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용어 목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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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편집]

1. 무간(無間, 산스크리트어: nirantaratva)은 (根)과 (境)이 이들 사이에 어떠한 간격도 없이 서로 절대적으로 근접하여,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말한다.[1]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극미(極微)는 서로 접촉하지 않는데, 다만 무간(無間)으로 적집(積集)한다.[1]

2. 마음은 찰나 찰나로 생멸하면서 상속하는데 이 때 전념(前念)과 후념(後念)과의 사이에는 다른 생각 또는 마음이 개입하지 않으며 따라서 후념(後念)은 간격 없이 전념(前念)으로부터 상속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간격 없는 상속을 무간(無間)이라고 한다.[2][3]

무겁약[편집]

무겁약(無怯弱)은 무하(無下)의 다른 말이다.

무견무대[편집]

무견무대(無見無對)는 무견무대색의 다른 말이다.

무견무대색[편집]

무견무대색(無見無對色)은 가견성(可見性)도 없고 대애성(對礙性)도 없는 물질[色]이다. 불가견무대색(不可見無對色)이라고도 한다.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11가지 색법무표색(無表色)의 1가지 법이 무견무대색이다.[4]

무견유대[편집]

무견유대(無見有對)는 무견유대색의 다른 말이다.

무견유대색[편집]

무견유대색(無見有對色)은 가견성(可見性)은 없으나 대애성(對礙性)이 있는 물질[色]이다. 불가견유대색(不可見有對色)이라고도 한다.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11가지 색법5근(五根: 승의근)과 5경(五境) 중 색경(色境)을 제외한 4경(四境)의 9가지 법이 무견유대색이다.[5]

무경[편집]

무경(無敬)은 온갖 공덕(功德)과 유덕자(有德者: 즉 스승)에 대해 공경함이 없는 것으로, 《구사론》에 따르면, 무숭(無崇) · 무기탄(所忌難) · 무소수속(無所隨屬)과 함께 무참(無慚)의 마음작용본질적 성질을 이룬다.[6][7]

무괴[편집]

무괴(無愧, 산스크리트어: anapatrāpya, atrapā, 팔리어: anottappa, 영어: lack of propriety, disregard, shamelessness)는 설일체유부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 가운데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법상종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의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20가지) 중 중수번뇌심소(中隨煩惱心所: 2가지) 가운데 하나이다.[8][9]

무괴(無愧)는 (愧)의 반대인데, (戒) · (定) · (慧)의 3학(三學)의 공덕이 있는 사람, 즉 스승의 꾸짖음이나 죄과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마음작용, 또는 죄에 대해 두렵게 보지 않는 마음작용이다.[10][11][12]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

무괴(無愧)는 다음을 통칭한다.[13][14]
  • 불괴(不愧):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부등괴(不等愧): 그 모두에 대해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불각별괴(不各別愧): 각각 따로따로에 대해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불치(不羞):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부등치(不等羞): 그 모두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불각별치(不各別羞): 각각 따로따로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불염(不厭): 싫어하지 않음
  • 부등염(不等厭): 그 모두에 대해 싫어하지 않음
  • 불각별염(不各別厭): 각각 따로따로에 대해 싫어하지 않음
  • 불훼(不毀): 무너뜨리지 않음
  • 부등훼(不等毀): 그 모두에 대해 무너뜨리지 않음
  • 불각별훼(不各別毀): 각각 따로따로에 대해 무너뜨리지 않음
  • 불포죄(不怖罪): 를 두려워하지 않음
  • 불구죄(不懼罪): 를 무서워하지 않음
  • 어죄불견포(於罪不見怖): 에 대해 두렵게 보지 않음

무기사[편집]

무기사(無記思), 무기의 사 또는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사(思)의 마음작용을 3가지로 나눈 선사(善思) · 불선사(不善思) · 무기사(無記思)의 3사(三思) 가운데 하나이다.[15][16] 무기사(無記思)는 무기(思) 즉 불선도 아닌 의업(意業)을 짓고 만드는[造作] 것, 즉, 공덕(功德)도 과실(過失)을 짓는 정신적 행위[意業]를 말한다.[17][18][19][20]

무기의 사[편집]

무기의 사무기사(無記思)의 다른 말이다.

무기탄[편집]

무기탄(無忌難) 또는 무소기탄(無所忌難)은 온갖 공덕(功德)과 유덕자(有德者: 즉 스승)에 대해 기탄(忌難)하는 바가 없는 것 즉 어렵게 여겨 꺼리는 일이 없는 것으로, 《구사론》에 따르면, 무경(無敬) · 무숭(無崇) · 무소수속(無所隨屬)과 함께 무참(無慚)의 마음작용본질적 성질을 이룬다.[6][7]

무대법[편집]

무대법(無對法, 산스크리트어: apratigha, 티베트어: thogs pa med pa, 영어: unobstructed, unopposed, unhindered, non-resistance)은 줄여서 무대(無對)라고도 한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대(對)함이 없다'는 것으로, '대(對)'는 애(礙: 방해, 장애) 또는 대애(對礙: 대하여 방해함, 대하여 장애함)를 뜻한다. 따라서 무대법 또는 무대대애성(對礙性)이 없는 을 뜻한다.[21][22][23][24]

대애성(對礙性) 또는 줄여서 대애(對礙)는 어떤 사물이 이미 어떤 공간을 점유하고 있을 때 다른 사물이 그 동일 공간을 점유하지 못하도록 장애하는 성질이다.[25][26]

무대법(無對)을 무장애법(無障礙法) 또는 무장애(無障礙)라고도 하고, 무대(無對)의 성질무장애성(無障礙性)이라고도 한다.[23][27][28]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6권에 따르면,[29][30]

무대법(無對法) 또는 무대(無對)는 12처 가운데 2처(二處)를 말한다. 즉, 의처(意處)와 법처(法處)를 말한다. 즉, 마음[意處]과 법경(法境)을 말한다. 나머지 10처는 모두 유대법(有對法)이다.
말하자면, 마음[意處] 즉 정신(精神)과 정신적 사물[法境]은 부피가 있어서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마음이나 정신적 사물공간적으로 장애하지 않는다.[24]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구사론》 제2권에 따르면,[31][32]

무대법(無對法) 또는 무대(無對)는 18계 가운데 8계(八界)를 말한다. 즉, 의계(意界) · 법계(法界) · 안식계(眼識界) · 이식계(耳識界) · 비식계(鼻識界) · 설식계(舌識界) · 신식계(身識界) · 의식계(意識界)를 말한다. 즉, 6식의근법경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마음(즉, 6식과 의근의 합인 7심계)과 법경, 즉 정신정신적 사물을 말한다.

무량상[편집]

무량상(無量想) 또는 한량없는 생각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에서 (想)의 마음작용을 3가지로 나눈 소상(小想) · 대상(大想) · 무량상(無量想)의 3상(三想) 가운데 하나이다.[33][34]

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의 논서 《대승아비달마집론》에 따르면 무량상(無量想)은 무색계공무변처식무변처요별할 수 있는 (想)이다.[35][36]

무루무위와 무루유위[편집]

무루무위(無漏無爲)에서 무위(無爲)는 진리의 다른 말이며, 무루무위유루법잡염법멀리 떠나 있는 것을 가리킨다. 달리 말하면, 무위법진리 즉 '무루깨달음'의 본래 모습은 유루법잡염법소란스러움[擾亂]을 멀리 떠나 있는 무루일 뿐만 아니라 적정(寂靜)하고 담연(湛然)하고 부동(不動)하다. 무위법진리의 이러한 본체(本體)적 측면을 가리켜 무루무위라 한다.[37][38] 무위무루(無爲無漏) · 무위법신(無爲法身) 또는 무위열반계(無爲涅槃界)라고도 한다. 4성제 가운데 멸제(滅諦)에 해당한다.[39][40][41]

무루유위(無漏有爲)는 본체의 입장에서 볼 때 적정하고 담연하며 부동무위법진리가 활동함에 있어서, 그 모습유루법잡염법소란스러움[擾亂]을 멀리 떠나 있는 무루일 뿐만 아니라 그 작용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말한다. 무위법진리의 이러한 작용(作用)적 측면을 가리켜 무루유위라 한다.[37][38] 유위무루(有爲無漏)라고도 한다. 4성제 가운데 도제(道諦)에 해당한다.[42][39]

무루성혜[편집]

무루성혜(無漏聖慧)는 무루지(無漏智)의 다른 말이다.

무명[편집]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

무명(無明)은 3계무지성(三界無知性), 즉 3계무지(無知)의 성질을 말한다.[43][44] 즉, 욕계무지 · 색계무지 · 무색계무지를 통칭한다.

무명결[편집]

무명결(無明結)은 애결(愛結) · 에결(恚結) · 만결(慢結) · 무명결(無明結) · 견결(見結) · 취결(取結) · 의결(疑結) · 질결(嫉結) · 간결(慳結)의 9결(九結) 가운데 하나이다.

아비달마품류족론》 제1권에 따르면,

무명결3계무지(三界無智) 즉 3계무지(無智)이다.[45][46] 즉, 욕계무지(無智) · 색계무지(無智) · 무색계무지(無智)를 총칭한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4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6권에 따르면,

무명결3계무지(三界無智) 즉 3계무지(無智)를 말한다. 마음무명결3계무지(三界無智)에 의해 묶이게[所繫] 되면 마음고법(苦法)과 집법(法集)을 불능해료(不能解了: 철저히 이해할 수 없음)하는 상태가 된다. 고법집법불해료(不解了: 철저히 이해하지 못함)하기 때문에 불선을 널리 행하고 갖가지 을 행하지 않게 된다. 불선은 행하고 은 행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세(苦)를 불러들이고(苦)와 상응하게 된다.[47][48][49]
잡집론》의 해설에 따르면, 고법(苦法)은 결과성질의 모든 유루행[果性有漏諸行][50], 즉 유루행온, 즉 유루마음작용을 말하고, 집법(法集)은 원인성질의 모든 유루행[因性有漏諸行], 즉 유루행온, 즉 유루마음작용을 말한다. 불해료(不解了: 철저히 이해하지 못함)는 어떤 유루행(有漏行)이 과환(過患)이라는 것을 불료지(不了知: 철저히 알지 못함)하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고법(苦法)과 집법(法集)을 불해료(不解了: 철저히 이해하지 못함)하는 상태라는 것은 결과원인성질의 모든 유루행이 '(실제로) 존재하는 과환[所有過患]'이라는 것을 불료지(不了知: 철저히 알지 못함)하는 상태를 말한다.[48][49]

무명촉[편집]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

무명촉(無明觸)은 염오촉(染汚觸) 즉 (染: 번뇌)에 오염된[汚] (觸)의 마음작용이다.[51][52]

무변료상[편집]

무변료상(無辯了相)은 소지경(所知境: 알아야 할 대상)에 대한 분별[辯]과 [了]이 없는 상태[相]를 말한다. 《현종론》에 따르면, (癡) 즉 무명(無明) 또는 어리석음소지경(所知境: 알아야 할 대상)에 대한 여리해(如理解: 진리에 계합하는 이해)가 장애되어 있는 무변료상이다. 즉, 대상에 대한 참다운 이해 또는 앎이 없는 상태이다.[53][54]

무색[편집]

1. 무색(無色)은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3계(三界) 중 무색계(無色界)의 줄임말이다.

2. 무색(無色)은 무색법(無色法)의 줄임말이다.

무색계[편집]

무색계(無色界)는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3계(三界) 가운데 하나로,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의 3유(三有) 가운데 무색유(無色有)와 동의어이다.[55][56][57][58]

불교우주론 또는 세계관에서 3계 또는 3유28천(二十八天)으로 나뉘지만, 수행론번뇌론에서는 흔히 9지(九地)로 나뉜다. 9지무색계 또는 무색유에 해당하는 것은 제6지인 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부터 제9지인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까의 4가지 (地)이다.[59][60][61]

3계9지(三界九地)

  1. 욕계(欲界) 또는 욕유(欲有)
    1. 오취잡거지(五趣雜居地)
  2. 색계(色界) 또는 색유(色有)
    1.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
    2.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
    3.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4.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3. 무색계(無色界) 또는 무색유(無色有)
    1. 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
    2. 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
    3. 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
    4.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

무색계계[편집]

1. 무색계계(無色界繫)는 무색계속박무색계번뇌를 말한다.[62][63] (繫)는 속박의 뜻으로 번뇌의 다른 말이다.[64]

2. 무색계계(無色界繫)는 '무색계에 속한' 또는 '무색계에 매인'의 뜻이다.

무색계의 수면[편집]

무색계의 수면(無色界隨眠)은 무색계10수면(十隨眠)을 5부(五部)로 분별하여 구분되는 총 31가지의 수면(隨眠) 즉 31가지의 근본번뇌를 말한다.[65][66][67][68]

자세히 말하면, 3계 가운데 무색계에 존재하는 (貪) · (瞋) · (慢) · 무명(無明) ·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 · (疑)의 10수면 즉 10가지 근본번뇌견고소단(見苦所斷) · 견집소단(見集所斷) · 견멸소단(見滅所斷) · 견도소단(見道所斷) · 수도소단(修道所斷)의 5부 즉 5가지 부류로 분별하였을 때 그 결과로 구분되는 31가지의 근본번뇌를 말한다. 그런데 10수면 가운데 (瞋)은 욕계에만 존재하는 번뇌이기 때문에,[67][68] 실제로는 9가지 수면근본번뇌5부 분별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뉘는데, 수번뇌근본번뇌에서 파생된 2차적인 번뇌이므로, 근본번뇌가 끊어진다는 것을 수번뇌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 31가지 근본번뇌는 '무색계의 모든 번뇌'가 수행계위 중 언제 끊어지는가를 기준으로 구분하였을 때의 31가지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무색계로부터 언제 해탈하게 되는가의 관점에서 구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瞋)은 욕계에만 존재하는 번뇌이므로 무색계번뇌를 헤아릴 때는 제외된다. 따라서 무색계의 9수면 즉 무색계의 9가지 근본번뇌5부로 분별한 것이므로, 단순히 계산하면 45가지가 있어야 하지만 31가지가 있는 것은 이들 9가지 수면근본번뇌5부 모두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품류족론》과 《구사론》 등에 따르면, 무색계31수면은 다음과 같이 계산되어 구해진다.[69][70][67][68][71][72]

무색계31수면5부에 따라 나누면 다음과 같다.[65][66][67][68]

무색법[편집]

무색법(無色法, 산스크리트어: ārūpya-dharma, 티베트어: gzugs can ma yin pa, 영어: immaterial dharmas)은 줄여서 무색(無色)이라고도 한다.[73][74]

색법이 아닌 모든 을 말하는데, 유위법에 대해서만 적용할 경우 무색법(無色法)은 설일체유부5위 75법법체계에서 심법(心法) · 심소법(心所法) ·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을 통칭하는 말이다. 또는 유식유가행파법상종5위 100법법체계에서 심법 · 심소법 · 심불상응행법을 통칭하는 말이다.[75]

무위법까지 포함된 일체법에 대해 적용할 경우, 무색법(無色法)은 설일체유부5위 75법법체계에서, 색법을 제외한 모든 심법 · 심소법 · 심불상응행법 · 무위법을 통칭하는 말이다. 또는 유식유가행파법상종5위 100법법체계에서, 색법을 제외한 모든 심법 · 심소법 · 심불상응행법 · 무위법을 통칭하는 말이다.[76]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6권에 따르면,

무색법(無色法)은 일체법을 이루는 12처(十二處) 가운데 1처와 '1처의 일부[少分]'를 통칭한다. 즉, 의처(意處)와 '무표색(無表色)을 제외한 법처(法處)의 일부'를 통칭한다.[77][78] 여기서, '무표색(無表色)을 제외한 법처(法處)의 일부'는 유위법에 대해 적용할 경우 심소법심불상응행법이 되고, 일체법에 대해 적용할 경우 심소법 · 심불상응행법 · 무위법이 된다.

