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푸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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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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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푸트라(舍利弗, 산스크리트어: Śāriputra) 또는 사리풋다(팔리어: Sāriputta), 사리불(舍利佛)은 석가의 십대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사리는 모친의 이름으로 「백로」를 의미하고 뿌뜨라(뿟따)는 「불」이라고 음사한 「아이」를 의미하므로 한역에서 사리자다. 즉 직역하면 「백로 양가집 자제」라는 의미다.
석가 제자 가운데서도 사리불을 지혜제일로 칭한다. 특히 사리불과 목건련은 2대제자로 불린다.
사리불은 「반야경」 등 대승 경전에서 소승을 대표하는 장로의 불제자로 많이 등장한다. 「반야심경」에서 사리자가 사리불이다.
생애[편집]
마가다국 왕사성(라쟈가하) 북쪽, 나라타(나라다, 현나란다) 촌 출신으로 유복한 바라문 집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우파제사(우파티사)라고 했다.
이웃 마을 목건련과 친구 사이이며, 목련과 함께 당초 산쟈야 베이랏티풋타에게 사사했다.
석가 제자 앗사지(아설시) 비구와 만나 앗사지를 통해 석가 가르침 일부[1]를 듣자 마자 예류과(깨달음 최초 단계)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목건련을 따라 석가에 입문 하면, 산쟈야 선인의 다른 신도 250명이나, 그들 두 명에 따라, 산쟈야 교단을 떠나 석가에 입문했다. 그 후 곧바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리불은 석가의 신임도 두껍고, 가끔 석가에 대신해 법을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석가의 친자식인 나후라의 후견인으로도 되었다.
또 데바닷타가 석가 교단으로부터 500명을 거느려 분열시켜 상두(가야)산에 갔지만, 그가 뒤쫓아 제자들을 되돌렸다. 그 때, 그가 와 설법했을 때에 일어난 브로켄 현상에 제자들이 놀라, 돌아오는 계기로 되었다고도 말해진다.
석가보다 연장으로 여겨져 목건련과 함께 불교 교단의 후계자라고 주목받고 있었지만, 석가의 입멸에 앞서 병몰. 목건련이 죽림 외도(집장범사)에 의해서 박해받아 빈사 상태가 되었다를 보고, 「함께 출가해, 또 불제자가 되어 증오했으므로, 함께 멸그렇게」라고 했다고도 말해진다. 석가의 허가를 얻고, 고향에 돌아가 그 자신이 임종의 마루에 있어도 어머니를 시작으로 하는 친족을 불교에 귀의시켰다고 한다. 그들이 석가보다 앞서 멸한 것은, 석가의 입멸에 조우하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고도 말해지지만 확실하지 않다.
가족[편집]
그의 친족이나 형제, 또 그러한 이름 등은 제경에 의해서 차이가 있다. 각각,
- 아버지 바간타, 어머니 서리, 장남 우파티사(=사리불), 2남 우파세나 바간타 풋타, 삼남 마하틀다, 4남 레이바타 캐디라 바니야(리파다) 그리고, 카라, 우파카라, 시스파카라라고 하는 3명의 조카가 있었다. (단마파다 = 법구경이나 테이라가타 = 장로의 게의 설).
- 부 단양야나(단나들다와도, 다냐야나) 아래에, 우파저수(사리불), 대무릎(큼 구치라), 순타(불입멸시의 순타와는 딴사람), 강차힐리발다(레이바타), 천타, 염부가가, 교진니, 소들리사나의 8남, 또 장녀 소시미가가 있었다고 한다. (「불본행집경」47의 설)
- 부모 기재 이루어, 장남으로부터 순서에, 달마, 소들마, 우파들마, 저사, 우파저사(사리불), 힐리발다, 우파파리발다로 한다. (큼 승려기사설의 설에 의한다)
- 부 저사, 모 앵무, 조부 마타라, 오파저사(사리불) 로 한다. (유부 출가일의 설)
- 어머니 서리의 아이에게, 달마, 우파다르마, 사타다르마, 샤하스라다르마, 티샤, 우파티샤(사리불)로 한다. (마하바스트의 설)
덧붙여
- 유부 출가일, 「대지도론」은 큼 구치라를 장조범사로서 사리불의 숙부로 한다.
- 「불본행집경」에서는 대무릎(구치라)을 사리불의 남동생으로 한다.
- 파리어 문헌에서는, 큼구치라를 장조범사와 관계 하게 하지 않고, 장조를 사리불의 조카로 한다.
- 테이라가타에서는, 조카의 카라, 우파카라, 시스파카라는 모두, 석가불에 귀의해 출가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