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자파힛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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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파힛 제국
विल्व तिक्त

1293년 ~ 1527년
 

 

문장
문장
Majapahit Empire.svg
수도트로울란
정치
정부 형태군주제
라자
1295년 ~ 1309년
1478년 ~ 1527년

라덴 위자야
기린드라와르다나
인문
공용어자와어
산스크리트어
민족자와인

경제
통화자체생산한 금은화
중국에서 수입된 케펭화
종교
국교힌두교
기타 종교불교
케바티난
애니미즘
주신바타라 구루
기타

마자파힛 제국(인도네시아어: Kemaharajaan Majapahit)은 인도네시아 자와 섬 중부에 존재하던 왕국이다. 이 제국은 자와해 전역을 지배할 정도의 함대를 지니고 있어 단시일 동안에 지배권을 주변으로 확대해갔다. 마자파힛이란 명칭은 마자라는 과일에서 따온 것이다.

14세기 후반 제4대 하얌 우룩의 시대에는 총리 가자 마다의 정복 사업으로 현 인도네시아 전역과 필리핀 남부와 말레이 반도의 일부, 파푸아뉴기니의 일부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까지 지배하였고, 또한 중국이나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와 밀접한 외교 관계를 맺어 최전성기를 맞았다. 궁정시인 (宮廷詩人) 프라판차의 서사시 〈나가라 케르타가마〉는 그 번영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하얌 우룩이 죽자 왕조는 위기에 처했고, 마침내 16세기 초반에 멸망하고, 발리섬으로 쫓겨났다. 그 배경에는 왕위 계승 분쟁에 따른 국내의 혼란, 주변 속국들의 배반, 재정의 궁핍화 등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그 밖에도 중국의 해군력이 증강되어 위협을 받게 되었고, 15세기 후반 서방에서 이슬람포르투갈 세력의 침투가 시작되면서 세계 정세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다.

싱하사리 왕조[편집]

아이를랑가의 까후리빤 왕국은 아이를랑가 사망 이후 장갈라와 끄디리로 나뉜다. 곧 끄디리는 장갈라를 압도하게 된다. 그리고 끄디리 왕국 말기 동부의 뚜마뻴(오늘날 인도네시아 동자바주 말랑시 근교)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 껜 아록이 반란을 일으키고 스스로를 라자사라야라고 부르며 뚜마뻴 왕국이 건국된다. 뚜마뻴 왕국은 다른 말로 싱하사리(싱오사리)라고도 부른다. 싱하사리는 초반 왕위와 관련하여 여러 다툼이 일어나고 이후 꺼르따나가라 때 크게 발전한다. 그러나 1292년에 몽골의 사신을 업신여긴 사건으로 인해 몽골이 침입하고 설상가상으로 끄디리의 자와깟왕 등 다양한 구 끄디리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꺼르따나가라는 죽게 된다.

비자야왕자[편집]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