무색유[편집]

무색유(無色有)는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의 3유(三有) 가운데 하나로,(有)는 존재 또는 그 존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뜻한다. 세계라는 뜻에서는 무색유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3계(三界) 가운데 무색계(無色界)와 동의어이다. 그리고 존재라는 뜻에서는 무색계무색계윤회할 수 밖에 없는 상태 또는 경지유정을 말한다.[55][56][57][58] 이 경우 번역하여 빛깔이 없는 존재라고도 한다.[79][80]

무생지[편집]

무생지(無生智, 산스크리트어: anutpāda-jñāna, 산스크리트어: anuppāda-ññāna)는 10지(十智) 가운데 하나로, 《품류족론》과 《구사론》에 따르면 무생지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81][82][83][84]

"나는 이미 [미래의 괴로움을 포함한 모든] 괴로움을 알았으므로 다시 더 알아야 할 괴로움이 없다[我已知苦不復當知]. 나는 이미 [미래의 괴로움의 원인을 포함한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으므로 다시 더 끊어야 할 괴로움의 원인이 없다[我已斷集不復當斷]. 나는 이미 [미래의 괴로움의 소멸을 포함한 모든]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였으므로 다시는 더 증득해야 할 괴로움의 소멸이 없다[我已證滅不復當證]. 나는 이미 [미래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포함한 모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으므로 다시는 더 닦아야 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 없다[我已修道不復當修]."라고 스스로 두루 알아서[遍知], 이러한 변지(遍知, 산스크리트어: parijñā)의 상태로부터 일어나는 (智) · (見) · (明) · (覺) · (解) · (慧) · (光) · (觀)을 모두 통칭하여 무생지라 한다. (참고: 혜의 8가지 다른 이름)

무색탐[편집]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

무색탐(無色貪)은 무색(無色)에 대하여 일으킨 모든 (貪) · 등탐(等貪) · 집장(執藏) · 방호(防護) · 탐착(耽著) · 애락(愛樂)을 통칭한다. 즉, 무색계존재에 대한 (貪) · 그 모두에 대한 탐[等貪] · 꽉 쥐어서 간직함[執藏] ·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막아 수호함[防護] · 빠져서 들러붙음[耽著] · 갈망하며 좋아함[愛樂]의 마음작용을 통칭한다.[85][86]

무소수속[편집]

무소수속(無所隨屬)은 온갖 공덕(功德)과 유덕자(有德者: 즉 스승)에 대해 수속(隨屬)하는 바가 없는 것 즉 따라 속하는 바가 없는 것 즉 제자로서의 예의가 없는 것으로, 《구사론》에 따르면, 무경(無敬) · 무숭(無崇) · 무기탄(所忌難)과 함께 무참(無慚)의 마음작용본질적 성질을 이룬다.[6][7]

무손뇌[편집]

무손뇌(無損惱)는 유정에 대하여 손뇌(損惱)가 없는 것 즉, 유정에 대해 손상시키거나 괴롭히려는 마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구사론》에 따르면, 무손뇌불해(不害)의 마음작용본질적 성질이다.[87][88]

무숭[편집]

무숭(無崇)은 온갖 공덕(功德)과 유덕자(有德者: 즉 스승)에 대해 존중함이 없는 것으로, 《구사론》에 따르면, 무경(無敬) · 무기탄(所忌難) · 무소수속(無所隨屬)과 함께 무참(無慚)의 마음작용본질적 성질을 이룬다.[6][7]

무심[편집]

무심(無心)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1. 무심(無心)은 망념(妄念)을 멀리 떠난 진심(眞心: 참된 마음)을 가리킨다.[89] 이것은 심식(心識) 즉 마음이 없다는 말이 아니며, 심식마음이 범성(凡聖) · 조묘(粗妙) · 선악(善惡) · 미추(美醜) · 대소(大小) 등의 사량분별정식(情識)과 처소(處所), 즉 3계(三界)의 일체의 (處) 또는 (天)을 멀리 떠나서 이들에 집착하지 않고 이들에 의해 장애되지 않는 무애자재의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유위(有爲)의 상태를 멀리 떠나 무위(無爲)를 증득한 상태를 말한다.[90]

2. 허망하게 분별하는 마음환영(幻影) 즉 유위법(有爲法)이므로, 결국 마음에는 찾을 수 있는 자성(自性)이 없다는 것을 가리켜 무심(無心)이라 한다.[89]

3. 무심(無心)은 미혹되어 본성을 잃어버린 마음을 말한다. 난심(亂心)의 뜻 중에는 이 뜻과 같은 뜻이 있다.[90]

4. 설일체유부 등의 부파불교에서, 무심(無心)은 무상정(無想定, asajjñā-samāpatti)이나 멸진정(滅盡定, nirodha-samāpatti)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무상정은 제4정려(靜慮), 즉 색계 제4천의 선정(禪定)의 상태이며, 멸진정무색계 제4천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선정(禪定)의 상태이다. 이에 대해, 무상정멸진정 이외의 삼계의 어느 (處) 또는 (天)에 처해 있는 상태의 마음유심(有心)이라 한다.[91]

5. 무심(無心)은 유식유가행파법상종에서 말하는 무상천(無想天) · 무상정(無想定) · 멸진정(滅盡定) · 극수면(極睡眠) · 극민절(極悶絶)의 오위무심(五位無心)을 말한다. 이들 5가지 상태[位]에서는 8식제6식의식(意識)이 잠깐 단절하므로 무심(無心)이라 한다.[89][92]

무위법[편집]

무위법(無爲法)은,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구분 방식에 따라 일체법을 크게 색법(色法) · 심법(心法) · 심소법(心所法) ·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 무위법(無爲法)의 순서로 5가지 그룹[五法 또는 五位]으로 나눌 때[93][94] 또는 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법상종의 구분 방식에 따라 일체법을 크게 심법(心法) · 심소법(心所法) · 색법(色法) ·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 무위법(無爲法)의 순서로 5가지 그룹으로 나눌 때[95][96], 이들 5가지 그룹 중의 하나로, 유위법에 속하지 않은 들을 통칭한다. 줄여서 무위(無爲)라고도 한다.

설일체유부의 《아비달마품류족론》에 따르면, 허공(虛空) · 비택멸(非擇滅) · 택멸(擇滅)의 3가지 무위법에 속한다.[97][98]

대승불교의 《대승백법명문론》에 따르면, 허공(虛空) · 택멸(擇滅) · 비택멸(非擇滅) · 부동멸(不動滅) · 상수멸(想受滅) · 진여(眞如)의 6가지 무위법에 속한다.[99][100]

무의어[편집]

무의어(無義語)는 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히 꾸민 말)의 다른 말이다.

무전도해[편집]

무전도해(無顛倒解)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전도됨이 없는 이해 또는 뒤바뀌지 않은 이해로, 구체적으로는 무아(無我) · 무상(無常) · (因: 원인) · (果: 결과) · 공용(功用: 작용) · 실사(實事: 참다운 존재) · (苦) · 부정(不淨)에 대한 바른 이해를 말한다.

현양성교론》에 따르면, 살가야견(薩迦耶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의 5견(五見)은 각각 다음의 작용[業]을 한다.

무지[편집]

1. 무지(無知)는 마음인식대상(事: 사물, 현상)와 (理: 이치, 본질)를 밝게 알지 못하는 것이다.[111][112] 무명(無明)의 다른 말이다.

2. 무지(無智)는 마음인식대상(事: 사물, 현상)와 (理: 이치, 본질)를 밝게 결택(決擇: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함)할 수 없는 상태이다.[113][114] 무명(無明)의 다른 말이다.[45][46]

무진[편집]

무진(無瞋, 산스크리트어: apratigha, adveṣa, 팔리어: adosa, 영어: good will, non-aggression, non-hatred, imperturbability, non-anger)은 선근(善根) 중의 하나이며, 설일체유부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가운데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법상종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 중 선심소(善心所: 11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무진(無瞋)은 유정(有情)과 비유정(非有情)에 대해 미워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10][115][116][117] 설일체유부중현(衆賢)은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에서, 무진(無瞋)이란 유정이나 비유정에 대해 미워하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는 애민(哀愍: 가엾고 불쌍히 여김)의 종자라고 말하고 있다.[115]

무집수[편집]

유집수(有執受, 산스크리트어: upātta)는 심법(心法: 마음)과 심소법(心所法: 마음 작용)이 함께 집지(執持) · 포섭(包攝)하여 의처(依處), 즉 소의(所依: 도구, 감각 기관)나 경계(境界: 대상)로 삼는 (色, 물질)이다. 반면, 무집수(無執受, 산스크리트어: anupātta)는 이러한 뜻이 없는 (色, 물질)을 말한다.[118]

무참[편집]

무참(無慚, 산스크리트어: āhrīkya, ahrī, 팔리어: ahirika, 영어: lack of shame, lack of consciousness, consciencelessness, shamelessness)은 설일체유부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 가운데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법상종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의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20가지) 중 중수번뇌심소(中隨煩惱心所: 2가지) 가운데 하나이다.[119][120]

무참(無慚)은 (慚)의 반대인데, (戒) · (定) · (慧)의 3학(三學)의 공덕이 있는 사람, 즉 스승을 공경하지 않는 마음작용, 또는 죄과를 범한 경우에도 그것을 관찰 · 반성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마음작용이다.[10][121][122]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

무참(無慚)은 다음을 통칭한다.[123][124]
  • 불참(不慚): 자신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부등참(不等慚): 그 모두에 대해 자신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불각별참(不各別慚): 각각 따로따로에 대해 자신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불치(不羞):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부등치(不等羞): 그 모두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불각별치(不各別羞): 각각 따로따로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불염(不厭): 싫어하지 않음
  • 부등염(不等厭): 그 모두에 대해 싫어하지 않음
  • 불각별염(不各別厭): 각각 따로따로에 대해 싫어하지 않음
  • 불훼(不毀): 무너뜨리지 않음
  • 부등훼(不等毀): 그 모두에 대해 무너뜨리지 않음
  • 불각별훼(不各別毀): 각각 따로따로에 대해 무너뜨리지 않음
  • 무존(無尊): 존중함이 없음
  • 무경(無敬): 공경함이 없음
  • 무소자재(無所自在): 제멋대로 하지 않는 것이 없음
  • 무자재전(無自在轉): 제멋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없음
  • 무소외기자재이행(無所畏忌自在而行):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것이 없고 제멋대로 행동함

무참과 무괴[편집]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

다음은 무참(無慚)과 무괴(無愧)의 공통된 마음작용들이다.[123][124][13][14]
  • 불치(不羞):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부등치(不等羞): 그 모두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불각별치(不各別羞): 각각 따로따로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음
  • 불염(不厭): 싫어하지 않음
  • 부등염(不等厭): 그 모두에 대해 싫어하지 않음
  • 불각별염(不各別厭): 각각 따로따로에 대해 싫어하지 않음
  • 불훼(不毀): 무너뜨리지 않음
  • 부등훼(不等毀): 그 모두에 대해 무너뜨리지 않음
  • 불각별훼(不各別毀): 각각 따로따로에 대해 무너뜨리지 않음

무치[편집]

무치(無癡, 산스크리트어: amoha, 팔리어: amoha, 영어: wisdom, non-delusion, non-bewilderment, lack of naivety, lack of stupidity)는 어리석음이 없음 또는 어리석지 않음으로, 선근(善根) 중의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법상종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 중 선심소(善心所: 11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설일체유부5위 75법에서는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대지법(大地法: 10가지) 가운데 하나인 (慧)에 속한 것으로 보아 별도의 법으로 설정하지 않는다.[10][115][125][126] 무치(無癡)는 모든 의 사리(事理)를 밝게 아는[明解] 마음작용으로, 우치(愚癡)의 마음작용을 대치(對治)하여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선법(善法)을 행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125][126]

현양성교론·대승오온론·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무치(無癡: 어리석음이 없음, 어리석지 않음)는 정지(正知) 또는 정료(正了) 즉 바른 앎과 동의어이다.[127][128][129][130] 그리고 무치 · 정지 · 정료본질4성제12연기진리계합하는 8정도6바라밀 등의 여실정행(如實正行) 또는 정행(正行)이다. 즉, 무치 · 정지 · 정료여실정행 또는 정행과 동의어이다.[129][130][131][132][133]

달리 말하면, 불교에서의 은 경험에 의한 앎 또는 수행을 통해 증득된 앎이며, 보시계율 등의 실천[行]과 분리되지 않는다. 멘탈적인(지적인) 앎은 실천[行]의 단지 한 부분이며 기초일 뿐이다. 멘탈적인 앎을 전통적인 용어로 문혜(聞慧)와 사혜(思慧)라고 하며, 이 둘은 모두 유루지이다. 즉 성인지혜 또는 이 아니다. 하지만, 성인지혜 또는 무루혜성취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134][135][136]

무탐[편집]

무탐(無貪, 산스크리트어: alobha, 팔리어: alobha, 영어: purity, non-attachment, without attachment)은 선근(善根) 중의 하나이며, 설일체유부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가운데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법상종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 중 선심소(善心所: 11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무탐(無貪)은 애착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10][115][137][138] 즉, 불생불멸무위법출세간의 존재나 대상이 아닌 생멸변화하는 유위법세간의 존재나 대상에 대해 애착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 설일체유부중현(衆賢)은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에서, 무탐(無貪)이란 이미 획득하였거나 아직 획득하지 않은 [세속의] 경계에 대한 탐착 · 희구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마음에 애염(愛染: [세속의 경계에] 애착하는 번뇌, 탐착)이 없는 것을 본질로 한다[無愛染性]고 말하고 있다.[115]

무족[편집]

무족(無足)은,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안혜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호법 등의 《성유식론》 등에 나오는, 정진(精進) 또는 (勤)의 5단계의 차별인 피갑(被甲) · 가행(加行) · 무하(無下) · 무퇴(無退) · 무족(無足)의 5정진(五精進) 가운데 하나이다.[139][140][141][142] 무희족(無喜足)이라고도 한다.[143][144]

무족(無足)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만족하지 않음'으로, 불교 경전에서 [牛]에게 멍에를 씌움으로써 로 하여금 도망가지 않고 능히 나아가게 하는 것과 같이 수행자에게 멍에를 지워 선법(善法)에서 벗어나지 않고 열반에 나아가게 한다는 뜻의 불사선액(不捨善軛: 선의 멍에을 버리지 않음)에 해당하는데, 이전의 무퇴(無退)의 노력과 성취에 안주하여 정체되지 않고 4성제를 관찰하는 수행인 제관(諦觀) 등의 보다 뛰어난 (道)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142]

무퇴[편집]

무퇴(無退)는,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안혜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호법 등의 《성유식론》 등에 나오는, 정진(精進) 또는 (勤)의 5단계의 차별인 피갑(被甲) · 가행(加行) · 무하(無下) · 무퇴(無退) · 무족(無足)의 5정진(五精進) 가운데 하나이다.[139][140][141][142] 불퇴전(不退轉)이라고도 한다.[143][144]

무퇴(無退)는 문자 그대로의 뜻은 '물러나지 않음'으로, 불교 경전에서의 견용(堅猛: 견고하고 용맹한 것)에 해당하는데, 추위나 배고픔 등의 고통을 능히 인내로써 받아들이고, 열등한 (善) 또는 선법(善法)에 대해서 혐오(嫌惡)나 만족함을 일으키지 않으며, 다음 단계의 뛰어난 공덕 등을 기쁘게 구하는 것을 말한다.[142]

무하[편집]

무하(無下)는,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안혜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호법 등의 《성유식론》 등에 나오는, 정진(精進) 또는 (勤)의 5단계의 차별인 피갑(被甲) · 가행(加行) · 무하(無下) · 무퇴(無退) · 무족(無足)의 5정진(五精進) 가운데 하나이다.[139][140][141][142] 무겁약(無怯弱)이라고도 한다.[143][144]

무하(無下)는 문자 그대로의 뜻은 '낮추지 않음'으로, 불교 경전에서의 유용(有勇: 용감한 것)에 해당하는데, 증득해야 할 선법(善法)에 대해 스스로를 경멸하지 않고, 그 선법(善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142]

무학[편집]

무학(無學, 산스크리트어: aśaiksa)은 성도(聖道)를 모두 성취(成就)한 성자(聖者), 즉 아라한(阿羅漢)을 가리킨다.[145] (참고: 유학(有學))

무학작의[편집]

무학작의(無學作意)는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에서 작의(作意)의 마음작용을 3가지로 나눈 학작의(學作意) · 무학작의(無學作意) · 비학비무학작의(非學非無學作意)의 3작의(三作意) 가운데 하나이다.[146][147]

무학작의(無學作意)는 무학(無學) 즉 무학위(無學位: 배울 것이 없는 계위)의 성자아라한작의를 말한다.[146][147]

무희족[편집]

무희족(無喜足)은 무족(無足)의 다른 말이다.

