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비사라
빔비사라
बिम्भिसा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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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얀카 국왕 | |
재위 | BC 543년 ~ BC 494년 |
후임 | 아자타샤트루 |
신상정보 | |
출생일 | 기원전 558년 |
출생지 | 마가다 왕국 기리브라자 |
사망일 | 기원전 492년 |
사망지 | 마가다 왕국 라자그리하 |
국적 | 마가다 |
왕조 | 하리얀카 왕조 |
배우자 | 코살라 데비 첼라나 |
자녀 | 아자타샤트루 |
종교 | 불교 또는 자이나교 |
군사 경력 | |
참전 | 앙가 정복(기원전 538년) |
빔비사라(산스크리트어: बिम्भिसार)는 기원전 543년부터 기원전 494년까지 마가다를 지배한 왕으로, 하리얀카 왕조의 개창자이다.
생애[편집]
기원전 558년에 마가다 지역의 하리얀카 씨족에서 태어났으며 기원전 544년에 당시 마가다 왕국의 왕조인 프라드요타 왕조의 왕을 몰아내고 마가다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기원전 538년에 갠지스 강의 델타 지대에 있는 중요한 항구국가인 앙가 왕국을 정복함으로서 갠지스 강의 항행(航行) 지배권을 장악하였으며, 아들인 아자타샤트루를 앙가의 총독으로 파견해 다스리게 하였다. 또한 동시기 인물들인 고타마 붓다와 마하비라 등의 출가 수행자들이 활동하자 그들에게 뱃삮을 면제하는 명령을 내렸으며 고타마 싯다르타 측에게는 죽림정사 등의 사원들을 지어주는 등 수행자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외에 마가다 왕국의 동맹국들을 확보하기 위해 결혼 동맹을 자주 추진하였으며 코살라 왕국 출신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을 때 코살라 왕국이 지배하던 도시인 바라나시를 혼인 지참금으로서 할양받기도 하였다. 이렇듯 마가다 왕국을 크게 성장시킨 빔비사라는 기원전 494년 경에 앙가 왕국에서 귀환한 아자타샤트루에 의해 감금되며 왕위에서 쫓겨났으며, 이후 감금된 상태로 기원전 492년에 사망하였다.
불교 문헌[편집]
불교 문헌에 의하면 빔비사라 왕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 그와 만난 적이 있었고 후에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불교 사문사과(沙門四果)의 첫 번째 단계인 수다원 須陀洹 (팔리어; Sotāpanna, 산스크리트; Srotāpanna, 중국어: rùliú 入流, 티베트어; རྒྱན་ཞུགས rgyun zhugs)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자이나교 문헌[편집]
자이나교 문헌에 따르면 그는 라지그리하(Rajgriha, 王舍城)의 슈레니카 왕으로 언급되며, 자이나교 신자로서 마하비라의 제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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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다 왕국의 마하라자 기원전 543년 ~ 기원전 49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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