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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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융(法融: 594~658)은 당나라 시대의 선승(禪僧)이며 우두선(牛頭禪)의 개조(開祖)이다.[1]

법융은 윤주(潤州)의 연릉(延陵: 장쑤성)에서 출생하였다.[1] 19세에 경사(經史)의 학문에 널리 정통하였으나 반야경을 읽은 후 그때까지 배운 유교도교의 학문에 회의를 느끼고 모산(矛山)에 들어갔다.[1] 여기에서 삼론경법사(三論炅法師)를 따라 출가하여 20년간 조용한 숲속에 묵좌(默座)하여 깨우침을 얻었다.[1]

뒤에 우두산유서사(幽棲寺)에 머무르면서 칠장(七藏)의 경서를 풀어 8년 동안 초략(抄略)을 만들었다.[1] 643년에 절 북쪽 벼랑 아래에 선실을 짓고 좌선을 계속하였다.[1] 백여명의 사람들이 그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는데 선종의 4대조인 도신(道信)문하의 방계인 법융은 도신으로부터 돈오(頓悟)의 법문을 이어받게 되었다.[1] 식량이 부족하여 80리길을 혼자서 한 섬 여덟 말의 쌀을 등에 지고 다른 승려들을 위하여 운반하였다 한다.[1] 652년 건강(建康)의 건초사(建初寺)에 초빙되어 《대반야경(大般若經)》을 강하니 승도 1,000명이 모였다.[1]

법융의 선풍(禪風)을 그가 머문 우두산의 이름을 따서 우두선(牛頭禪)이라고 부르나 그것은 삼론적(三論的) 요소가 짙은 것이었다.[1] 문하에 제자 지엄(智嚴) · 도기 · 도빙(道憑) 등이 있다.[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