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파르티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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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파르티아 왕국

 

19년 ~ 226년
 

IndoParthianKingdom.svg
수도탁실라
카불
정치
정부 형태군주제

19년 ~ 46년
46년 ~ 60년
? ~ 226년

곤도파레스 1세(초대)
아브다가세스
파른-사산(말대)
왕가수렌 왕조
역사
 • 성립19년
 • 멸망226년
인문
공통어파르티아어
코이네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아람어
민족파르티아인

종교
종교불교
브라만교
조로아스터교
기타
현재 국가이란 이란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파키스탄
인도 인도
이란의 역사
الگو:تاریخ ایران
Persepolis 24.11.2009 11-12-14.jpg
파키스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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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역사
भारत का इतिहास
Red Fort in Delhi 03-2016 img3.jpg

인도-파르티아 왕국(Indo-Parthian Kingdom) 또는 수렌 왕국(Suren Kingdom)[1]은 수렌가의 곤도파리드 지부에서 19년부터 226년까지 통치한 파르티아 왕국이다. 전성기에는 이란 동부의 일부를 포함하는 영역과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지역과 인도 아대륙의 북서부 지역을 지배하였다.

서기 19년 드랑기아나(사카스탄) 수렌가의 곤도파레스 총독이 파르티아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설립되었다. 곤도파레스는 나중에 서쪽으로 원정을 떠나 인도-스키타이인도-그리스 왕국의 영토를 정복하여 왕국을 제국으로 탈바꿈시켰으나,[2] 전반기 쿠샨족의 침략으로 인해 이후 인도 파르티아인의 영토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들은 224년 5월 사산 제국에게 정복될 때까지 사카스탄의 통제권을 유지했다.[3]

곤도파레스 1세와 그의 후계자[편집]

인도 파르티아 왕국의 창시자인 곤도파레스의 초상화. 그는 머리띠, 귀걸이, 목걸이, 둥근 장식의 크로스오버 재킷을 착용하였다.
아브다가세스 왕의 동전 뒷면에 그리스 여신 티케가 아브다가세스에게 왕관을 씌우고 있다.[4]

곤도파레스 1세는 원래 오늘날 시스탄의 통치자로서 아마도 아프라카라자스의 가신 또는 친척일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0-10년경,[5] 아제스의 사후에 곤도파레스는 이전 인도-스키타이 왕국에서 정복 활동을 벌였다. 곤도파레스는 아라코시아, 사카스탄, 신드, 펀자브, 카불 계곡으로 구성된 지역의 통치자가 되었지만 그가 펀자브 동부 너머의 영토를 차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6]

인도-파르티아가 건설한 고대 불교 수도원 타크티-바히(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곤도파레스 1세의 죽음 이후 제국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곤도파레스 1세의 아들인 사르페도네스곤도파레스 2세로 즉위해 자신이 후계자라 주장했지만 사르페도네스의 통치는 흔들렸고 그는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신드, 펀자브 동부 및 아라코시아에서 조각난 주화를 발행했다. 가장 중요한 후계자는 곤도파레스의 조카인 아브다가세스(Abdagases)로 펀자브와 아마도 사카스탄의 고향에서 통치했다. 사르페도네스의 짧은 통치 이후, 오타그네스가 곤도파레스 3세 가다나로 즉위해 사르페도네스의 자리를 계승한 것으로 추측된다. 오타그네스는 서기 1세기 동안 아브다가세스와 함께 사카스탄과 아라코시아 대부분을 통치했으며 그의 아들 우보자네스가 오타그네스의 자리를 계승했다. 서기 20년 이후, 아프라카라자의 통치자 아스파바르마의 조카인 사세스라는 왕이 아브다가세스의 영토를 점령하고 곤도파레스 4세 사세스가 되었는데, 타크티-바히 비문에 언급된 곤도파레스는 이 사람을 말한다.[7]

이렇듯 제국이 분열되며 인도-파르티아인들은 곤도파레스 1세의 지위를 되찾지 못했고, 서기 1세기 중반부터 쿠줄라 카드피세스 아래의 쿠샨 제국에게 왕국의 북부 인도 지역을 흡수당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인도-파르티아인들은 사카스탄의 지배권을 유지했고, 사산 제국에 의해 파르티아 제국이 몰락할 때까지 존속하였다.[1]

고고학적 사료[편집]

탁실라 잔디알의 이오니아 기둥이 있는 헬레니즘 사원은 일반적으로 인도 파르티아인 시대의 조로아스터교 신전으로 추측된다.

탁실라는 인도 파르티아인의 수도로 추측된다. 많은 파르티아 양식의 유물과 함께 존 마르샬이 큰 지층을 발굴했다. 잔디알의 근처 사원은 일반적으로 인도-파르티아 시대의 조로아스터교 신전으로 추측된다.

