석기 특사 해명해야 |url=http://daily.hankooki.com/lpage/politics/201504/dh20150425164051137490.htm |work=한국일보 |date=2015년 4월 25일}}</ref>


2016년 10월 말부터 [[최순실 게이트]]가 알려지면서 박근혜 정권을 향한 민심이 폭발했고, 이때 문재인은 박근혜 정부에 거국중립내각을 요청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792796</ref> 안철수 등 일부 야권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나왔으나, 별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 무렵 문재인은 사실상의 실권자로 떠올랐다.<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476267&section=sc11</ref>
==== 평창 올림픽 남북 공동 진행 주장 논란 ====
201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이 [[한반도 비무장 지대|비무장지대]]의 [[지뢰]]를 제거하고 [[철조망]]을 헐어서 [[2018년 동계 올림픽|평창 동계 올림픽]]의 [[크로스컨트리 스키|크로스 컨트리]] 경기장을 [[강원도]] [[고성군 (강원도)|고성]] 지역에 남북이 공동으로 건설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ref>{{웹 인용 |title=문재인 후보, 강원도 공약실천 결의 특별의총 모두발언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23&oid=305&aid=0000010722 |author=문재인 |date=2012년 12월 1일}}</ref><ref>{{뉴스 인용 |title=[대선 강원공약 쟁점] 2. 동계올림픽 경기장 논란 |url=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601438 |work=강원도민일보 |date=2012년 12월 14일}}</ref> 문재인의 이같은 제안에 새누리당은 평화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올림픽을 국제정치와 남북문제의 종속변수로 전락시켜버리는 위험성이 있다며 즉각 반발하였다.<ref>{{웹 인용 |title=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방해할 작정인가[논평]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23&oid=156&aid=0000013643 |work=새누리당 |author=김원덕 |date=2012년 12월 10일}}</ref>


[[파일:국가안보 책임도 물어야 합니다! 문재인, 표창원 홍대입구 앞 거리 집회 2016 11 26.jpg|200px|섬네일|오른쪽|집회에서 [[표창원]]과 연설하는 문재인 (2016년)]]
문재인은 2015년 1월에도 평창 올림픽 남북 분산 개최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빚었다.<ref>{{뉴스 인용 |title=문재인 ‘평창올림픽 남북 분산 개최’ 언급.. 논란 재점화되나 |url=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8010003813 |work=아시아투데이 |date=2015년 1월 8일}}</ref>
11월 26일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하여 "200만 촛불이 세상을 바꾸는 횃불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내려오든 탄핵으로 끌려 내려오든 박 대통령 퇴진은 시간 문제",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한시라도 빨리 스스로 내려오는 것이 국민들을 덜 고생시키고 국정 공백과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박근혜의 하야를 촉구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232260</ref> 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최순실 일가의 대통령이었다. 돌이켜보면 2012년 12월부터 오늘까지 지난 4년 동안 대한민국에 대통령은 없었다"라며 박근혜 정부를 규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232260</ref> 3일 후에는 "국회는 흔들림 없이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 우리당과 저는 퇴진운동과 탄핵추진을 흔들림 없이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3692584</ref> 이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국민이 이겼다"고 주장했으나, 그러면서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덧붙였다.<ref>http://sports.khan.co.kr/culture/sk_index.html?art_id=201612092359083&sec_id=560901&pt=nv</ref> 이 무렵부터 문재인은 지지율 1위로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성장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1&aid=0002934064</ref>


2017년 3월 10일 박근혜는 드디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최종 파면되었고,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이 굳어지는 등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로 굳어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748182</ref> 그러나 이에 기타 야당들의 반문연대 논의가 진행되면서 다소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ref>http://www.joongboo.com/?mod=news&act=articleView&idxno=1150217</ref>
==== 대북 경제 제재 조치 해제 주장 논란 ====
[[파일:Kaesong model complex.jpg|thumb|250px|right|[[개성공업지구]]]]
[[광복절|광복]] 70주년을 맞아, [[천안함 침몰 사건|천안함을 폭침]]시킨 배후로 지목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제재 조치인 [[5.24 조치]]를 해제하자는 문재인의 주장이 논란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title=文 '한반도 新경제지도구상' 선언 "5.24조치 해제해야" |url=http://imnews.imbc.com/replay/2015/nwdesk/article/3751902_17821.html |work=MBC 뉴스데스크 |date=2015년 8월 16일}}</ref> 이는 2015년 8월 4일 [[2015년 DMZ 지뢰폭발사건|북조선의 DMZ 지뢰 도발 사건]] 직후 이뤄진 발언으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러한 문재인의 주장이 부적절하다고 일축하였다.<ref>{{뉴스 인용 |title=“5·24 해제 제안 부적절” vs “전승절 행사 참석해야” |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3131233&ref=A |work=KBS 뉴스 |date=2015년 8월 17일}}</ref> [[황교안]]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 역시 문재인의 이같은 제안에 북한의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해제가 가능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ref>{{뉴스 인용 |title=황교안 "5·24 조치 해제, 북한 조치 선행돼야" |url=http://www.ytn.co.kr/_ln/0101_201508190628076753 |work=YTN |date=2015년 8월 19일}}</ref> 한편 5.24 조치 해제 제안은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는 문재인의 자평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직계인 [[동교동계]] 인사들 역시 햇볕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북과의 대화와 협력은 중요하지만 지뢰 도발 사건 직후 어떻게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냐며 달가워하지 않았다.<ref>{{뉴스 인용 |title=DJ계 “문재인 제안, 햇볕정책 계승 아니다” |url=http://news.ichannela.com/politics/3/00/20150818/73120681/1 |work=채널A 뉴스 |date=2015년 8월 18일}}</ref> 이런 논란에 대해 [[한국갤럽]]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북측의 태도 변화 없이는 5.24 조치를 해제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69%로 대다수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 |title=국민 69% "북한 변화 없이 5.24 조치 해제 필요 없어" |url=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774793&code=61111111 |work=국민일보 |date=2015년 8월 21일}}</ref>


===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
또한 [[2016년 1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 실험|북조선의 4차 핵 실험]]에 대응하는 제재 조치로 [[박근혜 정부]]가 2016년 2월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을 폐쇄시키자, 문재인이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적 입장을 고수하는 것 역시 지속적인 논란이 되었다. 문재인은 개성공단 폐쇄 직후, [[트위터]]에서 개성공단 폐쇄결정은 박근혜 정부 최악의 잘못이고 개성공단 폐쇄를 제재수단으로 사용해선 안된다며 폐쇄 철회를 요구하였다.<ref>{{뉴스 인용 |title=문재인 "개성공단 폐쇄 결정은 박근혜 정부 최악" |url=http://news.joins.com/article/19560318 |work=중앙일보 |date=2016년 2월 12일}}</ref> 이에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체 어느 나라 의원이냐며 문재인을 비롯한 운동권 세력의 국론분열 발언은 북한 [[김정은]] 정권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고 규정하면서 문재인의 주장을 맹비난했다.<ref>{{뉴스 인용 |title=文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vs 與 “이적행위…어느나라 정치인?” 맹비난 |url=http://news.donga.com/3/all/20160215/76449236/2#csidx68d89918c6a545aa8ae548586e05204 |work=동아일보 |date=2016년 2월 15일}}</ref> 이 문제와 관련하여 2016년 2월 1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재인과 [[한민구]] 국방부장관 사이에서 격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 |title=문재인-한민구, 개성공단 폐쇄 놓고 '불꽃 설전'(종합)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2/15/0200000000AKR20160215153051001.HTML?input=1195m |work=연합뉴스 |date=2016년 2월 15일}}</ref>
{{참고|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참고|문재인의 제19대 대통령 선거 행보}}
[[파일:2017년 대통령선거 선거벽보.jpg|195px|섬네일|왼쪽|19대 대선 포스터]]
[[2017년]] [[3월 24일]] 동영상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이제 정권교체의 첫발을 내딛는다"라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ref>{{뉴스 인용|제목=文, 대선출마 선언…"국민이 정권교체해 대한민국 바꾼다"|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24/0200000000AKR20170324056700001.HTML|뉴스=연합뉴스|날짜=2017-03-24|확인날짜=2017-05-18}}</ref> [[상도동계]]인 [[김현철 (1959년)|김현철]], [[김덕룡]], [[문정수]], 박종웅의 지지를 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저자=전혜정|제목='YS 차남' 김현철 "문재인 돕겠다"…김덕룡도 합류|url=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416_0014834451&cID=10301&pID=10300|뉴스=뉴시스|날짜=2017-04-16|확인날짜=2017-05-18}}</ref><ref>{{뉴스 인용|저자=정유경|제목=‘상도동계 좌장’ 김덕룡 “양심적 보수는 문재인 지지”|url=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1344.html|뉴스=한겨레|날짜=2017-04-19|확인날짜=2017-05-18}}</ref><ref>{{뉴스 인용|저자=나혜윤|제목=YS 차남 김현철 "문재인이 영호남 통합할 유일한 후보"|url=http://www.viewsnnews.com/article?q=144227|뉴스=뷰스앤뉴스|날짜=2017-04-19|확인날짜=2017-05-18}}</ref><ref>{{뉴스 인용|저자=김광수|제목=[르포] 30년 만에 부산서 손잡은 YS와 DJ 아들|url=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92705.html|뉴스=한겨레|날짜=2017-04-28|확인날짜=2017-04-28}}</ref><ref>{{뉴스 인용|저자=박상휘|제목=YS측근 박종웅 前의원 문재인 지지…"시대적 난제 해결할 것"|url=http://news1.kr/articles?2985810&1|뉴스=뉴스1|날짜=2017-05-04|확인날짜=2017-05-04}}</ref> 그의 캠프 자문그룹 출범식에는 장·차관급 인사 49명이 참석했다.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네이버]] 미디어서비스 실장(미디어 담당 이사),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윤영찬 네이버 부사장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담당본부장으로 영입했고, 주요 여성계 인사인 [[남인순]] 의원을 여성본부장으로 영입했다.