참고 문헌[편집]

주석[편집]

  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p. 95 / 1397.
  2. 운허, "等無間緣(등무간연)". 2012년 10월 18일에 확인.
  3. 星雲, "等無間緣". 2012년 10월 18일에 확인.
  4. 운허, "不可見無對色(불가견무대색)". 2011년 8월 31일에 확인.
  5. 운허, "不可見有對色(불가견유대색)". 2011년 8월 31일에 확인.
  6.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a03 - T29n1558_p0021a09. 무참(無慚). 
    "今次當說於前所辯諸心所中少分差別。無慚無愧愛之與敬差別云何。頌曰。
      無慚愧不重  於罪不見怖
      愛敬謂信慚  唯於欲色有
    論曰。此中無慚無愧別者於諸功德及有德者。無敬無崇無所忌難無所隨屬說名無慚。即是恭敬所敵對法。"
  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제4권. p. 180 / 1397. 무참(無慚). 
    "이제 다음으로 마땅히 앞에서 분별한 온갖 심소법 가운데 약간의 차별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참(無慚)과 무괴(無愧), 애(愛)와 경(敬)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무참과 무괴는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죄를 두렵게 여기지 않는 것이며,
      '애'와 '경'이란 말하자면 신(信)과 참(慚)으로서
      오로지 욕계와 색계에만 있을 뿐이다.
      無慚愧不重 於罪不見怖
      愛敬謂信慚 唯於欲色有
    논하여 말하겠다. 무참과 무괴의 차별은 이러하다. 온갖 공덕(戒·定·慧의 삼학을 말함)과 공덕 있는 자(즉 스승)에 대해 공경하는 일이 없고, 숭배하는 일이 없으며, 어렵게 여겨 꺼리는 일[忌難]도 없을 뿐더러, 따라 속하는 일[隨屬], 즉 제자로서의 예의도 없는 것을 일컬어 무참이라고 한다. 즉 이는 바로 공경에 적대되는 법이다.68)
    68) 그러나 무참은 공경이 결여된 상태는 아니며, 개별적 존재[別體]로서 공경과 대응하는 법이다. 무명(無明)과 명(明)의 관계 역시 이러하다.(본론 「세간품」 권제10 참조.)"
  8. 星雲, "無愧". 2012년 10월 9일에 확인.
  9. 운허, "無愧(무괴)". 2012년 10월 9일에 확인.
  10. 권오민 (2003), pp. 69-81.
  1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pp. 181-182 / 1397 무괴(無愧). 
    "또한 모든 선사(善士)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을 일컬어 죄(罪)라고 하는데, 이러한 죄에 대해 두렵게 보지 않는 것을 일컬어 무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두렵다'는 말은 애호할 만하지 않은 과보를 나타내니, 그것은 능히 두려움을 낳기 때문이다. ...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지은 죄에 대해 ... 다른 것(이를테면 이숙과, 애호할 만하지 않은 과보)을 관찰하고서도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을 일컬어 무괴라 한다'고 하였다."
  12.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p. T29n1558_p0021a09 - T29n1558_p0021a18
    "為諸善士所訶厭法說名為罪。於此罪中不見怖畏說名無愧。此中怖言。顯非愛果。能生怖故。... 有餘師說。於所造罪...觀他無恥說名無愧。"
  13.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0c28 - T26n1542_p0701a02. 무괴(無愧). 
    "無愧云何。謂不愧不等愧不各別愧。不恥不等恥不各別恥。不厭不等厭不各別厭。不毀不等毀不各別毀。不怖罪不懼罪於罪不見怖。是名無愧。"
  14.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3권. p. 50 / 448. 무괴(無愧). 
    "무괴(無愧)는 무엇인가?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고[不愧] 평등하게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고[不等愧] 각각 따로따로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으며[不各別愧], 부끄러워하지 않고[不恥] 평등하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각각 따로따로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싫어하지 않고[不厭] 평등하게 싫어하지 않고 각각 따로따로 싫어하지 않으며, 무너뜨리지 않고[不毁] 평등하게 무너뜨리지 않고 각각 따로따로 무너뜨리지 않으며,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무서워하지 않고 죄에 대하여 두렵게 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무괴’라 한다."
  15.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a12 - T26n1542_p0693a13. 사(思). 
    "思云何。謂心造作性。即是意業。此有三種。謂善思不善思無記思。"
  16.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1권. p. 4 / 448. 사(思). 
    "사(思)란 무엇인가? 마음에서 조작하는 성품[造作性]이니, 곧 그것은 의업(意業)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착한 사[善思]·착하지 못한 사[不善思]·무기의 사[無記思]이다."
  17.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5), 제1권. p. T31n1605_p0664a24 - T31n1605_p0664a25
    "何等為思。謂於心造作意業為體。於善不善無記品中役心為業。"
  18.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K.572, T.1605), 제1권. p. 8 / 159. 사(思). 
    "어떠한 것이 사(思)심소법입니까? 마음을 조작하는 의업(意業)이 그 바탕이다. 선품ㆍ불선품ㆍ무기품 가운데에서 그 마음을 부리는 것으로 업(業)을 이루게 된다."
  19.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2), p. T31n1612_p0848c13 - T31n1612_p0848c14
    "云何為思。謂於功德過失及俱相違。令心造作意業為性。"
  2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618, T.1612), p. 8 / 12. 사(思). 
    "어떤 것이 사(思)인가. 공덕과 과실과 두 가지가 아닌 것에 대해 마음을 조작하게 하는 의업(意業)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21. 星雲, "無對". 2013년 5월 24일에 확인. 
    "無對:  梵語 apratigha。對,為礙之意。無對,即非極微所成之無障礙法。「有對」之對稱。十二處中,眼、耳、鼻、舌、身等五根及色、聲、香、味、觸五境等十處有障礙,故為有對;意處、法處無障礙,故為無對。然有對分為障礙有對、境界有對、所緣有對三種。今十色處為有對,意處、法處為無對,乃就障礙有對而論。〔大毘婆沙論卷七十六、俱舍論卷二、成唯識論述記卷二〕(參閱「有對」2451) p5127"
  22. 운허, "不可見無對色(불가견무대색". 2013년 5월 24일에 확인. 
    "不可見無對色(불가견무대색): 3종 색(色)의 하나. 무표색(無表色)은 안식(眼識)으로 볼 수 없으므로 불가견이라 하고, 또 극미(極微)에서 났으나 극미로 된 것은 아니어서 다른 것에 대하여, 장애하는 성품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무대색이라 함."
  23. DDB, "無對". 2013년 5월 24일에 확인. 
    "無對:
    Pronunciations: [py] wúduì [wg] wu-tui [hg] 무대 [mc] mudae [mr] mudae [kk] ムタイ [hb] mutai [qn] vô đối
    Basic Meaning: unobstructed
    Senses:
    # Unopposed, unhindered; non-resistance. Here 對 is equivalent in meaning to 礙 or 障, and the specific reference in the Yogâcāra context is to unhindered phenomena 無障礙法, the opposite of 有對. Among the twelve sense fields 十二處, the five organs 五根 of eyes 眼, ears 耳, nose 鼻, tongue 舌 and body, as well as the five objects of 五境 form 色, sound 聲, odor 香, gustatory 味 and tactile 觸 are considered to be hindered, and thus termed 有對. The field of thought 意處 (法處) is unhindered. (Skt. apratigha, apratighatva, apratighavat, apratihata, apratisama, asapatna; Tib. thogs pa med pa) 〔瑜伽論 T 1579.30.346a29〕 [Charles Muller; source(s): YBh-Ind, JEBD]
    # apratigha. Opposite of utai. What is not hindered or restricted, mind (manas) and its object (dharma). These two are not made of paramānus (atoms). [Charles Muller; source(s): JEBD]
    # Also in: CJKV-E
    # Cf. Karashima (Lokakṣema Glossary): view / hide
    無對
    wú duì
    having no counterparts ? (probably a translation of Skt. vivikta isolated)
    HD.7.145(南朝陳代)
    T 224.8.466a24 須菩提白佛言:“設爾,般若波羅蜜離本無對,法離本亦無對,亦無證,亦無守,亦無行,亦無有法當有所得。……” (p) AS.217.19 = R.439.14 = AAA.838.4. atyanta-viviktā (prajñāpāramitā ... dharmo) atyanta-vivikto (“[perfect wisdom] is absolutely isolated. [But a dharma which] is absolutely isolated, ...” [AsP.tr.II 256 = AsP.tr. 179])
    ZQ.501b22.(明度)離本無對, (曰法[s.e. for 法離?])本無對
    not found at Zfn.
    Kj.575b22.(般若波羅蜜)畢竟離,(若法)畢竟離
    Xz(I).850a18.畢竟離…畢竟離
    Xz(II).915a14.畢竟離
    Sh.661a14 = Xz(I)
    Tib.Pk.257a3 = D.238a2. shin tu dben pa ... shin tu dben pa
    [Dictionary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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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kakṣema's 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Karashima) 509"
  24. 곽철환 (2003), "무대(無對)". 2013년 5월 24일에 확인. 
    "무대(無對): 대(對)는 방해·장애를 뜻함. 물질과 같이 공간을 점유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 곧 의식이나 의식 내용."
  25. 星雲, "對礙". 2013년 5월 23일에 확인. 
    "對礙:  為色法之特性。指二種物質互相障礙,無法同時占有同一空間;又由心等對象之拘束,而無從自由活動。據俱舍論卷二載,前一情形為障礙有對,後一情形為境界有對及所緣有對。有對,意即有對礙之性質者;無此性質者,則稱為無對。上述三種有對中,障礙有對如手礙手、石礙石,即指五根、五境之十色法(物質),均由極微(分子)所構成,彼此互礙而被礙。境界有對指六根、六識與伴此而起之心所(心之作用),為所取之對境所拘束,而取境之作用不得自在。所緣有對指心(六識與意根)與伴此而起之心所,為各所緣之法所拘束,而緣慮之作用不得自在。境界有對與所緣有對之區別,在於前者以感覺之認識為主,較為廣泛;後者則以悟性之判斷認識為主,故較為偏狹。 p5796"
  26. 곽철환 (2003), "유대(有對)". 2013년 5월 23일에 확인. 
    "유대(有對): 대(對)는 방해·장애를 뜻함.
    ① 두 개의 물질이 서로 방해하여 동시에 같은 공간을 점유할 수 없는 것.
    ② 마음이 대상에 구속되어 자유롭지 못함."
  27. 佛門網, "無對". 2013년 5월 24일에 확인. 
    "無對: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1.無障礙性者,如「不可見無對」、「依於無對」。2.無相對應,指「無相似」或「無相反的對比」,如「涅槃者無對也」。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雜集論三卷七頁云:云何無對?幾是無對?為何義故,觀無對耶?謂有對相違,是無對義。一切皆是無對。或隨所應。為捨執著遍行我故;觀察無對。"
  28. 佛門網, "無障礙". 2013년 5월 24일에 확인. 
    "無障礙: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瑜伽十五卷八頁云:無障礙者:復有四種。一、非覆障所礙,二、非隱障所礙,三、非映障所礙,四、非惑障所礙。覆障所礙者:謂黑闇,無明闇,不澄清色闇,所覆障。隱障所礙者:謂或藥草力,或咒術力,或神通力,之所隱障。映障所礙者:謂少小物,為廣多物之所映奪,故不可得。如飲食中藥,或復毛端。如是等類,無量無邊。且如小光,大光所映,故不可得。所謂日光映星月等。又如月光映奪眾星。又如能治映奪所治,令不可得。謂不淨作意,映奪淨相,無常苦無我作意,映奪常樂我相,無相作意,映奪一切眾相。惑障所礙者:謂幻化所作,或色相殊勝,或復相似;或內所作,目眩、惛夢、悶醉、放逸、或復顛狂。如是等類,名為惑障。若不為此四障所礙;名無障礙。"
  29.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6권. p. T26n1542_p0714a16 - T26n1542_p0714a17. 유대법(有對法)과 무대법(無對法). 
    "有對法云何。謂十處。無對法云何。謂二處。"
  30.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6권. p. 128 / 448. 유대법(有對法)과 무대법(無對法). 
    "유대법(有對法)은 무엇인가? 10처(處:五根處·五境處)를 말하는 것이다.
    무대법(無對法)은 무엇인가? 2처(處:意處·法處)를 말하는 것이다."
  31.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제2권. p. T29n1558_p0007a07 - T29n1558_p0007b14. 유대법(有對法)과 무대법(無對法). 
    "復次於前所說十八界中。幾有見幾無見。幾有對幾無對。幾善幾不善幾無記。頌曰。
      一有見謂色  十有色有對
      此除色聲八  無記餘三種
    論曰。十八界中色界有見。以可示現此彼差別。由此義准說餘無見。如是已說有見無見。唯色蘊攝十界有對。對是礙義。此復三種。障礙境界所緣異故。障礙有對。謂十色界。自於他處被礙不生。如手礙手或石礙石或二相礙。境界有對。謂十二界法界一分。諸有境法於色等境。故施設論作如是言。有眼於水有礙非陸。如魚等眼。有眼於陸有礙非水。從多分說。如人等眼。有眼俱礙。如畢舍遮室獸摩羅及捕魚人蝦蟆等眼。有俱非礙。謂除前相。有眼於夜有礙非晝。如諸蝙蝠鵂鶹等眼。有眼於晝有礙非夜。從多分說。如人等眼。有眼俱礙。如狗野干馬豹豺狼貓狸等眼。有俱非礙。謂除前相。此等名為境界有對。所緣有對。謂心心所於自所緣。境界所緣復有何別。若於彼法此有功能。即說彼為此法境界。心心所法執彼而起。彼於心等名為所緣。云何眼等於自境界所緣轉時說名有礙。越彼於餘此不轉故。或復礙者是和會義。謂眼等法於自境界及自所緣和會轉故。應知此中唯就障礙有對而說。故但言十有色有對。更相障故。由此義准說餘無對。若法境界有對。亦障礙有對耶。應作四句。謂七心界法界一分諸相應法是第一句。色等五境是第二句。眼等五根是第三句。法界一分非相應法是第四句。若法境界有對。亦所緣有對耶。應順後句。謂若所緣有對。定是境界有對。有雖境界有對而非所緣有對。謂眼等五根。此中大德鳩摩邏多作如是說。
      是處心欲生  他礙令不起
      應知是有對  無對此相違
    此是所許。如是已說有對無對。"
  3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제20권. pp. 54-57 / 1397. 유대법(有對法)과 무대법(無對法). 
    "다시 다음으로 앞에서 설한 18계 중에서 몇 가지가 유견(有見)이고, 몇 가지가 무견(無見)이며, 몇 가지가 유대(有對)이고, 몇 가지가 무대(無對)인가? 또한 몇 가지가 선(善)이고, 몇 가지가 불선이며, 몇 가지가 무기인가?1)
    게송으로 말하겠다.
      이를테면 색 한 가지가 유견이고
      열 가지 유색(有色)이 유대이며
      이 중의 색과 성(聲)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가지는
      무기이고, 그 밖의 것은 세 가지(선·불선·무기)이다.
      一有見謂色 十有色有對
      此除色聲八 無記餘三種
    논하여 말하겠다. 18계 중에서 색계가 유견(有見)이니, 이러한 색과 저러한 색의 차별을 드러내어 나타낼[示現]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뜻에 준하여 그 밖의 것은 무견이라고 설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유견과 무견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오로지 색온에 포섭되는 10계만이 유대(有對)인데, 여기서 '대'란 바로 장애[礙]의 뜻이다. 유대에는 다시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장애(障礙)와 경계(境界)와 소연(所緣)이 다르기 때문이다.
