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월 김종필은 민주공화당의 사전 조직인 재건당을 창당 조직하였다. 이후 변호사 정구영 등의 학자와, 윤치영, 임영신 등 정치인들을 포섭하여 2월 26일 공화당을 창당 조직하였다.
민주공화당 창당 준비 작업 당시, 야권을 중심으로 군사 정부 세력이 창당하는 신당이 "사회노동당"이라는 이름의 좌익 신당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오는 일도 있었는데, 군사 정부 측은 "여당의 이름이 사회노동당으로 내정되었다는 일부 보도는 전혀 근거 없는 것"이고 사회주의 정당의 조직을 법으로 막지 않겠다고 하는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민정 이양 후 정치 체제로 보수 양당제가 성립되는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훗날 구 민주당 세력 등 보수 야권이 신민당으로 통합하며 현실화됐다.
초대 총재에는 정구영, 당 의장에는 김정렬이 선출되었으나, 8월 박정희가 철원비행장에서 예편하자 박정희를 총재 겸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 10월 27일의 5대 대선에서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여당으로 군림하였다. 이후로도 6대 대통령 선거와 7대 대통령 선거에 박정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키며 제3공화국 기간의 여당으로 활약하였다. 72년 10월 유신 선포 이후에는 박정희에 의해 친위조직이자 제2여당격인 유신정우회가 조직되어 별도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9년10월 26일 총재였던 대통령 박정희가 피살되자, 11월 26일 김종필을 임시 당수로 선출했다가 1980년 윤치영을 임시 당수로 선출했으나 정치활동금지법에 의해 1980년 10월 27일 해산되었다. 공화당은 당 재산을 민주정의당에 양도하기로 결정하였다. 구 민주공화당 인사 중 정치금지법에 묶이지 않거나 1981년에 풀린 일부는 1981년 1월 한국국민당을 창당하였다. 공화당계 정당은 1990년까지 존속했는데, 한국국민당은 이후 신민주공화당을 거쳐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에 소멸되어 사라졌다. 뒤에 국민당과 신민주공화당계열 인사 중심으로 1995년에 창당된 자유민주연합과 그 후신 정당들도 공화당계열 정당의 연장선으로 간주되곤 한다.
1969년 4월 7일 : 국회 본회의에서 신민당은 1. 문교행정의 실패 2. 사학 특감 및 68회 임시국회에서의 폭언을 이유로 권고병 문교부장관에 대한 해임권고건의안을 제출하였다.
1969년 4월 8일 : 재석 152명(공화당/100명, 신민당/41명, 정무회/11명) 찬성 89명, 반대 53명, 기권 3명으로 통과되었다.[9][10][11] 이에 당시 공화당 총재였던 박정희는 "1주일안에 이번 사건을 주동한 반당분자를 철저히 규명하여 그 숫자가 몇 십명이 되더라도 가차없이 처단하라."는 지시를 내린다.[12]
1969년 4월 15일 : 박총재의 지시사항에 따라 의원총회에서 양순직, 예춘호, 박종태, 정태성, 김달수의원을 제명하였다.[13]
1969년 7월 12일 : 당명불복한 중앙위원 11명, 지구당부위원장 4명을 포함한 93명을 제명하였다.[14]
4·8 항명이 발생된 근본적 이유는 개헌 논의에 대한 반대 의사로서 당 제명 조치 역시 그에 따른 숙당(肅黨)[15] 조치였다.
10월 9일 신민당 대통령 후보 윤보선은 안동 유세를 다녀왔다. 윤보선은 이 날 8천 청중 앞에서 "민주공화당은 공산당의 돈을 가지고 공산당 간첩이 와서 공산당 식으로 조직한 공산주의 정당'이라고 단언했다.[16] 그는 "북괴의 무역성 부상 황태성이가 20만 달러를 가지고 왔는데, 김종필씨가 조선호텔에 모셔다가 황태성이 안에 따라 서울에 밀봉교육처를 다섯 군데나 만들어놓고 공산당 식으로 점조직을 한 공화당이 어떻게 민주주의 정당이냐"하고 반문하면서, "공화당은 보수정당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당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17] 윤보선의 안동 발언은 막바지에 이른 선거 정국을 바짝 긴장시켰다.[17]
↑Kohli, A. (2004). State-Directed Development: Political Power and Industrialization in the Global Peripher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92.
↑Kwak, Ki-Sung (2012), Media and Democratic Transition in South Korea, Routledge, p. 31
↑Kim, B. K. & Vogel, E. F. (eds.) (2011). The Park Chung Hee Era: The Transformation of South Korea. Harvard University Press. p. 125.
↑Kim, B. K. & Vogel, E. F. (eds.) (2011). The Park Chung Hee Era: The Transformation of South Korea. Harvard University Press. p. 125.
↑“보관된 사본”. 2015년 6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6월 7일에 확인함.
↑“보관된 사본”. 2015년 6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6월 7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