당내 경선은 [[이재명 (1964년)|이재명]], [[최성]], 문재인, [[안희정]]의 4자 구도 대결이 확정되었다. 3월 22일에는 전국 동시투표소 투표를 진행하였고, [[3월 25일]] 호남 지역을 시작으로 각 지역별 [[청중 응답 시스템|ARS]] 투표와 순회투표를 차례로 진행하였다.<ref>{{뉴스 인용|저자=서혜림|제목=민주, 대선경선 4파전 확정…내일 '공명 경선 선언식'|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13/0200000000AKR20170313164800001.HTML|뉴스=연합뉴스|날짜=2017-03-13|확인날짜=2017-05-18}}</ref> [[4월 3일]] 수도권 지역 경선에서 문재인은 60.4%를 득표하며 1위에 오르는 동시에, 전 지역에서 1위 압승을 거두면서 과반 이상 득표로 인해 최종결선 투표 없이 곧바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김재은|제목=문재인, 수도권도 60.4% 압승..합산 57%로 본선 직행(상보)|url=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F21&newsid=05379206615892512&DCD=A00602&OutLnkChk=Y|뉴스=이데일리|날짜=2017-04-03|확인날짜=2017-05-18}}</ref> 경선 승리 후 "오늘 우리에게 승자와 패자는 없다. 승자가 있다면 그건 바로 촛불을 밝힌 국민들"이라며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국민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하는 동시에 "세 동지가 저의 영원한 정치적 동지로 남기를 소망한다"며 "그 동안 어느 캠프에 있었든, 누구를 지지했든,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다"라고 강조하며 세 후보 지지세력 결집에 나섰다.<ref>{{뉴스 인용|저자1=전예진|저자2=은정진|제목=문재인 "적폐청산해 국민통합…이번 대선은 정의와 불의의 대결"|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40319401|뉴스=한국경제|판=수정|날짜=2017-04-03|확인날짜=2017-05-18}}</ref>
이후에도 문재인은 개성공단 폐쇄를 멍청한 짓이라고 맹비난하며,<ref>{{뉴스 인용 |title=문재인 "개성공단 폐쇄만큼 멍청한 짓이 어디있나?" |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1126_0014542637&cID=10301&pID=10300 |work=뉴시스 |date=2016년 11월 26일}}</ref> 대통령 당선 시 개성공단을 즉각 재개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f name="dolinterview"/> 이에 [[유엔]]과 국제사회의 전방위적인 대북 제재에 대한 국제 공조의 일환으로 결정된 개성공단 폐쇄를 철회하는 것은 스스로 국제 공조를 허무는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ref>{{뉴스 인용 |title=대선走者 안보관 정밀 검증해야 한다 |url=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122001073111000004 |work=문화일보 |date=2016년 12월 20일}}</ref> 새누리당 탈당파가 모인 중도 보수 정당인 가칭 [[개혁보수신당]]의 [[유승민 (정치인)|유승민]] 의원 역시 만약에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안보가 걱정이라며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ref>{{뉴스 인용 |title=유승민 " 문재인이 대통령되면 안보 걱정" |url=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959522 |work=SBS 뉴스 |date=2016년 12월 27일}}</ref> 한편,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북조선 고위인사인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조선 대사관 공사는 이같은 개성공단 폐쇄 논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민국 내 정치 문제와는 선을 그으면서도, 만약 한국이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들이 대북 제재를 따라 왔을 지 의문이라며 사실상 개성공단 폐쇄의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었다.<ref>{{뉴스 인용 |title=태영호는 왜 이 시점에 '공개활동' 나섰을까? |url=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7068 |work=프레시안 |date=2016년 12월 27일}}</ref>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며 "남녀 동수 내각"을 공약했으며, "[[준조세]] 금지법을 만들어 기업을 중앙 정부 권력의 횡포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10/0200000000AKR20170110105951001.HTML</ref> 또한 "개성공단 확장"을 추가적으로 공약했고,<ref>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6&news_seq_no=3138490</ref> 아울러 댓글공작, 정치개입 등으로 논란이 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국가정보원]]을 개혁하겠다고 나섰다.<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17/01/05/20170105003605.html?OutUrl=naver</ref> 이 외에도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ref>[http://news.joins.com/article/21367497 문재인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만들 수 있다”]</ref> "광화문 대통령 시대"<ref>[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300032 문재인 “대통령 되면 남대문, 광화문 광장에 불쑥 찾아가 시민들 만나겠다"] -위키트리</ref> 등을 공약했다. 안보에 있어서는 "6자 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양자·다지회담을 적극 활용해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912033</ref> 이 외에도 북핵에 관해서는 이에 대응할 우리 군의 핵심전력을 조기에 전력화하겠다고 약속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1&aid=0003024503</ref>
====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기권 과정 논란 ====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던 [[송민순]]이 2016년 발간된 그의 회고록에서 2007년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이 [[유엔 총회]] [[유엔 총회 결의 62/167|대북 인권결의안]]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방침을 당사자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에 문의 후 결정하도록 주장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0/15/0200000000AKR20161015032300001.HTML?input=1195m |title='송민순 회고록' 파문…與 "文 국기문란 충격" 野 "색깔론 그만" |work=연합뉴스 |date=2016년 10월 15일}}</ref> 송민순은 2007년 11월 18일 관계 장관 회의에서 북측의 의견을 확인해보자고 정한 후 북측에 의사를 물었고, 20일에 북측의 반대 의사를 확인하고 기권 입장을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ref name="chosuntreason">{{뉴스 인용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19/2016101900200.html |title=盧정부, 2007년 유엔 北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북한과 사전협의, 미국엔 막판 통보 |work=조선일보 |date=2016년 10월 19일}}</ref>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대한민국)|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함께 4월 23일, 4월 28일, 5월 2일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토론에 참석했다. 유례없는 5인 구도로 이루어진 토론을 거치면서 여러 분야에서 서로 간의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이후 5월 9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41.1%를 득표해 24%를 득표한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ref name="19presidentopen">[http://news1.kr/articles/?2989226&view=pc 19대 대선 개표완료, 文 41.1%…역대 최다표차 승리(속보)] - [[뉴스1]], 2017년 [[5월 10일]]</ref> 이미 이어져온 1강 구도를 통해 개표 초반부터 사실상 당선이 확정되었으며,<ref>{{뉴스 인용|날짜=2017-05-10|제목=문재인 당선인, 오늘부터 임기 시작...향후 정국은?①|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54&oid=052&aid=0001008139|뉴스=YTN|보존url=http://archive.is/6zKyG|보존날짜=2017-12-30|확인날짜=2017-12-30}}</ref> "함께 경쟁한 후보들에도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그 분들과도 함께 손잡고 미래를 위해 같이 전진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ref name="19presidentopen"/> 궐위선거인 관계로 별다른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취임했다.
한편, 정부 외교·안보 수뇌부 간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자, 문재인이 [[김만복 (1946년)|김만복]] 당시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국정원장]]의 제안을 수용해 북한의 의견을 사전에 물어보자고 회의를 정리했다는 이야기도 제기되었다.<ref name="ohmynews1610">{{뉴스 인용 |title=또 다시 '노무현'... 송민순 회고록 쟁점 셋 |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52011 |work=오마이뉴스 |date=2016년 10월 17일}}</ref> 반면에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자신이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에 대한 기억은 엇갈렸다.<ref name="ohmynews1610"/> 설사 문재인이 회고록 내용대로 발언했더라도 '기권 결정은 16일 회의에서 최종 결정됐던 것'이라는 다른 회의 참석자 주장을 감안하면 이는 '사전 협의'가 아닌 '통보'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었다.<ref name="ohmynews1610"/> 또한 송민순의 주장을 입증할 추가 자료를 찾기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되었다.<ref name="ohmynews1610"/>


== 대통령 재임시 ==
그러나 당시 [[주한 미국 대사]]였던 [[알렉산더 버시바우]]가 [[유엔 총회 결의 62/167|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표결 이틀 전인 2007년 11월 19일 조중표 외교부 1차관을 찾아와 "한국이 찬성 투표해 줄 것"을 마지막으로 요청했지만 명확한 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송민순도 회고록에 이 내용을 똑같이 쓴 것으로 알려져 관련 파문은 가시지 않았다.<ref name="chosuntreason"/> 기밀문서 폭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의하면, [[주한 미국 대사관]] 정무참사관과 만난 [[대한민국 외교부]] 담당자가 기권하기로 한 최종 결정은 표결하기 두 시간 전에야 이뤄졌다고 밝혀, 표결 직전까지 미국에 대북 인권결의안 기권 결정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으며,<ref>{{웹 인용 |title=UNGA FOLLOW UP DEMARCHE DELIVERED |url=https://wikileaks.org/plusd/cables/07SEOUL3463_a.html |work=[[위키리크스]] |date=2007년 12월 5일}}</ref> 미국 측은 표결 직전까지 우방국과 결정 내용을 공유하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알려졌다.<ref name="chosuntreason"/>
{{불확실 문단}}
{{본문|문재인 정부}}
=== 취임식 ===
{{참고|문재인 대통령 취임식}}
[[파일:Inauguration of Moon Jae-in 05.png|섬네일|250px|[[국회의사당 (대한민국)|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문재인]]
[[파일:Moon visits the People's Party in 2017-05-10.png|250px|섬네일|[[국민의당]]을 방문한 문재인]]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국회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은 취임 선서로만 진행되었는데 이는 19대 대선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여서 공식 취임식을 치를 여유가 없었기에 취임 행사를 간소화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이유이다. 취임선서식은 입장부터 퇴장까지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었다.
즉, 문재인 측의 주장대로 16일에 기권 결정 후 18일에 북측에 통보를 했든, 송민순의 회고록대로 18일에 북측에 의사를 묻고 20일에 답변을 받은 후 기권을 결정했든, 미국 측에는 정보 공유를 하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긴밀히 협의하고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ref name="chosuntreason"/>


취임 선서가 끝난 후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시민들을 만났고, [[청와대]]로 떠나면서도 거리에 나온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청와대 경호실도 시민들의 접근을 과하게 제지하지 않으며, 새 대통령과 시민들의 첫 만남을 배려했다.<ref>[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188447 시민들과 '셀카' 촬영도…취임식 격식 깨고 소통 집중] - [[SBS 8 뉴스]], 2017년 5월 10일</ref>
{{인용문|문재인은 송민순 회고록으로 불거진 '종북' 논란에 특전사 이력으로 맞대응했다.