    장애유대란 열 가지의 색계(즉 유색처)를 말하는데, 그 같은 색 자체는 다른 색이 있는 곳에서는 장애 되어 생겨나지 못하니, 이를테면 손이 손을 장애하고, 혹은 돌이 돌이 장애하며, 혹은 손과 돌이 서로를 장애하는 것과 같다.2)
    경계유대란 12계(6근·6식)와 법계 일부(심상응의 심소)를 말한다. 즉 경계를 갖는 모든 법[有境法]은 색 등의 경계를 [취하는 공능이 있기 때문으로](경계가 부재하면 장애 되어 생겨나지 않음),3) 그래서 『시설론(施設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눈은 물에서는 장애 되어도 육지에서는 장애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물고기 따위의 눈이 그러하다. 어떤 눈은 육지에서는 장애 되어도 물에서는 장애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대개의 경우에 따라 설하자면 사람 등의 눈이 그러하다. 어떤 눈은 물이나 육지 모두에서 장애 되는 경우가 있으니, 필사차(畢舍遮, pisaca, 아귀의 일종)나 실수마라(室獸摩羅, sisumara, 악어를 말함), 그리고 물고기 잡는 사람[捕魚人]과 하마(蝦) 등의 눈이 그러하다. 어떤 눈은 물이나 육지 어디에서든 장애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것을 제외한 눈(예컨대 맹인의 눈)이 그러하다.4)
    또한 어떤 눈은 밤에는 장애 되어도 낮에는 장애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모든 박쥐나 올빼미 따위의 눈이 그러하다. 어떤 눈은 낮에는 장 애 되어도 밤에는 장애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대개의 경우에 따라 설하자면 사람 등의 눈이 그러하다. 어떤 눈은 낮과 밤 모두에 장애 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개·여우[野干]·말·표범·승냥이·고양이·이리 등의 눈이 그러하다. 어떤 눈은 밤과 낮 모두에 장애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것을 제외한 눈(예컨대 맹인의 눈)이 그러하다. 이러한 등등의 것을 일컬어 경계유대하고 한다.
    소연유대란 심·심소법이 자신의 소연에 대해서만 [현기(現起)하는] 것을 말한다.5)
    그렇다면 경계와 소연에는 다시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인가?
    만약 그러한 법(즉 색등의 경계)에 대해 이것(즉 6근· 6식과 심소)이 공능을 갖게 되면, 그것은 이러한 법의 경계가 되었다고 설한다. 그리고 심·심소법의 경우 그러한 법을 집취하여 일어나므로 그러한 법은 심 등에 대해 소연이 된다고 일컫는 것이다.6)
    어떠한 까닭에서 안(眼) 등이 자신의 경계나 소연에서 일어날[轉] 때를 설하여 '장애를 갖는다[有礙]'고 일컫는 것인가?
    이것들은 그러한 것(즉 경계와 소연)을 초월한 다른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다시 여기서 '애(礙)'란 바로 화회(和會, nip ta, 낙하의 뜻. 구역은 到)의 뜻으로, 말하자면 안 등의 법은 자신의 경계나 자신의 소연과 화회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땅히 알아야 할 것으로, 여기(게송)서는 오로지 장애유대에 대해서만 설하였기 때문에 다만 '열 가지 유색(有色)이 유대이다'고 말하였으니, 이러한 유색법은 서로가 서로를 장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뜻에 준하여 그 밖의 것은 무대(無對)라고 설할 수 있다.
    만약 어떤 법이 경계유대라면 그것은 또한 장애유대인가?
    마땅히 4구로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7심계와 법계의 일부인 모든 상응법은 바로 제1구(경계유대이면서 장애유대가 아닌 것)이며, 바로 색 등의 5경은 제2구(장애유대이면서 경계유대가 아닌 것)이며, 안 등의 5근은 바로 제3구(경계유대이면서 장애유대인 것)이며, 법계의 일부인 비(非)상응법은 바로 제4구(양자 모두 아닌 것)이다.7)
    만약 어떤 법이 경계유대라면 그것은 또한 소연유대인가?
    마땅히 순후구(順後句)로 분별해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만약 소연유대라면 그것은 결정코 경계유대이다. 그러나 어떤 법은 비록 경계유대이지만 소연유대가 아닌 것이 있으니, 이를테면 안 등의 5근이 바로 그러하다.
    이에 대해 대덕(大德) 구마라다(鳩摩邏多)는 다음과 같이 설하니,8) 이는 바로 인정[許]할 만한 것이다.
      그곳(소연)에서 마음이 생기하려 하나
      다른 것이 장애하여 생기하지 않게 하면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것이 바로 유대(有對)이고
      무대(無對)는 이와는 반대되는 것임을.9)
    이와 같이 유대와 무대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1) 본론 권제2에서는 18계법을 유견·무견, 선·불선 등의 스무 가지 갈래[門]로 분별하고 있다. 즉 온·처·계의 제법분별(諸法分別)은 바로 18계에 갖추어진 근 (根)·경(境)·식(識)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제법분별이란 18계에 포섭되는 일체의 만법(萬法)을 여러 관점에서 조명하여 그것의 내포(內包) 외연(外延)을 상세하게 규정하는 논의 방식을 말한다.
    2) 장애유대( vara a-pratigh ta)란 공간적 점유성[礙性]을 지니는 색법의 상호 제약적 관계를 말한다.
    3) 경계유대(vi aya-pratigh ta)란 인식기능과 그 대상 사이의 제약적 관계를 말한다.
    4) 제1구는 물 속에서는 볼 수 있어도 육지에는 볼 수 없는 눈, 제2구는 육지에서는 볼 수 있어도 물 속에서는 볼 수 없는 눈, 제3구는 물과 육지 모두에서 볼 수 있는 눈, 제4구는 물과 육지 모두에서 볼 수 없는 눈.
    5) 소연유대( lambana-pratigh ta)란 말하자면 심·심소와 대상간의 필연적 제약관계로서, 자신의 소연이 부재하면 장애되어 생기하지 않는다.
    6) 5근과 심·심소는 경계에 의해 그 생기가 제약되지만(경계유대), 경계는 또한 심·심소에 대해 소연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경계유대의 외연이 소연유대보다 넓다.
    7) 여기서 비상응법은 열네 가지 불상응행법(본론 권제4 참조), 세 가지 무위법, 그리고 무표색을 말한다.
    8) 구마라다(Kum ral ta). 구역에서는 구마라라다(鳩摩羅邏多)로 동수(童受)로 번역된다. 규기(窺基)의 『성유식론술기』에 의하면 불멸 후 100년 무렵에 출세한 경부본사(經部本師)로 일컬어지지만, 여기에는 이설이 많다. 이를테면 『대당서역기』에서는 마명(馬鳴)·제바(提婆)·용맹(龍孟) 즉 용수와 함께 당시 네 개의 태양[日]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대개 마명 용수 내지 『대비바사론』보다는 후대, 세친이나 중현보다는 전대, AD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의 인물로 파악되고 있다.
    9) 즉 경부(經部) 조사(祖師) 구마라다는 앞의 3종의 유대를 유부에서처럼 각각 실재적 관계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다만 의식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론적으로 이해하였다. 예컨대 청색에 대향(對向)하여 시의식이 생겨나려고 할 때, 이를테면 소리 따위가 이를 장애하여 생겨나지 않게 하면 이를 유대라 하고, 장애함이 없이 생겨나게 하는 것을 무대라고 하였다. 이는 색과 무표색, 심과 심소의 개별적 실재성을 부정하는 경량부로서는 당연한 이론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논주 세친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바로 인정할 만한 것이다[此是所許]'라고 말한 것이다."
  33.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a11 - T26n1542_p0693a12. 상(想). 
    "想云何。謂取像性。此有三種。謂小想大想無量想。"
  34.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1권. p. 4 / 448. 상(想). 
    "상(想)이란 무엇인가? 형상을 취하는 성품[取像性]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작은 생각[小想]·큰 생각[大想]·한량없는 생각[無量想]이다."
  35.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5), 제1권. p. T31n1605_p0664a03 - T31n1605_p0664a12
    "云何建立想蘊。謂六想身。眼觸所生想。耳觸所生想。鼻觸所生想。舌觸所生想。身觸所生想。意觸所生想。由此想故。或了有相。或了無相。或了小或了大。或了無量。或了無少所有無所有處。何等有相想。謂除不善言說無想界定及有頂定想。所餘諸想。何等無相想。謂所餘想。何等小想。謂能了欲界想。何等大想。謂能了色界想。何等無量想。謂能了空無邊處識無邊處想。何等無少所有無所有處想。謂能了無所有處想。"
  36.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K.572, T.1605), 제1권. p. 7 / 159. 상온(想蘊). 
    "어떻게 상온(想蘊)을 건립하게 됩니까? 6상신(想身)을 가리키는 것이니 안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고, 이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고, 비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고, 설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고, 신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고, 의촉에서 생겨나는 상온이다. 이 같은 상온에 연유하여 유상(有相)의 상온을 이해[了]하거나, 무상(無相)의 상온을 이해하거나, 소상(小想)을 이해하거나, 대상(大想)을 이해하거나, 무량(無量)한 상온을 이해하거나, 소유에 탐착하지 않는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상온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유상(有相)의 상온입니까?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발성을 여읜 무상(無相)의 계정(界定)과 유정정(有頂定)의 상온 및 그 밖의 나머지 상온이다. 어떠한 것이 무상(無相)의 상온입니까? 그 밖의 나머지 상온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소상(小想)입니까? 욕계의 상온을 이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떠한 것이 대상(大想)입니까? 색계의 상온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무량한 상온입니까? 공무변처(空無邊處)와 식무변처(識無邊處)의 상온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무소유처의 소유(所有)에 탐착하지 않는 상온입니까? 무소유처의 상온을 이해하는 것이다."
  37. 星雲, "無漏無為無漏有為". 2013년 5월 28일에 확인. 
    "無漏無為無漏有為:  無為,為真理之異稱。無漏無為,指遠離有漏雜染之法,為「無漏有為」之對稱。無漏無為與無漏有為皆遠離有漏雜染之法,故同稱無漏。有為、無為之區別,乃從無漏法之本體與作用來分別。無漏法之本體凝寂湛然不動,其作用則自在而應用無窮;故以本體觀之,是為無為,若由作用而言則稱有為。 p5131"
  38. 星雲, "有漏無漏". 2013년 5월 27일에 확인. 
    "有漏無漏:  為有漏與無漏之並稱。漏,為漏泄之義,即指煩惱。有煩惱而輪迴生死,稱為有漏;無煩惱而能出離生死,稱為無漏。於各種煩惱之間,具有互相隨增(隨順增長)關係者,稱為有漏法;無互相隨增關係者,稱為無漏法。在四聖諦中,苦、集二諦為有漏法,滅、道二諦為無漏法。
     關於有漏與無漏之分別,玆略述於下:世間凡夫有漏之身體,稱為有漏身;而無漏清淨之佛身,稱為無漏身。又修行有漏之六行觀,能招感人天三界之果報者,稱為有漏道、有漏路;而修行可證得涅槃道果之行法者,稱為無漏道、無漏路。以世俗之法為對象,所產生之智慧,稱為有漏智;而證知四諦之理,及見道以後的聖者之智慧,稱為無漏智。凡夫於見道之前所作之善,稱為有漏善;見道以後之聖者所作的無煩惱污穢之善,稱為無漏善。以有漏智所作之世俗行為,稱為有漏行;以無漏智所修之四諦觀行,稱為無漏行。以有漏道斷除煩惱,稱為有漏斷;以無漏道斷除煩惱,稱為無漏斷。有漏行能招感人、天等五道之有漏果,故稱為有漏因;無漏行可證得涅槃之無漏果,故稱為無漏因。又凡夫因修行六行觀,而住於四禪、四無色定、四無量心定等禪定中,稱為有漏定,或有漏禪;而聖者以無漏智所發得之禪定,稱為無漏定,或無漏禪,此無漏定生起於無漏九地(未至定、中間定、四根本定、下三無色定)中。
     此外,唯識家將佛果之淨識稱為無漏識;將未成佛以前之識,稱為有漏識。然第六、第七識於初地入見道時,稍可轉識得智,故亦可成為無漏識。至於前五識與第八識,則係於初成佛果時,方能轉變為無漏識。又無漏之覺悟,其本來寂然者,稱無漏無為;因作用而起動者,稱無漏有為。〔大毘婆沙論卷二十二、卷一七三、俱舍論卷一、卷二、卷十三、順正理論卷一、卷四十九、成唯識論卷五、卷十、成唯識論述記卷五末、卷十末〕 p2455"
  39. 운허, "有爲無漏(유위무루)". 2013년 5월 28일에 확인. 
    "有爲無漏(유위무루): 또는 무루유위(無漏有爲). 생멸하는 유위법으로서 무루인 것. 4제(諦) 중, 고제ㆍ집제는 유위무루. 멸제는 무위무루, 도제만은 유위무루. 만일 구사(俱舍)의 75법 중에서 말한다면 도공계(道共戒)의 무표(無表), 4제의 이치를 관하는 제6식 심왕ㆍ대지법(大地法)의 10, 대선지법(大善地法)의 10의 무루심상응(無漏心相應), 초선정(初禪定)에서 무루정(無漏定)과 상응하는 심(尋)ㆍ사(伺), 불상응법(不相應法) 중의 무루의 득(得)과 4상(相)의 29를 말함."
  40. 星雲, "無為法身". 2013년 5월 28일에 확인. 
    "無為法身:  又作無為法性身。即無為之佛之本體。法身,即無形無色,遍滿宇宙,顯絕對真理之佛身。因佛所證之法身湛然寂靜,離一切因緣造作,故稱無為法身。〔金剛仙論卷二、淨土論註卷下〕 p5113"
  41. 星雲, "無為涅槃界". 2013년 5월 28일에 확인. 
    "無為涅槃界:  涅槃為不生不滅,離一切有為之相,而達絕對不變覺悟之境界,故稱無為涅槃界。淨土宗之極樂世界,即無為涅槃界。〔轉經行道願往生淨土法事讚卷下〕 p5113"
  42. 星雲, "有為無漏". 2013년 5월 28일에 확인. 
    "有為無漏:  又作無漏有為。即指有為的無漏之法。俱舍宗認為四諦中,苦、集二諦為有為有漏法,滅諦為無為無漏法,道諦則雖為無漏法,然以具有生滅之性質,而凡有生滅者即屬有為法,故道諦又稱有為無漏法。此外,於七十五法中,色法中之無表色,心法中之第六識心王,心所有法中之十種大地法、十種大善地法、尋、伺,及心不相應行法中之得與生、住、異、滅四相等,共計二十九法,皆為有為無漏法。(參閱「七十五法」88、「四諦」1840) p2447"
  43.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0b03. 무명(無明). 
    "無明云何。謂三界無知性。"
  44.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3권. p. 46 / 463. 무명(無明). 
    "무명(無明)은 무엇인가? 3계(界)에 아는 것이 없는 성품[無知性]이다."
  45.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b15 - T26n1542_p0693b16. 무명결(無明結). 
    "無明結云何。謂三界無智。"
  46.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1권. p. 7 / 448. 무명결(無明結). 
    "무명결(無明結)이란 무엇인가? 3계(界)에서 지혜가 없는 것[無智]이다."
  47.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5), 제4권. p. T31n1605_p0676c20 - T31n1605_p0676c22. 무명결(無明結). 
    "無明結者。謂三界無智無明結所繫故。於苦法集法不能解了。不解了故廣行不善不行諸善。由此能招未來世苦。與苦相應。"
  48. 안혜 조, 현장 한역 (T.1606), 제6권. p. T31n1606_p0723c03 - T31n1606_p0723c07. 무명결(無明結). 
    "無明結者。謂三界無智。無明結所繫故。於苦法集法不能解了。不解了故廣行不善不行諸善。由此能招未來世苦與苦相應。於苦集法不解了者。謂於果性因性有漏諸行。所有過患不了知故。"
  49.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K.576, T.1605), 제6권. p. 151 / 388. 무명결(無明結). 
    "‘무명결’이란 삼계의 지혜가 없는 것을 가리킨다.
    [釋] 무명결에 묶여지기 때문에 고법(苦法)과 집법(集法)에 처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불선법을 널리 행하고, 여러 가지 선법을 행하지 못하는 까닭에 미래세의 고와 그 고에 상응하는 법을 초래하게 된다. ‘고법과 집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란 과보의 성품과 원인의 성품에 처한 유루의 모든 행을 말하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이 근심거리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50. 佛門網, "有漏行". 2013년 5월 11일에 확인. 
    "有漏行:
    出處: 丁福保《佛學大辭典》
    解釋:
    ===(術語)(一)有漏心所修之行法也。如見道以前之修行,及修道位中雜修靜慮之有漏心是也。見俱舍論二十三二十四。(二)謂有漏即行也。有漏法即有為法之意。以行為造作之義,有為之異名也。"
  51.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0b27 - T26n1542_p0700b28. 무명촉(無明觸). 
    "無明觸云何。謂染污觸。"
  52.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3권. p. 48 / 448. 무명촉(無明觸). 
    "무명촉(無明觸)은 무엇인가? 더러움에 물드는[染汚] 접촉이다."
