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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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00년경의 마가다 왕국: 영토 확대 전의 상태
기원전 5세기의 마가다 왕국의 대략적인 판도
남아시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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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다(산스크리트어: मगध magádha, 摩揭陀, Magadha kingdom, Magadha state) 또는 마갈타(摩竭陀)는 고대 인도의 왕국으로 십육대국 중의 하나이다. 중심지는 갠지스 강 남쪽의 비하르지역이었고, 첫 번째 수도는 라지그리하 (지금의 라지기르)였으며, 후에 파탈리푸트라 (현재의 파트나)로 바뀌었다.[1] 마가다 왕국은 앙가리차비를 정벌하면서 비하르지역과 벵골지역의 대부분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마가다 왕국은 주로 자이나교 서적과 불교 서적에 주로 언급되며, 또한 라마야나, 마하바라타, 푸라나에도 언급된다.

초기 언급은 아타르바베다앙가, 간다라등과 함께 언급되어 있다. 인도에서 탄생한 두 개의 중요한 종교인 자이나교불교가 마가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도의 가장 큰 두개의 제국인 마우리아 왕조, 굽타 왕조역시 마가다에서 기원했다. 이러한 제국들에 의해 고대 인도의 과학, 수학, 천문학, 종교, 철학등이 발달하였고 인도의 전성기로 불린다.

역사[편집]

16대국의 하나로 일찍부터 번영한 나라지만, 석가모니 시대에 하라얀타 왕조빔비사라와 아자타샤트루의 두 왕이 즉위하여 국위를 높이고 갠지스강 유역 전역을 통일하였다. 그중 빔비사라는 온화하고 현명한 왕이었다. 그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단기간에 소국 앙가를 장악했다. 이 소국의 수도 참파는 갠지스 강의 델타 지대에 있는 중요한 항구였고, 그 때문에 빔비사라 왕은 갠지스 강의 항행(航行) 지배권을 장악하여 남인도 및 동남아시아의 연안지방과 교역을 할 수가 있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풍요한 철광산(鐵鑛山)을 배후에 둔 산속에, 전장(全長) 약 40킬로미터나 되는 성벽으로 에워싸인 신도(新都) 라자그리하도 그가 건설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가다에는 왕의 계승권을 에워싸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 하는 몇몇 계승권 주장자가 있었기 때문에 일련의 암살사건의 비극이 일어났다. 바라바르 구릉의 철광산이나 다르와르와 신푸르 지방의 동, 철의 광산과 상비군 덕택에 기원전 5세기에 번영의 극치에 달했던 이 왕국도 왕국 내부의 반란으로 전복되어 당시의 재상(宰相) 시슈나가가 왕위에 오르자 새 왕조인 시슈나가 왕조가 시작되었다. 수도는 처음 라자그리하(王舍城)에 있었지만 기원전 5세기 중엽 파탈리푸트라로 옮겼다. 파탈리푸트라는 북인도의 정치적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다. 기원전 4세기 초에 시슈나가 왕조를 계승한 난다 왕조는 부강하였고 그 군대의 강대함은 인도에 침입했던 알렉산더 대왕에게까지 알려질 정도였다. 난다 왕조는 기원전 320년경 마우리아 왕조의 시조 찬드라굽타에 의해 멸망했다.

마가다의 왕조[편집]

각주[편집]

  1. "마갈타(摩竭陀)", 《네이버 국어사전》. 2011년 4월 5일에 확인.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