=== 국정 방향 ===
"특전사 출신인 저보고 종북이라는 사람들이 진짜 종북입니다."| 2016년 12월 26일 , 문재인<ref>http://m.news.naver.com/read.nhn?oid=448&aid=0000193954&sid1=100&mode=LSD</ref><ref>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6/2016122690209.html</ref>}}
문재인은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취임 첫날 야4당을 방문하여 협조를 부탁하였다.<ref>[http://the300.mt.co.kr/newsView.html?no=2017051013277682007 문재인 대통령, 야4당 대표 릴레이 면담…국정협조 당부] - the300 인터넷 뉴스, 2017년 5월 10일</ref>


문재인 정부의 국정 방향은 '탕평'과 '협치', '개혁'과 '변화', '대화'와 '소통', '능력'과 '전문성'으로 대표된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전라남도지사]]인 [[이낙연]]을 지명했으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는 [[임종석]]을 지명했다. 둘은 친문 색채가 옅은 사람으로 문재인이 이들을 지명한 것과 관련하여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다. 국정원장으로는 [[서훈]]이, 청와대 경호실장으로는 [[주영훈 (1956년)|주영훈]]이 내정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10/0200000000AKR20170510157600001.HTML 3大요직 인선에 숨은 국정 키워드는…'탕평'·'개혁'·'전문성'] - [[연합뉴스]], 2017년 5월 10일</ref>
==== 방북 우선 발언 논란 ====
[[중앙일보]]에서 진행한 도올 [[김용옥]]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당선 시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모두 갈 수 있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먼저 방문하겠다는 문재인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ref name="dolinterview">{{뉴스 인용 |title=[도올이 묻고 문재인이 답하다] “사드는 차기 정권 넘기고, 개성공단 즉각 재개해야” |url=http://news.joins.com/article/21008771 |work=중앙일보 |date=2016년 12월 16일}}</ref>


=== 외교 정책 ===
{{인용문|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경우, 미국과 북한 중 어디를 먼저 가겠느냐는 질문에 문 전 대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미국]] ====
{{참고|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논란}}
[[파일:President Donald J. Trump welcomes President Moon Jae-in of the Republic of Korea to the White House (34809235764).jpg|thumb|[[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을 2017년 6월 30일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맞이하고 있다.]]
2017년 6월 1일, 미국 상원에서 국방 예산을 담당하는 [[민주당 (미국)|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더빈 의원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이)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논란|사드 배치]]를 원치 않으면 (미국정부가)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논란|사드 배치]] 관련 예산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ref name="딕더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9308755&isYeonhapFlash=Y&rc=N </ref><ref name="사드예산철회">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3&aid=0007990522&date=20170602&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8 </ref>


2017년 6월 29일(미국 동부시간), 문재인 대통령은 [[워싱턴D.C.]] [[미국 의회]]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하원 지도부와 가진 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논란|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에 기초한 합의이고 한국 국민과 [[주한미군]]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ref>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630010015519 </ref><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1&aid=0003062462 </ref>
"주저 없이 말한다. 나는 북한을 먼저 가겠다."


==== [[중국]] ====
"1953년 정전 이후 63년 째 대치하고 있는 북한과 대한민국이다."
{{참고|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논란}}
2017년 5월 10일,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의 당선에 축전을 보내며 "한국이 그러하듯 중국도 아주 어렵게 이뤄낸 양국관계 성과를 유지하고 보호하길 희망한다",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정치적 신뢰를 견고히 하며 차이점을 적절하게 처리하고, 양국관계의 개선 및 안정적인 발전을 추진해 가겠다"라고 밝혔다.<ref name="hanjungil_cong">{{뉴스 인용|저자=정인지|날짜=2017-05-10|제목="문 대통령 취임 축하하지만"…'주판' 두드리는 美·中·日|url=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8&aid=0003870651&date=20170510&type=1&rankingSeq=1&rankingSectionId=104|뉴스=머니투데이|보존url=http://archive.is/KcSY2|보존날짜=2017-12-30|확인날짜=2017-12-30}}</ref> [[한중]]관계에 있어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논란|사드 배치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데, 관영언론 [[환추 시보]]는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논란|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보수정권의 가장 큰 실수"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가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논란|사드 배치 문제]]로 발생된 충격과 긴장된 한·중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ref name="hanjungil_cong"/>


2017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논란|사드 배치]] 여부를 결정하는 건 [[한국]]의 [[주권]]적 사안이라며 [[중국]]이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2&aid=0001028539 </ref><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8&aid=0003864604 </ref>
"미국과 우리는 1953년 이래 계속 한미동맹을 맺고 있기도 하다."| 2016년 12월 14일 , 문재인<ref>http://www.mediapen.com/news/view/215769</ref><ref name="dolinterview">{{뉴스 인용 |title=[도올이 묻고 문재인이 답하다] “사드는 차기 정권 넘기고, 개성공단 즉각 재개해야” |url=http://news.joins.com/article/21008771 |work=중앙일보 |date=2016년 12월 16일}}</ref>}}


==== [[일본]] ====
대통령 당선 후 전통적인 우방국인 미국보다 군사적 대치 중인 북한을 먼저 방문하겠다는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태도라고 크게 반발하였다. [[새누리당]]은 끔찍한 발언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비난하였고,<ref>{{뉴스 인용 |title=새누리당 "'대통령 되면 북한 먼저 간다'는 문재인, 끔찍하고 초헌법적인 발언"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7/2016121700840.html |work=조선일보 |date=2016년 12월 17일}}</ref> 문재인과 같은 당 [[이재명 (정치인)|이재명]] [[성남시|성남]] 시장도 문재인을 겨냥해 우리나라 안보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 한미동맹인데 당연히 고민할 것 없이 미국부터 가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해당 발언을 비판하였다.<ref>{{뉴스 인용 |title=[차기 리더에게 듣는다] 이재명 "문재인 대세론 사라져… 지금 대중은 머슴형 리더십 요구" |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12/20/20161220002874.html?OutUrl=naver |work=세계일보 |date=2016년 12월 20일}}</ref> [[국민의당 (2016년)|국민의당]] [[박지원 (1942년)|박지원]] 원내대표도 한미동맹을 포기해서는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기에 먼저 미국을 가서 대북정책을 논의하는 것이 옳다고 언급하며, 문재인의 입을 [[탄핵]]해야 할 때라면서 비난 수위를 높였다.<ref>{{뉴스 인용 |title=박지원 "문재인의 입을 탄핵해야할 때" |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1221_0014596330&cID=10303&pID=10300 |work=뉴시스 |date=2016년 12월 21일}}</ref>
[[아베 신조]] 총리는 "한·일 양국은 전략적인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관계"라며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손을 맞잡고 미래 지행의 [[한일관계]]를 폭넓은 분야에서 발전시켜가고 싶다"고 밝혔다.<ref name="hanjungil_cong"/>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안부 관련 합의는 재교섭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ref name="hanjungil_cong"/>


==== [[북한]] ====
같은 달 26일, 문 전 대표는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가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 입장도 견지했다.
문재인은 북한에 대한 전략으로 장기적인 통일로 이끄는 정책을 언급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UN 경제 제재와 병행하여 대화를 통해서, 평화 협정과 북한 핵 미사일 개발 중단을 교환하는 방식을 제안 하였다. <ref>{{뉴스 인용|url=http://thediplomat.com/2017/07/president-moons-north-korea-strategy/|title=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 전략 |last=Frank|first= Ruediger |work=the diplomat.comc|access-date=2017-08-18|language=en-US (영어)}}</ref>
{{참고|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논란}}
[[북한]]은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논란|사드 배치]]를 비난하며 "[[미국]]은 [[사드]]를 제 땅으로 끌어가라"고 주장했고 "남조선 당국이 '사드배치가 북핵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과 공동으로 결정한 것이며 전임정부의 결정이지만 정권이 교체됐다고 해서 그 결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고 떠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ref>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238938&plink=ORI&cooper=NAVER</ref><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6/10/0200000000AKR20170610054700014.HTML?input=1195m</ref>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시사했으며, 여건이 된다면 [[평양]]도 갈 것이라고 밝혔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510500174&wlog_tag3=naver</ref> 북한은 "남조선 당국이 정녕 촛불 민심을 대변하는 정권이라면 미국 상전의 강요를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제정신을 차리고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남조선 각계의 민심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 처사일 것"이라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345013 </ref>


=== 경제 정책 ===
{{인용문|문재인 전 대표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2차 포럼에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집권하자마자 증세론, 일자리 창출 공약, 복지 공약, 탈원전 정책 등이 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ref name="busan_economy">{{뉴스 인용|판=수정|저자=송현수|날짜=2017-05-10|제목=[문재인 시대 개막] 관심 끄는 경제정책|url=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70510000357|뉴스=부산일보|보존url=http://archive.is/MSqNq|보존날짜=2017-05-13|확인날짜=2017-05-13}}</ref>


문재인 정부의 목표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이며, 저출산·고령화, 빈곤, 보육, 교육, 의료 분야에서 복지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f name="busan_economy"/> 한편으로는 취임하자마자 10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다.<ref name="busan_economy"/>
"대한민국 대통령은 무조건 미국 먼저 가야한다는 고정관념을 이제 극복해야 합니다."


부동산 정책으로는 서민을 위한 주거복지와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초점을 두고 있다.<ref name="chosunbiz_realestate">{{뉴스 인용|저자=이창환|날짜=2017-05-10|제목=[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임대 확대와 도시재생에 방점”…보유세 인상은 발 빼|url=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9/2017050901685.html#csidxfcbe3b5b3cb0ac8a75c6cf2772b772ch|뉴스=조선비즈|보존url=http://archive.is/jnbpE|보존날짜=2017-05-13|확인날짜=2017-05-13}}</ref> "매년 17만 가구씩 5년간 총 85만 가구의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이다.<ref name="chosunbiz_realestate"/>
"감시정찰정보역량과 정밀타격능력을 키우는 등 자주국방력을 강화하여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환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6년 12월 26일 , 문재인<ref>http://m.news.naver.com/read.nhn?oid=448&aid=0000193954&sid1=100&mode=LSD</ref><ref>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6/2016122690209.html</ref>}}


=== 취임 1년차 (2017년 5월 10일 ~ 2018년 5월 9일) ===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가 차기 한국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주한 미군 철수 가능성이 크다고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P)가 전망했다. FP는 2016년 12월 27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아시아를 통한 중심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트럼프가 한국 보호 비용 부담액의 증액을 요구할 것이고, 문재인은 미군이 떠나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포린 폴리시 전문지는 “친미 정당 출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그의 뒤를 이을 선두주자는 좌파 문재인이다”면서 “이 주자는 반미 성향이 강하고, 북한과 대결보다는 화해를 모색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ref>http://foreignpolicy.com/2016/12/27/the-pivot-to-asia-obama-trump/</ref> <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9/2016122900184.html</ref> <ref>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1229000029</ref> <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12/28/20161228001332.html?OutUrl=naver</ref>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궐위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라 갑작스럽게 취임하는 바람에 내각은 박근혜 정부의 구성인 채로 유지됐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64341</ref> 다들 사임 의사를 밝혔고, 바로 다음날 [[황교안]] 국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사표가 수리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37&aid=0000154009</ref> 또한 박근혜 정권 시기 논란이 되었던 국정교과서에 대한 폐지를 지시하였고, 아울러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중단되어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제창 또한 지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9261283&isYeonhapFlash=Y&rc=N</ref>


