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두갈야야나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4년 10월) |
| 마우두갈야야나 | |
|---|---|
목련의 죽음 | |
| 이름 | 마우두갈야야나 |
| 존칭 | 마하목건련 |
| 생지 | 마가다국 |
| 종파 | 원시 불교 |
| 스승 | 석가 |
| 불교 |
|---|

마우두갈야야나(산스크리트어: मौद्गल्यायन) 또는 목갈라나(팔리어: Moggallana), 목건련(目犍連)이라고 음역하며,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 신통제일로 손꼽는다. 줄여서 목련이라고도 부른다. 부처님의 초기 제자로서 십대제자 중 한 명이므로 Mahaa (음사: 마하, 역: 대)를 붙여 마하목건련, 대목건련 등으로 칭한다.
생애
[편집]자라난 내력
[편집]마가다국의 왕사성 북쪽, 구리가 (코리카, 혹은 코리타) 촌의 Moggaliya라는 바라문 여성의 아들로 태어났으므로 지역 이름을 따서 구률다 (코리타) 라고 칭하기도 하고, 목갈라야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목갈라나라고도 칭한다. 「우란분재경」에서는 아버지를 길참사자 (나무편찬해), 어머니를 청제녀 (성이야에)라고 하지만, 이것은 중국에서 작성한 것으로 본다.
용모 단려로 모든 학문에 정통했다. 어려서부터 이웃 마을 나란다의 사리불과 친분이 있었다. 둘은 축제에 참여했다가 '지금은 모두가 행복하다고 웃고 있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즐거움과 행복도 모두 사라진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영원하고도 진정한 즐거움을 찾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다. 처음에는 산쟈야 베이랏티풋타라는 회의론자에게 입문했지만 만족하지 않고, "만약 만족하는 스승이 발견되면 모두 입문하자"라고 맹세했다.
후에 사리불이 아설시 (앗사지)를 만나 부처님의 법문을 전해 듣고 목건련에게 알려 그들을 따르던 제자들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로 가서 불교에 귀의했다.
목련은 후에 깨달음을 얻었고 부처님의 교화를 도왔다. 그는 깨달음을 통해 얻은 신통력에 뛰어났는데, 부처님의 법회를 방해하는 이교도나 용과 같은 다른 존재들을 추방하고 항복시키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원한을 산 적도 많았던 것으로 설명한다. 특히 육사외도의 하나인 자이나교도의 박해를 받았으며, 데바닷다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죽을 뻔 했다는 일화도 있다.
또 석가족과 전쟁을 했던 코살라국의 유리왕(비두다바)의 군대를 격퇴하려 했으나, 부처님이 인과에 의한 일이라며 제지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종
[편집]전승에 따르면 부처의 열반에 앞서 사리불과 목건련이 먼저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특히 목건련은 성 안에서 걸식하던 중 외도가 그를 보고 "저 사람은 사문 구담(瞿曇, 부처님의 종성인 고타마의 음역)의 제자다. 우리가 저 사람을 에워 싸고 때려 죽이자."라고 했다. 외도들이 몰려들어 그를 둘러싸고 폭행했는데, 목건련은 신통력으로 벗어나 기원정사로 돌아와 사리불 앞에 다다랐다.
사리불은 "당신은 세존의 제자들 중에서 신통이 제일이고, 큰 위력이 있는데, 왜 그 신통력으로 폭행을 피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다. 목건련은 "내가 본래 지어둔 업이 매우 깊고 무겁소. 이제 그 과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피하지 않았습니다. 공중으로 날아올라 과보를 받지 않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오놈ㅁ의 고통이 너무 심하므로 당신에게 와서 하직 인사를 하고 반열반에 들려 합니다."라고 했다. 사리불은 "그대는 잠깐만 기다리시오. 내가 먼저 멸도에 들겠습니다."라고 했다. 사리불은 세존의 처소에서 물러나 고향에 이르러 설법하고 멸도를 취했다. (「증일아함경」).
아사세왕은 목건련이 외도의 폭행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러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민가의 외도를 찾아내 태워 죽여라."고 명했다. 목건련은 이 일을 알고 "왕께서 내린 명령은 따르기 어렵습니다. 만약 찾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벌하면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비나야잡사 18)
이때 목건련에게 제자 2명이 있었는데, 이른바 육군비구(비구 중 참회할 수도 없고 용서받을 수도 없는 여섯 가지 잘못을 저지른 무리)와 외도가 스승인 목건련을 공격했다는 일을 알고서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신통력을 써서 외도들을 찾아 죽이는데 이르렀다.
훗날 다른 제자들이 부처에게 이 일에 대해 질문하기를, 성스러운 제자 목건련은 무슨 업이 있어서 외도에게 폭행을 당했느냐고 물었다. "목건련은 과거세에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음행을 저질렀으므로 그 어머니가 항상 괴로워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들에게 화를 내며 말하기를, "어떻게 사람의 옷차림도 채 갖추지 않는 것인가. 이렇게 추한 행위는 5백생 안에 성불한다 하더라도 악한 과보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었으니, 이제 과거생에 저지른 잘못의 과보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과거칠불 가운데 하나인 구류손불 시대에 으뜸가는 제자를 과거의 목건련이 공격해 피를 흘리게 한 바 있었으니, 그때의 악업으로 인해 석가모니불 시대에 외도로부터 공격받은 바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련과 우란분
[편집]아래와 같이에 기록하는 백중날의 일화에 의해, 목련이 일본에서의 추석 및 본오도리 등의 행사의 창시자로서 수취되고 있다.
목련이 어느 날, 먼저 죽은 친어머니인 청제녀가 천상계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 어머니가 있는 곳을 천리안으로 관찰했는데, 청제녀는 천상계는커녕 아귀계에 빠져 지옥과 같은 반대적리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놀라 공물을 바쳤는데 공물은 불길을 올려 모두 불타 버려, 곤란한 목련은 석가에게 상담한다. 석가는 망자 구제의 비법 (일설에는 시아귀의 비법) 을 목련에게 전수해, 목련은 가르침에 따라서 법을 베풀면 눈 깜짝할 사이에 모친은 지옥으로부터 떠올라, 환희의 무용을 춤추면서 승천했다.
그렇지만, 석가의 당시의 교설에는 극락 정토나 지옥이라는 개념은 등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일화는 중국에서 위경인 「우란분경」이 성립했을 때로 할 수 있던 것이다. 단지, 민간 전승의 세계에서는, 현재 행해지는 본오도리는 목련의 모친이 하늘에 오르는 모습을 상형한 것이라고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