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크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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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크 부케, 아리크 부카, 아릭 부케 또는 아라 부가(Arikbukha, 한자阿里不哥 아리불가, ? ~ 1266년)는 톨루이소르칵타니의 말자이다. 그의 형제는 몽케, 쿠빌라이, 훌라구 등이 있었다.

1259년 제4대 대칸인 몽케가 남송 원정 중에 병사하고, 몽골 원에 있던 수도 카라코룸을 수비하던 막냇동생 아리크 부케는 몽케파의 왕족을 모아 쿠릴타이를 열어 서부의 차가타이 가문 등 여러 왕가의 지지를 얻어 대칸의 지위를 얻었다. 이에 몽케와 함께 남송 원정 중이던 둘째동생 쿠빌라이는 윤11월에 군대를 되돌려 내몽골에 들어서 동쪽 3왕가(칭기즈칸의 동생 가계)등의 지지를 얻은 다음, 이듬해 3월에 자신의 본거지였던 내몽골개평부(開平府 : 훗날의 상도)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대칸의 지위에 앉았다. 이로써 몽골 제국은 사성 처음으로 몽골고원 남북에 두 명의 대칸이 들어서게 된다. 몽케의 장례를 치르고, 제도(帝都) 카라코룸에서 즉위한 아리크 부케가 대칸으로서의 정통성은 확보한 셈이었으나, 군사력을 장악한 쿠빌라이 역시 아리크 부케를 배신자로 여기고 자신이야말로 정당한 대칸이라고 주장했다.

쿠빌라이와 아리크 부케의 양군은 여러 차례 격돌하였으나 승패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군사력과 화북의 물자를 장악한 쿠빌라이에게 전세가 유리해지기 시작했다.

서전인 1261년 시무토노르 전투에서는 쿠빌라이가 승리했으나, 아리크부케는 북서쪽 몽골의 오이라트의 지원을 얻어 저항을 계속했다.

그러나 아리크 부케 산하의 제후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차가타이 가문마저 아리크 부케에 대한 지원을 끊자, 1264년 아리크부케는 결국 쿠빌라이에게 항복했다. 이 일련의 전란을 승리자 쿠빌라이를 정통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아리크부케의 난이라고 불렀다.

가족 관계[편집]

  • 父 : 툴루이(拖雷)
  • 母 : 소르칵타니(唆魯合貼尼)
    • 兄 : 몽케(夢哥)
    • 兄 : 쿠빌라이(忽必烈)
    • 兄 : 훌라구(旭烈兀)
      • 子 : 요부쿠르(藥木忽兒)
      • 子 : 멜릭 테무르(明里帖木兒)
      • 子 : 나이라쿠부카(乃剌忽不花)
      • 子 : 라간시간(拉幹失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