=== 혁명 발언 논란 ===
==== 위기 ====
1기 내각에 지명한 장관 및 후보자의 절반 이상이 대통령 공약이었던 고위공직자 불가 5대 비리 의혹이 있는 등 인사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지자,<ref>{{뉴스 인용 |title=文정부 인사, 절반 이상이 대통령 공약 ‘5대 비리’ 의혹 |url=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712000497 |work=헤럴드경제 |date=2017-07-12 |accessdate=2017-07-13}}</ref> 이에 반발하는 야당들의 국회 보이콧으로 인해 국회가 장기간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ref>{{뉴스 인용 |title=야3당 국회 파상공세…자유한국당ㆍ바른정당 “당분간 상임위 보이콧” |url=http://news.joins.com/article/21679913 |work=중앙일보 |date=2017-06-19 |accessdate=2017-07-13}}</ref><ref>{{뉴스 인용 |title=7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 무산…야3당, 동맹 보이콧 |url=http://www.yonhapnewstv.co.kr/MYH20170711019800038/?did=1825m |work=연합뉴스TV |date=2017-07-11 |accessdate=2017-07-13}}</ref> 인사 파동 과정에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가 각종 결격 사유로 인한 논란으로 자진사퇴 하였다.<ref>{{뉴스 인용 |title=[속보]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전격 사퇴 |url=http://www.ytn.co.kr/_ln/0101_201706162057557955 |work=YTN |date=2017-06-16 |accessdate=2017-07-13}}</ref><ref>{{뉴스 인용 |title=조대엽 고용장관 후보자 32일만에 자진사퇴…안경환 이어 두번째(종합)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7/13/0200000000AKR20170713183252004.HTML |work=연합뉴스 |date=2017-07-13 |accessdate=2017-07-13}}</ref>
2016년 12월 14일 문재인은 김용옥 씨와 가진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경우 그 다음에는 [[혁명]] 밖에 없다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ref name="dolinterview"/><ref name="kbsrev">{{뉴스 인용 |title=문재인 “탄핵 기각시 혁명”…정치권 논란 |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95850 |work=KBS 뉴스 |date=2016년 12월 17일}}</ref> 새누리당은 헌법을 무시하는 초헌법적인 발언이라며,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가 본인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혁명]] 운운하는 문재인은 국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며 강하게 비난하였다.<ref name="kbsrev"/><ref>{{뉴스 인용 |title=새누리 "문재인 혁명 발언, 경악 금할 수 없어" |url=http://www.ytn.co.kr/_ln/0101_201612181802429412 |work=YTN |date=2016년 12월 18일}}</ref>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역시 지극히 위험한 발언이라고 지적하며, 광장의 분노와 불안에서 혼란과 불안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며 문재인의 발언을 비판하였다.<ref name="kbsrev"/><ref>{{뉴스 인용 |title=박지원 “문재인 혁명 발언, 지극히 위험” |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95777 |work=KBS 뉴스 |date=2016년 12월 17일}}</ref> [[정세균]] [[대한민국의 국회의장|국회의장]]도 문재인의 [[혁명]] 발언을 과하다고 비판하였다.<ref name="skrev"/> 정세균은 독립적 헌법 기관인 헌재와 대한민국 국민의 품격에 걸맞은 대우와 언행을 정치지도자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2류나 3류로 인식되는 정치인 행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였다.<ref name="skrev">{{뉴스 인용 |title=정세균 “문재인 ‘혁명 발언’ 과하다” 비판 |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12/28/20161228003176.html |work=세계일보 |date=2016년 12월 28일}}</ref>


{{외부 미디어
== 연설 ==
| 위치 =
문재인의 유세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거칠고 투박하다." 이다. 정치인이란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능숙한 달변가도 아니고 유세 현장에선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뒤로 갈수록 약해지는 말투에, 어디서 반응해야 할지 사람들을 아리송하게 만든다. 문재인의 연설이나 토론 등이 화제에 오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눌한' 말투를 많이 떠올린다. 이에 더해 문재인의 유세는 강약이 없고 높낮이가 없는 편이다. 연설문이 있으면 그대로 쭉 읽는 편이다. 문재인은 유세 연설에서 '그렇지 않습니까?'라거나 '문재인에게 맡겨주시겠습니까?'라며 동의를 얻는 말을 많이 하지만 높낮이가 없어 호소력이 약한 편이다. 손바닥 크기의 연설문 몇 장을 손에 잡아 연단 위로 올라서서 그것을 읽는 문재인의 강약 없는 연설에 대중들은 어떻게 호응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분위기이다. 문재인은 대선 출마 당사자가 아니라 '대변인' 같은 느낌이다. 목소리와 눈에 힘이 별로 없고 자신감도 부족해 보인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9/2012101901438.html?Dep0=twitter&d=2012101901438 | 조선일보 - 문재인은 '마사지'가 필요해|date=2012-10-20]</ref>
| 너비 = 220px
2016년 12월 조선일보는 조기 대선 정국에서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를 받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로 어떤 말을 쓰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심층 분석하는 연속 기획을 준비했다. 전국을 누비며 시민과 만나는 문 전 대표는 시민혁명, 촛불혁명을 강조했다. "촛불 혁명, 시민 혁명, 혁명, 혁명, 혁명, 혁명"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혁명'을 입에 달고 다닌다. 총 발언 시간은 8시간이고 '혁명'은 총 97번 나왔다.<ref>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8/2016122890186.html</ref>
| 주제 =
| 영상1 = [https://www.youtube.com/watch?v=axksLKeSbso 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JTBC
| 영상2 =
| 영상3 =
}}
8월 17일 취임 100일 기념하여 기자 회견을 열었으며, 사전 각본 없이 진행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09481587</ref>

엎친데 덮친격으로, [[북한]]의 핵실험까지 겹치면서 지지율이 추가적으로 하락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311978</ref>

==평가==
{{중립 필요 문단|날짜=2017-11-08}}
=== 긍정적 평가 ===
비지니스포스트는 ‘합리적이고 중심이 잘 잡혀있어 안정된 성품을 지녔다 ’고 평가하였다.<ref name=":1"/>

=== 부정적 평가 ===
{{본문|문재인에 대한 비판}}
{{참고|문재인 아들 고용정보원 채용 특혜 의혹 및 논란}}
대통령 당선 전 문재인의 재산신고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되었고 그에 대한 반박이 있는 등 정치적으로 공방이 있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 아들 문준용의 [[한국고용정보원|고용정보원]] 채용 과정에서 여러 가지 특혜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대북관에 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과 그를 옹호하는 대한민국 내 세력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잦은 논란을 빚었다. 그러한 대북 정책을 관철하거나 주장하는 과정에서 간혹 국제적 외교 문제나 법적 문제 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 학력 ==
== 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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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경남중학교]] 졸업
* [[1968년]] [[경남중학교]] 졸업
* [[1971년]] [[경남고등학교]] 졸업
* [[1971년]] [[경남고등학교]] 졸업
* [[1980년]] [[경희대학교|경희대학교 법과대학]] 법학사
* [[1980년]] [[경희대학교|경희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학사


== 경력 ==
== 경력 ==
*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 [[1983년]] [[사법연수원]] 12기 수료 (법무부장관상 수상)
* [[1983년]] [[사법연수원]] 12기 수료 (법무부장관상 수상)
* [[1983년]] 법무법인 부산 대표 변호사
* [[1983년]] 노무현ㆍ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 [[1984년]]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과 강사
* [[1984년]]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과 강사
*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 부산 본부 상임집행위원
*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
*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위원/부산 지사장<ref>{{뉴스 인용|제목=봉하마을의 전설은 계속된다|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71194|출판사=오마이뉴스|저자=이기석 기자|날짜=2011-5-24|확인일자=2012-6-8}}</ref>
*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위원/부산 지사장<ref>{{뉴스 인용|제목=봉하마을의 전설은 계속된다|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71194|출판사=오마이뉴스|저자=이기석 기자|날짜=2011-05-24|확인일자=2012-06-08}}</ref>
* [[1996년]]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주 사회를 위한 부산-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 [[1989년]] ~ [[2002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부이사장
* [[1994년]] 노동자를 위한 연대 노동상담소장
* [[1995년]] ~ [[2002년]]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 [[1995년]] ~ [[2001년 2월]]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 [[1996년]]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주 사회를 위한 부산ㆍ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 [[1996년]] [[YMCA|부산 YMCA]] 이사
* [[2001년]] ~ [[2002년]] 노동자를 위한 연대 공동대표
* [[2001년]] ~ [[2003년]] [[부산광역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
* [[2003년]] ~ [[2004년 2월]]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 [[2003년]] ~ [[2004년 2월]]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 [[2004년 5월]] ~ [[2005년 1월]]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 [[2004년 5월]] ~ [[2005년 1월]]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 [[2005년 1월]] ~ [[2006년 5월]]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 [[2005년 1월]] ~ [[2006년 5월]]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 [[2007년]] [[3월 12일]] ~ [[2008년]] [[2월 24일]]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비서실장]]
* [[2007년]] [[3월 12일]] ~ [[2008년]] [[2월 24일]] 제29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비서실장]]
* [[2007년 8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위원장
* [[2007년 8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위원장
* [[2009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 [[2009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장
* [[2009년 9월]] ~ [[2010년 8월]]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 [[2010년 8월]] ~ [[2012년 5월]]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재단법인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이사장
* [[2010년 8월]] ~ [[2012년 5월]]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 [[2011년]]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 [[2011년]]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 [[2011년 12월]]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제19대 국회의원 (부산 사상구)
*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제19대 국회의원 (부산 사상구)
* [[2012년]] [[9월 16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 [[2012년]]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 [[2012년 11월]] ~ [[2012년 12월]] 민주통합당 대표대행
* [[2012년 11월]] ~ [[2012년 12월]] [[민주통합당]] 대표권한대행
* [[2015년]] [[2월 8일]] ~ [[2016년]] [[1월 26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 [[2014년 9월]] ~ [[2014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
* [[2015년]] [[2월 8일]] ~ [[2015년]] [[12월 28일]] 제2대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 [[2015년]] [[12월 28일]] ~ [[2016년]] [[1월 26일]] 초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 [[2015년]]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
* [[2016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 [[2017년]]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후보
* [[2017년]] [[5월 10일]] ~ 제19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한민국 대통령]]


== 저서 ==
== 저서 ==
;단독 저서
;단독 저서
* 문재인의 운명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30년 동지 문재인, 두사람의 운명 같은 동행)》. 가교. 2011년 6월 15일. ISBN 978-89-7777-188-8.
* {{서적 인용|제목=문재인의 운명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30년 동지 문재인, 두사람의 운명 같은 동행)|출판사=가교|날짜=2011-06-15|isbn=978-89-7777-188-8}}
* {{서적 인용|제목=문재인의 운명 (2017년 제19대 대통령 당선 기념 특별판)|출판사=북팔|날짜=2017-05-16|isbn=979-11-6156-587-3}}
*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의 힘)》. 퍼플카우. 2012년 8월 6일. ISBN 978-89-97838-02-8.
* {{서적 인용|제목=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의 힘)|출판사=퍼플카우|날짜=2012-08-06|isbn=978-89-97838-02-8}}
* 《문재인이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리더스북. 2012년 8월 8일. ISBN 978-89-01-14936-3.
* {{서적 인용|제목=문재인이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출판사=리더스북|날짜=2012-08-08|isbn=978-89-01-14936-3}}
* 《1219 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 2013년 12월 10일. ISBN 978-89-5561-690-3.
* {{서적 인용|제목=1219 끝이 시작이다|출판사=바다출판사|날짜=2013-12-10|isbn=978-89-5561-690-3}}
* {{서적 인용|제목=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출판사=21세기북스|날짜=2017-01-20|isbn=978-89-509-6884-7}}


