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승만이란 기치 아래 여러 집단들이 모인 정당이라 빅텐트적 성격이 있다보니 민주당의 창당 이후, 구 한국민주당, 민주국민당 출신 구파와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계 등 신파의 내부적 갈등이 지속되었다.
그래도 빅텐트답게 세력은 제법 커서 1956년 대선 후보 선출 전 곽상훈의 중개로, 대통령 후보에 신익희, 부통령 후보에 장면을 내세워 장면이 부통령에 당선되며 이원집정부제 성격의 연립정부 구성원이 되기도 한다. 다만 제3대 대통령 후보로 나선 신익희는 선거 직전 병으로 사망한다.
1960년4.19 혁명에 의해 이승만 정권이 퇴진하자 직후 실시한 1960년7월 29일의 총선에서 크게 승리하여,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국무총리를 선출하여 제2공화국의 여당이 되었다. 그러나, 구파와 신파간의 분당, 당내 분열 등으로 혼란을 겪다가, 1960년11월 일당독주는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구파 세력이 신민당을 창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1961년5월 발생한 5·16 군사정변 직후 군사정권에 의해서 해산되었다. 1963년 군정이 끝나가며 부활한 민주당은 당초 허정 전 국무총리가 창당을 추진하던 신정당에 합류하였으나, 지도부 구성 등에 관한 갈등 끝에 결국 신정당을 이탈하여 민주당으로 독자 발족하였다. 1965년 민주당은 민정당과 합당하여 민중당으로 재창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