  53. 중현 조, 현장 한역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14 - T29n1563_p0800b16. 치(癡). 
    "癡謂愚癡於所知境障如理解。無辯了相說名愚癡。即是無明無智無顯。"
  54.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7, T.1563), 제6권. p. 206 / 1762. 치(癡). 
    "치(癡)란 우치(愚癡)를 말하는 것으로, 알려질 대상에 대한 참다운 이해를 장애하여 분별 인식[辯了]이 없는 것을 일컬어 우치라고 한다. 즉 이는 바로 무명(無明)이고, 무지(無智)이며, 무현(無顯)인 것이다.2)
    2) 무지는 밝게 결택(決擇)할 수 없는 상태이고, 무현이란 일체 사리(事理)의 경계가 은폐되어 드러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55. 星雲, "".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有:  梵語 bhava,巴利語同。即存在、生存之義。於佛教典籍或各家主張中,「有」之使用範圍極廣,其意義與分類亦有多種不同之說法。據大毘婆沙論卷六十所舉,「有」之義有多種,然主要指有情眾生之異熟果體,及能招感此異熟果體之諸業。亦即由善惡之業因,能招感苦樂之果報,此種因果報應,相續而不亡失,故稱為「有」。又據俱舍論卷九、成唯識論卷八等所舉,能牽引當來果報之業,稱為「有」,此有即指「有支」,為十二因緣之一。
     就諸法之存在與否而言,「有」係表示諸法之存在,為「無」、「空」之對稱。說一切有部認為,諸法存在,三世實有。然唯識家則以「依他起性」之諸法為「假有」,以「圓成實性」為「實有」,但此「實有」與說一切有部之「三世實有」等意義不同,乃指諸法之實性(真如)常存、遍存,無有生滅,故唯識家特稱之為妙有、真有。
     此外,凡夫因執著色、無色二界為解脫之境界,常易於生起解脫之念,而妄求生於此二界,為遮止此一執情,故於此二界設立諸種之「有」,以顯示其非真解脫之境界;如稱色、無色二界之貪為「有貪」,稱煩惱為「有漏」,或稱無色界之愛為「有愛」等,皆為其例。
     另關於「有」之種類,可分為下列數種:(一)三有,指三界,亦即指欲有、色有、無色有。(二)七有,指地獄有、餓鬼有、傍生有、天有、人有、業有、中有。(三)二十五有,包括:(1)地獄、惡鬼、畜生、阿修羅等四惡趣。(2)東勝身洲、南贍部洲、西牛貨洲、北俱盧洲等四洲。(3)四天王天、夜摩天、忉利天、兜率天、化樂天、他化自在天等六欲天。(4)初禪天、大梵天、第二禪天、第三禪天、第四禪天、無想天、五淨居天等色界諸天。(5)空無邊處天、識無邊處天、無所有處天、非想非非想處天等無色界諸天。(四)二十九有,即將上述二十五有中之五淨居天,細分為無煩天、無熱天、善見天、善現天、色究竟天等五天,總合為二十九有。
     此外,初果之聖者,尚須於人界、天界間往返七次(各受生七次),合之則為十四生,而每一生復分為生有、中有,故共為「二十八有」,此二十八有又稱二十八生,為初果聖者受生之極度,故更無第二十九有可言。準此,若言「二十九有」者,則多表示事物之絕無者,猶如謂「六陰」、「十三入」、「十九界」等。
     又以一切萬有因存在之狀態不同,而有諸種之分類,此總稱為「諸有」;而「諸有」廣大無邊猶如大海,故亦稱「諸有海」。於大智度論卷十二中,將存在之法分為三種,稱為三種有,即:(一)相待有,謂有大小、長短等相對之存在。(二)假名有,謂由眾多因緣集合而成者,如由四大假合之人等,係有假名而無實體者。(三)法有,謂由因緣而生之法,雖無自性,然非如兔角、龜毛等之有名無實,故稱法有。〔集異門足論卷四、大毘婆沙論卷一九二、俱舍論卷十九、順正理論卷四十五、成唯識論卷二、卷九、大智度論卷三、大乘義章卷八〕(參閱「十二因緣」337、「三有」548、「四有」1668、「無」5068) p2426"
  56. 星雲, "三有".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三有:   有,梵語 bhava,其義分類如下:(一)欲有、色有、無色有。義同三界。(一)欲有,欲界天、人、修羅、畜生、餓鬼、地獄,各隨其業因而受果報,稱為欲有。(二)色有,色界四禪諸天,雖離欲界粗染之身,而有清淨之色,稱為色有。(三)無色有,無色界四空諸天,雖無色質為礙,亦隨所作之因,受其果報,稱為無色有。〔大智度論卷三、集異門足論卷四、大毘婆沙論卷六十〕
     (二)有情一生之始終分為生有、本有、死有。(一)生有,指託生之最初一剎那。(二)本有,指由生至死之間。(三)死有,指死之瞬間。小乘有部宗則以此三有,加上「中有」,而主張四有之說。〔異部宗輪論〕(參閱「四有」1688)
     (三)有漏之異名。漏,為煩惱之異名。煩惱自有情眾生之六根門漏泄無窮,而令其流轉於生死之間,故謂有漏乃三有之因,為其所依、所攝。(參閱「有漏」2452)
      (四)善成有、性得有、變異有。乃數論外道所立。(一)善成有,如數論之祖迦毘羅仙人,初生時具法、智、離欲、自在等四德,此四德係因善而得成就,故稱善成有。(二)性得有,如昔時梵王生娑那歌、娑難陀那、娑那多那、娑難鳩摩羅等四子,此四子十六歲時自然成就法、智、離欲、自在等四德,以無因而得,故稱自性有。(三)變異有,師身名變異,因師身故,弟子恭敬親近聽聞得智慧,因智慧得離欲,因離欲得善法,因善法得自在;如是,弟子四德從師身得,故稱變異有。此三有相當於佛法之等起善、生得善、加行善。〔金七十論卷中〕 p548"
  57. 운허, "有(유)".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有(유):
    [1] 있다는 것. ↔ 공(空)ㆍ무(無). 여기에 실유(實有)ㆍ가유(假有)ㆍ묘유(妙有)가 있음.
    [2] 12인연의 하나. 유지(有支)라고도 함. 미계(迷界)에 태어나는 원인인 업을 짓는 자리.
    [3] 선ㆍ악의 업인(業因)에 따라 받게 되는 고와 낙이 제각기 다른 생(生). 3유ㆍ25유 등.
    [4]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자체. 정심(定心) 또는 의신(依身). 색계ㆍ무색계의 중생은 욕계의 중생이 바깥 대상물에 대하여 번뇌를 일으키듯이, 내계(內界)의 정심(定心)에 애착하므로 유탐(有貪)이라 함. 외도들은 이 경계를 해탈 경계라고 생각함에 대하여, 이것은 생사하는 경계인 줄을 알게 하기 위하여 특히 유탐(有貪)이라 이름."
  58. 운허, "三有(삼유)".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三有(삼유): 【범】 trayo-bhava (1) 유(有)는 존재한다는 뜻으로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 삼계(三界)와 같음. (2) ① 생유(生有). 처음 나는 일찰나. ② 본유(本有). 나서부터 죽을때까지의 존재. ③ 사유(死有). 죽는 일찰나. (3) 유루(有漏)의 다른 이름. (4) 수론(數論) 외도가 세우는 선성유(善成有)ㆍ성득유(性得有)ㆍ변이유(變異有)."
  59. 운허, "三界九地(삼계구지)".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三界九地(삼계구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3계를 다시 9지로 나눔. 오취잡거지(五趣雜居地)ㆍ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ㆍ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ㆍ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ㆍ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ㆍ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ㆍ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ㆍ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ㆍ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
  60. 운허, "九地(구지)".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九地(구지): 3계(界)를 9종으로 나눈 것. (1) 욕계오취지(欲界五趣地). 욕계 안에 있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5취(趣)를 합하여 1지(地)로 한다. (2)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 색계의 초선천(初禪天). 욕계를 떠남으로 말미암아 희(喜)ㆍ낙(樂)의 느낌을 내는 곳. (3)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 색계 제2선천(禪天). 정(定)에서 즐거움을 내는 곳. (4)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색계 제3선천. 2선(禪)의 희락을 여의고 마음이 안정되어 묘한 즐거움이 있는 곳. (5)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색계 제4선천. 앞의 즐거움을 여의고 청정 평등한 사수(捨受)의 생각에 안주하는 곳. (6) 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 무색계에서 색(色)의 속박을 싫어하는 마음에 색상(色想)을 버리고 한없는 허공을 반연하는 선정을 닦는 곳. (7) 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 다시 공(空)인 생각을 버리고 심식(心識)이 끝없이 확대되는 관상(觀想)에 머물러 선정을 닦는 곳. (8) 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 다시 한 걸음 나아가 식상(識想)을 버리고 심무소유(心無所有)라고 관하는 선정을 닦는 곳. (9)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 앞의 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는 식(識)이 한없이 확대됨을 관함으로 유상(有想)이고, 다음 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는 식의 비존재를 관함으로 무상(無想)인데, 그 유상을 버림으로 비상(非想)이라 하고, 그 무상을 여의므로 비비상(非非想)이라 함. ⇒하팔지(下八地)"
  61. 곽철환 (2003), "구지(九地)".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구지(九地):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三界)로 나누고, 다시 욕계를 1지(地)로 하고 색계·무색계를 각각 4지(地)로 나눈 것.
    (1) 욕계오취지(欲界五趣地).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인(人)·천(天)의 미혹한 생존.
    (2)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 욕계를 떠남으로써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색계 초선천(初禪天)의 경지.
    (3)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 선정(禪定)으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색계 제2선천(第二禪天)의 경지.
    (4)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제2선천의 기쁨을 떠남으로써 묘한 즐거움을 느끼는 색계 제3선천(第三禪天)의 경지.
    (5)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마음이 평온하여 생각이 청정한 색계 제4선천(第四禪天)의 경지.
    (6) 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 허공은 무한하다고 체득하는 무색계 제1천의 경지.
    (7) 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 마음의 작용은 무한하다고 체득하는 무색계 제2천의 경지.
    (8) 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체득하는 무색계 제3천의 경지.
    (9)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무색계 제4천의 경지. 욕계·색계의 거친 생각은 없지만 미세한 생각이 없지 않은 무색계 제4천의 경지.
    동의어: 구유"
  62.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c03 - T26n1542_p0693c05. 유탐수면(有貪隨眠). 
    "有貪隨眠有十種。謂色界繫五。無色界繫五。色界繫五者。謂色界繫見苦集滅道修所斷貪。無色界繫五亦爾。"
  63.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1권. p. 8 / 448. 유탐수면(有貪隨眠). 
    "유탐(有貪)의 수면은 열 가지가 있다. 색계계(色界繫) 다섯 가지와 무색계에 매인[無色界繫] 다섯 가지이다. 색계에 매인 다섯 가지란 색계에 매인 견고·견집·견멸·견도와 수도에서 끊어야 할 탐(貪)이다. 무색계에 매인 다섯 가지도 마찬가지이다."
  64. 운허, "繫(계)". 2013년 1월 3일에 확인. 
    "繫(계): 또는 계박(繫縛). 물건에 얽히어 속박되는 뜻. 번뇌의 다른 이름. 번뇌는 몸과 마음을 속박하여 우리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므로 이같이 말함."
  65.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제19권. p. T29n1558_p0099b16 - T29n1558_p0099b25. 욕계의 수면(欲界隨眠). 
    "且於欲界五部不同乘十隨眠成三十六。謂見苦諦至修所斷。如次有十七七八四。即上五部。於十隨眠一二一一如其次第。具離三見二見見疑。謂見苦諦所斷具十。見集滅諦所斷各七。離有身見邊見戒取。見道諦所斷八。離有身見及邊執見。修所斷四。離見及疑。如是合成三十六種。前三十二名見所斷。纔見諦時彼則斷故。最後有四名修所斷。見四諦已後後時中數數習道彼方斷故。"
  6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제19권. pp. 862-863 / 1397. 욕계의 수면(欲界隨眠). 
    "바야흐로 욕계의 수면은 5부가 동일하지 않음에 따라 10수면에 근거하여 서른 여섯 가지가 되니, 말하자면 견고제소단(見苦諦所斷)으로부터 수소단(修所斷)에 이르기까지 그 순서대로 열 가지와 일곱 가지와 일곱 가지와 여덟 가지와 네 가지가 있으며, 이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5부의 한 가지(견고소단)와 두 가지(견집소단·견멸소단)와 한 가지(견도소단)와 한 가지(수소단)에 있어서 그 순서대로 10수면을 모두 다 갖춘 것과, 세 가지 견과 두 가지 견과 견·의를 각기 배제시킨 것이다. 이를테면 견고제소단은 10수면을 모두 다 갖추고 있으며,25) 견집제소단과 견멸제소단에는 각기 유신견과 변집견과
    계금취를 제외한 일곱 가지가 있으며, 견도제소단에는 유신견과 변집견을 제외한 여덟 가지가 있다. 수소단에는 5견과 의(疑)를 제외한 네 가지가 있다. 이상의 수면을 모두 합하면 바로 서른여섯 가지 종류가 되는 것으로, 그 중에 앞의 서른두 가지를 견소단(見所斷)이라고 이름하니, 4제를 관찰할 때 그것은 바로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후의 네 가지를 수소단(修所斷)이라고 이름하는데, 4제를 관찰하고 나서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자주자주 도(道)를 수습하여야 비로소 그것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25) 일체의 모든 수면은 모두 고제(苦諦) 즉 무상·고·무아·공에 위배되기 때문이다.(후술)"
  67.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제19권. p. T29n1558_p0099c04 - T29n1558_p0099c06. 색계·무색계의 10수면(十隨眠)의 5부(五部) 분별. 
    "故欲界中有三十六。色無色界五部各除瞋。餘與欲同。故各三十一。由是本論以六隨眠行部界殊說九十八。"
  6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제19권. p. 864 / 1397. 색계·무색계의 10수면(十隨眠)의 5부(五部) 분별. 
    "때문에 욕계 중에는 서른여섯 가지의 수면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색계와 무색계의 5부에는 각기 진(瞋)이 제외되며,29) 그 밖의 다른 것은 욕계에서와 동일하기 때문에 색계·무색계에는 각기 서른한 가지의 수면이 있다. 이에 따라 본론(本論)에서 '6수면은 [견의 차별적인] 행상과 [5]부와 [3]계의 차별로 인해 아흔여덟 가지가 된다'고 설하였던 것이다.30)
    29) 그곳에는 진(瞋)수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를테면 '진'은 전5식이 감수하는 고수(苦受)에서 수증되는 것인데, 거기에는 고수가 없기 때문에 '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의 상속은 삼매[定]에 의해 윤택해지기 때문이며, 그곳에는 '진'의 이숙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진'은 그 속성상 불선의 악으로 분류되나 상계의 수면번뇌는 악이 아닌 유부무기, 다시 말해 올바른 지혜의 생기를 방해하는 그릇된 의식일 뿐이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25, 앞의 책, p. 138 참조)"
  69.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제19권. p. T29n1558_p0099b25 - T29n1558_p0099c04. 욕계의 10수면(十隨眠)의 5부(五部) 분별. 
    "如是已顯。十隨眠中薩迦耶見唯在一部。謂見苦所斷。邊執見亦爾。戒禁取通在二部。謂見苦見道所斷。邪見通四部。謂見苦集滅道所斷。見取疑亦爾。餘貪等四各通五部。謂見四諦及修所斷。此中何相見苦所斷。乃至何相是修所斷。若緣見此所斷為境名見此所斷。餘名修所斷。如是六中見分十二。疑分為四。餘四各五。故欲界中有三十六。"
  7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제19권. pp. 863-864 / 1397. 욕계의 10수면(十隨眠)의 5부(五部) 분별. 
    "이상의 사실로 볼 때 10수면 중의 살가야견(薩伽耶見, satkaya-dṛṣṭi, 유신견의 원어)은 오로지 1부에만 존재하니, 이를테면 견고소단이 바로 그것으로, 변집견도 역시 그러하다. 계금취는 2부에 모두 존재하니, 이를테면 견고소단과 견도소단이 바로 그것이다. 사견은 4부와 통하니, 이를테면 견고소단·견집소단·견멸소단·견도소단이 바로 그것으로, 견취와 의(疑)도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그 밖의 탐 등의 네 가지(탐·진·만·무명)는 각기 5부와 통하니, 이를테면 견사제소단과 수소단이 바로 그것이다.26)