;공저
;공저
*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오마이북. 2010년 5월 13일. ISBN 978-89-964305-0-6
* {{서적 인용|제목=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출판사=오마이북|날짜=2010-05-13|isbn=978-89-964305-0-6}}
* 그 남자 문재인 (함께 만드는 세상)》. 리얼텍스트. 2012년 9월 17일. ISBN 978-89-964898-2-5.
* {{서적 인용|제목=그 남자 문재인 (함께 만드는 세상)|출판사=리얼텍스트|날짜=2012-09-17|isbn=978-89-964898-2-5}}
*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오월의봄. 2011년 11월 23일. ISBN 978-89-966875-2-8.
* {{서적 인용|제목=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출판사=오월의봄|날짜=2011-11-23|isbn=978-89-966875-2-8}}
* 만화 문재인》. 마이디팟. 2012년 10월. ISBN 978-89-6733-174-0
* {{서적 인용|제목=만화 문재인|출판사=마이디팟|날짜=2012-10-03|isbn=978-89-6733-174-0}}
* {{서적 인용|제목=운명에서 희망으로 (문재인이 말하고, 심리학자 이나미가 분석하다)|출판사=다산북스|날짜=2017-03-23|isbn=979-11-306-1171-6}}


== 관련 서적 ==
== 관련 서적 ==
* 휴먼스토리. 문재인 스타일 (안철수와 박원순의 아름다운 합의를 이끌어 낸 문재인식 리더십)》. 미르북스. 2011년 10월 17일. ISBN 978-89-97213-03-0
* {{서적 인용|제목=문재인 스타일 (안철수와 박원순의 아름다운 합의를 이끌어 낸 문재인식 리더십)|출판사=미르북스|날짜=2011-10-17|isbn=978-89-97213-03-0}}
* 황상민. 정치심리극장》. 리더스북. 2012년 9월 24일. ISBN 978-89-01-15081-9
* {{서적 인용|제목=정치심리극장|출판사=리더스북|날짜=2012-09-24|isbn=978-89-01-15081-9}}
* 조기숙. 문재인이 이긴다》. 리얼텍스트. 2012년 11월 20일. ISBN 978-89-964896-3-4
* {{서적 인용|제목=문재인이 이긴다|출판사=리얼텍스트|날짜=2012-11-20|isbn=978-89-964896-3-4}}
* {{서적 인용|제목=문재인 스토리 (그 남자, 문재인에 대해 알고 싶은 56가지 이야기)|출판사=모악|날짜=2017-02-15|isbn=979-11-88071-00-5}}
* {{서적 인용|제목=그래요 문재인 (위기와 희망의 길목에서 문재인을 말하다)|출판사=은행나무|날짜=2017-04-20|isbn=978-89-5660-141-0}}
* {{서적 인용|제목=좋아요 문재인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문재인의 아름다운 발걸음)|출판사=북로그컴퍼니|날짜=2017-08-22|isbn=979-11-87292-71-5}}


== 역대 선거 결과 ==
== 역대 선거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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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부산 사상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부산 사상구)]]||19대||[[민주통합당]]||{{막대|민|5|5|0|5}} 55.05%||65,336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사상구 국회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부산 사상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부산 사상구)]]||19대||[[민주통합당]]||{{막대|민|5|5|0|4}} 55.04%||65,336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사상구 국회의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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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제18대 대선]]||[[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18대||[[민주통합당]]||{{막대|민|4|8|0|2}} 48.02%||14,692,632표||2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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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선]]||[[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19대||[[더불어민주당]]||{{막대|1민|4|1|0|8}} 41.08%||13,423,800표||1위||[[파일:Presidential Standard of the Republic of Korea.svg|25px|대한민국 대통령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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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관계 ==
== 가족 관계 ==
* 아버지 : 문용형 ([[1920년]] ~ [[1978년]])
* 아버지 : 문용형 (1920년 ~ 1978년)
* 어머니 : 강한옥 ([[1928년]] ~ )
* 어머니 : 강한옥 (1928년 ~ )
** 누나 : 문재월 ([[1949년]] ~ )
** 누나 : 문재월 (1949년 ~ )
** 배우자 : 김정숙 ([[1954년]] ~ )
** 배우자 : [[김정숙 (1954년)|김정숙]] (1954년 ~ )
*** 아들 : 문준용 ([[1982년]] ~ )
*** 아들 : 문준용 (1982년 ~ )
*** 딸 : 문다혜 ([[1983년]] ~ )
*** 딸 : 문다혜 (1983년 ~ )
** 여동생 : 문재성 ([[1955년]] ~ )
** 여동생 : 문재성 (1955년 ~ )
** 여동생 : 문재실 ([[1957년]] ~ )
** 여동생 : 문재실 (1957년 ~ )
** 남동생 : 문재익 ([[1959년]] ~ )
** 남동생 : 문재익 (1959년 ~ )

== 출연 ==
=== 다큐멘터리 ===
* 《[[노무현입니다]]》(2017)

== 수상 ==
* 1983년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상
* 2014년 제16회 백봉신사상
* 2015년 제17회 백봉신사상
* 2017년 대서양협의회 세계시민상


== 문재인을 연기한 배우들 ==
== 문재인을 연기한 배우들 ==

=== 영화 ===
* [[변호인 (영화)|변호인]] - [[차광수]]{박병호 役}

=== 예능 ===
=== 예능 ===
* [[SNL 코리아]]([[tvN]]) - [[김민교 (배우)|김민교]]
* [[SNL 코리아]]([[tvN]]) - [[김민교 (배우)|김민교]]


== 같이 보기 ==
== 같이 보기 ==
* [[문재인 정부]]
* [[더불어민주당]]
*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 [[새정치민주연합]]
* [[노무현]]
* [[노무현]]
* [[참여정부]]
* [[노무현 정부]]
* [[민주통합당]]
*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더불어민주당]]


== 각주 ==
== 각주 ==
<div class="각주" style="height: 350px; overflow: auto; padding: 1px" >
{{각주|3}}
{{각주|3|refs=<ref name=":1">{{뉴스 인용|저자1=김디모데|저자2=나병현|제목=[Who Is ?] 문재인 19대 대통령|url=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804|뉴스=비즈니스포스트|날짜=2017-05-09|확인날짜=2017-05-2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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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 고리 ==
==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Moon Jae-in}}
* [http://www.moonjaein.com 문재인 홈페이지]
{{위키인용집}}
* {{공식 웹사이트|http://www.president.go.kr|청와대}}
* {{공식 웹사이트|http://www.moonjaein.com}}
* {{트위터|moonriver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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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knowhow.or.kr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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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9일 (금) 21:32 판

문재인
대한민국제19대 대통령
임기 2017년 5월 10일~
국무총리 이낙연 (2017년 ~ )
전임: 박근혜(제18대)

신상정보
출생일 1953년 1월 24일(1953-01-24)(71세)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거주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청와대
국적 대한민국
학력 경희대학교 법학 학사
정당 더불어민주당
부모 아버지 문용형, 어머니 강한옥
배우자 김정숙
자녀 1남 1녀
종교 천주교[1]
별명 이니, 달님, 문프, 명왕
서명
웹사이트 http://www.president.go.kr/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국군
복무기간 1975년 8월 - 1978년
소속 대한민국 육군
최종계급 병장(兵長)
근무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참전 한반도 분쟁

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이다. 본관은 남평(南平)이다.[2]

경희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가 1975년 서대문구치소에 투옥됐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에는 바로 군에 강제징집 됐다. 특전사 제대 후 복학해 다시 학생운동을 이끌며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1980년 청량리구치소에 투옥됐으나, 옥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극적으로 풀려났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최우수 성적[3]으로 수료했으나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거부되자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2003년참여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했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 산맥으로 트래킹을 떠났으나, 도중에 노무현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4]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이후 정계입문 제의를 받아 사의를 표해왔으나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동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2월 8일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선출되었고, 2016년 1월까지 새로 개편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제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다녔다. 2016년 11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5]

2017년 3월 10일,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대권에 재도전하였고, 이재명, 최성, 안희정과 겨루어 전체 표수의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 없이 2017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승리하여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 후보가 되었다.[6] 2017년 5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41.1%를 득표하여 24%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7], 대통령이 파면되어 치러진 궐위선거이기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인 결정 시간인 2017년 5월 10일 8시 9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바로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했다.[8]

생애

유년 시절

문재인은 1953년 1월 24일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 694-1번지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9]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남평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23일흥남 철수 작전 무렵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가족과 함께 몸을 싣고 남쪽으로 겨우 피난해 내려왔다.[10][11] 아버지는 거제에 정착한 후 공무원 경력을 제시하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나,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계란 행상을 해야만 했다. 문재인의 가족은 거제도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문재인이 태어날 때에도 셋방을 살던 주인집에 임산부가 있다는 이유로, 산모가 진통 중에 이웃 집에 옮겨가 출산을 해야할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했으며, 이에 문재인의 생가는 실제 그가 살던 집이 아니었다. 결국 문재인의 부모는 자녀들의 교육을 생각해 부산으로 이사했으며, 문재인의 서류상의 본적은 부산 영선동으로 되어 있다. 문재인은 남항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난 때문에 학교 바로 위의 '신선성당'에서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서 정기적으로 배급을 타먹어야 했다. 배급을 받으러 온 문재인에게 수녀들이 귀엽다며 자주 사탕과 과일을 쥐어주었기 때문에 문재인에게는 수녀들의 모습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로 감화가 되어 그는 천주교에 입교하고 세례를 받았다.

학창 시절

1965년남항국민학교를 졸업한 문재인은 당시 명문이던 경남중학교에 입학했고,[12] 1968년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당시 '한강 이남 최고의 명문고'라 불리던 경남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했다.[13] 고교 시절 초기에는 학내에서 '문과에 문재인, 이과에 승효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말기에는 극도로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낙망, 술·담배에도 손을 대며 방황을 하다 결국 대학 입시에 실패하였다.[14] 문재인은 졸업 후 1971년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도 일등을 하며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다.[15] 이후 경희대학교 설립자이자 당시 경희대 총장이었던 조영식이 문재인에게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경희대 입학을 권유하였고, 문재인은 그 권유를 받아들여 재수 후, 1972년 경희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16]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 시절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예비 검속에 걸린 총학생회장을 대신해 집회를 주도하다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되어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그 해 6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대학에서도 제적당했다.

