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타이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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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타이(察合台)

차가타이(몽골어: Цагадай, 1183년경 ~ 1242년)는 몽골 제국의 칸으로, 몽골 제국의 초대 대칸 칭기즈 칸의 둘째 아들이다. 위구르 지방에서 서쪽으로 부하라사마르칸드에 이르는 옛 카라키타이 제국의 초원, 즉 일리, 이식쿨 호, 추 강 상류, 그리고 탈라스 지역을 몫으로 물려받았다.

생애[편집]

'차가타이 한국'의 시조이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유목생활을 계속했으며, 태조로 부터 '야삭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후일 원나라에서 추존한 묘호는 성종(聖宗)이고 시호충무황제(忠武皇帝)이다. 형 주치와 달리 칭기즈 칸의 아들임이 분명했으며, 형 주치의 혈통을 문제삼아 주치와 여러번 다투었다.

그는 겨울에는 일리 강 근처에서 지냈고, 여름에는 쿠야쉬(Quyash)에서 지냈다. 두 곳 모두 일리 계곡에 있었고 쿠아쉬는 오늘날 쿨자에서 멀지 않은 알말릭 부근이었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과는 달리 정착하지 않았으며 유목생활을 계속하였다.

그의 이름에서 차가타이 한국이 생겨났으며, 그의 나라는 몽골령 투르크스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칭기즈 칸의 아들임이 분명했던 그는 형 주치의 상속권에 이의를 제기하며 주치의 혈통을 계속 문제삼았고, 이로 인해 주치와 여러번 다투었다. 차가타이는 차가타이 한국을 1227년부터 1242년까기 통치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칭기즈 칸은 그를 야삭의 수호자라고 불렀다. 그는 야삭을 평생동안 준수하였고 주위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했다.

그는 영토안에 트란스옥시아나가 존재하였지만 대칸 오고타이가 마흐무드 얄라바치에게 통치를 위임하여 그 지역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였다. 마흐무드 얄라비치와 그의 아들 마스우드 얄라바치는 차가타이 한국의 문명화된 도시들을 대칸의 이름으로 다스렸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로서 큰아들 무투겐의 아들인 카라 훌레구를 지명하였다. 그러나, 카라 훌레구는 4년간만 통치할 수 있었고, 대칸 구유크 칸은 이수 뭉케로 차가다이 칸국을 다스리게 하였다. 다시 몽케가 대칸이 되자 카라 훌레구가 다시 칸에 임명되었다. 이와 같이 차카다이의 사후에 차가다이 한국은 자주적이지 못하였고, 카라코룸 조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가족관계[편집]

참고서적[편집]

  •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르네 크루쎄 저, 사계절[쪽 번호 필요]
전 임
칭기즈 칸
(사실상)
제1대 차가타이 한국의 칸
1227년 ~ 1242년
후 임
손자 카라 훌레구