    이 중의 어떠한 상을 견고소단이라 하고, 내지는 어떠한 상을 수소단이라고 하는 것인가?27)
    만약 이러한 성제(聖諦)를 관찰하여 끊어지는 것(견소단의 번뇌 즉 見惑)을 소연의 경계로 삼는 것이라면 견차제소단(見此諦所斷)이라 이름하고, 그 밖의 것은 수소단이라 이름한다.28)
    26) 탐·진·만·무명 중 앞의 세 가지는 수혹이기는 하지만 5견과 의(疑)를 연(緣)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며(예컨대 5견에 탐착하므로 그것을 정견이라 주장하고 그러한 견해에 오만해 하고, 나아가 타인을 증오 무시한다), 무명의 경우 그 자체로서 생기하는 독두무명(獨頭無明)이나 5견과 서로 관계하여 생기하는 상응무명은 견소단이지만 탐·진·만과 상응 구기하는 무명은 수소단이자 견소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법의 인과관계상에서 일시 설정된 5취온을 실유의 자아로 집착하는 유신견은 인과관계상 현행의 결과(이것은 고·비상·비아·공으로 관찰됨)를 대상으로 하는 염오혜(染汚慧)이기 때문에, 변집견 역시 인과관계상의 현행의 결과에 대한 영속·단멸 등의 염오혜이기 때문에 오로지 견고소단이며, 계금취는 자재천 등이 세간의 참된 원인이 아님에도 그것을 상주하는 원인이라고 간주하는 염오혜이자 그릇된 금계를 청정도라고 판단하는 염오혜이기 때문에 견고소단이고 견도소단이다. 그리고 단멸의 입장에서 행위와 행위의 상속을 부정하는 사견은 인(집·도)과 과(고·멸)의 구조를 띤 사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취는 유신·변집·사견 등의 저열한 지식을 뛰어난 이치, 즉 사제로 견집(堅執)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는 4제에 대한 의심이기 때문에 견4제소단이다.
    27) 즉 5견과 의(疑)는 지적 번뇌이기 때문에 당연히 견혹이지만, 앞서 언급한 나머지 네 가지 수면 즉 탐·진·무명·만이 견소단과 수소단 모두와 통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경우의 탐이 견혹이고 어떠한 경우의 탐이 수혹인가 하는 물음.
    이와 같이 6수면 중에서 견(見)은 열두 가지로 나누어지고, 의(疑)는 네 가지로 나누어지며, 나머지 네 가지는 각기 다섯 가지(즉 5부의 수면)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욕계 중에는 서른여섯 가지의 수면이 있는 것이다.
    28) 5견이나 의(疑)와 같은 지적 번뇌를 소연으로 삼아 일어나는 탐 등은 견소단이며, 지적 번뇌없이 다만 습관적으로 일어난 탐 등은 수소단이다."
  71.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b28 - T26n1542_p0693c18. 98수면(九十八隨眠). 
    "隨眠有七種。謂欲貪隨眠。瞋隨眠。有貪隨眠。慢隨眠。無明隨眠。見隨眠。疑隨眠。欲貪隨眠有五種。謂欲界繫見苦集滅道修所斷貪。瞋隨眠有五種。謂見苦集滅道修所斷瞋。有貪隨眠有十種。謂色界繫五。無色界繫五。色界繫五者。謂色界繫見苦集滅道修所斷貪。無色界繫五亦爾。慢隨眠有十五種。謂欲界繫五。色界繫五。無色界繫五。欲界繫五者。謂欲界繫見苦集。滅道修所斷慢。色無色界繫各五亦爾。無明隨眠有十五種。謂欲界繫五。色界繫五。無色界繫五。欲界繫五者。謂欲界繫見苦集滅道修所斷無明。色無色界繫各五亦爾。見隨眠有三十六種。謂欲界繫十二。色界繫十二。無色界繫十二。欲界繫十二者。謂欲界繫有身見邊執見。見苦道所斷邪見見取戒禁取。見集滅所斷邪見見取。色無色界繫各十二亦爾。疑隨眠有十二種。謂欲界繫四。色界繫四。無色界繫四。欲界繫四者。謂欲界繫見苦集滅道所斷疑。色無色界繫各四亦爾。"
  72.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1권. pp. 8-9 / 448. 98수면(九十八隨眠). 
    "수면(隨眠)은 일곱 가지가 있다.
    욕탐(欲貪)의 수면·진(瞋)의 수면·유탐(有貪)의 수면·만(慢)의 수면·무명(無明)의 수면·견(見)의 수면·의(疑)의 수면이다.
    욕탐(欲貪)의 수면은 다섯 가지가 있다. 욕계에 매인[欲界繫] 견고(見苦)·견집(見集)·견멸(見滅)·견도(見道)와 수도(修道)에서 끊어야 할 탐(貪)이다.
    진(瞋)의 수면은 다섯 가지가 있다. 견고·견집·견멸·견도와 수도에서 끊어야 할 진(瞋)이다.
    유탐(有貪)의 수면은 열 가지가 있다. 색계계(色界繫) 다섯 가지와 무색계에 매인[無色界繫] 다섯 가지이다.
    색계에 매인 다섯 가지란 색계에 매인 견고·견집·견멸·견도와 수도에서 끊어야 할 탐(貪)이다.
    무색계에 매인 다섯 가지도 마찬가지이다.
    만(慢)의 수면은 다섯 가지가 있다. 욕계에 매인 다섯 가지와 색계에 매인 다섯 가지와 무색계에 매인 다섯 가지이다.
    욕계에 매인 다섯 가지란 욕계에 매인 견고·견집·견멸·견도와 수도에서 끊어야 할 만(慢)이다.
    색계에 매인 것과 무색계에 매인 각각 다섯 가지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명(無明)의 수면은 열 다섯 가지가 있다. 욕계에 매인 다섯 가지와 색계에 매인 다섯 가지와 무색계에 매인 다섯 가지이다.
    욕계에 매인 다섯 가지란 욕계에 매인 견고·견집·견멸·견도와 수도에서 끊어야 할 무명이다.
    색계에 매인 것과 무색계에 매인 각각 다섯 가지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견(見)의 수면은 서른 여섯 가지[三十六種]가 있다. 욕계에 매인 열 두 가지와 색계에 매인 열 두 가지와 무색계에 매인 열 두 가지이다.
    욕계에 매인 열 두 가지란 욕계에 매인 유신견(有身見)·변집견(邊執見)과 견고(見苦)와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사견(邪見)·견취(見取)·계금취(戒禁取)와 견집(見集)·견멸(見滅)에서 끊어야 할 사견과 견취이다.
    색계에 매인 것과 무색계에 매인 각각 열 두 가지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의(疑)의 수면은 열 두 가지가 있다. 욕계에 매인 네 가지와 색계에 매인 네 가지와 무색계에 매인 네 가지이다.
    욕계에 매인 네 가지란 욕계에 매인 견고·견집·견멸·견도에서 끊어야 할 의심이다.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각각 네 가지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73. DDB, "無色法". 2013년 5월 22일에 확인. 
    "無色法:
    Pronunciations: [py] wúsè fǎ [wg] wu-se-fa [hg] 무색법 [mc] musaek beop [mr] musaek pŏp [kk] ムシキホウ [hb] mushiki hō [qn] vô sắc pháp
    Basic Meaning: immaterial dharmas
    Senses:
    # (Skt. *ārūpya-dharma; Tib. gzugs can ma yin pa) 〔瑜伽論 T 1579.30.583b25〕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Hirakawa, YBh-Ind]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go daijiten (Nakamura) 1327a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Hirakawa) 0759
    Sanskrit-Tibetan Index for the Yogâcārabhūmi-śāstra (Yokoyama and Hirosawa) {Digital Version}"
  74. 佛門網, "無色法". 2013년 5월 22일에 확인. 
    "無色法: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解釋:
    dharmā arūpiṇaḥ, arūpiṇāṃ dharmāṇām, ārūpya-dharma, arūpin.
    頁數: P2153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品類足論六卷四頁云:無色法云何?謂一處,一處少分。"
  75.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6, T.1562), 제10권. p. 438 / 3087. 유색법(有色法). 
    "3. 심ㆍ심소ㆍ불상응행법의 구생관계
    유색법이 결정코 구생(俱生)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이제 다음으로 무색법의 구생관계에 대해 마땅히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心)과 심소(心所)는 반드시 함께 하며
      제행(諸行)은 상(相), 혹은 득(得)과 [반드시 함께 한다].
      心心所必俱 諸行相或得
    논하여 말하겠다.
    심과 심소는 결정코 반드시 구생하니, 둘 중의 어느 하나라도 결여될 때 다른 하나도 결정코 생기하지 않는다.
    [본송에서] 제행(諸行)이라 함은 바로 일체의 유위법(有為法)을 말하는 것이니, 이른바 유색과 무색의 온갖 행(즉 유위법)이 바로 그것이다.12) 그리고 그 앞의 구절에서 언급한 『반드시 함께 한다』고 하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되니, 이를테면 유색 등의 제행이 생겨날 때에는 반드시 『생(生)』 등의 4상(相)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나아가 『혹은 득(得)』이라고 말한 것은, 제행 가운데 오로지 유정의 법만이 『득』과 구생함을 말하며, 『혹은』이라고 말한 것은 이것이 모든 유위법[諸行]과 두루 구생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12) 유색법은 앞서 논설한 유대(有對)의 색법(色法)을 말하며, 무색법은 심법(心法)과 심소법(心所法)과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을 말한다."
  76.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6, T.1562), 제10권. p. 438 / 3087.
  77.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6권. p. T26n1542_p0714a14 - T26n1542_p0714a15. 무색법(無色法). 
    "無色法云何。謂一處一處少分。"
  78.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6권. p. 128 / 463. 무색법(無色法). 
    "무색법(無色法)은 무엇인가? 1처(處:意處)와 1처의 적은 부분[法處中無表色] 이외의 나머지 것을 말하는 것이다."
  79.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b09 - T02n0099_p0085b10. 유(有). 
    "緣取有者。云何為有。三有。欲有.色有.無色有。"
  80.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유(有).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존재[有]라고 하는가? 3유(有)이니, 탐욕의 존재[欲有]·빛깔의 존재[色有]·빛깔이 없는 존재[無色有]이니라."
  81.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4a10 - T26n1542_p0694a14. 무생지(無生智). 
    "無生智云何。謂自遍知。我已知苦不復當知。我已斷集不復當斷。我已證滅不復當證。我已修道不復當修。由此而起。智見明覺解慧光觀。皆名無生智。"
  82.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1권. p. 10 / 448. 무생지(無生智). 
    "무생지(無生智)란 무엇인가? 스스로 ‘나는 이미 괴로움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으므로 다시는 더 끊어야 할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였으므로 다시는 더 증득해야 할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으므로 다시는 더 닦아야 할 것이 없다’라고 두루 알아서 이로 말미암아 일으키는 지·견·명·각·해·혜·광·관을 모두 이름하여 무생지라 한다."
  83.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5a20 - T29n1558_p0135a28.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盡無生智二相何別。頌曰。
      智於四聖諦  知我已知等
      不應更知等  如次盡無生
    論曰。如本論說。云何盡智。謂無學位若正自知我已知苦。我已斷集。我已證滅。我已修道。由此所有智見明覺解慧光觀是名盡智。云何無生智。謂正自知我已知苦不應更知。廣說乃至。我已修道不應更修。由此所有廣說乃至。是名無生智。"
  8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제19권. p. 1178 / 1397.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진지와 무생지의 두 지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4성제에 대한 지(智)로서
      '나는 이미 알았다'는 등으로 아는 것과
      '더 이상 알 것이 없다'는 등으로 아는 것이
      차례대로 진지와 무생지이다.
      智於四聖諦 知我已知等
      不應更知等 如次盡無生
    논하여 말하겠다. 본론(本論)에서 설한 바와 같다.19) "무엇을 일컬어 진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무학위에서 '나는 이미 고(苦)를 알았다', '나는 이미 집(集)을 끊었다', '나는 이미 멸(滅)을 작증하였다', '나는 이미 도(道)를 닦았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 지(智)와 견(見)과 명(明)과 각(覺)과 해(解)와 혜(慧)와 광(光)과 관(觀)을 바로 진지라고 이름한다.20) 무엇을 일컬어 무생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나는 이미 고를 알았으므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나는 이미 도를 닦았으므로 더 이상 닦아야 할 것이 없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따위를 바로 무생지라고 이름한다."
    19) 『품류족론』 권제1(한글대장경117, p.24).
    20) 여기서 '지'는 결단(決斷) 혹은 거듭하여 아는 것을 말하며, '견'은 추구(推求) 혹은 현조(現照)를, '명'은 명랑(明朗)을, '각'은 각오(覺悟)를, '해'는 달해(達解)를, '혜'는 간택(簡擇)을, '광'은 혜광(慧光)을, '관'은 관찰을 말하는 것으로, 이 여덟 가지는 모두 혜의 다른 이름이다."
  85.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0b22 - T26n1542_p0700b23. 무색탐(無色貪). 
    無色貪云何。謂於無色起貪等貪。執藏防護。耽著愛樂。是名無色貪。"
  86.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3권. p. 47 / 448. 무색탐(無色貪). 
    "무색탐(無色貪)은 무엇인가? 형상 없는 것[無色]으로 일어나 탐하고 함께 탐하며, 가져 간직하고 막아 수호하며 즐겨 집착하고 사랑하며 좋아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무색탐’이라 한다."
  87.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7. 불해(不害). 
    "言不害者。謂無損惱。"
  8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불해(不害). 
    "불해(不害)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다른 이를 손상시키고 괴롭히지 않는 것을 말한다."
  89. 운허, "無心(무심)". 2012년 9월 18일에 확인. 
    "無心(무심): 진심이 망심(妄心)을 여읜 것을 무심이라 함. 또는 허망하게 분별하는 마음이 환영(幻影)과 같아 자성(自性)을 얻을 수 없으므로 무심이라 하며, 또한 잠시 동안 심식(心識)이 쉬어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므로 무심이라 하며 오위무심(五位無心)과 같다. 『종경록(宗鏡錄)』 83에 “만약 망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능히 깨달음에 이른다. 이른바 무심이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90. 星雲, "無心". 2012년 9월 18일에 확인. 
    "無心:   (一)有多種含義:(一)指離妄念之真心。非謂無心識,而係遠離凡聖、粗妙、善惡、美醜、大小等之分別情識,處於不執著、不滯礙之自由境界。宗鏡錄卷八十三(大四八‧八七五下):「若不起妄心,則能順覺。所以云,無心是道。」(二)指無心定之意,即一時休止一切意識作用之狀態,如五位無心。(三)指迷失本性之心,與「亂心」同義。〔道行般若經、光讚經卷三、摩訶般若鈔經、金剛經、瑜伽師地論卷十三、碧巖錄第六十五則、傳心法要卷下〕(參閱「五位無心」 1090)
     (二)明代臨濟宗僧。湖南平江人,俗姓舒。生卒年不詳。自幼隨母住燕京(北平),年十六於法海寺出家受具足戒,復往參謁南明慧廣,得證心印。萬曆十七年(1589),詔賜紫衣,復受慈聖太后懿旨,與妙峰同送龍藏至雞足山華嚴寺,眾等因之迎師駐錫於大覺寺,開法弘化,滇南禪風因而盛極一時。〔增訂佛祖道影卷二(虛雲)〕 p5075"
  9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제1권. p. 21 / 1397. 무심(無心). 
    "  난심(亂心)과 무심(無心) 등을
      따라 유전[隨流]하여 정(淨)·부정(不淨)이 되는 것으로
      대종소조(大種所造)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무표색'이라고 설한 것이다.
      亂心無心等 隨流淨不淨
      大種所造性 由此說無表