군복무

출소 후 신체검사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군에 징집된 문재인은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하였고 대한민국 39향토보병사단 신병훈련소를 거쳐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대대본부 작전과에서 복무했다. 특전사 부대 내에서 주어진 주특기는 화기, 의무, 통신, 폭파 등이었으며, 실제 필요시 낙하산을 타고 적진에 침투하여 게릴라 전등을 수행하기 위한 공수 특수 훈련을 여러 차례 수행하였다. 문재인은 특수 훈련에서의 우수한 평가 결과로 인해 특전사 복무 중 당시 특전사령관 정병주와 공수여단장 전두환으로부터 두 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17] 특전사 전역 후에는 경희대학교에 복학해 1980년 복학생 대표로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다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하루 전에 시행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시행 당일 밤 형사 5~6명에 권총이 겨누어진 채로 긴급 체포되었고 바로 청량리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경희대학교 조영식 총장의 신원 보증 아래 제22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에 극적으로 석방될 수 있었다.

사회 생활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후, 문재인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동기였던 박원순, 고승덕, 조영래 등 걸출한 인재들 사이에서도 일등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사법연수원 시험성적이 수석[18]이었고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도 수상했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성적이 차석으로 밀리고[18] 원하던 판사는 물론 아무런 임용도 되지 않았다. 당시 사법연수원에서 12등이었던 고승덕이 판사로, 상위권이 아니었던 박원순도 검사로 임용되었기 때문에 불합리한 처사였다.

이후 문재인은 대형 로펌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19]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19] 그곳에서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오랫동안 인권변호사 생활을 했다. 또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다.[20]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하여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부산변호사협회 인권 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 변호사로 일했으며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그는 1996년 8월 발생한 페스카마호 사건에서 조선족 선원들의 변호를 맡았다.[21] 한겨레신문 설립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문재인은 무료로 변론하게 되면 자칫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이 재판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료 변론은 하지 않았는데, 경상대학교 교수들이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저서를 강의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5년 간 변론을 맡아 항소심에서 승소했을 때 고작 1백만∼2백만원대의 수임료를 받기도 했다.[출처 필요]

1988년에는 김영삼으로부터 노무현, 김광일과 함께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문재인은 3명 중 유일하게 정치입문을 거절했으며[22], 정계입문을 결심한 노무현과 김광일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변호사 활동을 하며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특히 2002년 대한민국 제3회 지방 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몇 차례 부산광역시장 출마를 권유했음에도 '나는 참모용'이라며 '더 나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고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문재인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녹내장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 도중[23]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영자 신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렸으며[24],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19]

청와대 안에서 이정호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이호철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등과 함께 PK인맥을 대표했는데, '왕수석'으로 불리며 한나라당으로 부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는 비난을 받으며 2인자로 주목받기도 했다.[25] 비서실장 시절 이해찬 국무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하기도 했으며[26],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27] 또한 참여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문재인과 이호철 비서관의 경남고등학교 동문은 한 명도 없었는데, 두 사람은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또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 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28]

2006년 11월 6일 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을 보궐할 때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으며[29],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재인에 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했다.[30]

정치 활동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 봉하마을 봉화산에서
경희대학교에서 연설하는 문재인(201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장례 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았으며, 이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19]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 특전사 출신,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 등 이력으로 인하여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 중 지지율이 높은데, 2011년 8월 언론사 여론 조사에서 '당신이 원하는 국회의원' 부문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31], 2012년 4월 11일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통합당의 대선 예비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다가 6월 초, 출마를 결정하게 된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2012년 6월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보통 사람이 중심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32]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 캠프명은 "담쟁이 캠프"로 정해졌다. 이후, 8월 25일부터 9월 16일까지 열린 국민참여경선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18일 2기 지도부 총사퇴에 의해 민주통합당의 대표권한대행이 되었다.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른 안철수단일화를 추진하였지만,[33] 단일화 과정을 둘러싼 문제로 11월 23일 안철수가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34][35] 진보정의당심상정 대선 후보도 후보 등록을 앞두고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또, 상도동계김현철, 김덕룡, 문정수의 지지를 받았으며, 대선후보급인 문국현, 박찬종의 지지를 받았다. 또, 보수인사로 알려졌던 윤여준의 찬조연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36] 그밖에 김영삼의 측근으로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폭로한 것으로 유명한 강삼재 또한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다.[37]

문재인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에 기초해 대북 포용 정책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TV토론회 등에서 "대북정책을 남북 간 화해를 열어 새 비전과 성장동력을 찾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기존 남북합의서, 6·15 공동선언 등을 이행하고, 개성공단과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등을 재개하겠다"고 피력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 평화체제 구축, 북핵 문제를 함께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동시 행동' 원칙에 따라 비핵화 진전과 함께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의지였다. '선북핵문제 해결, 남북교류 재개'를 주장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와는 차이를 보였다.[38] 그는 "새누리당과 박 후보처럼 전제조건을 달면 안 된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전제조건을 다는 동안 북핵 문제가 더욱 악화한 만큼 남북 관계의 발전과 북핵 해결을 병행해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전면에 내세워 남북문제 해결에 속도는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봉쇄 정책인 5`24 조치를 조건 없이 해제하고 남북경협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인프라개발기구'(KIDO)를 세워 북한 내 산업기반 시설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38] 금강산 관광 재개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금강산 관광객 신변 안전 문제와 관련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약속한 내용을 공식 사과로 받아들이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속한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다소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놨다. 그는 "미국이나 중국 정상과도 충분히 조율해야겠지만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곧바로 북쪽에 특사를 보내 제 취임식부터 초청하고 가능하다면 임기 첫해에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38] 그는 외교정책과 관련,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관련국가들과 한반도 문제를 함께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한`중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있고 일본과 관련해선 과거사 문제를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한`미 FTA와 관련해 독소조항은 반드시 재협상한다는 입장이었다. 'FTA 무역이득공유제'를 검토해 농민들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38]

이후 12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와 함께 토론에 참석했다. 문재인 측은 국가정보원에서 자신을 비방하는 여론조작을 벌인다고 12월 11일 공개하였다. 문재인 측은 그런 활동을 벌인 직원중 한명을 지목했다. 3차 TV 토론이 끝난 12월 16일 오후 11시 서울지방경찰청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는데, 이러한 경찰의 발표는 뒤에 허위로 밝혀졌다. 이후 2012년 12월 19일 선거에서 탈락 후보 사상 최다이자,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들 중 두 번째로 많은 14,692,632표(48.0%)를 득표했지만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약 100만 표 차이로 패배하였다.[19] 다음날 문재인은 패배를 승복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39]

대선 패배 이후

파일:Sim Sangjung and Moon Jaein in 2015.jpg
2015년 7월 정의당 대표 심상정과 악수를 나누는 문재인
2015년 석가탄신일 기념행사에 참석한 문재인(왼쪽), 김무성(가운데), 천호선(오른쪽)

2013년 4월 9일 발표된 민주통합당의 대선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패배의 주원인은 캐릭터 정립 실패로 국민들에게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또한, 설문조사 결과 당내에서 4번째로[40] 패배의 책임이 크다고 평가되었다.[41]

그러나, 오랫동안 칩거하던 기존의 대선 패배 후보들과는 달리 빠르게 정계에 복귀하며 패배책임을 지고 물러나 있어야하지 않냐는 논란이 일었다.[42]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도식을 기점으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현안에 대한 입장도 자주 밝히며 대선 재도전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43][44]

2014년 3월 새로 창당된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과 손학규를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45][46] 29일 경남도지사 후보 김경수구동태 목사를 방문한 뒤 "신당이 영남지역에서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며, "정당공천제 폐지가 통합의 고리"라는 입장을 보였다.[47] 4월 18일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사망자 수가 늘어난 것에 대하여 "왜이렇게도 무기력하냐"며 "우리의 수준이 부끄럽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48]

6월 15일 새 총리 후보로 문창극이 지명되자 "국민도 불행하고 박근혜 정부에도 불행한 길"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49] 이튿날 본인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강행은 통합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반쪽 정부를 고집하고 오히려 폭을 더 좁히는, 거꾸로 가는 길입니다. 국민도 불행하고 박근혜 정부에도 불행한 길입니다. … 세월호 이후 이제는 제발 국민통합의 길로 가달라는 민심을 외면하면 안됩니다.

— 문재인[50]

17일 "사회적 가치 기본법"을 발의했다.[51] 이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이윤과 효율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인권, 노동권, 안전, 생태, 사회적 약자 배려, 양질의 일자리, 상생 협력 등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51] 또한 대통령 직속의 "사회적 가치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또한 포함하고 있다.[51] 10월 27일에는 신해철의 쾌유를 기원하기도 했다.[52]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이 헌재 판결로 해산되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으며,[53][54] "민주주의가 상처를 입었다"고 비판했다.[53][54] 그러면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는 다름을 포용하는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55] 한편 이 무렵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15.8%가 "다음에는 문재인을 찍겠다"는 반응을 보였다.[56]

당대표 재임 시절

파일:Kim Moosung and Moon Jaein in 2015.jpg
김무성과 함께한 문재인 (2015년)

2014년 12월 29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57] 그는 당 대표가 되면 2016년에 치러질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며, 출마 선언 이후 약 5개월 만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제치고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탈환하였다.[58] 이후 2015년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제1차 전당대회에서 41.8%를 얻은 박지원 후보를 앞선 45.3%를 얻으며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당선되었으며,[59]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개편된 후에도 계속 대표를 지냈다.

4월 6일 "국회의원 정수가 부족하다"며, "국민에게는 그렇게 인식되지 않고 있지만, OECD(경제 협력 개발 기구)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인구수 대비 의원 비율이) 낮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60] 새정치민주연합 내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었으나,[60] 안철수는 이러한 문재인의 주장을 비판했으며,[61] 새누리당은 그를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61] 같은날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의 증인으로 서겠다고 밝혔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합류를 요구했으나,[62] 새누리당은 이를 "정치 공세"라고 비난했다.[63]

5월 말부터 메르스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6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의 메르스 대처에 대해 "정부의 대응을 보면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무능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64]

연말이 다가오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분열조짐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고, 이 무렵 안철수를 필두로 한 "신당 창당설"이 제기되었다.[65] 하지만 문재인은 이에 대해 그런 일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당의 혁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65] 그러나 이후 분열조짐을 보이더니, 결국 12월 13일 안철수의 탈당을 필두로 당은 분열되고 만다.[66] 문재인은 이를 두고 "정말 정치가 싫은 날"이라고 한탄했으나, "아무리 파도가 높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총선승리에 이르는 새정치연합의 항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포기하지는 않을것임을 선언했다.[66] 하지만 당내의 비판이 계속되는 가운데, 27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원 67명이 문재인에게 "총선에서 공천 권한 일체를 선거대책위원회에 위임할 것"을 요구했다.[67] 다음날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개명했는데,[68] 이는 안철수계의 흔적을 지우는 행보라는 평을 받는다.[69]

2016년 1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사퇴한다고 밝혔으며,[70][71] 이에 김종인은 "그러리라 믿어요",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70]

