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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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

1960.3 ←
1960년 8월 12일
→ 1963

재적 국회의원 수 263명

당선을 위해 176표 필요

투표율 98.5%
  Yun Bo-seon.jpg Kim Chang Sook.jpg
후보 윤보선 김창숙
정당 민주당 민주당
득표수 208 29
득표율 79.1% 11.0%

선거전 대통령

곽상훈(권한대행)
민주당

대통령 당선자

윤보선
민주당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1960년 8월 12일에 국회에서 민의원과 참의원들의 간접 선거로 치러졌다. 윤보선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 선거는 1960년 3월 15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가 무효화되고 치러진 선거였다.

경과[편집]

배경[편집]

4·19 혁명에 의해 대통령의 이승만이 이끌던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고 1960년 6월 15일 대한민국 제2공화국 헌법에 의하여 대통령제 권력구조는 내각제로 변경되어 대통령의 지위와 선거방법도 달라지게 되었다. 대통령은 양원합동회의에서 선거하고 재적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투표를 얻어야 하며, 1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없을 때에는 2차 투표를 행하고, 2차 투표에서도 당선자가 없을 때에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투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하도록 되었다.

참의원

민주당 내 신구파 갈등[편집]

당시 민주당 구파와 신파의 갈등은 날로 심화되고 있었다. 구파는 8월 4일 성명을 내고 분당 및 신당 창당을 선언했으며, 양 계파는 제5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 대회도 따로 여는 등, 사실상 다른 당 같이 행동하고 있었다.[1] 이때 구파는 중진 23명으로 구성된 23인 위원회, 신파는 13인 위원회가 각각 이끌고 있었다.

민주당 구파는 대통령과 총리를 둘 다 구파가 차지하는 계획을 세운 반면, 민주당 신파는 균형론을 내세워 대통령은 구파, 국무총리는 신파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신파에서 이런 안을 낸 것은 장면 외에 이렇다 할 대통령 및 총리 후보를 구하는데 실패한 탓도 있었으나, 구파와 화합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민주당 중도파 및 무소속 의원들의 지지를 얻었다. 또한 신파는 대통령 후보와 총리 후보를 의원총회 등 당의 공식 기구를 통해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의원 수가 열세였던 구파는 의원총회는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2]

곽상훈 민의원 의장 등 중도파는 8월 10일 구파 윤보선 의원과 신파 장면 의원을 불러 삼자 회담을 여는 등, 양 계파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두 계파는 합의를 보는 데 실패했다. 이로써 대통령 및 총리 선출은 결선 투표까지 예측될 만큼 박빙의 양 계파 간 표 대결이 점쳐졌으나, 이후 신파가 대통령으로 윤보선 의원 지지를 확정하며 적어도 대통령 선거만큼은 충돌을 피하게 됐다.[3]

구파에선 김도연 의원과 윤보선 의원이 대통령 혹은 총리 후보로 나섰고, 구파의 23인위는 두 후보를 두고 치열하게 논의한 결과, 8월 11일 저녁 윤보선 의원을 대통령, 김도연 의원을 국무총리로 지지하기로 만장일치 결의했다. 신파는 윤보선 의원을 대통령, 장면 의원을 국무총리로 지지하기로 11일 오전 13인위에서, 그리고 12일 아침 신파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곽상훈 민의원 의장을 비롯한 중도파 의원 12인도 11일 모여 신파의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 안을 지지하기로 결의했다.[4]

40여명의 무소속 민의원 의원들이 구성한 교섭단체인 민정구락부는 김병로, 변영태, 백낙준, 허정 등 제3인사 중 한 사람을 지지하는 것을 고려했으나, 11일 저녁과 12일 아침 연달아 열린 모임에서 장시간의 토론과 수차례의 표결 끝에 결국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자유 투표를 하게 됐다. 무소속 참의원 의원들의 모임인 삼우구락부는 민정구락부와 마찬가지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자유 투표 혹은 백지 투표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 와중에 순수 무소속 민의원 의원들은 김창숙을 대통령으로 지지하기로 합의했다.[5]

선거[편집]

1960년 8월 12일 참의원민의원 양원합동회의에서 윤보선은 1차 투표에서 208표로 무난히 당선되었다.[5] 이 날 투표에는 출석하지 않은 한근조, 서상일, 그리고 구속 수감 중이던 이재학, 최하영 등 4명의 의원을 제외한 거의 재적 의원 전원이 참여했다.[6]

한편 국무총리 선출에서는 윤보선에 의해 지명된 구파의 김도연에 대한 표결이 찬성 111표, 반대 112표, 기권 1표로 부결되고, 이어서 지명된 장면에 대한 표결은 찬성 117표, 반대 107표, 무효 1표로 동의를 얻어 장면 내각의 출범을 보게 되었다.

선거 결과[편집]

후보자 정당 득표수 득표율
윤보선 민주당 208 79.09%
김창숙 민주당 29 11.03%
백낙준 민주당 3 1.14%
변영태 민주당 3 1.14%
김도연 민주당 2 0.76%
허정 민주당 2 0.76%
김병로 민주당 1 0.38%
김시현 민주당 1 0.38%
나용균 민주당 1 0.38%
박순천 민주당 1 0.38%
유옥우 민주당 1 0.38%
이철승 민주당 1 0.38%
무효 6 2.28%
기권 4 1.52%
재적 의원수 263 100%
당선정족수 176 66.92%

뒷이야기[편집]

  • 대통령이 된 윤보선은 민주당 신파인 장면에 대한 반발심으로 다른 후보를 지명했으나 계속된 부결로 결국 장면을 지명했다. [출처 필요]

각주[편집]

  1. 강준만 (2004년 9월 23일).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1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인물과사상사. ISBN 9788988410981. 
  2.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19년 4월 5일에 확인함. 
  3.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19년 4월 5일에 확인함. 
  4.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19년 4월 5일에 확인함. 
  5.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19년 4월 5일에 확인함. 
  6.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19년 4월 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