    논하여 말하겠다. 여기서 '난심'이란 이와는 다른 그 밖의 마음을 말하고,41) '무심'이란 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42) '등'이라고 하는 말은 불난심(不亂心 : 행위할 때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마음)과 유심(有心)을 나타낸다.
    그 리고 서로 유사(相似)하게 상속(相續)하는 것을 '따라 유전[隨流]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선과 불선을 일컬어 '정·부정'이라고 하였다. 나아가 온갖 득(得)에 의해 서로 유사하게 상속하는 것과 구별하기 위해 다시 '대종소조(大種所造)'라고 말한 것이다.43)
    41) '이와는 그 밖의 마음'이란 행위할 때의 마음과는 다른 마음, 이를테면 행위할 때의 마음이 선이면 선 이외의 불선·무기심을 말하며, 행위할 때의 마음이 불선이면 그 이외의 선·무기심을 말한다.
    42) 무상정(sa j~ -sam patti)과 멸진정(nirodha-sam patti)은 제4정려(靜慮)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포섭되는 명상의 상태로서, 본론 권제5(p.216)에서 논설되고 있다.
    43) 즉 무표색이란 이상의 네 가지 마음을 통해 항상 행위의 상사(相似) 상속을 가능하게 하는 힘으로서, 무표색의 본질이 선·불선이기 때문에 정·부정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이와 같은 성격의 득(得, 불상응행법의 하나)과 구별하기 위해 대종소조라고 규정하였다."
  92. 운허, "五位無心(오위무심)". 2012년 9월 18일에 확인. 
    "五位無心(오위무심): 법상종에서 제6 의식(意識)의 간단(間斷)하는 자리에 5종을 세운 것. 곧 무상천(無想天)ㆍ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ㆍ극수면(極睡眠)ㆍ극민절(極悶絶)의 5위에는 제6식이 잠깐 단절하므로, 5위무심이라 함."
  93.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2b23 - T26n1542_p0692b24. 5위(五位) 또는 5법(五法). 
    "有五法。一色。二心。三心所法。四心不相應行。五無為。"
  94.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1권. p. 1 / 448. 5위(五位) 또는 5법(五法). 
    "5법(法)이 있으니, 첫째는 색(色)이요 둘째는 심(心)이며, 셋째는 심소법(心所法)이요, 넷째는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이며, 다섯째는 무위(無爲)이다.
  95.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4), p. T31n1614_p0855b15 - T31n1614_p0855b20. 5위(五位) 또는 5법(五法). 
    "如世尊言。一切法無我。何等一切法。云何為無我。一切法者。略有五種。一者心法。二者心所有法。三者色法。四者心不相應行法。五者無為法。一切最勝故。與此相應故。二所現影故。三分位差別故。四所顯示故。如是次第。"
  9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644, T.1614), p. 1 / 3. 5위(五位) 또는 5법(五法).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일체 법은 [나[我]]가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일체 법이고 어떤 것을 [나]가 없음이라 하는가 하면, 일체 법에 대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의 법이고, 둘째는 마음이 지닌[心所法]이고, 셋째는 물질의 법이고, 넷째는 마음과 상응(相應)하지 않는 법이고, 다섯째는 함이 없는 법이다. 첫째는 일체에서 가장 수승하므로 이 법과 더불어 상응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나타나는바 그림자 때문이고, 셋째는 분위(分位)의 차별이기 때문이고, 넷째는 나타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차례이다."
  97.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2c09 - T26n1542_p0692c10. 무위법(無爲法). 
    "無為云何。謂三無為。一虛空。二非擇滅。三擇滅。"
  98.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1권. p. 2 / 448. 무위법(無爲法). 
    "무위(無爲)란 무엇인가?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허공(虛空)이요 둘째는 비택멸(非擇滅)이요 셋째는 택멸(擇滅)이다."
  99.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4), p. T31n1614_p0855c17 - T31n1614_p0855c21. 무위법(無爲法). 
    "第五無為法者。略有六種。一虛空無為。二擇滅無為。三非擇滅無為。四不動滅無為。五想受滅無為。六真如無為。言無我者。略有二種。一補特伽羅無我。二法無我。"
  10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644, T.1614), p. 3 / 3. 무위법(無爲法). 
    "다섯째의 함이 없는 법이 대략 여섯 가지가 있으니, 허공의 함이 없음이 그 하나이고, 택멸(擇滅)의 함이 없음이 그 둘이고, 간택하거나 판정하는 것이 비택멸(非擇滅(의 함이 없음이 그 셋이고, 부동멸(不動滅)의 함이 없음이 그 다섯이고, 진여의 함이었음이 그 여섯이다."
  101.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2a13 - T31n1602_p0482a17. 살가야견(薩迦耶見). 
    "一薩迦耶見。謂於五取蘊計我我所染污慧為體。或是俱生或分別起能障無我無顛倒解為業。如前乃至增長薩迦耶見為業。如經說如是知見永斷三結。謂身見戒禁取疑。"
  102. 무착 지음, 현장 한역 (K.571, T.1602), 제1권. p. 21 / 293. 살가야견(薩迦耶見). 
    "첫째는 살가야견(薩迦耶見)112)이니, 오취온에 대해서 나 · 내것으로 헤아려서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혹은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혹은 분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무아에 대해 뒤바뀌지 않은 이해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살가야견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이와 같은 지견(知見)은 세 가지 결박 번뇌[結]를 영원히 끊나니 신견(身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의(疑)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112) 범어 satkāya-dṛṣṭi 또는 satkāya-darśana의 음역이며 유신견(有身見) · 신견(身見)으로 의역된다. 오온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임시적인 나[我] 특히 육신을 참다운 자아라고 집착하는 견해이다. 또한 육신에 딸려 있는 온갖 소유도 고정된 소유주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것을 나의 소유물[我所]이라고 집착하는 견해를 말한다."
  103.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2a17 - T31n1602_p0482a21. 변집견(邊執見). 
    "二邊執見。謂於五取蘊執計斷常染污慧為體。或是俱生或分別起能障無常無顛倒解為業。如前乃至增長邊執見為業。如經說迦多衍那一切世間依止二種或有或無。"
  104. 무착 지음, 현장 한역 (K.571, T.1602), 제1권. p. 21 / 293. 변집견(邊執見). 
    "둘째는 변집견(邊執見)113)이 니, 오취온에 대해서 단멸함 · 상주함을 집착하고 헤아려서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혹은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혹은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무상(無常)에 대한 뒤바뀌지 않은 이해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변집견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가다연나(迦多衍那)114)여, 일체 세간은 두 가지에 의지하나니, 혹은 있음과 혹은 없음이니라”고 말한 바와 같다.
    113) 변집견(邊執見, antagrāhadṛṣṭi)은 편벽된 극단에 집착하는 견해이며 변견(邊見)이라고도 한다. 특히 자아가 사후(死後)에도 상주한다고 생각하는 상견(常見)과, 사후에는 단절된다고 생각하는 단견(斷見)에 고집하는 견해를 말한다. 62견(見) 중에서 47견을 포함한다. 이 중에서 40가지(4遍常論 · 4一分常論 · 有想 16論 · 無想 8論 · 俱非 8論)는 상견이고, 나머지 7가지는 단견이다.
    114) 성(姓)이다.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 Kātyāyanī-putra, 有部의 大論師)가 아니다."
  105.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2a21 - T31n1602_p0482a24. 사견(邪見). 
    "三邪見。謂謗因謗果或謗功用或壞實事染污慧為體。唯分別起能障正見為業。如前乃至增長邪見為業。如經說有邪見者所執皆倒。乃至廣說。"
  106. 무착 지음, 현장 한역 (K.571, T.1602), 제1권. p. 21 / 293. 사견(邪見). 
    "셋째는 사견(邪見)115)이니, 원인을 부정하고116) 결과를 부정하며,117) 혹은 작용[功用]을 부정하고,118) 혹은 참다운 존재[事]를 부정하여119)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오직 분별에 의해 생겨난다. 능히 정견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사견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삿된 견해가 있는 이는 집착하는 것이 모두 뒤바뀐 것이고.....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115) 사견(邪見, mithādṛṣṭi)은 인과(因果)의 도리를 무시하는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 온갖 망견(妄見)은 모두 정리(正理)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사견이라 한다. 이에는 2무인론(無因論) · 4유변론(有邊論) · 불사교란(不死矯亂) · 5현열반(現涅槃) · 자재천(自在天) 외도 등이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 책 제9권 · 제10권 참조.
    116) 보시(布施)나 탐착 등 모든 선악의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함을 말한다.
    117) 선악업에 초감(招感)되는 이숙과(異熟果)가 없다고 부정함을 말한다.
    118) 세간 · 부모 등 모든 사회 · 국가를 부정함을 말한다.
    119) 세간의 참다운 아라한(阿羅漢)도 없다고 부정함을 말한다."
  107.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2a24 - T31n1602_p0482a28. 견취(見取). 
    "四見取。謂於前三見及見所依蘊計最勝上及與第一染污慧為體。唯分別起能障苦及不淨無顛倒解為業。如前乃至增長見取為業。如經說於自所見取執堅住。乃至廣說。"
  108. 무착 지음, 현장 한역 (K.571, T.1602), 제1권. p. 21 / 293. 견취(見取). 
    "넷째는 견취(見取)120)이니, 앞에서 말한 세 가지 견해와 견해의 의지처인 온(薀)에 대해서 가장 수승하고 첫째가는 것이라고 헤아려서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오직 분별에 의해 생겨난다. 괴로움 · 부정(不淨)에 대한 뒤바뀌지 않은 이해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견취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스스로 견해에 취착한 것에 대해서 집착하고 굳게 머물며.....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120) 견취(見取, dṛṣṭiparāmarśa)는 견취견(見取見)의 준말이며, 모든 사견(邪見)을 고집하는 견해라는 뜻이다. 유신견 · 변견 · 사견 등을 일으키고 이를 잘못 고집하여 진실하고 수승한 견해라고 보는 망견(妄見)이다. 모든 투쟁의 의지처가 된다."
  109.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2a28 - T31n1602_p0482b02. 계금취(戒禁取). 
    "五戒禁取。謂於前諸見及見所依蘊計為清淨解脫出離染污慧為體。唯分別起能障如前無顛倒解為業。如前乃至增長戒禁取為業。如經說取結所繫。"
  110. 무착 지음, 현장 한역 (K.571, T.1602), 제1권. pp. 21-22 / 293. 계금취(戒禁取). 
    "다섯째는 계금취(戒禁取)121)이니, 앞에서 말한 여러 견해와 견해의 의지처인 온(薀)에 대해서 청정 · 해탈 · 벗어난 것이라고 헤아려서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오직 분별에 의해 생겨난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뒤바뀌지 않은 이해를 장애를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계금취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취(取)는 결박 번뇌[結]에 계박된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121) 계금취(戒禁取, śīlavrataparāmarśa)는 계금취견의 준말로서 계금(戒禁)에 대하여 일어나는 그릇된 견해를 말한다. 곧 진정한 원인 아닌 것을 원인이라 하고, 도(道)가 아닌 것을 도라고 하는 잘못된 견해이다. 예를 들면 외도(外道) 중에 개나 소 등이 죽은 뒤엔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여 개나 소처럼 풀이나 변(便)을 먹으면서 이것이 하늘에 태어나는 원인이고 정도(正道)라고 생각했던 경우이다. 또한 외도의 그릇된 계율뿐만 아니라, 불교 내부에서도 형식적인 계율을 지킴으로써 청정해질 수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식(儀式)만이 옳다고 집착하는 견해도 이에 해당된다."
  111. 운허, "染汚無知(염오무지)". 2013년 1월 2일에 확인. 
    "染汚無知(염오무지): 2무지(無知)의 하나. 염오는 번뇌의 다른 이름. 무지는 대경(對境)을 밝게 알지 못하는 것. 염오무지는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4제(諦)의 이치를 모르고, 만유(萬有)의 사상(事相)에 아득한 무명 번뇌를 말함. 3성 중에는 악과 무기 중의 유부무기(有覆無記)에 해당."
  112. 운허, "不染汚無知(불염오무지)". 2013년 1월 2일에 확인. 
    "不染汚無知(불염오무지): ↔ 염오무지(染汚無知). 온갖 경계에 대하여 그 진상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하열(下劣)한 지혜. 열혜(劣慧)로 체(體)를 삼는다. 이 무지(無知)는 사물에 집착하는 부정한 성분은 아니므로 불염오라 하고, 선(善)ㆍ악(惡)ㆍ무기(無記)의 3성(性) 중에는 선과 무부무기[無覆無記]에 통한 것이라 함."
  113.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04 - T29n1558_p0019c05. 치(癡). 
    "癡者。所謂愚癡。即是無明無智無顯。"
  11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치(癡). 
    "치(癡)란 이른바 우치(愚癡)를 말한다. 즉 이는 바로 무명(無明)이고, 무지(無智)이며, 무현(無顯)인 것이다.35)
    35) 무지는 밝게 결택(決擇)할 수 없는 상태이고, 무현이란 일체 사리(事理)의 경계가 은폐되어 드러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11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pp. 167 / 1397.
  116. 운허, "無瞋(무진)". 2012년 9월 3일에 확인.
  117. 星雲, "無瞋". 2012년 9월 3일에 확인.
  11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pp. 66-67 / 1397.
  119. 星雲, "無慚". 2012년 10월 9일에 확인.
  120. 운허, "無慚(무참)". 2012년 10월 9일에 확인.
  12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pp. 181-182 / 1397 무참(無慚). 
    "온갖 공덕(戒·定·慧의 삼학을 말함)과 공덕 있는 자(즉 스승)에 대해 공경하는 일이 없고, 숭배하는 일이 없으며, 어렵게 여겨 꺼리는 일[忌難]도 없을 뿐더러, 따라 속하는 일[隨屬], 즉 제자로서의 예의도 없는 것을 일컬어 무참이라고 한다. 즉 이는 바로 공경에 적대되는 법이다. ...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지은 죄에 대해 그 자체를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을 일컬어 무참이라 한다'고 하였다."
  122.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p. T29n1558_p0021a07 - T29n1558_p0021a18
    "於諸功德及有德者。無敬無崇無所忌難無所隨屬說名無慚。即是恭敬所敵對法。... 有餘師說。於所造罪自觀無恥名曰無慚。"