일부 고대 저술은 인도의 "구드나파르"(곤도파로 추정) 왕의 궁정에서 봉사하기 위해 목수로 모집 된 성 토마스 사도의 이야기와 같이 이 지역에 인도 파르티아인의 존재를 설명한다. 토마스의 행적은 17장에서 토마스가 인도 북부에 있는 구드나파르 왕을 방문한 것에 대해 설명한다. 2장과 3장은 그가 인도로 항해를 시작하여 토마스를 인도 서해안과 연결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시니어가 지적했듯이,[8] 이 구드나파르는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출현 이후에 연대를 맺은 곤도파레스 1세와 동일시되었지만 이 가정에 대한 증거는 없으며 시니어의 연구에 따르면 곤도파레스 1세는 서기 1년 이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이 기록이 사실일 경우 성 토마스는 같은 칭호를 지녔던 후기 왕 중 한 명을 만났을 것이다.

말에 탄 곤도파레스를 묘사한 주화. 짧은 재킷과 헐렁한 바지를 입었다.
동전에 묘사된 곤도파레스의 초상화.

필라스트라투스가 쓴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의 생애>에서 그리스 철학자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는 인도를 방문했으며 특히 서기 46년경에 탁실라를 방문했다. 그는 그리스 양식의 건축물이 있는 시르캅을 묘사하고,[9] 그곳에 있는 인도-파르티아 탁실라의 왕 프라오테스가 그의 아버지의 궁정에서 그리스어 교육을 받고 유창한 그리스어를 말했다고 설명하였다.[10][11]

아라비아해를 항해하는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경로를 묘사한 1세기 가이드북인 에리트라해의 페리플러스는 이전 인도-스키타이인들의 통치로 인해 그 당시 전통적으로 "스키티아"로 알려진 신드 지역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파르티아 왕들의 존재를 묘사한다.[12]

타크티- 바히의 비문에는 마하라자 구드브하라(곤도파레스로 추측)의 연호 26년과 알려지지 않은 시대의 103년이라는 두 개의 날짜가 있다.[13]

인도-파르티아인의 종교[편집]

조로아스터교 불단의 신봉자.

인도-파르티아인들이 조로아스터교를 믿던 파르티아 제국과 종교적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은 알려졌으나 수렌 가문이 어떤 종교를 믿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14] 인도-그리스 왕국 또는 인도-스키타이 왕국과 달리 헌금, 비문 또는 심지어 전설적인 설명에서도 인도-파르티아 통치자들이 불교를 믿었다는 명시적인 기록은 없다. 또한 인도-파르티아 동전은 일반적으로 그리스 화폐를 밀접하게 따르지만 불교 트리라트나 기호를 표시하지 않으며 코끼리나 황소의 그림을 사용하지 않는다. 전임자. 그들은 이란에서 전래된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이란 신화 체계는 파키스탄페샤와르 -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지역에서 통치했던 후기 쿠샨인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곤도파레스 1세 시대에 힌두교시바의 주화도 발행된 것으로 밝혀졌다.[15][16][17]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Gazerani 2015.
  2. Rezakhani 2017.
  3. Olbrycht 2016.
  4. Photographic reference: "The dynastic art of the Kushans", Rosenfield, figures 278–279
  5. The chronology of the Gondopharid kings has long been uncertain, predominantly based on coins. This reconstruction is based on "Indo-Scythian Coins and History IV" by Robert Senior, CNG 2006, as the four volumes of Senior's work provide an almost complete catalogue of the coinage of the period. Senior's chronology is based on the existence of only one king Azes, a theory that was vindicated when it was shown that a coin of the so-called Azes II was overstruck with a type attributed to Azes I (see Senior, "The final nail in the coffin of Azes II", Journal of the Oriental Numismatic Society 197, 2008).
  6. Rosenfield, p129
  7. A votive inscription of the 26th year of Gudavhara or Gondophares, is reported to have been found on a stone at Takht-i-Bahi, northeast of Peshawar with a date in the year 103 of an unspecified era reckoning. This era is likely to have been the Malva or Vikrama era, founded in 57 BCE, this would give a date of 20 CE for this king's ascension (see Hindu calendar). The stone was formerly in the museum at Lahore. The point is especially important for those Christians who consider that a germ of history is embedded in the Acts of Thomas.
  8. see Senior, "The final nail in the coffin of Azes II".
  9. Description of the Hellenistic urbanism of Taxila:
  10. (Life of Apollonius Tyana, II 29)
  11. (Life of Apollonius Tyana, II 31)
  12. Periplus of the Erythraean Sea, Chap 38
  13. Rosenfield, p130.
  14. Gazerani, Saghi (2015년 11월 27일). 《The Sistani cycle of epics and Iran's national history : on the margins of historiography》 (영어). Brill. 111쪽. ISBN 9789004282964. 2019년 1월 9일에 확인함. 
  15. Gondophares I Indological researches in India: selected works of Prof. K.D. Bajpai
  16. Anthropological Papers of the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Volume 46 Pg. 274
  17. [1]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