당 상임고문 시절

문재인과 김종인 외 당내 최고위원

3월 19일 차기 정권교체를 위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72] 그는 "불출마선언을 하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배재정이라는 훌륭한 사람을 사상의 차기 국회의원으로 예약해놓고 떠난다는 것"이라며 "배재정을 국회로 보내주시면 제가 함께 사상을 책임지고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72]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행사에 참여했다.[73] 27일 안동을 방문했고,[74] 7월 25일 울릉도에 이어 독도를 방문했다.[75][76] 이를 두고 "오래전부터 한·일 역사 문제의 상징인 독도 방문을 추진해 왔다"며, "이번 방문은 8·15 광복절을 앞두고 영토 주권을 확고히 하자는 목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76] 이번 독도 방문에는 최낙정 전 해양수상부 장관이 동행했다.[76] 안동 방문에 대해서는 TK 민심을 잡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77] 8월 6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모행사에 참여했다.[78]

2016년 10월 말부터 최순실 게이트가 알려지면서 박근혜 정권을 향한 민심이 폭발했고, 이때 문재인은 박근혜 정부에 거국중립내각을 요청했다.[79] 안철수 등 일부 야권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나왔으나, 별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 무렵 문재인은 사실상의 실권자로 떠올랐다.[80]

집회에서 표창원과 연설하는 문재인 (2016년)

11월 26일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하여 "200만 촛불이 세상을 바꾸는 횃불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내려오든 탄핵으로 끌려 내려오든 박 대통령 퇴진은 시간 문제",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한시라도 빨리 스스로 내려오는 것이 국민들을 덜 고생시키고 국정 공백과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박근혜의 하야를 촉구했다.[81] 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최순실 일가의 대통령이었다. 돌이켜보면 2012년 12월부터 오늘까지 지난 4년 동안 대한민국에 대통령은 없었다"라며 박근혜 정부를 규탄했다.[82] 3일 후에는 "국회는 흔들림 없이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 우리당과 저는 퇴진운동과 탄핵추진을 흔들림 없이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83] 이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국민이 이겼다"고 주장했으나, 그러면서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덧붙였다.[84] 이 무렵부터 문재인은 지지율 1위로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성장했다.[85]

2017년 3월 10일 박근혜는 드디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최종 파면되었고,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이 굳어지는 등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로 굳어졌다.[86] 그러나 이에 기타 야당들의 반문연대 논의가 진행되면서 다소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87]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19대 대선 포스터

2017년 3월 24일 동영상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이제 정권교체의 첫발을 내딛는다"라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88] 상도동계김현철, 김덕룡, 문정수, 박종웅의 지지를 받았으며,[89][90][91][92][93] 그의 캠프 자문그룹 출범식에는 장·차관급 인사 49명이 참석했다.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네이버 미디어서비스 실장(미디어 담당 이사),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윤영찬 네이버 부사장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담당본부장으로 영입했고, 주요 여성계 인사인 남인순 의원을 여성본부장으로 영입했다.

당내 경선은 이재명, 최성, 문재인, 안희정의 4자 구도 대결이 확정되었다. 3월 22일에는 전국 동시투표소 투표를 진행하였고, 3월 25일 호남 지역을 시작으로 각 지역별 ARS 투표와 순회투표를 차례로 진행하였다.[94] 4월 3일 수도권 지역 경선에서 문재인은 60.4%를 득표하며 1위에 오르는 동시에, 전 지역에서 1위 압승을 거두면서 과반 이상 득표로 인해 최종결선 투표 없이 곧바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95] 경선 승리 후 "오늘 우리에게 승자와 패자는 없다. 승자가 있다면 그건 바로 촛불을 밝힌 국민들"이라며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국민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하는 동시에 "세 동지가 저의 영원한 정치적 동지로 남기를 소망한다"며 "그 동안 어느 캠프에 있었든, 누구를 지지했든,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다"라고 강조하며 세 후보 지지세력 결집에 나섰다.[96]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며 "남녀 동수 내각"을 공약했으며, "준조세 금지법을 만들어 기업을 중앙 정부 권력의 횡포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97] 또한 "개성공단 확장"을 추가적으로 공약했고,[98] 아울러 댓글공작, 정치개입 등으로 논란이 된 국가정보원을 개혁하겠다고 나섰다.[99] 이 외에도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100] "광화문 대통령 시대"[101] 등을 공약했다. 안보에 있어서는 "6자 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양자·다지회담을 적극 활용해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으며,[102] 이 외에도 북핵에 관해서는 이에 대응할 우리 군의 핵심전력을 조기에 전력화하겠다고 약속했다.[103]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함께 4월 23일, 4월 28일, 5월 2일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토론에 참석했다. 유례없는 5인 구도로 이루어진 토론을 거치면서 여러 분야에서 서로 간의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이후 5월 9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41.1%를 득표해 24%를 득표한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104] 이미 이어져온 1강 구도를 통해 개표 초반부터 사실상 당선이 확정되었으며,[105] "함께 경쟁한 후보들에도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그 분들과도 함께 손잡고 미래를 위해 같이 전진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104] 궐위선거인 관계로 별다른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취임했다.

대통령 재임시

취임식

파일:Inauguration of Moon Jae-in 05.png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문재인
국민의당을 방문한 문재인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국회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은 취임 선서로만 진행되었는데 이는 19대 대선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여서 공식 취임식을 치를 여유가 없었기에 취임 행사를 간소화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이유이다. 취임선서식은 입장부터 퇴장까지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었다.

취임 선서가 끝난 후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시민들을 만났고, 청와대로 떠나면서도 거리에 나온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청와대 경호실도 시민들의 접근을 과하게 제지하지 않으며, 새 대통령과 시민들의 첫 만남을 배려했다.[106]

국정 방향

문재인은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취임 첫날 야4당을 방문하여 협조를 부탁하였다.[107]

문재인 정부의 국정 방향은 '탕평'과 '협치', '개혁'과 '변화', '대화'와 '소통', '능력'과 '전문성'으로 대표된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전라남도지사이낙연을 지명했으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는 임종석을 지명했다. 둘은 친문 색채가 옅은 사람으로 문재인이 이들을 지명한 것과 관련하여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다. 국정원장으로는 서훈이, 청와대 경호실장으로는 주영훈이 내정되었다.[108]

외교 정책

미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을 2017년 6월 30일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맞이하고 있다.

2017년 6월 1일, 미국 상원에서 국방 예산을 담당하는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더빈 의원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이) 사드 배치를 원치 않으면 (미국정부가) 사드 배치 관련 예산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109][110]

2017년 6월 29일(미국 동부시간), 문재인 대통령은 워싱턴D.C. 미국 의회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하원 지도부와 가진 간담회에서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에 기초한 합의이고 한국 국민과 주한미군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111][112]

중국

2017년 5월 10일,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의 당선에 축전을 보내며 "한국이 그러하듯 중국도 아주 어렵게 이뤄낸 양국관계 성과를 유지하고 보호하길 희망한다",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정치적 신뢰를 견고히 하며 차이점을 적절하게 처리하고, 양국관계의 개선 및 안정적인 발전을 추진해 가겠다"라고 밝혔다.[113] 한중관계에 있어 사드 배치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데, 관영언론 환추 시보는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보수정권의 가장 큰 실수"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가 사드 배치 문제로 발생된 충격과 긴장된 한·중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113]

2017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배치 여부를 결정하는 건 한국주권적 사안이라며 중국이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114][115]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한·일 양국은 전략적인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관계"라며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손을 맞잡고 미래 지행의 한일관계를 폭넓은 분야에서 발전시켜가고 싶다"고 밝혔다.[113]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안부 관련 합의는 재교섭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113]

북한

문재인은 북한에 대한 전략으로 장기적인 통일로 이끄는 정책을 언급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UN 경제 제재와 병행하여 대화를 통해서, 평화 협정과 북한 핵 미사일 개발 중단을 교환하는 방식을 제안 하였다. [116]

북한사드 배치를 비난하며 "미국사드를 제 땅으로 끌어가라"고 주장했고 "남조선 당국이 '사드배치가 북핵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과 공동으로 결정한 것이며 전임정부의 결정이지만 정권이 교체됐다고 해서 그 결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고 떠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117][118]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시사했으며, 여건이 된다면 평양도 갈 것이라고 밝혔다.[119] 북한은 "남조선 당국이 정녕 촛불 민심을 대변하는 정권이라면 미국 상전의 강요를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제정신을 차리고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남조선 각계의 민심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 처사일 것"이라고 밝혔다.[120]

경제 정책

집권하자마자 증세론, 일자리 창출 공약, 복지 공약, 탈원전 정책 등이 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121]

문재인 정부의 목표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이며, 저출산·고령화, 빈곤, 보육, 교육, 의료 분야에서 복지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121] 한편으로는 취임하자마자 10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다.[121]

부동산 정책으로는 서민을 위한 주거복지와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초점을 두고 있다.[122] "매년 17만 가구씩 5년간 총 85만 가구의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이다.[122]

취임 1년차 (2017년 5월 10일 ~ 2018년 5월 9일)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궐위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라 갑작스럽게 취임하는 바람에 내각은 박근혜 정부의 구성인 채로 유지됐으나[123] 다들 사임 의사를 밝혔고, 바로 다음날 황교안 국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사표가 수리되었다.[124] 또한 박근혜 정권 시기 논란이 되었던 국정교과서에 대한 폐지를 지시하였고, 아울러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중단되어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제창 또한 지시하였다.[125]

위기

1기 내각에 지명한 장관 및 후보자의 절반 이상이 대통령 공약이었던 고위공직자 불가 5대 비리 의혹이 있는 등 인사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지자,[126] 이에 반발하는 야당들의 국회 보이콧으로 인해 국회가 장기간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127][128] 인사 파동 과정에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가 각종 결격 사유로 인한 논란으로 자진사퇴 하였다.[129][130]

외부 동영상
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JTBC

8월 17일 취임 100일 기념하여 기자 회견을 열었으며, 사전 각본 없이 진행되었다.[131]

엎친데 덮친격으로, 북한의 핵실험까지 겹치면서 지지율이 추가적으로 하락하였다.[132]

평가

긍정적 평가

비지니스포스트는 ‘합리적이고 중심이 잘 잡혀있어 안정된 성품을 지녔다 ’고 평가하였다.[19]

부정적 평가

대통령 당선 전 문재인의 재산신고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되었고 그에 대한 반박이 있는 등 정치적으로 공방이 있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 아들 문준용의 고용정보원 채용 과정에서 여러 가지 특혜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대북관에 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과 그를 옹호하는 대한민국 내 세력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잦은 논란을 빚었다. 그러한 대북 정책을 관철하거나 주장하는 과정에서 간혹 국제적 외교 문제나 법적 문제 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학력

경력

저서

단독 저서
  • 《문재인의 운명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30년 동지 문재인, 두사람의 운명 같은 동행)》. 가교. 2011년 6월 15일. ISBN 978-89-7777-188-8. 
  • 《문재인의 운명 (2017년 제19대 대통령 당선 기념 특별판)》. 북팔. 2017년 5월 16일. ISBN 979-11-6156-587-3. 
  •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의 힘)》. 퍼플카우. 2012년 8월 6일. ISBN 978-89-97838-02-8. 
  • 《문재인이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리더스북. 2012년 8월 8일. ISBN 978-89-01-14936-3. 
  • 《1219 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 2013년 12월 10일. ISBN 978-89-5561-690-3. 
  •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21세기북스. 2017년 1월 20일. ISBN 978-89-509-6884-7. 
공저
  •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오마이북. 2010년 5월 13일. ISBN 978-89-964305-0-6. 
  • 《그 남자 문재인 (함께 만드는 세상)》. 리얼텍스트. 2012년 9월 17일. ISBN 978-89-964898-2-5. 
  •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오월의봄. 2011년 11월 23일. ISBN 978-89-966875-2-8. 
  • 《만화 문재인》. 마이디팟. 2012년 10월 3일. ISBN 978-89-6733-174-0. 
  • 《운명에서 희망으로 (문재인이 말하고, 심리학자 이나미가 분석하다)》. 다산북스. 2017년 3월 23일. ISBN 979-11-306-1171-6. 

