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칵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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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이(왼쪽)와 소르칵타니

소르칵타니(한자唆魯合貼尼 사로합첩니, Sorghaghtani Beki, 1198년 ~ 1252년)는 칭기즈칸의 4남 툴루이의 아내이며, 몽케 칸, 쿠빌라이 칸의 어머니이다.

생애[편집]

그녀는 케레이트족으로 케레이트 부족의 지도자였으며, 칭기즈칸의 의부였던 토그릴 완 칸의 질녀로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도였으며 현명하였다. 그러나 완 칸이 칭기즈칸과 대립하다가 패하고 같은 기독교도였던 나이만 부족 인에게 살해당했다. 그녀는 결국 툴루이에게 시집갔다.

징기스칸의 사후 쿠릴타이에서 몽골 족장들은 톨루이를 새로운 대칸으로 선출하였지만, 톨루이는 그것을 거절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그의 형 우구데이에게 양위하였다. 몽골 족장들은 막내 아들이 아버지를 계승한다는 전통에 따라 이와 같이 결정하였으나, 톨루이가 당시 가장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톨루이보다 소르칵타니로부터 얻은 그의 네 아들로 이루어진 톨루이 가문 사람들은 몽골 제국의 운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아들은 몽케쿠빌라이, 아리크 부케, 훌라구이었다. 몽케는 4대 몽골 황제가 되었고, 쿠빌라이는 5대 황제가 되었다.

송나라를 정복한 쿠빌라이 칸은 중국을 거점으로 원나라를 세웠고, 훌라구 칸은 바그다드와 다마스쿠스를 정복한 일 한국을 세웠다.

그녀의 남편 툴루이는 동몽골과 북중국을 왕국으로 하였는데 40세에 과음으로 사망하였다. 그리고 소르칵타니는 집정이되었고 우구데이는 그의 아들 구유크를 그녀와 결혼시키려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거절하고 이 결정은 몽골제국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로 판명되었다.

소르칵타니는 몽케 칸의 즉위 몇달 후인 1252년 2월 몽골의 신년 축제중에 죽었다. 시호현의장성황후(顯懿莊聖皇后)이다.

가족 관계[편집]

전 임
보르테
몽골 제국 황후
1227년 ~ 1229년
후 임
합진 대황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