  123.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0c24 - T26n1542_p0700c28. 무참(無慚). 
    無慚云何。謂不慚不等慚不各別慚。不羞不等羞不各別羞。不厭不等厭不各別厭。不毀不等毀不各別毀。無尊無敬。無所自在。無自在轉。無所畏忌自在而行。是名無慚。"
  124.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3권. p. 49 / 448. 무참(無慚). 
    "무참(無慙)은 무엇인가? 자신에게 부끄러워하지 않고[不慙] 평등하게 자신에게 부끄러워하지 않고[不等慙] 각각 따로따로 자신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으며[不各別慙], 부끄러워하지 않고[不差] 평등하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각각 따로따로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싫어하지 않고[不厭] 평등하게 싫어하지 않고 각각 따로따로 싫어하지 않으며, 무너뜨리지 않고[不毁] 평등하게 무너뜨리지 않고 각각 따로따로 무너뜨리지 않으며, 높이 여김이 없고 공경함이 없고 자재함이 없으며, 자유로이 옮아감이 없고[無自在轉]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것이 없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이름하여 ‘무참’이라 한다."
  125. 운허, "無癡(무치)". 2012년 9월 22일에 확인.
  126. 星雲, "無癡". 2012년 9월 22일에 확인.
  127.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1c07 - T31n1602_p0481c08. 무치(無癡). 
    "無癡者。謂正了真實為體。能斷癡障為業。如前乃至增長無癡為業。如經說無癡善根。"
  128. 무착 지음, 현장 한역 (K.571, T.1602), 제1권. p. 18 / 293. 무치(無癡). 
    "치(無癡)95) 심소는 진실을 바르게 아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능히 어리석음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으며,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무치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무치의 선근”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95) 무치(無痴, amoha) 심소는 모든 사리를 밝게 이해하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129.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2), p. T31n1612_p0848c27. 무치선근(無癡善根). 
    "云何無癡。謂癡對治。以其如實正行為性。"
  13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618, T.1612), p. 4 / 12. 무치선근(無癡善根). 
    "어떤 것이 무치(無癡)인가. 이는 우치를 대치하는 것이니, 진실대로 바르게 행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131.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T.1613), p. T31n1613_p0852b01 - T31n1613_p0852b03. 무치선근(無癡善根). 
    "云何無癡。謂癡對治。如實正行為性。如實者略。謂四聖諦廣。謂十二緣起。於彼加行。是正知義。業亦如無貪說。"
  132.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K.619, T.1613), p. 8 / 24. 무치선근(無癡善根). 
    "무엇을 어리석지 않음[無癡]이라고 하는가?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여실(如實)하고 바르게 행동함[正行]을 성질로 한다. 여실하게란 간략하게 말하면 4성제(聖諦)이고, 넓게 말하면 12연기(緣起)이다. 이들에 대해서 행위를 더하는 것이 바로 앎[正知]의 뜻이다. 행동양식은 또한 탐욕 없음[無貪]에서 말한 것과 같다."
  133. 星雲, "正行". 2013년 2월 17일에 확인. 
    "正行: 梵語 samyak-pratipatti,巴利語 sammā-patipatti。指不邪曲之行。即以佛之教化為基準之正當行為,與「邪行」相對;或對雜行、助行而言正行。又由直接原因而成之行稱為正行,由間接原因而成之行稱為助行。
     據八正道經載,不諦見、不諦念、不諦語、不諦治、不諦求、不諦行、不諦意、不諦定等,稱為道八邪行;反之,諦見、諦念,乃至諦意、諦定等,則稱為道八正行。據中阿含卷三十八鸚鵡經及大智度論卷四十八等載,與外道凡夫之邪行相對的八正道等即屬正行。
     諸家列有數種正行說。如瑜伽師地論卷六十四舉出三種正行即:於佛寶應修供養承事正行、於法寶所應修瑜伽方便正行、於僧寶所應修共受財法正行。大乘莊嚴經論卷十二以六波羅蜜為正行,即: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般若正行。辯中邊論卷下就十波羅蜜行之「相」分別為六種正行,即:最勝、作意、隨法、離二邊、差別、無差別正行。中邊分別論卷下則就上述之作意正行分出十種正行,即:書寫、供養、施與他、若他讀誦一心聽聞、自讀、自如理取名句味及義、如道理及名句味顯說、正心聞誦、空處如理思量、已入意為不退失故修習。法華經玄贊卷八以法華經卷四法師品所謂之受持、讀、誦、解說、書寫、供養等,稱為正行六種法師。
     淨土宗大德善導之觀經疏散善義中,謂修習五種往生阿彌陀佛淨土之行業為五正行。即:(一)讀誦,讀誦淨土之聖典。(二)觀察,觀想阿彌陀佛之相好。(三)禮拜,禮拜阿彌陀佛。(四)稱名,稱念阿彌陀佛之名號。(五)讚歎供養,讚歎阿彌陀佛之功德。反之,若以阿彌陀佛以外諸佛菩薩為禮拜、觀想等之對象者,則稱雜行。五正行中「稱名」一項特別符合彌陀之本願,故稱正定業,其餘四項則稱助業、助行,二者因相對而作此稱。若在專修念佛(稱名)之外,兼修其他四行者,則稱助正兼行。又就往生淨土之「正因」,而言正行。此外,密教中,則於加行之後所修之行業稱正行。〔轉法輪經、般泥洹經卷下、大方等大集經卷三十、解深密經卷三、大智度論卷五十六、卷八十七、辯中邊論述記卷中、法苑珠林卷十七〕(參閱「正因正行」1985)p1986"
  134.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제22권. p. T29n1558_p0116b29 - T29n1558_p0116c09. 견도(見道, 見諦道)와 3혜(三慧). 
    "應說云何方便勤修趣見諦道。
    頌曰。
      將趣見諦道  應住戒勤修
      聞思修所成  謂名俱義境論曰。
    諸有發心將趣見諦。應先安住清淨尸羅然後勤修聞所成等。謂先攝受順見諦聞。聞已勤求所聞法義。聞法義已無倒思惟。思已方能依定修習。行者如是住戒勤修。依聞所成慧起思所成慧。依思所成慧起修所成慧。"
  13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제22권. p. 1014 / 1397. 견도(見道, 見諦道)와 3혜(三慧). 
    "이제 마땅히 어떠한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야 견도제(見道諦)[→ 한역본에는 견제도(見諦道)로 되어 있다], 즉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아가려는 이는
      마땅히 계(戒)에 머물면서 문(聞)·사(思)·수(修)로써
      성취되는 바를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말과, 말과 뜻과, 뜻이 그것의 경계이다.
      將趣見諦道 應住戒勤修
      聞思修所成 謂名俱義境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유정으로서 발심하여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見諦]로 나아가려는 자는 마땅히 먼저 청정한 시라(尸羅, 즉 계율)에 안주하고, 그런 연후에 문소성혜(聞所成慧) 등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이를테면 먼저 진리의 관찰[見諦]에 수순하는 청문(聽聞)을 섭수하고, 듣고 나서는 들은 법의 뜻[法義]을 부지런히 추구하며, 법의 뜻을 듣고 나서 전도됨이 없이 사유(思惟)해야 하니, 사유[思]하고 나서야 비로소 능히 선정[定]에 의지하여 수습(修習)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수행자는 이와 같이 계(戒)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닦아 문소성혜(聞所成慧)에 의해 사소성혜(思所成慧)를 일으키고, 사소성혜에 의해 수소성혜(修所成慧)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136. 권오민 (2003), pp. 21-29. 4혜(四慧). 
    "아비달마는 궁극적으로 불타의 참된 예지(眞智)에 대한 이해(簡擇)력인 무루無漏의 지혜를 본질로 한다. 무루의 지혜는 더 이상 번뇌(漏)를 수반하지 않으며, 세간의 온갖 더러움을 떠난 것이기에 청정한 지혜이다. 아비달마는 궁극적으로 이 같은 무루의 지혜를 본질로 한다. 세계존재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올바른 관찰과 이해는 오로지 이 같은 지혜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그렇게 될 때 관찰자는 더 이상 생사 미망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루의 지혜는 사실상 불타 깨달음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생異生의 범부로서는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세간의 지혜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한 세간의 지혜로서는 스승이나 친구의 말을 듣고서 획득하는 지혜(이를 문소성혜聞所成慧라고 한다), 그것을 주체적으로 사유함으로써 획득하는 지혜(이를 사소성혜思所成慧라고 한다), 다시 선정을 통해 반복적으로 익힘으로써 체득하는 지혜(이를 수소성혜修所成慧라고 한다)가 있으며, 이러한 세 가지 지혜를 낳을 수 있게 하는 타고난 지혜(이를 생득혜生得慧라고 한다) 등이 있지만, 이것은 모두 선천적 혹은 후천적 실천에 의한 것이므로 여기에는 그 근거가 되는 또 다른 방편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세속世俗의 아비달마'로 일컬어지는 협의의 아비달마,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아비달마 논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간의 네 가지 지혜나 그 근거가 되는 아비달마의 여러 논서는 궁극적으로 무루의 지혜를 낳게 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이 역시 아비달마의 본질이라 말할 수 있다고 비바사사毘婆沙師(Vaibhasika, 설일체유부의 논사를 말함)는 생각하였다. 즉 아비달마의 여러 논서에서 설해진 것을 들을 때 타고난 지혜가 작용하고, 그것에 의해 청문聽聞 등에 의한 후천적 지혜가 성취되며, 마침내 무루의 청정한 지혜가 획득되기 때문에 전자는 후자의 점진적 근거가 된다. 말하자면 무루의 청정한 지혜를 본질로 하는 아비달마는 불타의 참된 예지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승의勝義의 아비달마(paramarthikabhidharma)라고 한다면, 세간의 네 가지 지혜와 아비달마의 여러 논서는 그것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 즉 세속의 아비달마(sampetikdbhidharma)이다."
  137. 운허, "無貪(무탐)". 2012년 9월 3일에 확인.
  138. 星雲, "無貪". 2012년 9월 3일에 확인.
  139.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5), 제1권. p. T31n1605_p0664b13 - T31n1605_p0664b15. 근(勤)심소. 
    "何等為勤。謂心勇悍為體。或被甲或加行。或無下或無退或無足。差別成滿善品為業。"
  140. 안혜 조, 현장 한역 (T.1606), 제1권. p. T31n1606_p0697c04 - T31n1606_p0697c08. 근(勤)심소. 
    "勤者。被甲方便無下無退。無足心勇為體成滿善品為業。謂如經說。有勢有勤有勇堅猛不捨善軛。如其次第應配釋被甲心勇等諸句。滿善品者。謂能圓滿隨初所入根本靜慮。成善品者。謂即於此極善修治。"
  141.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6권. p. T31n1585_p0030a23 - T31n1585_p0030b01. 근(勤)심소. 
    "勤謂精進。於善惡品修斷事中勇悍為性。對治懈怠滿善為業。勇表勝進簡諸染法。悍表精純簡淨無記。即顯精進唯善性攝。此相差別略有五種。所謂被甲加行無下無退無足。即經所說有勢有勤有勇堅猛不捨善軛。如次應知。此五別者。謂初發心自分勝進。自分行中三品別故。"
  142.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6권. pp. 291-292 / 583. 근(勤)심소. 
    "‘근(勤)심소’49)는 정진(精進)을 말한다. 선품을 닦고 악품을 끊는 일에 대해서 용맹스럽고 굳세게 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게으름[懈怠]을 다스려서 착한 일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용맹스럽다는 것은 정진하는 것을 나타내어 모든 잡염법을 가려낸다. 굳세다는 것은 지극히 순수한 것을 나타내어 청정 무구성을 가려낸다. 곧 정진은 오직 착한 성품에만 포함됨을 나타낸다. 이것의 양상의 차이는 대략 다섯 종류가 있으니 곧 맹렬함을 일으키는 것[被甲]50)·가행51)·낮추지 않음[無下]52)·물러나지 않음[無退]53)·만족하지 않음[無足]54)이다. 경전에서 말씀한, 세력이 있음[有勢] · 정진함[有勤] · 용감함[有勇]·견고하고 용맹함[堅猛] · 선의 멍에55)를 버리지 않음[不捨善軛]이니, 순차적으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다섯의 차이를 말하면 초발심 · 자분(自分) · 승진(勝進) · 자분행(自分行) 중의 세 가지 품류로서 다르기 때문이다.56)
    49) 근(勤, vīrya)심소는 ‘정진’의 심리작용으로서, 용맹스럽게 선행을 닦고 악행을 끊게 한다. 해태(懈怠)심소를 다스린다.
    50) 피갑(被甲)은 맹렬하고 날카롭게 즐거운 욕구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는 세력이 있는 것[有勢]이라고 이름한다. 갑옷[甲]을 입고[被] 군대가 진(陣)을 친 곳에 들어갈 때 두려워하지 않고 큰 위세가 있는 것과 같음을 일컫는다.
    51) 가행(加行)은 견고하고 용감한 방편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는 정진하는 것[有勤]으로 이름한다. 마음을 견고하게 해서 스스로 책려(策勵)하는 것을 일컫는다.
    52) 낮추지 않음[無下]은 증득해야 할 것에 대해서 스스로를 경멸하지 않고, 역시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는 용감한 것[有勇]으로 이름한다.
    53) 물러나지 않음[無退]이란 추위나 배고픔 등의 고통을 능히 인내로써 받아들이고, 열등한 선(善)에 대해서 혐오(嫌惡)나 만족함을 일으키지 않으며, 다음 단계의 뛰어난 공덕 등을 기쁘게 구하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는 견고하고 용맹한 것[堅猛]으로 이름한다.
    54) 만족하지 않음[無足]은 이후에 점차 4성제를 관찰함[諦觀] 등 뛰어난 도(道)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는 선(善)의 멍에를 버리지 않는 것[不捨善軛]으로 이름한다.
    55) 소[牛]에게 멍에를 씌움으로써 소로 하여금 도망가지 않고 능히 나아가게 한다. 선법(善法)도 역시 그러해서 수행자에게 멍에를 지워 선품(善品)에서 벗어나지 않고 열반에 나아가게 하므로 이렇게 표현한다.
    56) 다섯 가지 중에서 맹렬함을 일으키는 것[被甲 · 有勢]은 발심이고, 나머지 넷은 수행인데, 이 수행은 다시 자분(自分)과 승진(勝進)으로 나뉜다. 자분은 가행(加行. 有勤:下品), 낮추지 않음[無下. 有勇:中品], 물러나지 않음[無退. 堅猛:上品]의 3품이고, 만족하지 않음[無足. 不捨善]은 승진에 해당된다."
  143.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T.1613), p. T31n1613_p0852b04 - T31n1613_p0852b06. 5정진(五精進). 
    "云何精進。謂懈怠對治。善品現前。勤勇為性。謂若被甲。若加行。若無怯弱。若不退轉。若無喜足。是如此義。圓滿成就。善法為業。"
  144.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K.619, T.1613), p. 8 / 24. 5정진(五精進). 
    "무엇을 정진(精進)이라고 하는가?
    게으름[懈怠]을 다스리고 선한 종류가 드러나 더욱 정근함을 성질로 한다. 불 · 보살의 가호를 받고, 더욱 행동에 채찍질을 하고 겁내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만족하지 않는다면, 이는 정진의 뜻을 원만하게 성취한 것이다. 선법(善法)으로 행동양식을 삼는다."
  14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p. 85 / 1397.
  146.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a15 - T26n1542_p0693a17. 작의(作意). 
    "受觸。順不苦不樂受觸。作意云何。謂心警覺性。此有三種。謂學作意。無學作意。非學非無學作意。"
  147.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1권. p. 5 / 448. 작의(作意). 
    "작의(作意)란 무엇인가? 마음을 일깨우는 성품[警覺性]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작의[學作意]·배울 것이 없는 이의 작의[無學作意]·배울 것이 있는 이도 아니고 배울 것이 없는 이도 아닌 이의 작의[非學非無學作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