관련 서적

  • 《문재인 스타일 (안철수와 박원순의 아름다운 합의를 이끌어 낸 문재인식 리더십)》. 미르북스. 2011년 10월 17일. ISBN 978-89-97213-03-0. 
  • 《정치심리극장》. 리더스북. 2012년 9월 24일. ISBN 978-89-01-15081-9. 
  • 《문재인이 이긴다》. 리얼텍스트. 2012년 11월 20일. ISBN 978-89-964896-3-4. 
  • 《문재인 스토리 (그 남자, 문재인에 대해 알고 싶은 56가지 이야기)》. 모악. 2017년 2월 15일. ISBN 979-11-88071-00-5. 
  • 《그래요 문재인 (위기와 희망의 길목에서 문재인을 말하다)》. 은행나무. 2017년 4월 20일. ISBN 978-89-5660-141-0. 
  • 《좋아요 문재인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문재인의 아름다운 발걸음)》. 북로그컴퍼니. 2017년 8월 22일. ISBN 979-11-87292-71-5.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9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사상구) 19대 민주통합당 파일:민50.png 55.04% 65,336표 1위 사상구 국회의원 당선
제18대 대선 대통령 18대 민주통합당 파일:민10.png파일:민03.png 48.02% 14,692,632표 2위 낙선
제19대 대선 대통령 19대 더불어민주당 41.08% 13,423,800표 1위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

가족 관계

  • 아버지 : 문용형 (1920년 ~ 1978년)
  • 어머니 : 강한옥 (1928년 ~ )
    • 누나 : 문재월 (1949년 ~ )
    • 배우자 : 김정숙 (1954년 ~ )
      • 아들 : 문준용 (1982년 ~ )
      • 딸 : 문다혜 (1983년 ~ )
    • 여동생 : 문재성 (1955년 ~ )
    • 여동생 : 문재실 (1957년 ~ )
    • 남동생 : 문재익 (1959년 ~ )

출연

다큐멘터리

수상

  • 1983년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상
  • 2014년 제16회 백봉신사상
  • 2015년 제17회 백봉신사상
  • 2017년 대서양협의회 세계시민상

문재인을 연기한 배우들

영화

예능

같이 보기

각주

  1. “천주교 신자 文 대통령 관저서 축복식…세례명은?”. 《매일경제》. 2017년 5월 15일. 2017년 6월 15일에 확인함. 문 대통령의 세례명은 디모테오, 김 여사의 세례명은 골롬바이다. 디모테오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자', 골롬바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뜻한다. 
  2. '문재인과 남평문씨'…나주 곳곳에 남평문씨 흔적”. 《연합뉴스》. 2017년 5월 10일. 
  3. 최영해 (2003년 1월 23일). “민정수석 내정 문재인씨,82년 盧와 변호사동업 20년 친구”. 《동아일보》. 2003년 1월 23일에 확인함. 
  4. 이태명 기자 (2004년 3월 22일). “康법무 '탄핵 변론' 논의 파문 ‥ 문재인 前수석 만나”. 한국경제. 2015년 1월 24일에 확인함. 
  5. 김정남 (2016년 11월 28일). “문재인 "탄핵 반드시 될 것이라 확신". 《노컷뉴스》. 2017년 5월 18일에 확인함. 
  6. 이상헌 기자 (2017년 4월 3일).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로 대권 재도전…경선 득표율 57%(종합)”. 연합뉴스. 2017년 4월 3일에 확인함. 
  7. 류정민 (2017년 5월 10일). “19대 대선 개표완료, 文 41.1%…역대 최다표차 승리(속보)”. 《뉴스1》. 2017년 5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5월 20일에 확인함. 
  8. 염혜원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첫 행보...약식 취임식으로 5년 임기 시작”. 《YTN》. 2017년 5월 20일에 확인함. 
  9.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 주요 약력”. 《매일신문》. 2017년 5월 9일. 2017년 5월 20일에 확인함. 
  10. 김진우 (2012년 12월 4일). “대선 후보 인물탐구 가족 이야기 문재인”. 경향신문. 2012년 12월 4일에 확인함. 
  11. 이상우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은 누구인가]인권변호사에서 '새로운 대한민국 리더'로”. 《인천일보》. 2017년 5월 20일에 확인함. 
  12. “‘1년 선후배’ 김무성-문재인, 경남중 동창회서 나란히”. 《한겨레》. 
  13. “[뉴 파워엘리트 50인]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 문재인·김무성과 경남고 동문… 심상정과도 ‘친분’”. 《이투데이》. 
  14. 서상현 기자 (2012년 9월 16일). “문재인, 1등 하면서도 별명이 문제아 두 번째 경남고 대통령 동기들 들썩”. 중앙SUNDAY. 2012년 9월 16일에 확인함. 
  15. 손병호 기자 (2012년 9월 20일). “문재인과 감나무”. 국민일보. 2012년 9월 20일에 확인함. 
  16. 김명일 기자 (2012년 8월 3일). “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학력 학창시절”. 일요시사. 2012년 8월 3일에 확인함. 
  17. 특전사 및 표창장 기사문
  18. 최영해 기자 (2003년 1월 23일). “민정수석 내정 문재인씨,82년 盧와 변호사동업 20년 친구”. 동아일보. 2003년 1월 23일에 확인함. 
  19. 김디모데; 나병현 (2017년 5월 9일). “[Who Is ?] 문재인 19대 대통령”. 《비즈니스포스트》. 2017년 5월 20일에 확인함. 
  20. 박형남 기자 (2009년 5월 25일). “영원한 비서실장 문재인 항상 盧곁에서 이제는 홀로”. 스포츠서울닷컴.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1. 배성재 기자 (2011년 10월 15일). "선상폭력이 빚은 조선족의 우발적 범행… '운명' 처럼 변호 맡았다". 한국일보. 2012년 12월 1일에 확인함. 
  22. 김대영 기자 (2012년 9월 26일). “문재인, 노무현과 동시에 국회입성할 뻔”. 매일경제. 2012년 9월 26일에 확인함. 
  23. 김범현 기자 (2004년 2월 28일). “문재인 전 민정수석, 네팔로 여행 떠나”. 오마이뉴스.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4. 윤경민 기자 (2004년 3월 15일). “盧 대통령 변호인단 오늘 선임”. 연합뉴스.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5. 염영남 기자 (2003년 6월 11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실체적 권능의 2인자 행보로 구설수”. 주간한국.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6. 서양원 기자 (2007년 3월 9일). “문재인 비서실장, 직언 서슴지않는 대통령 복심”. 연합뉴스.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7. 남도영 기자 (2009년 5월 25일). “(노 前대통령 국민장) 위기마다 늘 곁에… 영원한 비서실장 문재인”. 국민일보 쿠키뉴스.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8. 박종렬 가천의과학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2011년 6월 23일). “(박종렬 교수의 제왕학) 문재인, 박근혜의 운명적 대항마인가?”. 스포츠서울닷컴.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9. 강봉석 기자 (2006년 11월 6일). “與, 국정자문위원회 대폭 확대”. 기호일보.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30. 이종탁 기자 (2010년 5월 17일). “(이종탁이 만난 사람)노무현 재단 상임이사 문재인 변호사”. 경향신문.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31. 류정민 기자 (2011년 8월 22일). “신동아 80주년 여론 조사, 문재인 1위 차지했다”. 미디어오늘.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32. 문재인 고문 대선 출마 선언...경선 열기 고조 YTN 2012년 6월 17일
  33. 야권 단일화 협상 개시 "국민 참여 단일화" vs. "박근혜 이기는 단일화" YTN 2012년 11월 13일
  34. 안철수 후보 전격 사퇴한 이유는? 조선일보 2012년 11월 23일
  35. 안철수 후보 사퇴 배경은?‥단일화 의견차 좁히지 못해 MBC 2012년 11월 24일
  36. 이혜미, 윤여준, 文 찬조연설, "반대 진영도 설득하는 사람", 헤럴드경제, 2012년 12월 12일
  37. 김성휘 (2012년 12월 14일). “강삼재 전 한나라당 부총재 文 지지선언”. 《머니투데이》. 2017년 5월 22일에 확인함. 
  38. 서상현; 유광준 (2012년 12월 11일). “[박근혜-문재인 대선공약 비교] 대북 정책, 안보·외교정책”. 매일신문. 2017년 5월 1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5월 13일에 확인함. 
  39. 김덕원 (2012년 12월 20일). “문재인 후보 “패배 승복”…야권 개편 불가피”. 《KBS》. 2017년 10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2월 30일에 확인함. 
  40. 1위는 한명숙, 2위는 이해찬, 3위는 박지원 순이다.
  41. 김지영 (2013년 5월 20일). "친노, 살아있네!" 대선평가 '문재인 책임' 삭제”. 《데일리안》. 
  42. 박석원, 박석원 (2013년 1월 3일). “문재인측 '너무 빠른 정치 복귀 아니냐' 당안팎 지적에…”. 《한국일보》. 
  43. 하어형 (2013년 5월 23일). '3대비전' 가다듬는 문재인…정치복귀 수순”. 《한겨레》. 
  44. 전창훈 (2013년 5월 20일). "5년 뒤엔 바꾸자"는 문재인, 대선 재도전?”. 《부산일보》. 
  4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5763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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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전임
박근혜
황교안
(권한대행)
2017년 5월 10일 ~ 후임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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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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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 2016년 1월 26일
후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추미애
전임
김한길·안철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제2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2015년 2월 8일 ~ 2015년 12월 28일
후임
(당명 변경)
전임
장제원
제19대 국회의원(부산 사상구)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후임
장제원
전임
이병완
제29대 대통령비서실장
2007년 3월 12일 ~ 2008년 2월 24일
후임
류우익
(대통령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